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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문PD Apr 17. 2016

저널리즘의 구명조끼

<립타이드>를 읽고 <그것이 알고싶다>를 본 세월호 2주기.

전통적인 미디어 기업은

기술 혁신이라는 조류를 만나

표류하다 휩쓸려 가라앉거나,

겨우 바다를 빠져나와 안심하다가도

다시 더 큰 파도를 만나

이번엔 훨씬 더 멀리 떠밀려가다

영영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하는 책 <립타이드>를 읽었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이 펴내고

SK경영경제연구소 조영신 박사님이 번역한 <립타이드>는

많은 미디어 업계 주요 인물들의 인터뷰로 구성돼있다.

기술 기업의 도전에 패배한 전통 미디어 기업 관계자들과

전통 미디어를 공격할 의도는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미디어를 삼켜버린 기술 기업 창업자들이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해 말하는 보고서.


승자나 패자나 다들 한결같이

기술 혁신이 만들어내는 파괴, 에 대해

대응하고 적응하는 것만이

저널리즘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얘기하는 사이


딱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올드하고 약간 꼰대스러운 소릴 늘어놓는다.


'허드슨강에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은

트위터가 뉴욕타임즈보다 먼저 세상에 알릴 수 있지만

그 비행기가 왜 추락했는가에 대해서는

트위터가 뉴욕타임즈보다 깊이 알려줄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이면을, 깊이를 드러내는 자리에

전통적인 저널리즘이 있다'

...뭐 이런 얘길 하는 사람.


'넘나 지루한 것'.

저널리즘의 본령 운운하며

아무것도 바꾸려들지 않는 사람들.

꼰대들, 게으름뱅이들, 늙은이들,

미래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지루한 자들...


저런 지루한 소릴 늘어놓은 사람은 사실

퓰리처상까지 받은 대단한 기자다.

하지만 올드하다.

그가 몸담았거나 몸담고 있는 신문사 두 곳 모두

헐값에 팔렸다.

하나는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주에게 팔린 보스턴글로브,

다른 하나는 제프 베조스에게 넘어간 워싱턴포스트.

딱히 전통적인 미디어 기업이라 할 수 없는 곳에 팔렸다는 것 외에도

이 두 신문사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아카데미 수상작의 배경이 됐다는 것.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 워싱턴포스트

<스포트라이트> - 보스톤글로브.

"진짜 저널리스트는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저널리즘 교과서 같은 영화들의

주 무대는 그렇게

팔렸다.

싸게.


혁신에 실패했기 때문에,

혹은

누군가의 혁신이 너무나 파괴적이었기 때문에.


그러니

트위터로는 세상의 진실을 알 수 없다며

고루한 얘길 하는 워싱턴포스트 책임편집자이자

영화 스포트라이트가 다루는 가톨릭 사제 아동 성추행 사건 취재를 지휘한 실제 편집장

마티 배런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그리고 그 인터뷰 앞 뒤로 배치된 기술기업의 얘기와 비교해보면,

도무지 저 꼰대스러움을 견딜 수가 없다.


우리가 '저널리즘의 본령'이라고 이름 붙이는 거.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게,

세상의 진실을 추구하는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의 역사는 이제 겨우 100년쯤 됐다는데

그리고 기술 기업이 혁신하고 있는 이 세계의 변화는

지난 100년을 겨우 몇 년으로 쪼그라들게 할 만큼 급박하게 이뤄지고 있다는데

마티 배런은 이런 이야길 하고 있다.


"보스턴글로브는 이제 막 보스턴의 택시 업계에 대한 기획물을 끝냈어요.

거기서 벌어지는 모든 부당한 행위와, 어떻게 택시기사들이 근본적으로

착취를 당하고 있는지를 보도했죠.

택시기사들은 이런 내용을 블로그에 게시할 수 없어요.

다른 일거리를 찾을 수가 없거든요.

어느 누구도 이와 관련해 트윗을 할 수가 없어요.

트위터에 올라오는 것이라곤 택시에 관한 불평사항들 뿐이죠.

블로그나 트위터로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어요." (립타이드, p.137-138)


"그럼 이런 정보는 어디서 나오죠.

우리 기자들의 노력이 없다면 말이에요."(p.137)


그렇죠. 생업을 포기하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순 없으니

그런 일을 업으로 삼는 기자들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블로그와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시대에 말이죠...

하지만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책임편집자로 있던 신문사는 왜 그렇게

헐값에 팔려야 했던 것일까요?


그러니까 <립타이드>는

전통적인 미디어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전통적인 의미의 저널리스트 혹은

나 같은 유사-저널리스트들(어디가서 '저널리스트입니다'라고 얘기하기 민망한)에게는

무서운 책이고 외면하고픈 책이다.

왜냐하면

진짜 저널리즘은 이런 거야, 하고

배우고 훈련받아온 것들이 사실

저 큰 조류 앞에서는 구명조끼가 되지 않는다는 걸 얘기하는 책이기 때문에.


밑줄 치면서 읽었다.

동그라미도 치고.

음..내가 다니는 회사의 미래는 보스턴글로브인가 아닌가 중얼거리면서.


그러다 오늘

세월호 2주기.

오랜만에 놀러 온 처남이 검은 양복을 입고 왔기에

광화문 가냐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는 저녁.

밥 먹이고 용돈 쥐어 보낸 후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며

마티 배런의 말을 다시 생각한다.


대체 저널리즘의 미래는 무엇일까.

우리가 저널리즘이라고 믿었던 가치들까지도

조류에 휩쓸려가는 걸 목격하는 요즘,

누군가는 이 역조를 벗어나기 위해 헤엄치는 대신

묵직한 앵커를 내려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케 하는

2주기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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