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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문PD Mar 27. 2016

MCN의 미래, PD의 몰락...?

세계의 설계자와 옵션상품, 그 사이에 낀 PD


세계의 설계자

최근 <마이리틀텔레비전> 박진경 PD가 이런 트윗을 남겼다.

“작은 방송국들의 모임 콘셉트 방송이다 보니 최종적으로 각 출연진 순서 정해서 배치, 편집하는 것도 뭔가 편성 쪽 일하는 것 같고 재밌음.”


웹매거진 ize는 박진경 PD의 이 멘션을 언급하고, 이렇게 코멘트했다.


 "고정 출연자가 거의 없는 [마리텔]은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영역과 인물들 중 매회 필요한 것들을 선택한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다양한 영역들을 잘라 붙인 것이고, 러닝타임은 짧은 호흡의 동영상을 붙인 것으로 채워진다. 그 결과 PD는 출연자와 아이템의 압박에서 일정 부분 벗어난 반면, 과거보다 더욱 TV 바깥의 다양한 세계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PD가 창작자이기 이전에 다양한 사람들과 영역이 존재하는, 그리고 출연자의 범위가 스태프와 인터넷 이용자로까지 확장되는 세계의 설계자가 돼야 한다."(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6032015087222908)

요약하자면 PD일의 본질이 더 이상 '방송용 완제품 테잎'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는 얘기다. '세계의 설계자'라는 거창한 수식어까지는 아니어도, 뭔가를 세팅하고 판을 깔아주는 것이 PD 일의 핵심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일단 판을 깔아 놓 방송인이든, 방송과 무관한 영역에서 커리어를 쌓아왔던 사람이든 알아서 잘 놀게만 해주면 개중엔 박명수처럼 '웃음사망꾼'이란 별명만 얻는 채 실패하는 이도 있지만 판 전체로는 이기는 게임이 되는 거라는 것. <마리텔>은 그걸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고, 연출자 역시 스스로 그걸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 판의 성공 지표는 시청률이고 광고매출이다. <마리텔>은 지상파 광고 매출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광고완판 중이다.



트레져헌터와 마리텔

<아프리카TV>에서 하루에 열리는 채널은 평균 3000여개다. 3000여명의 BJ가 각자의 콘텐츠로 승부를 본다. <아프리카TV>는 '별풍선' 수익을 나눠먹고 광고를 붙여 광고비를 번다. BJ 개개인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많은 BJ들이 쉼없이 방송 채널을 열어 방송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 판이 커야 더 큰 수익이 나니까.


<아프리카TV>에서 성공한 BJ들 중 일부는 말을 갈아타고 있다. 양띵, 김이브님 등의 유명 BJ들은 트레져헌터 같은 MCN으로 이적했다. CJ E&M에서 국내 최초의 MCN을 시작하고 후에 독립해나와 현재 약 800억원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트레져헌터 송재룡대표의 인터뷰엔 MCN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인상적인 대목이 등장한다.


“채널을 활용해서 모바일의 방송국처럼 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한편으로는 셀럽화 될 수 있는 친구들을 키워서 지금 5억 벌고 있는 친구들을 50억 벌 수 있게 만들어주고, 그 자체를 연예인화 하는 작업들. 그리고 일부지만 나중에 방송인들이 들어 오겠다 하는 그런 중립 지대가 생기면 그 시장에서는 또 파이가 커지겠다. 마지막으로는 우리쪽 PD들이 고용이 되면 72초나 신서유기 같은 것들. 굳이 케이블에서 할 필요가 있을까? 나영석 감독 같은 분들이 유튜브에도 영화나 웹드라마 하면 광고 붙이고 하면 잘 되지 않을까? 결국 크리에이터- 채널- 관리층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이런 단순한 생각을 했었어요. 그 단계까지는 시간이 걸리니, 일단 애들을 모으고, 셀렙 키우고 뭐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http://nter.naver.com/naverletter/textyle/120943?category=121931)


송재룡 대표와 인터뷰어 조영신 박사님!(출처: 네이버레터 [MCN 창업자 인터뷰 시리즈 1편] 트레져헌터의 송재룡)


송재룡 대표의 계획을 순서대로 세워보면

1) 유튜브로 대표되는 인터넷방송 플랫폼에 채널을(방송국을) 만들고,

2) 셀럽화 될 수 있는 창작자들을 키워,

3)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게 도와주고,

4) 창작자들을 연예인화하는 것(팬덤 확보, 사업 진출)

5) 그래서 나중엔 기성 방송인들까지 끌어들이고(마치 <마리텔>에 연예인들을 출연시키듯이),

6) 더 판이 커지면 아예 1인 창작자 대신 화면 뒤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PD들까지 고용한다.

