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카플란 <인간은 필요없다>
미국 금융가에서 파란을 일으키는 프로젝트가 있다. 켄쇼라는 회사인데, 골드만 삭스나 모건 스탠리 같은 대형 투자은행을 고객으로 삼아 보고서를 작성해주는 것이 주 업무라고 한다. 보고서는 사람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쓴다. 이 회사의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면 이런 문구가 써있다.
Technology that brings transparency to complex systems.
복잡한 시스템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기술. 이 문구는 투자자들이 투자를 결정할 때 조언을 구하는 투자은행 분석전문가들을 겨냥하고 있다. '사람의 분석은 투명하지 않다'는 말이다. 투명하지 않으니 그 결정을 신뢰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리아 내전이 터졌을 때 어떤 종목에 투자하고 어디에서 돈을 뺄 것인가를 묻기 위해 투자은행 영업사원들에게 전화를 걸면, 그 영업사원이 하는 일은 시리아 내전 관련 뉴스를 검색하고, 게시판 분위기를 살피고, 예전에 일어났던 중동 국가 내전이 미국 금융계에 미친 영향에 대한 보고서들을 다시 뒤져 도표를 그리고 문장을 작성해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다. 하루에서 이틀 걸리는 일이고, 그 사이 상황은 또 크게 바뀌기 때문에 이 영업사원의 조언은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켄쇼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이런 작업이 5분 안에 끝난다. 켄쇼는 머신러닝을 통해 투자은행 분석 전문가들보다 더 정확하고 빠르게 보고서를 발행한다. 역설적이게도 실제 이 프로그램을 주로 이용하는 고객들은 이 투자은행들의 분석 전문가들이라고 한다.
투명성이라는 건, 바로 이 지점에서 빛나는 가치다. 돈이 걸린 문제니까 최대한 정확한 판단을 신속하게 내려야 하는데, 그 결정 과정을 인간의 손에 맡기면 느릴 뿐만 아니라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켄쇼를 이용하면? 그 모든 결정 과정과 그 결과가 아주 빠르고 투명하게 손에 들어온다. 지금은 이 프로그램의 고객이 대형 투자은행사 몇몇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가격이 싸지고 이 회사가 프로그램을 대중에 뿌리기로 결정한다면 더 이상 투자은행의 영업사원들은 필요 없을 것이다. 투자자들은 자신의 랩탑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켄쇼에 직접 접속해 투자 관련 조언을 구할 것이고, 아예 켄쇼에게 투자를 일임할 지 모른다. 영업사원이 필요 없는 자리, 인간이 필요 없는 미래.
모순은 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투자은행 직원들의 자리를 실질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대니얼 네이들러가, 동시에 이 직원들의 미래를 혹은 일자리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소수 임원들이 아닌, 하급 직원들의 일자리를 신경쓰고 있다.
“많게는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의 절반 가까이가 일자리를 잃을지도 몰라요. 은행 점포도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겁니다. 아주 보수적으로, 희망적인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고용 규모가 20%는 줄어들 겁니다. 좋은 측면도 없지는 않을 겁니다. 가장 비효율적인 부분부터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이고, 금융 상품의 투명성도 제고돼 고객들에게 부당한 수수료를 덤터기 씌우는 일 같은 건 줄어들 겁니다. 어쨌든 몇 년 전 금융 위기를 일으키고도 여전히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도덕적 해이가 남아있는 듯한 금융업 전반에 경종을 울리는 일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기계가 먼저 일자리를 대체하는 건 상대적으로 단순한 일을 하는 하급 직원들입니다. 임원들은 제일 마지막에 영향을 받겠죠. 이는 가뜩이나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소득 불평등 문제를 더욱 심화할 것입니다.” (뉴욕타임즈 인터뷰, 뉴스페퍼민트에서 재인용
http://newspeppermint.com/2016/03/23/kensho/
http://www.nytimes.com/2016/02/28/magazine/the-robots-are-coming-for-wall-street.html?_r=0)
그래서 네이들러는 기술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이는 거스를 수 없는 현상이기 때문에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업가가 왜 사회적 안전망을 신경쓰냐고? 네이들러는 자신이 사업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예측 가운데 하나가 일자리의 증발이다.
제리 카플란의 <인간은 필요없다>는, 네이들러가 예측하는 미래를 여러 예시를 통해 구체적으로 그리면서 동시에 일단 일자리를 잃으면 다시 일할 기회를 가지지 못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안전장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아니, 인공지능 혹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일자리를 빼앗을 뿐만 아니라 그런 세계의 경제적 불평등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되어 있을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을 그리는 책이다.
블루 오리진과 공공영역의 붕괴
경제적 불평등은 공공정책의 붕괴와 비슷한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해졌다. 사람들의 세금으로 지탱해야 할 공공영역도 취약해진다. 공공영역에서 쓸 돈이 없으니 사람들은 자선에 의지한다. 우주 개발이라는 목표 역시 한때 NASA라는 공공기구의 몫이었다면 이제는 제프 베조스나 일론 머스크가 더 빠르고 공격적으로 추구하는 대상이 됐다. 박수 받을 일이지만, 넋놓고 박수만 칠 일은 아니다. 공공 영역의 붕괴라는 관점에선, 무서운 현상이다. 공공정책이 제프 베조스라는 개인과 대결하는 게 아니라, 제프 베조스가 가진 자본과 대결하는 것. 더 넓게보면 인간이 자산과 투쟁하는 일.
