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트>
태어나 가장 추웠던 세 번의 겨울을 꼽자면,
1. 2008년 5월의 북극
2. 2010년 2월 초의 울릉도
3. 2010년 2월 말의 영하 40도 몽골 초원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 조연출로 가게 된 북극. 수목 북한계 너머를 북극이라 칭하는 게 일반적이다. 내가 간 곳은 캐나다 북부지역의 누나부트 지방이었다. 처음 도착한 것이 5월, 그러니까 북반구의 봄여름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는데 여전히 북극 바다는 꽝꽝 얼어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중무장을 하고 갔는데, 당시 캐나다 현지 코디가 빌려줬던 옷이 캐나다구스였다. 외피가 두껍고 충전재가 빵빵해서 무척 따뜻했지만 무거워서 한국으로 가져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곧 한국에서 구하기도 힘든 고가의 핫아이템이 될 줄이야.....
여하튼 처음 경험한 북극은 추웠다. 바람이 불면 어디 숨을 데가 없었다. 텐트 안에 들어가도 센 바람이 불면 텐트도 휘청거리고 어디선가 바람도 쉭쉭 새어 들어왔다. 쌓인 눈을 녹이거나 현지 이누이트 원주민이 가져다준 빙하 덩어리를 불에 녹여 끓여 먹는 뜨끈한 라면만이 위로였다.
북극이 제일 추운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결코.
겨울 몽골은 지옥이었다. 당시 <자체발광>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 때였다. '무한도전의 다큐멘터리판'이라 불릴 만큼 무모한 도전을 쌩으로 시도하는 컨셉이었다. "한 겨울 몽골에서 유목민처럼 3박 4일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자는 목표로 몽골로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목민처럼 산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짓이었다. 이를테면 생존을 위한 '문명의 도구'를 어느 정도 포기한 상태에서 영하 40도 겨울을 버텨야 한다는 뜻이었다. 텐트도 없었고, 방한용품이라 해봐야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오리털 점퍼와 솜바지와 겨울 등산 부츠 정도. 음식도 없었다. 몽골 유목민들은 유목하다 길을 잃거나 해가 지면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게르 텐트에 들러 음식과 하룻밤 잠자리를 청하고, 게르의 주인은 손님이라면 누구든 환영한다는 전통. 그거 하나만 믿고 일단 몽골로 간 것이었다. (미친 짓이었다)
장비가 없으므로 너무나 가벼운 몸으로 2월의 몽골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주차장이 꽝꽝 얼어있어 현지 코디가 빌려온 지프 4륜 구동 바퀴도 헛돌았다. 시작이 안 좋았다. 네비도 없고 길가 표지판 같은 것 하나 없는 막막한 대지를 어찌 그리 잘 찾아 가는지 운전기사는 거침없이 달려 우리를 정말 아무것도 없는, 언덕 같은 게 아주 멀리서나마 보이는 그런 곳에 떨어뜨려줬다. 거기서부터 3박 4일을 버터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국에서 가져갔던 수은온도계가 최저눈금 영하 30도까지 쭉 떨어지다 바닥을 쳤다. 분명 여기는 영하 30도 이하다. 눈은 허리까지 쌓여있어서 눈밭을 겨우 통과하고 나면 바지와 신발 사이 작은 틈으로 눈이 들어와 발이 흠뻑 젖었다. 부피가 크고 무거워 생수를 따로 챙기지 않았으므로 목이 마르면 눈을 주워 먹었다. 운이 좋아 게르를 발견하면 염치 불고 양해를 구해 양고기 누린내를 참고 국물을 얻어먹고 하룻밤 신세를 졌다.
그러다 마지막 밤. 넓이가 제주도 1.5배에 달한다는 홉스굴 호수에 도착했다. 최대 깊이 262m에 이른다는 호수가 콘크리트처럼 얼어 있었고 겨울 축제가 한창이었다. 말이 끄는 썰매를 타고 몽골 원주민들이 호수를 내달렸다. 한 가족의 썰매를 얻어 타고 우리도 축제 현장에 도착했는데,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다.
