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더

Undergrounder

by 유명운

민철이네 집 대문 앞에 선 명운이는 민철이의 이름을 부르려다 잠시 망설였다. 민철이의 큰누나가 집에 있을까봐 조심스러웠다. 처음엔 안 그랬는데, 요즘 왠지 민철이네 큰누나는 명운이가 집에 오는 걸 반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특별히 잘못한 게 없는 명운이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을 반기지 않는 언짢은 시선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명운이는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민철이의 이름을 불렀다.

- 민~철아~ 놀~자아.

명운이가 민철이의 이름을 세 번 부르자 대문 안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 민철이 나가고 없는데..

싸늘함이 묻어나는 민철이 큰누나의 목소리였다.

- 어디 갔는데요?

- 몰라. 금방 밖에 나갔는데..

- 네, 안녕히 계세요.

명운이는 대문도 열지 않고 말하는 민철이 큰누나의 목소리가 자신의 목덜미에 싸늘하게 감기는 것 같았다.

‘나한테 왜 그러지? 처음 봤을 땐 친절하게 잘 대해줬는데.. 내가 뭘 잘못했나?’

명운이는 영문도 모른 채 미움을 받는다는 게 억울했지만, 민철이 큰누나가 그러는 데는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도통 알 수 없다는 게 답답할 뿐이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에서 명운이는 평소 습관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뭔가 묵직한 것이 만져져서 꺼내보니 민철이의 팽이였다. 지난번에 민철이가 명운이네 집에 놓고 간 것이어서, 오늘 만나면 돌려주려 했었다. 명운이는 그냥 집으로 갈까 하다가 다시 민철이네로 향했다. 왠지 자기 것이 아닌 것이 제 손 안에 있으면 불편한 명운이었다. 민철이네 대문 앞에 선 명운이는 또 망설였다. 혹시나 민철이 큰누나가 짜증을 내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잠시 망설이던 명운이가 대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려 할 때였다.

- 명운이 갔어?

민철이의 목소리를 들은 명운이가 반가움을 느끼기도 전에 또 다른 말이 들려왔다.

- 너 앞으로 걔랑 놀지마.

민철이의 큰누나였다.

- 큰누나는 왜 명운이랑 못 놀게 해?

- 아이, 글쎄 놀지 말라면 놀지마.

- 왜? 왜 그러는데?..

- 걔 아랫동네 산다며?

- 응. 근데 왜?

- 아랫동네 사는 애들은 다 못 살고 공부도 못하는 애들이야. 몸에 이도 있고..

- 명운이는 나보다 공부 잘하는데? 이도 없고.

- 아잇! 놀지 말라면 놀지마. 너 걔 옷 입은 거 못 봤어? 일주일 내내 같은 옷이잖아.

저번에 왔을 때는 구멍 난 양말 신고 와서 그거 숨기려고 무릎 꿇고 있던데.. 그리고 아랫동네에는 나쁜 애들이 많이 살아. 집에 와서 뭐 훔쳐가고 그러는 애들도 많아.

- 그래, 엄마도 그동안 말 안했는데 민철이가 명운이 같은 애들이랑 놀지 않았으면 좋겠어.

민철이 엄마의 목소리까지 들은 명운이는 큰 충격을 받았다. 평소 그렇게 자상하게 잘해주시던 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민철이 엄마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 처음엔 인사성도 바르고 해서 좋게 봤는데, 애가 좀 지저분하더라. 누나 말대로 옷도 맨날 똑같고.. 케첩도 우리 집에서 처음 먹어 봤다며? 애가 보니까 좀 없이 사는 티가 나더라. 걔네 엄마도 그렇지, 얼마나 게으르길래 어떻게 일주일 내내 똑같은 옷을 입히냐? 아무리 회사에 다닌다고 그래도, 밖에서 뛰놀고 땀에 전 옷을 어떻게 그냥 또 입혀? 냄새나게. 학교 갔다 오면 옷도 안 갈아입고 그대로 놀고 또 다음 날 학교 가는 것 같던데.. 맞벌이 할수록 더 티 안 나게 애를 키워야지, 원.. 허긴, 그러니까 애 하나 건사 못해서 죽게 만들지.