제프 베조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은 아마존의 현재 매출이 아니다. 아마존이 장착한 기술, 사람들이 최대한 편안하게 자신들의 돈을 소비하는 거대한 연못이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을 가두는 양식장이 될 거라는 기대가 기업 소득의 600배에 달하는 기업 가치를 갖게 한다. 제리 카플란은 아마존에 휩쓸려가는 사람들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고객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편리성, 서비스, 그 밖의 여러 사항을 고려하여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쪽을 선택한다. 자신들의 단기적인 구매 행동이 미래 소비자들에게 해로운 쪽으로 소매 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결국에는 무분별한 벌목으로 후손들에게 황폐하고 암울한 환경을 물려준 이스터섬 원주민 같은 처지가 될지 모른다는 사실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하고 수익이 한쪽으로 흘러들면, 가치를 판단할 익숙했던 경쟁 기준은 이미 오래전에 파묻히거나 쓸려갔을 것이다. 아마존이 왜, 흐르는 길목에 있는 모든 것을 쓸고 내려가는 세계 최대의 강 아마존에서 회사 이름을 따왔는지 이제는 슬슬 이해가 간다."(인간은 필요없다, 144쪽)
지금은 좋지만, 나중엔 나빠질 행동은 일종의 자해행위다. 카플란은 인공지능 같은 기술이 장기적으로는 자해 행위에 가깝다고 본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너무 빨라 인간이 적응하거나 교육 받을 만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변화의 방향이 옳다, 그르다고 얘기할 수 없지만 인간이 그 변화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한다면 그건 문제라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인공지능은 스스로의 삶의 방식을 갖고 자산을 소유하며 인간을 해치지는 않지만 동물원 동물처럼 잘 관리할 수 있고 인간은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편안한 삶에 순응할 수도 있다는 게 카플란의 예측이다. 그 풍요로워 보이는 삶의 이면에선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폭발하듯 새롭게 증대한 부가 지금보다 훨씬 더 소수에게 편중될텐데, 그 때의 분노는 어떤 식으로 표출될까? 부술 방적기도 없다. 로봇은 더 이상 한 공간에 존재하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서버이기도 하고 서버 속 프로그램이기도 하고 통신망을 타고 흐르는 데이터이기도 하고 데이터의 명령에 응답해 움직이는 로봇팔이기도 한데. 마치 신이 편재하듯 로봇도 편재하는 시대, 내 손 안의 스마트폰을 부순다고 이 미래의 불평등이 해소될 수 있을까?
카플란은 '인간은 필요없다'는 명제가 이미 우리에게 닥친 일이고 이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으므로, 지금 필요한 건 이 변화의 속도에 적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재교육과, 기업의 수익을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공익 지수의 도입이라고 주장한다.
재교육을 위한 금융, 공공이 관리하는 기업
기술 발전의 속도를 쫓아가려면 시장이 요구하는 기술을 동시적으로 가르치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인문학도 중요하지만 실제 직업 시장에서 필요하지 않은 지식을 배우느라 몇 년의 시간과 수만 달러의 돈을 허비하는 도제식 교육은 중세적이다. 카플란은 이 시스템을 바꾸는 핵심적인 방법을 금융제도에서 찾는다. 이른바 '직업대출'. 개인은 미래의 노동과 그에 따른 근로 소득을 담보로 내놓고, 기업은 이들을 고용하겠다는 동의서를 제출하고, 금융기관은 이 동의서를 활용해 대출 여부나 규모를 결정한다.
이는 지금의 학자금 대출이 개인과 시장의 필요로부터 두어 발짝 떨어져있는 학교 간판에 의존해 이뤄져, 결과적으로는 학자금이 '직업 교육'과는 무관한 곳으로 흘러들어가고 개인에게는 대출금 상환이라는 부담만 지운 채, 학교 졸업 후에는 기업의 필요에 맞는 지식을 배우느라 또 다시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보인다. 카플란이 직접 '학자금 대출'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교육 관련 금융제도를 고쳐 직업 대출 같은 대안을 내놓아야 그나마 인공지능이 바꿔나가고 있는 세상에 대응할 최소한의 시간이라도 벌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인 것 같다.
이 제안이 조금 단기적인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면, 카플란이 제시하는 '공익 지수'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공익 지수는 기업의 소유 구조를 평가하기 위한 기준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기업의 주주가 되면, 기업이 개인의 이익을 덜 침해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고 또 동시에 기업의 자산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게 될 것이라는 게 기본 아이디어다. 주주가 적을 수록 법인세를 세게 매긴다. 그러면 기업들은 법인세를 줄이려고 보유 주식을 대중에 분배하려고 한다. 여기에 더 디테일한 장치를 보태서, 이익을 다수가 나누게 하자는 것이다.
카플란의 주장은, 어찌됐든 공공 정책을 통해(법인세제 개편, 교육목적 대출제도 개선 등) 기술 발전의 부작용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되 인간의 일자리에 대해 고민해주지는 않으므로, 게다가 인간이 인공지능의 발달에 브레이크를 걸지는 못하고 1%의 인간은 인공지능 뒤에서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부를 얻고 있으므로 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정책의 영역이라는 게 카플란이 하고자 하는 말인 것 같다.
씁쓸하지만 그렇다고 허무맹랑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인 고민의 흔적이 이 책에 담겨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무서워진다. 인간은 필요 없다는 이 책의 제목의 뉘앙스를 뒤늦게 깨닫기 때문이다. '인간은 필요 없어야 한다'는 목소리 큰 주장도 아니고 '인간은 필요없어집니다'라는 미덥지 못한 예언도 아니다. '인간은 이미 필요 없어지기 시작했다'는 현실 진단을 조곤조곤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전달하는 책. 점점 달궈지는 여름, 진심으로 서늘해지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