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도랑의 미꾸라지

비봉내의 메아리 #2

by 박하

봇도랑의 미꾸라지

그해 여름은 가뭄이 심했다. 도채이보의 물마저 바짝 졸아 들었다. 도채이보는 도깨비보의 사투리다. 곤양천 상류에 도깨비들이 하룻밤만에 뚝딱 쌓았다는 관개용 물막이, 큰 홍수가 닥쳐도 잔돌 하나 빠지지 않고 거뜬히 버틴다는 전설의 보洑, 새들(곤양들)의 보배였다.

봇물이 줄어들자 흉흉한 소문이 줄을 이었다. 바로 벼논의 물싸움! 아랫쪽 논의 농부들이 위쪽 남의 논의 물꼬를 몰래 틔워 자기 논에 물을 대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 일은 곧장 들통이 나고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다. 옛말 아전인수 我田引水 그대로였다.

초등 4(?)학년 여름방학 끝 무렵, 논바닥이 타는 가뭄인데도 우리는 철부지였다. 동생과 나, 이종사촌 재봉이형이랑 셋이서 논고동을 잡으러 갔으니 말이다.

물이 마른 벼논은 논고동 잡기에 딱!이었다. 논고동이 쉽게 눈에 띌 뿐 아니라 발도 논바닥에 빠지지 않으니까.
우리 논에서 논고동을 잡다 말고 우리는 그만 삼천포로 빠졌다. 논고동을 외면하고, 미꾸라지에 꽂혔던 것! 그도 그럴 것이 논고동은 간식거리지만 미꾸라지는 추어탕이 아닌가. 가족의 특급 영양식을 어이 거부할 수 있으리오.

물이 빠져 질척거리는 봇도랑, 그 상류로 거슬러 가다보니 어느내 방죽 아래, 기다란 굴 앞에 이르렀다.

굴속은 컴컴해서 여간해서 들어갈 엄두를 못내기 때문이었을까? 그야말로 뻘반 미꾸라지반! 붕어, 메기는 덤이었다.
재봉이형이 앞장 서고 일렬종대로 낮은포복! 미꾸라지에 홀린 나머지 캄캄한 굴속을 한참 동안 전진했다.
얼마쯤 들어왔을까?

굴이 깜깜하고 좁아서 숨도 제대로 못쉬겠다. 뒷걸음을 칠 수도 없고 앞으로 나갈수도 없다. 들컥 겁이 났다. 진퇴양난.

동생이 덩치가 제일 작은 지라 금방 뒤로 빠져나갔다. 물론 미꾸라지 바께스는 동생이 챙겼다.

재봉이형과 나는 전진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초조했다. 더 이상 미꾸라지는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뻘밭 감옥을 탈출하는 게 최상의 목표였다.
천신만고 끝에 굴을 빠져 나왔다. 우리는 영락없는 도깨비 얼굴이었다. 생환의 기쁨은 잠시였고, 젖먹던 힘까지 쏟았던 터라 기진맥진이었다. 냇물에 씻지도 않고 건너편 방죽의 미루나무 아래 시체처럼 드러누웠다.

그날은 분명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돌아왔을 테지만, 기억에는 된통 후유증만 남아있다.
추어탕 맛은 온데간데 없고, 온 몸에 좁쌀 같은 물집이 생겨 생고생을 했던 것이다.
진창 뻘밭 속을 미꾸라지처럼 누비느라, 나쁜 균들이 피부 속에 침투했던 것이다.

그 때 이후, 곤양들은 모습이 많이 변했다. 새마을운동으로 반듯반듯 경지정리도 되었다. 하지만 그때 방죽은 거의 그대로다.

그 방죽에는 지금도 짙푸른 미루나무들이 열병식하듯 서 있다. 그래서 내 추억은 지금도 여전히 싱그럽기만 하다.

미꾸라지.jpg


매거진의 이전글그 여름의 의용소방대 -모깃불에 종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