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눈깨비 오는 밤의 닭서리

비봉내의 메아리 #21

by 박하



By박하.Mar 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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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의 닭서리

겨울은 즐겁기도 하지만 지루하기도 하다. 낮동안은 놀거리가 많아도 밤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조무래기들이라도 눈은 올빼미 눈처럼 말똥말똥하고, 정신도 초롱같은데 잠이 올 턱이 없다. 초저녁부터 일찍 잔다는 것은 왠지 죄를 짓는 기분이다. 그래서 촌놈들은 그냥 있질 못한다.

삼거리 한길가에 철수네(가명) 문간방이 있었다. 그곳은 동네형들의 단골 사랑방, 때마침 방학이라 활기도 넘쳤다. 진교나 진주 등, 대처에 유학갔던 녀석들이 잠시 귀향을 해서 합류를 했기 때문이다.

해거름 때부터 싸락눈이 내리던 밤, 몇몇이 모여 비밀공작이 시작되었다. 결론은 장터거리 영수네 집에 닭서리를 하기로 했던 것! 눈이 내리니 시야도 흐리겠다, 한길에 행인들도 별로 없겠다, 닭서리하기에 딱 좋은 밤이었다.
영수네 집은 큰 식당으로 대문을 열면 널찍한 안마당이 있고, 마당 오른편에 닭장이 있었다. 이 집 닭을 딱! 한 마리만 서리를 해서 닭백숙을 해먹기로 했다.

각자 임무가 정해졌다. 한 녀석은 전봇대 아래서 망을 보고, 휘파람을 불어 신호하기, 덩치는 작아도 행동이 재바른 봉우와 힘센 영식이가 행동조를 맡았다. 휘파람 신호에 따라 영식이가 잽싸게 대문 앞으로 가서 대문에 달린 쪽문을 살짝 밀었다. 벌써 닫혀 있었다.
할 수 없이 자기집으로 달려가 사다리를 갖고와 뒤쪽 담장에 걸쳐 넘어갔다. 그리고 도둑고양이처럼 걸어가 안쪽에서 쪽문의 빗장을 열었다.

싸락눈은 여전히 내리지만, 아직 쌓일 정도는 아니었다. 두 녀석이 살금살금 안마당으로 다가갔다. 안방은 아직 불이 커져 있지만 라디오 소리만 들리고 조용했다.
뒤란에서 잠시 부석거린 뒤에 처마 아래 장작더미를 돌아 안마당으로 갔다.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조명 역할을 톡톡이 해주니 큰 걱정 하나가 절로 해결되었다. 두 녀석이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닭장 앞으로 다가갔다.

어느새 영식이는 손에 향불이 들려 있었다. 난데없이 왠 향불인가?
향불을 피워 향내를 닭들에게 씌우면 금새 마취효과가 난다는 것! 닭을 붙잡아도 닭이 기절한듯이 반항을 못한다는 사실!
그래서 닭장 앞에다 공들여 향불 서너 개를 피워 놓고 닭들이 헤롱헤롱할 때까지 기다렸다.

닭장 앞에는 문이 두 개가 있었다. 사람이 들고나는 큰 문, 닭들이 들고나는 작은 문,
그런데 작은 문은 문이라기보다 큰 구멍이었다.

횃대에 닭들이 올라가 있는게 어렴풋이 보였다. 한동안 매캐한 향내가 진동을 했다. 드디어 작전개시!

닭장의 큰문은 쇠불알만한 자물쇠로 잠겨 있으니 철망 아래 작은 구멍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봉우가 걸쇠만 젖히고 작은 구멍으로 머리를 뒤밀었다. 사각형 구멍이 너무 좁아 간신히 머리통이 들어갔 다. 마치 조선시대 죄수가 큰칼을 찬 것 같이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그 속으로 오른 손을 집어넣어 횃대에 앉은 암닭의 다리를 살며시 붙들었다.

꼬~끼오! 꽤~액!
푸드득 푸드득!

갑자기 천둥벼락 같은 비명 소리가 터졌다.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자 닭장 안 닭들이 합세를 하여 난리 북새통을 터트렸 다. 봉우가 기겁을 하고 머리를 빼려는데 당최 머리가 빠지지를 않는 것이다.
진퇴양난! 들이밀 수 없고 뺄 수도 없이 옴짝달싹을 할 수 없다. 마음이 급하기만 해서 아무리 낑낑대도 머리통이 빠지지 않는다.

설상가상, 쾅! 소리가 안방 쪽에서 나며 고함소리가 터졌다.

도도ㅡ도둑이야!
도둑놈 잡아라!

씩씩대며 달려오는 영수 아버지! 손에는 어느새 실한 바작대기가 들려있었다.

ㅡ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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