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내의 메아리 #50
그 여름 뱀소동의 끝
초등 3학년, 아니 4학년이었던가? 그 해 여름은 뱀 소동만 기억에 남아있다.
할머니 방에 자다가 한밤중에 소동을 벌인 일! 지난 번에 털어놓은 바 있다. 달 밝은 밤, 방가운데 또아리 튼 뱀을 보고 질식하듯이 놀랐는데, 할머니를 깨우는 바람에, 정신을 차렸고, 정신 차리고 보니 또아리 튼 뱀은 둥근 부채였던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또 이사(?)를 갔다. 할머니 방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큰 집 바로 앞집인 현식이형네 집이다. 그 집은 초가삼칸이 아니라 양철집 삼칸이었던 것 같다. 그 형은 나보다 2살이 많았는데 서로 친했다. 가끔씩 둘이 함께 동네 사냥꾼 택동이형의 똘마니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현식이 형의 방에서 잠시 더부살이를 하기로 하고 함께 잠을 잤다. 사흘짼가 되는 밤, 한밤중에 웅크려 잠을 자다가 새벽녘에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잠을 깼다. 발가락 끝에 뭔가 이상한 게 닿았는데, 느낌이 기다랗고 서늘했다. 발을 슬며시 옆으로 옮겨보아도 길다란 것이 쭈욱 이어졌다. 나는 퍼뜩 생각했고, 화들짝 놀라 절로 고함이 나왔다.
으악~ 배 뱀이닷!
헨식이 형! 장농 밑에 배! 뱀이!
내가 후다닥 일어났다. 한잠이 들었던 형도 깜짝 놀라 일어났다.
오데, 오데 뱀이 있노?
형은 천정에 매달린 백열전구를 켜고 후딱 홋이불을 들쳤다. 그 동작이 비호 같았다.
장농 아래를 보니, 기다란 것이 하나 있긴 있었다.
야이 밤피야! 정신차리라!
뱀은 무신 뱀이고, 가죽혁띠구마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내가 한바탕 난리를 치는 통에 그 집 식구들도 모두 놀라 일어났다. 아마도 큰방에 주무시던 현식이형 모친, 누이동생까지도 오밤중에 일어나 영문도 모르고 부들부들 떨었을 것이다.
그날 오후,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사내자식이 간뎅이가 그리 작아 나중에 뭐가 될래?
오늘 당장! 집구석에 안들어오면 다리 몽댕이를 분질러 놓을 테니 알아서 해라!
아버지의 엄포에 놀란 나머지, 나는 집으로 돌아 왔다. 그래도 작은방에서 한동안 비싼 전깃불을 켜고 자야만 했다.
그 후 1년 뒤, 한여름날, 우연히 친구들과 남산 꼭대기에 놀러갔다. 내가 한참 뒤쳐져 걸어 가는데 때마침 뱀 한 마리를 만났다. 푸른 바탕에 군더군데 붉은 반점이 있는 꽃뱀이었다.
바로 앞에 길을 가로질러 가다가 재수없게 나랑 마주쳤던 것이다.
순간 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하지만 재빨리 정신을 차린 다음, 일말의 주저도 없이 옆에 있던 짱돌을 주워 들었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철천지원수처럼 그 뱀을 짱돌로 찍었다. 한두 번이 아니고 연속해서!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쌓이고 싸옇던 원한(?)을 한꺼번에 푼 기분이었다. 짜릿하고 통쾌했다.
그 순간, 소심했던 나는 사내새끼에서 사내자식으로 한 계단 올라갔던 것 같다.
지금은 뱀을 만나면 어떻하냐고요? 고이고이 보내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