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갈대밭 / 김시습

심쿵한시 절절 漢詩 #5

by 박하



By박하.Mar 30. 2017

눈 덮인 갈대밭 /김시습

雪覆蘆花 /金時習

강물 위 밝은 달빛 모래벌 비추고
어촌 여덟 아홉 집도, 점점이 비추누나
또 하나 맑고 빼어난 자태 있으니,
흰 눈 덮여 반짝이는 갈대꽃이로구나

滿江明月照平沙 만강명월조평사
裝點漁村八九家 장점어촌팔구가
更有一般淸絶態 갱유일반청절태
暟暟白雪覆蘆花 개개백설복려화

반짝이는 것은 반갑다. 때론 은근한 정표 같기도 하다. 밤바다의 등대불처럼 말이다.

겨울 저녁, 휘영청 달이 밝다. 달 아래 한 나그네가 어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곳에 들러 하룻밤 묵어 갈 참으로, 행색은 초라해도 눈빛만은 형형하다.

그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강 위에 비친 달이 아니다. 엄동설한의 밤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반기는 것들, 반짝반짝 신호를 보내는 것들, 바로 눈덮인 갈대꽃!
그래 반갑네, 정말 반갑네.
나그네의 중얼거림이 들리는 것만 같다.

겨울 달밤, 강변의 눈덮인 갈대꽃, 엄동설한에도 반짝일 줄 알고, 최후의 그날까지 꼿꼿이 선 채로, 생을 마감하는 갈대여!

매월당 김시습은 누구인가?
560여년 전, 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읽고 있던 책을 불사르고 홀연히 방랑길에 나선 사내, 달빛 아래 매화를 사랑하고, 강변에 눈 덮인 갈대꽃을 사랑한 사나이, 그의 나이 21세 때부터 58세로 마감한 생애 끝날까지 초지일관 꼿꼿하게 살다간 대자유혼!

이 詩는 매월당이 보내는 신호 같다. 온갖 것에 휘둘려 사는 우리에게 보내는 은근한 정표 같은 詩다. ㅡ박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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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金時習
( 1435~1493).
조선 초기 학자. 호는 梅月堂,東峯. 이름인 시습(時習)은 '論語 學而篇' 중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독서를 하다 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3일 동안 통곡을 하고 책을 불사른 뒤 평생 동안 절개를 지킨 생육신의 한사람. 머리를 깎고 21세에 방랑의 길에 들어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며 숱한 글을 남겼다.

김시습-눈내린 강마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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