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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문PD Mar 31. 2016

이채은과 MCN의 문법

오구실 vs. 정아니


이채은이라는 배우를 알게 된 건 ‘72초 TV’의 웹드라마 <오구실>에서였다. 30대 초반, 남친 없는, 직장에서 자리 잡고 싶지만 아직 흔들리는, 단발이 잘 어울리는 여자 오구실. 3분 내외의 에피소드 8개를 몰아봤고(그래봐야 30분도 안되지만) 오구실 페이스북 페이지에 들어가 ‘72초 TV’가 만든 광고들까지 다 봤다. 새로운 에피소드를 기다리다 지쳐 그녀를 잠시 잊었다. 그러다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건 MBC 드라마 <한 번 더 해피엔딩>. 그런데 그녀가 무슨 역할로 어떤 대사를 쳤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오구실>에서의 매력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TV와 MCN. 이 두 세계의 문법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맡았던 이 배우의 흔적을 쫓다보면, MCN이 어떤 것인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MCN의 콘텐츠 문법은 방송이나 영화와 무척 다르다. 1인 창작자의 방송은 ‘혼자서 떠든다’는 것 자체가 기존 콘텐츠와는 너무나 구별되는 형식이자 내용이고 예능/드라마 장르 위주의 MCN 제작 콘텐츠들 역시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과 상대적으로 단순한 에피소드 구성으로 차별화된다. 다르니까 매력적이지만, 대중을 상대하기엔 마이너하다. ‘팬’은 있지만 ‘대중’이 보이지 않는다.


<오구실>의 이채은이 <한 번 더 해피엔딩>의 이채은과 다른 점은 ‘사이즈’의 차이다. ‘팬’을 공략하는 시장이냐 ‘대중’을 사로잡아야 하는 시장이냐라는 체급 차이. 회당 3억이 드는 TV 드라마와 회당 1천만 원 내외로 만들어지는 MCN 웹드라마. 자본 규모의 차이는 내용의 차이로 이어진다. 아주 좁은 시장에서 유의미한 이익을 내려면 충성도 높은 팬이 필요하지만, 좀 더 큰 시장(TV나 영화/ 혹은 해외)으로 진출하려면 범용성을 갖춰야 한다. 콘텐츠가 범용성을 갖추는 과정에서 이채은은 매력적인 싱글녀 오구실에서 주인공을 짝사랑하는 평범녀로 전락했다.(주연, 조연의 위치에서 오는 차이일까?... 글쎄.) 범용성이 강조(강제)되는 시장에서 이채은의 캐릭터는 형광빛을 잃었다. 그리고 범용성을 강제하는 것은 자본의 규모다.



콘텐츠가 해외로 진출하는 방식

1999년 영화 <쉬리>가 <타이타닉>을 눌렀다. 국내에서의 흥행을 바탕으로 일본에서도 성공했고 미국 홍콩에도 팔렸다. 흥행 원인에 대한 각종 분석이 난무하던 가운데 강제규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들여다보는 관점이 우리 중심이라는 게 문제다. <쉬리>가 일본에서 성공한 이유를 우리 시각에서 분석해보면 남북 분단을 소재로 했고, 어쩌고 하는 몇 가지가 나오지만 일본 시장에 가보면, 그곳 업자와 관객들을 만나보면 그게 아니다. 우리 시각과 진단이 다르다는 게 재미있고 실감 난다. 그들의 잣대는 대단히 단순하다. 뭔가 끌리고, 보니까 재미있고, 그래서 주변 사람에게 권한다는 것이다.”
http://www.cine21.com/news/view/group/M102/p/223/mag_id/31255


