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내의 메아리 #18
그날 밤은 초저녁부터 함박눈이 내렸다. 눈은 우리집 처마에도 너훌너훌 춤을 추며 내리고 멍석만한 우리 앞마당에도 금세 새하얀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버지는 밥상을 물리시자 부스럭부스럭 뭔가 채비를 하시는 것이었다. 호롱불 빈 밀가루 포대, 새끼줄 등을 챙기셨다.
'눈이 저렇게 많이 오는데 어딜 가시려고요?'
열서너 살이었던 나와 동생들은 번갈아 여쭈었지만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기만 할 뿐 어머니도 짐짓 모른 채 콩나물시루에 물만 주고 계셨다.
이슥해진 밤 동생들은 잠이 들었고 나도 설핏 잠에 빠졌다.
뜻밖에 나를 흔들어 깨우는 아버지의 목소리,
'밤길이 위험하니 너만 살짝 따라가자!'
나는 도무지 영문도 모른 채 대장군을 보좌하는 졸개처럼 의기양양해졌다.
어느새 눈은 사랑채에도 담장에도 장독간에도 흰 이불을 덮어놓았고, 눈발은 차츰 가늘어져 있었다. 호롱불을 지팡이 삼아 아버지 손을 잡고 나섰다. 싸리울을 따라 뒤란으로 돌아갔다.
밤이면 늘 귀신소리를 내던 대숲에서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들리는 소리라곤 뽀드득뽀드득 발자곡 소리 뿐이었다. 하얀 적막을 헤치며 엉금엉금 돌계단을 올라갔다. 지금쯤이면 참새도 곤히 잠이 들었다 하시며, '참새를 잡으러 가자!'하시었다.
이윽고 뒤란, 아버지는 처마에 사다리를 걸치셨다. 아버지는 손짓으로 내게 호롱불로 처마 쪽을 비추라고 하시며 당신은 걸쳐 놓은 사다리로 올라가셨다. 호롱불을 치켜 든 내 팔은 저렸지만 내 가슴은 마냥 콩닥거렸다.
푸드득 푸드득 처마 속 참새 굴에서 작은 소동이 들리자마자 아버지 손에는 참새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생포된 참새는 다시 내가 메고 있던 밀가루 포대자루 속으로 옮겨졌다.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아마 대여섯 마리쯤 잡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참새를 잡으시는 모습은 지극히 당당하셨다. 마치 우리집 처마에 세들어 사는 참새들에게 현물로 방세를 받는 것 같았다.
뒷날 아침 그 참새들은 아궁이 속 발갛게 달아오른 짚불 위에서 경건한 다비식을 거친 다음, 우리 식구들의 뱃 속에다 장사를 지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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