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추운 날 / 박지원

북악을 바라보며

by 박하


By박하.Mar 30. 2017


極寒 / 朴趾源

북악은 깍아지른듯 솟아있고
남산 소나무들 검은 빛이구나
솔개 지나간 숲,
나무들도 움추리고
학 울음소리에 하늘도 시퍼렇구나

北岳高戌削 북악고술삭
南山松黑色 남산송흑색
隼過林木肅 준과임목소
鶴鳴昊天碧 학명호천벽

북악산의 얼어붙은 암벽이 수자리(초병)의
칼날 같이 솟아있고,
남산의 소나무도 혹한의 된서리를 맞아 시커먼 빛이다
배고픈 솔개가 숲 위를 낮게 날아가자
산새들도 숨을 죽이고,
끼루룩~끼루룩~
학(鶴) 울음소리에 하늘도 얼음장처럼 시퍼렇게 질려있다.

연암의 날선 기개!
활시위에 쟁인 화살처럼 팽팽한 긴장이다.
극한이라는 제목 말고는 추위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다. 순전히 바라다보이는 풍경만 그렸는데도 사무치는 한파가 느껴진다.

북악은 경북궁 뒷편, 청와대 뒷산으로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상징이다. 모르긴 해도 돈도 권세도 없는 포의(布衣) 선비, 연암에게 북악은 접근불허! 수자리의 창날 같이 느껴졌을 법하다.

아마도, 이 시는 남산골 딸깍발이 시절에 쓴 것 같다. 집도 가난했고 관운도 없었던 아웃사이드 처지에 겨울 추위는 오죽했겠는가.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은 44세 때, 청나라 사행, 아다시피, 사행길의 인상을 재기발랄하게 쓴 <열하일기>. 유명세를 타면서부터 슬슬 관운도 트였으니 말이다.

숨어서 칼을 갈듯 저런 팽팽한 단련이 있었기에 그랬을까? 때를 만나 터질 때는 봇물처럼 터졌던 건 아닐까?ㅡ박하 생각
ㅡㅡㅡㅡㅡㅡㅡ
박지원(朴趾源, 1737 ~1805): 조선 후기의 문신, 실학자이자 사상가, 외교관, 소설가.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美仲, 호는 燕巖,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1765년 처음 과거에 응시하였다 낙방했으며, 이후 과거를 단념하고 독서와 저술에 전념하였다. 그러다가 44세에 연행사절단에 용케 곱사리를 끼는 바람에 일약 스타가 되었다.

북악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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