끈이 목에 몇 번 감겨있어야 자살일까?

<심리부검-나는 자살한 것을 후회한다>

by 서정문PD

초조해서 이빨 사이에 손톱을 집어넣고 잘근잘근 씹는다. 구부정하게 의자에 앉아 인터넷 기사나 각종 게시판을 뒤지며 다리를 떤다. 머릴 쥐어 뜯는다. 한숨을 쉰다. 잡지도 뒤적여보고. 며칠 지난 신문을 괜히 펼쳐본다. 초조함에 평소 마시지도 않는 커피를 몇 모금 마신다. 심장이 뛰고 손이 떨리는데 이게 카페인 때문인지 방송일이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인지 헷갈린다. 나무 위로 급하게 뛰어올라 화는 면했지만 아래에서 으르렁 거리는 암사자의 굵은 어금니를 보고 있는 털빠진 원숭이가 된 것만 같은, 아이템에 쫓기던 그 날


제보가 왔다.


간단하지만 파문을 일으킬 듯한 아이템.

남의 비극이지만 방송쟁이의 밥벌이가 되는...그래서 더욱 비극인 내용의 제보.



누가 이 아이를 죽게 했는가

한 고등학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한 달 전 선생님에게서 따귀를 세 번, 엉덩이를 세 번 맞았다. 부모는 아이가 전학시켜달라 했지만 전학을 실행에 옮길수는 없었고 결국 죽음을 택했다고 말했다. 평일에 찾은 조용한 서울 모처의 사찰 대웅전 한 켠에 죽은 아이의 영정이 안치돼 있었다. 부모는 그 사진 앞에 주저앉아 기운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똑똑하고 착했던 아이. 피부가 뽀얗던 남자 고등학생의 얼굴이 내내 인터뷰 중인 우리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학교 체벌로 인한 학생의 자살 사건 보도가 이어졌다. 하나같이 학교는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려 했고, 그 와중에 교장이나 교감이 뱉은 말들이 고스란히 비난 여론에 기름을 붓던 시절.


죽은 아이의 영정 옆에 또 다른 아이의 영정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죽음을 택한 두 사람. 이들의 죽음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서로 다른 도시에 사는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 지방에서 만나, 그 지방의 몇 안되는 고층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한 것이다. 현장에 가보니 아파트 앞 보행자도로 바닥엔 한 달이 지나도록 지워지지 않은 혈흔이 뚜렷했다. 경찰에 의하면 두 사람의 신발은 옥상 난간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고 했다.


이 두 아이가 어떻게 만나 이 연고없는 지방 아파트 옥상에 이르게 됐느냐를 취재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일단 체벌과 죽음의 상관관계부터 취재하기로 했다. 방송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현실적 제한과 당시 언론 분위기가 나를 '쉬운' 길로 이끌었다. 그게 내 실수였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서를 들여다보는 오후

죽은 고등학생의 부모와 형제와 친구들과 학교 선생님들을 만났다. 증언들은 일치하지 않았다. 심한 체벌이었다, 좋은 선생님이다, 체벌 이후에도 아이는 멀쩡하게 학교를 다녔다, 전학가고 싶다고 했다...한 줄기로 엮을 수 없는 말들이 이어졌고 '체벌로 인한 자살'이라는 애초의 제보가 흔들렸다. 판단도 흐려졌고 두려움이 깊어졌다. 어떤 죽음의 원인을 어떤 선생님에게서만 찾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위험한 접근이었다.


애초의 가설에 부합하는 증거와 증언만을 추려 방송한다?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제보 내용을 쫓아 취재했지만 수집된 내용들은 제보를 일정부분 부정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갔다. 죽은 아이는 왜 죽었을까?라는 물음으로. 취재 시작 전 가장 먼저 품었어야 하는 질문에 빙둘러 돌아왔지만, 마음이 편했다. 시간은 내 편이 아니었지만.


우선 아이의 유서를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 지금은 정치인으로 변신한 유명 정신과 의사와, 마찬가지로 유명 방송인으로 거듭난 심리학자를 차례로 만났다. 유서와 함께 주변 증언들을 제출했다. 두 전문가는 유서를 통해 아이의 마음을 읽었다. 학교 체벌에 대한 직접적인 분노나 상처보다는 꽤 오랜시간 쌓여온 우울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갑작스러워 보이는 죽음도 사실 시간을 두고 만성적으로 준비된 죽음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유서 말고 부모 형제 친구 등 가까운 사람의 증언 역시 청취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었으나 방송 시간이 정말 코 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가장 솔직하게 방송내용을 구성하기로 했다. 아이의 자살 원인은 단정지을 수 없다고. 아이의 글과 말과 행동과 주변사람들의 증언 모두를 천천히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너무 늦게 알았던, 죽음 앞에서 해야했던 그 작업이 '심리부검'이라 불린다는 걸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심리부검, 죽은 자가 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심리부검-나는 자살한 것을 후회한다>의 저자 서종한은 경찰청 프로파일러로 활동했다. "심리부검은 자살한 사람이 남긴 자료를 분석하고 남겨진 사람들과의 면담을 통해 사망자가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을 찾아내는 과학적 도구를 말한다."(9쪽) 책의 목차에는 그가 만난 자살, 혹은 자살로 위장된 타살 사건들과 최진실, 장국영, 정다빈, 이은주 등의 자살에 대한 분석 등이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독자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자살위험 자가진단 플로차트'다. "나도 자살할 위험이 있을까?"라는 제목의 이 플로차트를 펼쳐 질문을 따라가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독서를 시작하라는 거다.

