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마당에 가설극장 오다

비봉내의 아이들 #8

by 박하
가설극장.jpg



문화와 예술을 사랑 하시는 곤양면민 여러분! 오늘밤 여러분을 모시고 상영할 영화는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굳세어라, 금순아!'
이 영화로 말씀드리자면, 손수건 없이는 볼 수 없는 감동 대작.....

아~ 귓가에 쟁쟁한 그 마이크 소리, 온 동네를 쩌렁쩌렁 울리는 가두 방송,
대형 영화 포스터를 걸고서 신작로를 달려가는 트럭, 조무래기 우리는 그 차 꽁무니를 부나비처럼 우루루 좇아가고, 시커먼 배기가스도 향기롭기만 했다. 이 차가 신작로를 훑고 지나가면 온 동네 사람들이 애드발룬 같이 붕붕 떠오른다.

때는 가을걷이 뒤, 벼농사 수매도 마무리된 시기, 가설극장은 매년 이맘때면 철새처럼 찾아왔다.

초저녁부터 촌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성내리 시람은 물론 추동, 새동네, 뒷밭, 송전, 당내, 솔티, 사랑골 등등. 곤양면 곳곳에서 골고루 모여든다.

면사무소 앞 창고마당, 그곳에 어느새 세워진 가설극장, 하얀 광목에 둘러싸인 거대한 성채 같은 곳, 촌사람들이 그 속으로 속속 들어간다. 물론 입장권을 산 사람들이다.

가설극장은 비록 광목천으로 둘렀지만,
그 높이가 장정 키의 두 배쯤이라서 화면이 전혀 안 보인다. 밖에서는 그저 소리만 들릴 뿐이다. 감질나 미칠 노릇이다.
틈 사이로 엿본 안쪽은 의자도 없이 짚방석 위에 콩나물시루 같은데도 그곳이 천당보다 부럽기만 하다.

이윽고 대한늬우스가 들린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입구 쪽에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서성대는데.....

돈이 없으니 속수무책. 하기야 입구 앞에 얼쩡대는 꼬마는 나뿐이 아니다. 입장권을 확인하는 기도는 평소 아는 종태형인데도 안면 몰수하고 눈을 부라리고 있는게 야속하기 짝이 없다.

이럴 때 간절히 원하는 일? 초반에 정전사태가 일어나는 일! 그럴 경우, 간 큰 녀석들은 잽싸게 광목 휘장 아래로 기어 들어기기도 한다. 그런 사태가 좀체 일어나지 않지만, 일어난대도 겁많은 나는 그럴 수도 없다.

안쪽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맛배기 예고편도 끝나고 본 영화가 시작되었다. 어느새 입구 쪽도 인적조차 끊긴다.

그때였다. 기도 서던 동네형이 쉿! 손으로 입을 가리며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게 아닌가.
이런 횡재! 그 형이 크게 인심을 쓴 것이다.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그때 기분이란 보물이 가득한 도깨비굴에 들어가는 기분 그것!

촤르르~
들어가자마자 배우들의 목소리가 뚝 끊기고, 영사기 소리만 들린다.

토오키! 토오키!
삐이익! 삐이익!
실내는 잠시 소동이 벌어지고......

한편 어릴 적 내 골방의 벽은 신문지가 발려 있었다. 꼬질꼬질한 신문 도배지 그 속에 유독 눈길을 끈 부분, 하단의 영화광고!
지금도 기억에 또렷이 남은 영화, 나바론요새!
상상만 하던 그 영화를 6년쯤 뒤에 부산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보았다. 2본동시상영 삼일극장이던가.
그때의 감격이라니!

곰곰 생각하니 내 영화벽은 시골 가설극장 시절,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지금도 1주일에 한두 편 영화를 봐야 직성이 풀리니까 말이다.
헐리우드키드는 서울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는 사실!

568Ud0151km4rcqsxp8nb_hy1v29.png?type=w520


keyword

가설극장

영화

창고마당

매거진의 이전글분교 앞마당의 비자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