해가 쨍쨍한 낮에는 사람들이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난장도 벌이고 전통놀이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해가 넘어가자 다들 호숫가 육지로 올라가 텐트를 쳤다. 일반적인 초원이었다면 널찍한 게르였겠지만, 겨울 축제를 보러 온 사람들이었으므로 자기 가족 규모에 맞는 간이 텐트들이었던 것. 우리가 감히 하룻밤 재워달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참 수소문하다 겨우 잠자리를 찾았는데, 그게 홉스굴 호수 위에, 그러니까 얼어있는 호수 위에 임시 축제 사무실 같은 걸로 사용하기 위해 세워 놓은 게르 모양 텐트였다. 바닥은 깊이 수백 미터의 얼음. 바람을 막아주는 건 틈새 벌어진 천 조각들. 바닥이 얼음이니까 누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육지로 올라가 바람을 있는 그대로 맞아가며 버틸 수도 없으므로 우리는 얼음바닥 위 임시 게르에 앉아서 밤을 지새웠다. 너무 추워서 발끝이 간지러웠다. 동상 걸리기 직전 상태. 추워서 어깨가 아팠다. 버티다가 불을 피웠다. 그나마 따뜻했지만 모닥불 피운 자리 주변 얼음이 녹기 시작하더니 점점 깊어져 게르 속에 물웅덩이가 생겼다. 그 물을 퍼내느라 또 밤새 움직였다. 그러다 먼 데 동이 트고, 육지에서 텐트가 하나 둘 걷히는 게 보였다.
몽골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한 주 쉬었다가 다시 울릉도로 가야 했다. 또, 살아남기였다. 장비 없이. 텐트 없이. 몸을 감싸줄 따뜻한 털로 된 외피가 없고, 불을 쓸 라이터가 없고, 텐트가 없다면 자주 움직여 스스로 몸의 열기를 만들어야 하고 수확이 끝난 옥수수 밭으로 가 날짐승 먹으라고 남겨둔 덜 여문 옥수수를 날로 씹어야 한다. 길 걷다 칡을 캐 잘근잘근 씹어 수분이라도 보충해야 하고 밤에는 땅 구덩이를 파고 죽은 나뭇가지들을 주변에 세워 바람을 막고 잠을 자야 한다.
결국 영화 <레버넌트> 이야기를 하려다 다른 말이 길어졌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겪었던 그 겨울들이 온몸으로 되살아났다.
잠시라도 들어가 쉴 수 있는 '실내'가 있다면 그 겨울은 버틸만하다. 하지만 정말 단 한 순간도 '야외'를 벗어날 길이 없다면 그 겨울은 지옥이다.
<레버넌트>는 감독 이냐리투의 극단적인 연출(실제 상황에 배우들과 스텝들을 몰아넣고 거기서 벌어지는 신체적 심리적 변화를 담아낸다는 의미에서)을 이 갈고 버티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생존기 혹은 분투기로 보인다. 대사도 거의 없고, 부상당했으므로 걷는 장면도 거의 없이 러닝타임 내내 신음하고 땅을 기고 얼음물에 떠내려가는 레오의 몸. 따뜻한 햇볕도 거의 들지 않는 겨울을, 곰 가죽 하나 걸치고 뒹굴어 다니면서 통과하는 걸 보고 있으면 겨울이 내 몸에 새겨지는 기분이 들 정도다.
인공조명을 최대한 배제하고 자연광을 이용한 촬영감독 루베즈키의 롱테이크가 이 겨울의 질감을 살리고, 차가운 계곡의 물소리나 숲을 흔드는 냉정한 바람소리 등의 음향 효과가 경험을 극대화한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레버넌트>의 주제를 '복수'에 있다고 하고, 실제 극 중에서도 '복수는 신의 일'이라는 잠언을 의미심장하게 배치하고 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자를 쫓는 과정이 영화의 줄거리니까. 그러나 과연 이 영화가 복수라는 감정선을 정교하게 끌어가고 있느냐는 의문이다. 대신 복수의 과정, 그러니까 복수의 대상을 찾아가는 그 과정에서 육체가 맞서야 하는 겨울이라는 경험을 날 것처럼 그려내는 건 성공한 것 같다. 관객이 진짜 겨울을 맛보게 하기 위해 1580억을 쏟아 부은 건 아닐 거다. 분명. 그래서 영화를 본 몇몇 사람들은 이냐리투가 전작 <버드맨>의 성공을 밑천 삼아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기분으로 <레버넌트>를 (마음대로, 원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찍은 것 같다고 삐딱하게 보는데, 나는 '날 것의 겨울'을 재현했다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셔널 지오그래픽 특별전을 보는 게 훨씬 낫다고 할 수도 있지만, 스크린에서 송곳 같은 얼음이 레오의 살갗을 긁어대는 소리에 귀가 서고 소름 돋는 경험은 또 그것대로 해볼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