민철이 엄마의 마지막 말에, 명운이는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를 느꼈다. 평소 명운이에게 해주었던 그 모든 것들이 모두 위선과 가식이었다는 것에 명운이는 처음으로 배신감이라는 걸 느꼈지만, 그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를.. 그리고 교통사고로 죽은 동생까지 입에 올리는 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사실 민철이 큰누나랑 민철이 엄마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명운이네는 민철이네처럼 부자가 아니었다. 민철이네처럼 세탁기도 없었고, 웬만한 집에는 다 있는 탈수기조차 없어서 모든 빨래는 엄마가 직접 손빨래를 해야 했다. 또 명운이는 옷이 많지 않아서 학교에 갔다 와서도 갈아입을 옷이 없었다. 혹 주중에 뭐라도 묻혀서 옷을 빨아야 할 경우엔 엄마가 퇴근 후에 밤 빨래를 해야 했다. 매일 야근에, 주말이면 밀린 빨래며 살림살이에 한시도 쉴 틈이 없는 엄마.. 쉬면서 월요일 출근을 준비해야 하는 일요일 밤마저 명운이와 동생을 목욕시키느라 진이 다 빠진 채로 잠을 청해야 하는 엄마.. 그런 엄마를 민철이 엄마는 게으르다고 했다. 게다가 엄마 아빠가 출근하고, 명운이 자신마저 학교에 있을 때.. 혼자 집에 남겨진 채 교통사고로 죽은 동생을 엄마가 게으른 탓이라고 했다. 그 사실.. 어린 아들을 집에 혼자 남겨두었다는 사실 때문에.. 사고가 났을 때, 엄마가 회사에 있었다는 사실을 얼마나 한(恨)스러워 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명운이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당장 민철이네 집에 들어가서 민철이 엄마의 배에 칼을 쑤셔 넣어도 시원찮을 것 같았다. 그 위선적인 몸짓과 말투가 지독히도 가증스러웠다. 치밀어 오른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해 몸을 부들부들 떨던 명운이는 정말로 칼을 들고 민철이네 집에 쳐들어갈 생각으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골목길을 지나는 동안에도 분을 삭이지 못한 명운이는 벽에다 주먹질을 해댔고, 조면(粗面)처리(벽면에 시멘트를 흩뿌려 놓아 울퉁불퉁 거칠게 만듦)된 벽면 탓에 주먹뼈 피부가 까지고 피가 흘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피부가 벗겨지는 쓰라림은 느끼지도 못할 만큼 내면의 분노가 큰 탓이었다. 명운이가 이처럼 극도로 분노한 이유는 민철이네 가족이 자신을 흉본 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그건 정의롭지 못한 비겁한 행동이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는 불행은 명운이가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지만, 가식과 위선으로 사람을 멸시하는 그런 인간들에게는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어야 한다는 걸.. 명운이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부엌으로 들어간 명운이는 부엌칼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대문을 나서려는데, 문득 부엌칼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져가기도 쉽지 않고 금방 사람들 눈에 띌 것 같았다. 명운이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서, 작지만 더 예리한 과도를 들고 나왔다. 잠시 칼날을 살피며 각오를 다진 명운이는 칼날이 보이지 않도록 소매 안으로 넣고 대문을 나섰다. 민철이네 집으로 가면서 명운이는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 분노를 억누르며 앞으로 저지를 일에 대해 생각했다.

‘우선 민철이네 집에 들어가서.. 무작정 칼을 들고 뛰어들 순 없어! 민철이 엄마가 가족들과 최대한 떨어져 있는 거리를 노려야 해. 괜히 물불 안 가리고 설치다간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붙들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때까지 소매에 숨긴 칼을 들키지 않는 것도 중요해. 그러려면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해. 만약 민철이 엄마가 집에 없거나 때를 노리는 게 여의치 않으면?.. 그러면 난감한데.. 좋아, 우선 모든 조건이 완벽했다고 치자. 민철이 엄마를 찔러 죽이고 나면?.. 아마, 감옥에 가겠지? 가만, 너무 어리면 감옥에 가는 대신 부모님이 처벌 받는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럼 엄마 아빠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명운이는 난감했다. 의도와 다르게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나이가 어리면 부모님이 처벌 받는다는 게 정말일까? 그러면 안 되는데..’

명운이는 혼란스러웠다. 잠시 걸음을 멈춘 명운이는 길가 담벼락에 기대어 생각을 정리했다.

‘좋아. 우선 그런 일은 없다고 치고, 내가 민철이 엄마를 죽이면 나는 감옥에 가겠지? 아니, 사람을 죽였으니까 사형되겠지?.. 그건 무섭지 않아. 민철이 엄마를 죽이지는 못하고 다치게만 하는.. 그런 일만 없으면 돼!’

다시 걷기 시작한 명운이는 더 이상 다른 생각은 않기로 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의지가 약해지는 법이었다. 한참을 다른 생각 없이 목적지를 향해 걷던 명운이의 머릿속에 불현듯,

‘근데 내가 죽으면.. 엄마 아빠는?..’

