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 김삿갓

심쿵한시 절절한시 #51

by 박하

鷄 / 金笠



새벽을 알리는 일 도밑아 하고


진홍 관모, 푸른 뒷발톱이 빼어나구나


달 속 옥토끼를 놀라게 하여


흰빛 스르르 감추게 하고,


매양 해 속, 금까마귀 불러내어


붉은 빛 곧장 발하게 하네



싸울 때는 노기등등 불꽃 튀는 눈동자,


큰 소리로 북치듯 활개로 바람을 일으키네


오덕* 이름 높여 세상 모범이 되고


먼 옛날 도도산 꼭대기에서


세상 향해 울었던 영물이여



擅主司晨獨擅雄


천주사신독천웅


絳冠蒼距拔於叢


강관창거발어총


頻驚玉兎旋臟白


빈경옥토선장백


每喚金烏卽放紅


매환금오즉방홍



欲鬪努嗔瞳閃火


욕투노진동섬화


將鳴奮鼓翅生風


장명분고시생풍


名高五德標於世


명고오덕표어세


逈代桃都響徹空


형대도도*향철공



*편의상 단락을 나누었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장닭을 자세히 보라. 꼿꼿이 세운 붉은 벼슬, 이글대는 불꽃 닮았다. 채색 비단 같이 화려한 깃털, 포물선을 그리듯 휘어진 꽁지털, 서슬 푸른 뒷발톱까지......


절로 탄성이 나오는 자태다.


꼬끼오~ 그 외침은 그저 고함이 아니라, 달과 해를 부리는 주문呪文이란다.


새벽마다 천지를 진동하는 목청으로 달月의 광채를 잠재우고, 해 속의 금까마귀 불러내어 붉은 빛을 발하게 하는 비밀의 신호란다.



싸움에 임해서는 불꽃이 튀는 눈동자, 진군 나팔에다 큰북을 치는듯한 활개로 바람을 일으키는 기백!



닭을 이처럼 멋지게 예찬할 수 있을까? 김삿갓이 남긴 재밌는 영물시(詠物詩)들 중에서 이 시가 단연 눈에 띈다. 더욱이 올해가 정유년 닭띠 해니까.....



닭은 본래 '5덕'을 갖췄다(鷄有五德)고 한다. 머리의 관은 문(文) 이요, 발에 갈퀴는 무(武) 요, 적에 맞선 자세는 용(勇)이요, 먹이를 보고 동족을 부르는 것은 인(仁) 이요, 밤을 지켜 새벽을 알리는 것은 신(信)이다. 출처-韓詩外傳*



마지막 구절의 '도도桃都'는 무슨 뜻일까? 중국 전설 속의 도도산. 그 꼭대기의 큰 나무에 천계天鷄가 사는데, 아침 해가 이 나무를 비추면 천계가 울고, 그 소리를 따라 천하의 닭들이 운다고 한다.


이와 달리, 어떤 해설에는 도연명의 무릉도원(桃花園記)을 뜻하는 것이라고도 하는데 이건 아닌 것 같다. 다만 이 詩에서 조금 서운한 점은 19세기 후반인데도, 불세출의 풍자시인 김삿갓이 닭을 중국 신화에 비유했다는 점이다.



한편 계란도 귀했던 시절, 사위가 오면 잡아준다는 씨암탉, 여름 보양식 삼계탕, 또 오골계 등등. 예전의 닭은 지금의 배달 치킨이나 치맥처럼 흔하지 않았다.


그만큼 귀해서 고마왔고, 신령스런 영물靈物로까지 대우 받던 닭! 하지만 요즘은 닭 신세가 만신창이가 된 것 같다.



애고애고 설운지고~ 꼬꼬닭의 오덕이나 신화는 고사하고, '야이, 닭대가리야~' 속된 말처럼 닭의 체면을 무시로 능멸(?)하고, 동네방네 치킨 광고만 넘쳐나는 세태, 돈벌이에만 급급한 사육 환경으로 겨울만 되면 한두 마리 닭들이 독감에 걸려도 모조리 산 채로 매몰 당하는, 비정한 세태다.


만약 김삿갓이 환생하여 작금의 살처분 사태를 본다면 어떻게 나올까?



한편 장닭을 보면 대장군의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보면 볼수록 삼국지의 관우를 능가하는 오연한 기개가 느껴진다.



닭띠 해! 정유년 새해에는 부디 조류독감 백신이 개발되기를 빈다.(닭띠 과학자들의 분발을! ㅋㅋ). 그리하여 무고한 닭들의 희생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빌고 또 비나이다.ㅡ박하생각


----------------


*『한시외전 韓詩外傳』; 한漢나라 때의 학자 한영韓嬰(연燕 땅 사람)이 지은 시詩에 관한 책. 한영은 연나라 일대에서『시경』을 강학하였는데, 그가 풀이하고 가르친 시를 특별히 그의 성姓을 따서 '한시韓詩'라고 이름하였다.



* 김병연(金炳淵, 1807 ~ 1863)은 조선 후기의 풍자 시인이자 방랑 시인이다.

b44Ud015tjma9t46423y_hy1v29.jpg?type=w520

표정1 댓글1

매거진의 이전글가위/ 허난설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