자살위험 자가진단 플로차트

나는 자살과 거리가 먼 사람일 수도 있고, 지금 살아있는 게 놀라울 정도로 심각한 상태일 수도 있다. 마치 별책부록처럼 마련되어 있는 이 플로차트를 처음봤을 땐 당황스러웠다. 난 죽을 생각이 없는데? 각종 자살 케이스들에 대한 'CSI'적인 접근이 궁금했을 뿐인데? 저자는 이 책을 선택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자살을 염두에 두고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는 걸까? 괜히 뭐가 찔리는 사람처럼 두서없는 질문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런 질문들은 저자의 머릿말에서 대답을 얻는다.


"지난 6년 동안 현장에서 수많은 자살 사건을 접하면서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자살자나 필자나 근본적으로는 아무 차이가 없다는 것, 자살자가 경험한 그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이나 필자가 사고 있는 멀쩡해 보이는 세상이 구분되지 않는 정확히 동일한 세상이라는 실감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심리부검은 자살자가 정말 죽겠다는 의지가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 죽겠다는 의지를 찾느라 애쓰다 보면, 그 죽겠다는 의지가 사실은 살고 싶다는 의지, 살려달라는 내면의 호소였음을 알게 된다."


자살자와 일반인의 세상은 똑같은 세상이고, 죽겠다는 의지는 살겠다는 의지와 맞닿아있다는 말은 얼핏 누구나 쉽게 뱉을 수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수백번의 숱한 죽음을 목격한 프로파일러의 결론이라는 점이 무게를 더한다. 자기 자신은 자살이라는 선택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지 되돌아보고 주변 사람들 또는 이미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이해를 갖자는 저자의 바람은 유서분석, 주변인 증언분석, 현장 증거 분석 등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설득력있게 전개된다.


끈이 목에 몇 번 감겨있어야 자살일까?

이 책은 자살 혹은 자살로 위장된 타살 사건 현장으로 독자를 불러온다. 한국인이 남긴 유서에는 어떤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할까? 팔목을 칼로 그은 흔적은 왜 이리 반복될까? 자살자가 투신한 옥상에 남겨진 발자국들은 왜 두서없이 이곳저곳에 찍혀있을까? 끈이 목에 두 번 이상 감겨있다면 이것은 자살일까 타살일까? 서늘하지만 흥미로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책의 곳곳에 등장한다. 또한 자살자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을 깨는 내용도 풍부하다. 그 중 하나. 오랜기간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간 전쟁에 참전했다 퇴역한 군인들의 자살 사건이 잦아지자 미군 당국은 이들이 PTSD나 우울증이 자살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개인 심리 치료나 약물 치료를 실시했지만 자살은 이어졌다. 보다 심층적인 원인을 찾기 위해 자살자나 자살시도자의 가족을 상대로 몇 년간 심리부검이 실시됐다. 그 결과 밝혀진 주요 자살 원인은 우울증 등의 기분 장애가 아니었다.


"심리부검 결과, 오랫동안 전쟁터에서 동료들과 팀워크로 다져진 집단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개인적인 생활로 돌아오면서 받은 고립감, 가정에서 대화의 심각한 단절과 일상의 무료함, 그로 인한 부부 관계 갈등이 심각한 문제였음이 드러났다. (중략) 심리 부검 결과를 활용해서 미군 당국은 귀향 군인들에게 개인 심리 치료보다는 직장과 생활 복귀 적응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무료로 제공했다."(100쪽)


책에 소개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 분석도 흥미롭다. 사고 당시 인터넷에는 두 가지 버전의 유서가 나돌았다. 문체와 분위기가 서로 다른 두 개의 유서. 둘 중 하나는 가짜다. 유서의 진위는 어떻게 구분할까?

자살 실행에 임박해 유서를 쓰는 사람은 추상적인 사고 능력을 잃고, 구체적이고 인지적인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진짜 유서에는 구체적인 사물, 사람, 장소가 더 많이 언급되고 '사랑'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당신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

저자는 맺음말에서 통영 바닷가 근처 시골 다방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40대 아들의 자살을 이해하고 싶은 노모가 있다는 요청에 응해 내려간 출장길. 남들처럼 제대해 서울서 직장 다니다 결혼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 공부도 잘했고 말도 잘 들었던 착한 아들이 왜 스스로 세상을 등진 것일까. 시골 다방에서 할머니를 마주한 저자는 잠시 후 느닷없이 소금 세례를 받는다. 죽은 아들의 형이자 노모의 큰아들인 남자가 다방으로 달려와 밥공기 가득 담은 소금을 저자에게 뿌리며 욕을 해댔다.


심리부검은 그렇게 중단되는 듯 싶었지만, 시간이 흐른 후 저자는 다시 한 번 통영행 고속버스를 탄다. 유가족이 재차 요청한 것이다. 소금을 던지며 욕하던 큰아들 역시 저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엔 담담하게. 유가족 한 사람당 2시간씩 시작된 면담은 하루를 넘겼다. 유가족은 고인의 사진과 편지와 일기와 찱흙으로 만든 조개를 저자에게 보여주었다. 고인이 태어나 죽기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되도록 세세하게 듣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그래야 "자살의 원인이 유가족에 있지 않다는 것, 적어도 전적으로 그들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것이 가능"(271쪽)해지기 때문이라는 거다.


맺음말을 끝으로 책장을 덮는다. 제보로 시작돼 며칠 밤을 끙끙 앓다가 결국 전파낭비에 가까운 방송을 만들었던 그 때의 참담함을 떠올린다. 나는 그 때 이후로 누군가의 자살에 대해 취재하지 못했다. 기회도 없었고, 설사 있었다고 해도 많이 주저했을 것이다. 죽음을 이해하는 일, 특히 자살을 들여다보는 일은 몇 주의 시간만으로 해낼 수 없는 작업이라는 걸 너무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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