명운이는 이미 자신의 의지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음을 느꼈다.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머릿속에 떠 있는 엄마, 아빠의 얼굴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미 동생을 잃은 엄마 아빠에게는 나밖에 없는데..’

명운이는 민철이에 집으로 가는 골목길을 눈앞에 두고 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설움과 울분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명운이는 골목길 입구를 한참 바라보다 발걸음을 돌렸다. 과도를 든 손이 부르르 떨렸다.


축 처진 어깨로 집에 돌아온 명운이는 과도를 제자리에 놓고 방에 누웠다. 어떻게든 민철이네 식구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고 싶었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민철이를 때려?.. 하지만 정작 응징해야 할 사람은 민철이 엄마랑 큰누난데?..’

그렇다고 민철이 엄마나 큰누나를 때릴 순 없었다. 우선 힘으로 안 되기 때문에 몇 대 때리지도 못하고 붙들릴 게 뻔했다. 그리고 붙들리면.. 다짜고짜 주먹질을 하며 달려드는 꼬맹이에게 분명 그 이유를 물을 터인데, 초등학교 2학년인 명운이는 그 이유에 대해서 자신이 느낀 치욕과 모멸감을 조리 있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응징은 흐지부지되고 오히려 자신이 죄인처럼 몰리게 될 상황이 싫었다.

‘그럼 어떻게?..’

문제는 자신을 드러 내놓고 응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몰래?..’

하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물리적인 응징을 할 수는 없었다. 방바닥에 누워 고민하던 명운이는 벌떡 일어나서 머리를 쥐고 흔들었다. 가슴속의 울분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는데 달리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게 미치도록 답답했다. 칼로 찌르거나 때리지 못하면 돌멩이라도 던져야 직성이 풀릴 것만 같았다.

‘돌멩이?..’

명운이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차분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음날부터 명운이는 수업이 끝나는 쉬는 시간마다 돌멩이를 나무에 던지는 연습을 했다. 칠판 밑에 떨어진 짜리몽땅한 분필을 주워 나무에 주먹만한 원을 그려놓고 돌멩이를 던졌다. 처음엔 정확도에 목표를 두고 던졌고, 다음엔 좀 더 먼 거리에서 강하게 던지는 연습을 했다. 연습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친구들과 놀지 않고 돌멩이를 던졌고,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밤에도 전봇대에 원을 그려 놓고 돌멩이를 던졌다. 연습이 시작된 날부터 명운이의 양쪽 바지 주머니는 항상 돌멩이로 가득 차 있었고.. 놀지 않고 돌멩이만 던지는 모습에 의아해하는 친구들에게도, 투수 연습을 하는 거라고 둘러대고는 돌멩이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노력의 대가일까? 처음엔 가까운 거리에서조차 제대로 과녁을 맞히지 못했던 명운이의 돌팔매 솜씨는 일주일이 지난 후 놀랄만한 스피드와 적중률을 보이며 발전해 있었다. 명운이가 연습 기간으로 정한 일주일의 마지막 날 밤, 명운이는 전봇대에 그려진 어두운 원을 다섯 차례나 연속으로 맞히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목표는 민철이었다. 응징의 제1 순서는 응당 민철이 엄마가 되었어야 하지만 명운이는 계획을 수정했다. 아무리 뒤에서 몰래 돌멩이를 던진다 해도 민철이 엄마나 큰누나에게는 들킬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민철이의 경우는 들킬 가능성도 줄어들겠거니와 무엇보다 같은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동선을 파악하기 수월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명운이는 돌멩이만 던진 게 아니었다. 수업이 끝나면 민철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민철이가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길을 미행해서 응징에 필요한 동선을 파악했다. 방과 후 친구 집에 놀러간다든지, 친구들과 어울려 떡볶이를 먹거나,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학교에 남아서 노는 등의 예기치 못한 상황부터 일주일에 세 번 피아노 학원에 가는 고정적인 스케줄과 하굣길에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까지……. 명운이는 내일 오후, 민철이가 혼자서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 들어설 때를 응징의 시기로 잡았다. 명운이가 응징의 대상을 민철이 엄마나 큰누나가 아닌 민철이로 변경한 데는 노출 위험을 줄이는 동선 파악의 용이함 외에 또 다른 노림수가 있었는데, 민철이 엄마와 누나의 위선과 경멸이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지 ‘보이지 않는 폭력의 아픔’으로 무언의 가르침을 주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들이 앞으로 일어날 일의 발단을 알 리는 없겠지만, 명운이는 그들이 뿌린 씨앗의 열매를 거두게 하는 정의를 구현하고 싶었다. 명운이는 그것이 세상의 기울어진 정의의 균형을 조금이라도 바로 잡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목표로 잡은 월요일, 명운이는 눈을 뜨자마자 오늘의 거사를 상기시키며 마음을 다잡았다. 학교에 가서도 명운이의 머릿속은 온통 정의 구현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4교시 수업을 다 마쳤을 때, 기억나는 내용은 아무것도 없었다. 명운이는 종례가 끝나기가 무섭게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행이 민철이네 반은 아직 종례가 끝나지 않은 상태여서 명운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문을 향해 뛰었다. 전력질주로 정문을 통과한 명운이는 숨을 헐떡이며 잠시 뒤를 돌아보고는 정문 왼편 담벼락과 맞닿은 산기슭으로 몸을 숨겼다. 명운이는 그곳에서 민철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뒤를 밟을 생각이었다. 우선 거사를 위한 1차 목적지에 안착한 명운이는 숨을 고르며 평정심을 찾으려 애썼는데, 자리를 잡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명운이는 아직 안정을 찾지 못한 호흡을 가다듬으며, 몰려오는 아이들 가운데서 민철이를 찾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괜히 단번에 찾으려다 민철이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명운이는 정문을 통과하는 아이들을 일일이 살폈다. 아이들이 얼추 거의 다 나왔다고 생각될 때까지 민철이가 보이지 않자 명운이는 조금 당황했다.

