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온 뒤에

눈 온 뒷날 화롯불에

by 박하

By박하.Mar 30. 2017


눈이 온 뒤에 / 이항복
雪後/ 李恒福

눈 온 뒤 산비탈 사립문 늦도록 닫혀 있고
다리 위는 한낮인데도 오가는 이들 적네
화로 속 잿불, 여전히 등등하여
주먹만한 알밤을 혼자서 구워 먹네

雪後山扉晩不開 설후산비만부개
溪橋日午少人來 계교일오소인래
篝爐伏火騰騰煖 구로복화등등난
茅栗如拳手自煨 모율여권수자외

군밤 냄새 진동하는 그 화롯가에 나도 슬쩍 끼어들고 싶다.

오성 대감님, 군밤 냄새가 제 코를 꾀는 바람에 속절없이 딸려 왔습니다요......

겨울철 간식으로 군밤과 고구마 만한 게 있겠는가? 하지만 오성 대감, 白沙 이항복 (1556~1618) 시절엔 고구마가 아직 이 땅에 등장하지 않았다. (*고구마는 1763년 통신사 조엄이 처음으로 대마도에서 들여왔음).

白沙 이항복은 어릴 적부터 장난꾸러기였다. 오성과 한음 이야기로도 익히 알려져 있듯이, 재담 실력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했다. 그리하여 치열한 당쟁의 복판에서도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고, 양편을 곧잘 웃겨 적賊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다만 노년에 외통수 함정(?)에 빠지는 바람에 유배를 갔다고 한다.

위 詩는 언제 지었을까? 적적한 분위기로 보아 귀양살이 시절로 보인다. 유배 온 죄인의 집에 누가 쉽게 발걸음을 하겠는가? 찾아오는 이는 없을 지라도 그래도 유유자적 悠悠自適, 자중자애 自重自愛가 느껴진다.

자고로 도道가 경지에 이른 선비는 자기 최면을 걸었다고 한다.
설령 자신이 절해고도에 유배를 당해 가시울타리로 둘러친 집ㅡ圍籬安置ㅡ에 살더라도, 스스로 최면을 걸어 그곳을 마음 속 낙원, 정신의 파라다이스로 만들었던 것이다. 기실 유배문학도 따지고 보면, 자기 최면의 산물인 셈이다.

이항복, 그의 이름 그대로, 몸은 비록 시련에 처했더라도, 홀로 군밤을 먹으며 자신은 늘恒 행복福한 사람이라 최면을 걸었던 것은 아닐까.......

옆구리도 시리고 마음도 썰렁한 날, 왠지 군밤을 먹으면 금세 훈훈해질 것 같다.

군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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