요약하자면 <쉬리>의 흥행 요인을 영화의 내용적인 측면에서 분석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쉬리>의 특이점(‘한국 영화는 쉬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은 1999년 당시 한국 영화계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30억)의 자본이 투입됐다는 것이다. 규모가 차이를 만들었다. 강제규 감독은 한국 영화의 해외진출을 위한 선결과제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금은 이합집산할 때가 아니라 에너지를 결집할 때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단합해서 규모를 키워야 한다.” 고만고만한 제작비로 그럭저럭 영화를 만들어오던 한국 영화판을 뒤흔든 건 30억이라는 대규모 제작비다. 그리고 그 제작비는 영화의 내용을 결정했다.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할리우드적 오락영화’. <쉬리>의 성공 이후 한국영화에 대한 투자는 급증했고 국내 영화 시장 규모도, 해외 수출하는 영화 편수도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TV 프로그램 시장 역시 영화와 마찬가지로 자본의 규모가 해외 시장 진출 방식을 결정하는 것 같다. 콘텐츠 자체의 완성도와 재미로 승부를 봤던 이른바 ‘한류 열풍’의 주역이었던 드라마 수출이나 <나는 가수다>, <아빠 어디 가>와 같은 포맷 수출은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계기였지만 국내 방송사가 큰 돈을 버는 계기가 되지는 못했다. ‘일단 진출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기 때문이다. <별그대>로 중국 포털이 1500억 원을 벌 때 한국 제작사는 8억 원의 판권 대금 밖에 못 벌었다. 최근에는 판이 또 달라졌다. 중국은 국내 방송사나 제작사가 제공할 수 없는(세간엔 한국에서 받던 월급에 0을 하나 더 붙인 수준이라는 말도...) 수준의 높은 보상을 약속하며 제작 능력이 검증된 PD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중국 자본은 국내 제작사에 대해서도 직접 투자한다. <태양의 후예>의 제작사 NEW의 2대 주주는 화처미디어인데, 이 투자를 두고 ‘국내 제작사의 중국 진출 교두보가 마련’됐다는 해석과 ‘국내 제작사가 중국에 먹혔다’는 해석이 충돌하는데, 어떻게 해석하느냐와 상관없이 큰 돈이 판을 움직인다는 점에 있어서는 영화의 해외 시장 진출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구실>은 해외에서도 팔릴까?

하지만 MCN의 해외 진출 방식은 영화나 TV 프로그램의 해외 진출에 비해 좀 더 복잡해 보인다. 우선 MCN이 콘텐츠를 해외에서 유통하는 것 자체는 영화나 TV 보다 훨씬 쉬운 작업이다. 유튜브 등의 기존 플랫폼에 업로드하면 되니 해외 현지 채널/배급사 같은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해외진출의 의미를 ‘해외 구독자 확보’로 축소하면 상황은 더 간결하게 보인다. 유튜브 한국 블로그에 의하면 2015년 가장 많이 성장한 국내 유튜브 채널 20개 중 해외 구독자 비율이 70% 이상인 채널이 16개에 달한다고 하니, 영화나 TV에 비해 해외진출이 훨씬 쉬워 보인다. http://youtubekrblog.blogspot.kr/2015/12/2015.html


이제 이 ‘해외 구독자’의 성격이 궁금하다. 유튜브가 이 16개 채널 명단을 직접 밝히진 않았지만 16개 채널이 포함된 20개 채널을 통해 해외 구독자들이 좋아하는 국내 유튜브 채널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 20개 중 9개는 YG, SM TOWN, 1theK처럼 K-Pop 팬이라면 찾아볼 수밖에 없는 채널이다. 이외에는 토이푸딩TV나 Nao Disney Toys처럼 창작자가 말도 안 하고(음악만 깔아놓고) 그저 장난감만 조작하는 채널이나 요리를 소개하는 Engenie Kitchen처럼 문화 할인이 거의 없는 채널이다. 이런 상황에서 ‘72초 TV’의 <오구실>이 해외 구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의문이다.


MCN이 해외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려면 1) 문화 할인율이 낮은 콘텐츠를 국내에서 제작해 유통하거나 2) 해외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거나 합작해 현지 크리에이터들을 발굴하고 관리하거나 3) 많은 돈을 들여 문화 할인을 극복할 수 있는 정도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법이 있는 것 같다.

지금 트레져헌터나 레페리 등이 중국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거나 현지 업체와 계약을 맺는 등의 활동을 통해 지향하는 것은 현지 크리에이터 제작물 위주의 콘텐츠 생산에 있는 것 같다. 예능이나 드라마 장르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건 상대적으로 더 많은 돈이 드는 일이므로 우선은 최대한 낮은 제작비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현지 크리에이터를 내세워 문화 할인율도 낮출 수 있는 1인 창작자 콘텐츠 제작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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