‘어? 왜 아직 안 나오지? 나올 때가 됐는데..’

명운이는 초조해지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눈을 떼지 않고 정문을 주시했지만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민철이가 나오지 않고 마음만 초조해지니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신체 리듬이 깨진 것 같았다. 초조하게 쫓기는 마음에 오줌까지 마렵다보니 시야까지 흐려져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줌을 누느라 민철이를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명운이는 쪼그려 앉은 상태에서 오줌을 누었다. 일어서서 볼일을 보다가 친구들이나 민철이 눈에 띄는 일이 없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일을 치루고 나니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민철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학교 건물에서 정문까지 이르는 길에 보이는 아이들은 십여 명뿐이었다. 명운이는 그 아이들 중에 민철이가 있는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찾아봤지만 민철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퇴라도 했나?.. 안 되겠다. 민철이네 반에 가 봐야지.’

명운이는 숨어 있던 장소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와 민철이네 반으로 달려갔다. 건물 앞에 도착한 명운이는 교실로 들어가지 않고, 우선 밖에서 교실 창문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았다. 교실 뒷자리부터 천천히 살피던 명운이는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민철이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설마 나머지공부?..’

명운이는 조금 놀랐다. 민철이가 나머지공부를 하는 건 한 번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직 안 나왔던 거구나.. 웬일이지? 공부 잘하는 녀석이.’

명운이는 교실에 있는 선생님이나 민철이 눈에 띄지 않도록 우선 창문 밑으로 몸을 숨겼다. 민철이가 언제 나올지는 몰라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제 어떡하지? 민철이가 나오면 뒤를 밟을까? 아니면, 다시 정문에서 기다릴까?’

민철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뒤를 밟으려니 중간에 들킬까봐 걱정이 됐고, 정문에서 기다리자니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데 너무 막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운이가 고민하고 있는 차에 교실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명운이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건물 현관문 쪽으로 이동했다.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명운이는 건물 외벽에 기대어 주저앉아 책가방을 내려놓고 뭔가 찾는 시늉을 했다. 명운이는 고개를 숙이고 가방을 뒤적이면서도, 민철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현관 쪽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친구와 얘기하는 민철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명운이는 얼른 가방을 정리하고 민철이의 뒤를 밟았다. 뒤를 밟으면서도 명운이는 내심 불안했다. 민철이와 함께 걸어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과 민철이의 친구가 응징을 하는데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정문 앞에 다다르자, 명운이는 새롭게 각오를 다졌다.

‘이제부터야. 침착하게, 서두르지 말고..’

명운이는 민철이가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가길 바랐지만, 민철이는 친구와 함께 떡볶이집으로 들어갔다.

‘이런 제길..’

