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내의 메아리 #6
분교 앞마당의 비자나무 아래
나무는
땅에 깊이
뿌리 박고 서서,
하늘을 향해 만세 부른다.
다만
사람들이 들을 수 없는 소리로.....
분교 앞마당의 2그루 비자나무가 그랬다. 나이가 3백살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껍질은 온갖 풍상을 다 겪어 흉터 투성이고, 밑동 한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데도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뻥뚫린 그 속은 동굴처럼 컴컴하고, 테두리는 불에 타다 만 것처럼 검게 그을려 있었다. 땅바닥에 드러난 굵은 뿌리도 마치 꿈틀거리는 이무기 같았다. 언젠가는 용이 되어 천둥소리를 내며 승천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지금 생각해 보니,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와 소년 제제가 생각난다. 소년 제제는 뒤뜰의 라임오렌지 나무와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다. 슬퍼거나 억울한 일, 시시콜콜 고민 등등, 나무에게 온갖 하소연을 하는 친구 사이이다. 분교의 비자나무 역시 신비한 영물이었다. 친구라기보다 분교의 지킴이, 아니 마을의 든든한 수호신 같았다.
암수 한쌍의 비자나무는 분교의 역사는 물론, 눈 아래 곤양 고을의 역사를 수백 년간 묵묵히 지켜보는 신목神木이었다. 이 나무가 신령스런 증거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치성을 드린 흔적으로 허리에 무명 실타래나 울긋불긋한 금줄을 두르고 있었으니까.....
그 뿐 아니다. 신기한 이야기도 많았다.
그 옆이 곤양읍성의 감방(刑房)이 있었기에 비오는 밤엔 귀신울음 소리가 들린다는 둥, 나라에 큰 일이 나기 전에는 한밤중에 징소리를 내며 운다는 둥, 6.25 동란이 날 때도 그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동네 노인이 있었다.
하지만 비자나무와 우리는 친구 사이기도 했다. 최소한 낮동안은 말이다. 예컨대, 진또리(두 편을 갈라 하는 잡기놀이)를 하거나 소낙비가 올 때면 밑둥 뒤에나 그 빈 속은 단골 아지트였다. 또한 가을이면 고소한 비자 열매까지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처럼 내려 주었다. 하늘에서 비처럼 비자 열매는 텁텁한 껍질 속에 고소한 알맹이다. 이 열매가 몸 속 회충을 잡는데 특효라는게 도무지 수긍이 가지않던 기억이 난다.
또 있다. 이들 나무는 청춘남녀들의 밀회 장소라고도 했다. 왜 그랬을까? 3백년 부부 해로 나무니까, 그 아래서 사랑의 언약을 하면 최소 100년은 너끈할 거라는 썰.
한쌍의 비자나무는 여전히 내 추억의 든든한 밑뿌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