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밭고랑을 들썩이다

비봉내의 메아리 #12

by 박하


By박하.Mar 30. 2017

고구마, 밭고랑을 들썩이다

고구마를 키워 본 사람은 안다. 고구마가 얼마나 신기한 작물인지.....
고구마는 기름진 땅, 척박한 땅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옹색한 물컵에서도 고구마는 군말없이 황홀한 생명의 쇼를 보여준다.

달 표면 같이 트실트실한 황톳빛 피부를 뚫고 나오는 새싹들,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마치 신이 인간에게 비밀 쪽지를 보내는 것 같다.

내 고향 곤양은 고구마 농사를 많이 지었다. 여름철 밭농사는 으레 고구마였다.
비온 뒤, 한창 자랄 때는 줄기가 뻗어가는 게 보이는 듯하다. 씨알이 굵어질 때는 밭고랑이 들썩이는 것 같다. 마치 두더지가 땅속을 헤짚는 것처럼....

고구마 캐기는 얼마나 신나는가. 낫으로 줄기를 쳐낸 뒤, 호미로 또 괭이로 고랑을 파내는 일, 땅 속에서 노다지를 캐는 감동 그대로다. 농부들이 모진 흉년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건 이런 생명의 기적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고구마는 흉년을 구제하는 구황求荒작물이기도 하다.

초봄에 뒤란 텃밭에다 간이 비닐하우스를 만든다. 흙 속에 거름을 많이 한 뒤, 그 속에 고구마 종자를 심는다. 신기하게도 고구마에서 싹이 터 자라는데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놀랍기 그지없다. 고구마 모종이란 이들 싹으로, 그 줄기들이 10cm 정도씩 자라면 이를 토막토막 자른 것이다.

비 오는 날, 아버지를 따라 고구마 모종을 낸 기억이 난다. 버들가지보다 가는 줄기를 밭고랑에 꽂아놓았는데, 시나브로 그 뿌리에 달리는 고구마들, 한창 자랄 때는 밭고랑 속에 두더지가 기어가는 듯하다. 고구마 농사는 그야말로 기적의 연속이었다.

먼당밭에는 누구네 밭 할 것 없이 고구마를 심었다. 밭과 밭 사이로 산길이 나 있었다.
어느날, 초등 녀석들 셋이서 산에 여치를 잡으러 갔다가 무성한 고구마밭을 발견한 것이다.
때마침 배도 출출한데,
밭주인도 눈에 띄지 않겠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녀석들은 고구마 줄기를 두 손으로 당겨 올리기 시작했다. 뽑아올린 뿌리에는 쥐불알만한 고구마들이 대롱거렸다.

애개개? 줄기를 더 뽑아보면 더 굵은 놈이 나올 거야!

밭고랑을 따라가며 고구마 줄기를 더 뽑아 올리는데......갑자기 천둥벼락 소리!

야! 이 놈들, 그만 두지 못해!

귀신 같이 밭주인이 나타났고, 철부지 녀석들은 꼼짝없이 걸렸다. 그 밭주인은 꼬마 현행범들에게 즉결처분을 내렸다.

밭두렁에 일렬로 서서 두 손을 번쩍 들고 서있기! 단, 아랫도리를 벗어 무릎 아래까지 내린 채.....그래도 키득거리는 녀석들.

아무리 촌동네라도 그렇지 요즘 같으면, 어린이 성희롱이라고 밭주인이 되려 고발을 당할 것이다.

그 녀석들 셋 중에 하나였던 상기 친구가 내게 고백한 이야기다. 그 밭주인은 우리 아버지라고 했다.
그 옛날, 우리 고구마밭은 지금은 어떻게 도어있을까? 밭고랑을 들썩이던 그 광경이 새삼 보고 싶다.

요즘 고구마밭은 산돼지들 때문에 가족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밭고랑을 결딴 내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것에 비하면 옛날은 그래도 그때는 약과다.

고구마 빼때기 이야기는 다음 편에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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