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머슴의 인생역전

비봉내의 메아리 #5

by 박하



소년 머슴의 인생역전

내 어릴 적 가난은 대개 흉년이 원인 이었다. 흉년으로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기도 했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곰곰 생각해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생각해 보라, 농부가 제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하늘이 심술(?)을 부리면 말짱 허사가 아닌가. 가뭄이 심해도 흉년, 홍수가 나도 흉년인 것이다.

흉년이 들면 가장 어려운 고비가 보릿고개! 양식은 거의 떨어지고 보리 이삭은 아직 패지 않은 시기가 바로 보릿고개!

한해 넘기기도 죽을 맛인데 내리 흉년이 들면 오죽하겠는가?

'춘궁기, 사흘에 피죽 한 그릇', '초근목피 草根木皮' , 쑥범벅, '송기'(松肌ㅡ소나무 속껍질)란 말이 왜 생겼겠는가?

고향 친구 철호(가명)는 남의 집에 머슴살이를 했다. 초등 졸업 직후 열네 살 때였다. 언젠가 그 친구가 맨 정신으로 한 고백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그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후 초등 6학년 때 계모가 들어왔다. 계모가 어린 자식까지 데려오는 바람에 갑자기 식구는 모두 여섯이 되었고, 철호네 살림살이는 더욱 빠듯해졌다.

설상가상 그해 흉년이 들었다. 끼니마다 밥 대신 멀긴 김치국, 시래기죽으로 때우는 날이 많아졌고, 아버지의 시름도 날로 깊어갔다. 어느날 이웃에 살던 삼촌이 조용히 철호를 불렀다.

철호야, 네가 그래도 맏이 아니냐. 생각해 봐라, 지금 너거 식구가 여섯이나 된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 굶어죽어. 네가 아부지를 좀 도와조야지 안되것냐. 무신 말인고 하니, 네가 건너 마을 최부자집에 머슴을 살러가는게 좋겠다.

철호는 갑자기 하늘이 노래졌다. 어려웠지만 중학교까지는 갈 줄 알았는데, 중학은 고사하고 남의 집 종노릇이라니.... 철호는 그날부터 골방에 틀어 박혀 밥도 거부했다. 아버지와 계모가 원수처럼 여겨졌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울고 울고 또 울다보니, 사흘이 흘러갔다. 배도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철호는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글썽였고, 듣고 있던 나도 코끝이 찡했다.

마침내 철호가 백기를 들었다. 사흘 뒤에 최부자집으로 들어갔다. 꼬박 6년 간 머슴을 살고난 뒤, 부산으로 탈출(?)했다. 진작 부산으로 일자리를 찾아갔던 동네 형이 고향에 왔다가 철호를 부추겼던 것이다.

부산에서 합판공장에 다녔다. 손재주도 좋고 성실한 철호를 공장장도 아주 좋아했다. 소년 머슴살이 때, 온몸으로 익힌 게 빛을 발했던 것이다.

지금은 진주 어시장에서 어엿한 중개인 사장. 이른 새벽, 삼천포 수산시장에 가서 물좋은 생선들을 받아와 소매상들에게 넘긴다.

무림세계로 치면, 그는 강호의 숨은 고수다. 가방끈이 짧지만 삶의 지혜는 잘난 박사들 못지않다.

그는 지금도 오토바이 선수다. 이태 전, 어느 비오는 날, 트럭과 충돌하는 바람에 갈비뼈가 5대나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했고, 3개월 동안 입원을 했던 적도 있다. 완치 이후, 다시 오토바이를 탄다.

그는 지금 행복하다. 두 아들도 대학공부까지 시켜 어엿한 직장인. 작년에 큰아들 장가를 보냈다고 싱글벙글했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도 계모도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단다. 입장 바꿔 생각 하면 능히 이해되기 때문이란다. 진짜 인생 역전은 로또가 아니다. 고진감래, 피땀어린 노력으로 이룬 것! 그런 내 친구를 보며, 언뜻 떠오르는 말이 있다.

ㅡ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자기 죄가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자기 책임이다.ㅡ빌게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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