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내의 메아리 #31
북문내는 겨울 놀이 종합선물 세트였다. 썰매, 스케또(스케이트), 팽이치기, 얼음낚시, 얼음배, 논두렁 태우기 등등.
애, 어른 할 것 없이 다들 제 수준에 맞는 놀이를 즐겼다. 그 중에 다함께 하는 놀이가 바로 얼음배, 그것은 그 해 겨울을 마무리하는 잔치이기도 했다.
어느 날 오후, 종우 형이 북문내 얼음판에 손도끼와 큰 톱 몇 개를 가지고 나타났다. 그 형은 평소 헐렁한 윗도리를 걸치고 있기에 우장바우 같고, 걸음도 흔들거려 언뜻보면 좀 모자라 보였다. 하지만 조무래기들 앞에서 말을 할 때는 교장선생님보다 훨씬 멋 있었다. 일장 훈시가 아니라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
그 형을 보고 나는 일찌기 깨달았다. 언덕은 내려 봐도 사람은 허우대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걸!
그 형의 별명은 똥종우, 정갈량 두 가지였다. 놀릴 때는 똥종우(똥 닦는 종이), 반짝이는 제안을 할 때는 정갈량이었다.
짜쟌~ 그 형은 마치 어지러운 얼음판 무림을 평정하러 나온 강호의 협객 같았다. 장검 대신 손도끼의 명수?!
오늘 얼음배는 종우형이 총감독이자 선장이었다. 그 형은 매사 처음에 시범만 보인 뒤, 절대 스스로 힘 쓰는 법이 없었다. 그래도 우리들을 누구 하나 군소리없이 즐겨 졸개들이 되었다.
어이, 너그들 얼음배 타고 싶지? 타고 싶은 놈들은 요리 와서 빙 둘러서봐라!
그런 다음, 얼음판 위에다 슥슥 설계도를 그려 설명했다.
어이, 기태야!
니는 말이다, 이 도끼로 네 모서리를 찍어라. 빵꾸가 날 때까지!
원호, 종봉이, 니들은 말이다, 이 톱으로 요기 모서리 구멍에서부터 조기까지 똑바로 썰어봐! 만약 삐툴빼툴 썰면 얼음배 안 태워줄 테니 알아서 해!
맨처음 얼음판에 구역을 정한 다음 도끼로 네 모서리를 찍어 얼음에 구멍을 냈다. 그리고 송곳으로 금을 그어 네 모서리를 이었다. 사실 얼음배는 네모난 뗏목 같았다.
얼음장을 톱으로 써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우리들은 교대로 콧잔등에 땀이 나도록 얼음장을 켤 동안 그 형과 몇몇 졸개들은 도끼와 낫을 들고 사라졌다.
얼음판을 거의 다 썰어갈 때, 사라졌던 형과 졸개들의 손에 간짓대가 한 개씩 들려있었다. 인근 대밭에서 대를 찍어 삿대를 만들어 온 것이다.
우리는 동네형들, 악동들과 함께 얼음배를 타고 시껄벅적 놀았다.
막판에는 얼음배가 암초에 걸려 와장창 깨지는 바람에 모두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해 겨울의 마지막, 우리 조무래기들은 그 얼음배를 타고서 유년의 강도 씩씩하게 건넜던 것이다.
지금쯤 북문내는 어떻게 변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