7) 그리고 이 작업들에 필요한 비용들은 결국 광고로 해결된다.


잘나가는 MCN 대표가 그리는 그림에 <마리텔>을 대입하면 얼추 이렇게 나온다.

1) MBC/다음팟 이라는 방송국이 있고

2) 이미 셀럽인 연예인, 패션디자이너, 요리사, 사업가 등등이 출연 대기 중이고

3) 출연자들의 수익은 출연료 및 홍보효과로 보장되며

4) 기성 연예인이 아닌 이들은 마리텔 출연으로 연예인이 되었고(모르모트PD!)

5) 방송인이 아닌 사람들까지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으며

6) PD들이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하고 (15년9월27일 MLT12: 초아의 러브, 그것은 데스티니)

7) 제작비를 회수하고도 남는 광고비.


<마리텔>의 현재와 MCN의 미래가 묘하게 겹친다고 볼 수도 있다.

거꾸로, <아프리카TV>나 해외 수 만명의 창작자들이 소속된 MCN의 콘텐츠 제작, 관리 방식을 <마리텔>이 TV로 끌어온 것이니 MCN의 과거가 <마리텔>의 현재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세계의 설계자 vs. 옵션 상품

그런데 이렇게 겹치는 1번부터 7번 사이에서 은근 등 뒤에 식은 땀 나는 부분이 있다. 바로 6번. 1인 창작자가 전면에 나서는 콘텐츠가 아닌, PD들이 제작하는 콘텐츠는 판이 무르익었을 때 본격화될 수 있다는 것. 송재룡 대표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신서유기'나 '72초 TV'는 출연자의 역량만큼 연출자의 능력이 더욱 빛나는 콘텐츠다. 동시에 1인 창작자의 콘텐츠에 비해 제작비가 더 들고, 여러 스텝이 필요하고, 후반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그래서 그만큼 리스크가 큰 작업.(<마리텔>에서도 '러브, 그것은 데스티니' 같은 PD주도의 제작물은 이후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카메라 뒤에서 출연자에게 디렉션을 주고, 편집을 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PD는 불안한 시장에 끌려나온다. 특히 1인 창작자 위주의 콘텐츠 방송 시스템에서는, 1인 창작자 콘텐츠에 비해 비싸고 수익 보전 가능성이 낮은 PD 콘텐츠는 '활황'에서나 실험가능하지 '불황' 땐 버려지기 딱 좋은 옵션이 될 것이다. 최근엔 MBC(Mbig TV)나 TVN(Tvn go), JTBC 등이 (MCN이 1인 창작자들을 내세우는 것과 달리) 사내 PD들을 활용해 웹전용 콘텐츠를 제작하고 공개하면서 '아프리카 TV'로 대표되는 MCN 시대를 대비하고 있는데 만약 이들 기존 방송사들이 이러한 시도들을 '실패'로 규정할 경우, PD의 몰락은 가속화될 것이다. 이들 방송사는 PD 제작 콘텐츠를 메인 디쉬로 내놓았는데, 성공하면 좋지만 실패하면 재도전할 기회가 주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TV용 콘텐츠 제작에 드는 비용보다 웹전용 콘텐츠 제작 비용이 현저하게 적은 것도 아닌데, 웹전용 콘텐츠에 붙는 광고비는 TV용에 비해 낮으니 방송사 입장에선 오래 지속하기 어려운 실험이기 때문이다. (물론 MbigTV의 성공을 기원한다. '꽃미남브로맨스'는 뷰나 이슈도에서 성공하고 있는 중.)  


미디어에서는 실패로 규정짓고 있지만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28554) KBS '예띠TV'가 오히려 실패해도 재기 가능한 시스템을 갖춘 것 같다. KBS라는 브랜드에 의지해 저비용으로 MCN 사업을 시작한 것이 패착이지만 '1인 창작자 영입'을 출발점으로 삼아 '저비용 고효율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MCN 시장의 문법을 따르려 했다는 점 때문이다. 문제는, 이 시스템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PD'가 설 자리는 무척이나 좁다는 거다. 예띠TV를 런칭한 PD 한 두 명 정도가 제 역할을 갖고, 나머지 PD들은 불펜에서 대기해야 하는 상황.


우리의 미래를 MCN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콘텐츠 시장이 극단적으로 확장되고, TV콘텐츠 시장을 재기불가능할 정도로 파괴한 때라고 가정하면 PD에겐 두 가지 길이 있는 것 같다. 세계의 설계자가 되거나 옵션 상품이 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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