명운이는 난감했다. 마땅히 몸을 숨길 곳도 없는데다, 녀석이 또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명운이는 민철이가 떡볶이를 먹고 바로 집으로 가기를 바라며, 민철이가 집으로 갈 때 지나는 골목길 안에 숨어 있었다. 기다린 지 채 일분도 되지 않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점심때라 배도 고픈데다 민철이가 떡볶이 먹는 모습을 보니 허기가 졌다. 하지만 명운이는 거사를 앞두고 있었고, 떡볶이를 사먹을 돈도 없었다. 명운이는 따로 받는 용돈이 없었다. 친구들이 군것질 할 때마다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던 명운이는 갑자기 그 사실이 뼈저리게 서러웠다. 서러운 허기 속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지자, 명운이는 순간 감상에 빠져 거사를 그르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을 경계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실제보다 훨씬 더 지루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지났건만 민철이는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명운이는 또 다시 초조해졌다.

‘또 어디로 샌 거 아냐?..’

민철이는 골목길 밖으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가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다. 민철이가 내려오고 있었다. 다행히 민철이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고 민철이는 혼자였다. 명운이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민철이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긴장한 탓인지, 점점 빨라지는 심장박동이 귓가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명운이는 골목길 끝에서 귀를 쫑긋 세운 채 민철이의 발걸음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발걸음 소리가 웬만큼 가깝게 들리자, 명운이는 골목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서 등을 돌리고 운동화 끈을 풀었다가 다시 맸다. 혹시라도 민철이가 골목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점점 더 커지던 발걸음 소리가 다시 작아지기 시작했다. 민철이가 지나간 모양이었다. 명운이는 발소리를 죽이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경사진 길을 내려가는 민철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명운이는 골목에서 나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민철이를 따라갔다. 혹시라도 민철이가 뒤를 돌아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길 경우 태연하게 집에 가는 척 하기로 했다. 또 자신의 노출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전봇대나 기타 지형지물을 활용해 가며 민철이를 쫓았다. 민철이가 자기 집으로 가는 골목길로 들어설 때가 되자, 명운이는 주머니에 넣어둔 돌멩이들이 제대로 있는지 손으로 만져보았다. 오늘의 거사를 위해, 그동안 연습했던 돌멩이와 비슷한 크기로 모서리가 날카로운 것들로만 모아놓은 것이었다. 돌멩이가 제대로 있는지 확인한 명운이는 민철이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걸음을 빨리했다.

‘이제 진짜야.’

민철이가 골목길로 들어서자 명운이는 뛰기 시작했다. 명운이는 민철이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을 지나자마자 골목 외벽에 등을 기대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주머니에서 돌멩이를 꺼내 조심스럽게 골목 안을 들여다보니, 걸어가는 민철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명운이는 큰길 위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지 살폈다. 하늘의 도우심인지 다행히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명운이는 크게 한번 숨을 내쉬고는 돌멩이를 던졌다. 그런데 뛰어오느라 격해졌던 심장박동이 아직 진정되지 않았던 탓인지, 불안한 호흡 때문에 릴리스 포인트(Release Point : 야구에서, 투수가 공을 던질 때 공을 놓는 순간이나 지점)를 놓친 돌멩이는 어이없게도 힘껏 들어 올린 팔 뒤로 힘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당황한 명운이는 순간 패닉에 빠졌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명운이 앞에서 민철이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고, 어느새 집 앞에 다다라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른 방법을 찾거나 다음 기회를 고민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았다. 명운이는 주머니에서 다시 돌을 꺼내, 그동안 연습했던 걸 자신의 몸이 기억하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있는 힘껏 돌을 던졌다. 손에서 돌이 빠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명운이는 골목길 외벽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고, 이어서 민철이의 비명이 들려왔다. 거의 동시(同時)라고 해도 될 만큼 아주 짧은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민철이의 비명을 들은 명운이는 전율과 같은 희열을 느꼈다. 민철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그리고 기왕 맞은 것, 돌멩이의 뾰족한 모서리가 민철이의 뒤통수를 정통으로 맞혔길 바랐다. 그것도 아주 세게……. 민철이가 맞았다는 걸 확인한 명운이는 전력질주로 경사진 길을 뛰어 내려갔다. 멋지게 일을 성공시켜놓고 사람들 눈에 띄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내리막길 끝에 도달한 명운이는 집으로 가는 골목길로 들어서기 전에 한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아무도 없겠거니 생각했던 큰길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애 하나가 내려오고 있었다. 워낙 멀리 떨어진 거리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머리 길이와 치마를 입은 걸로 보아 여자애가 분명했다. 순간 명운이는 여자애가 서 있는 지점과 민철이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까지의 거리, 그리고 그 골목길에서 자신이 있는 지점까지의 거리를 가늠해보았다. 거리로 가늠해보아, 여자애가 거사를 치르고 뛰어내려온 자신을 보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게다가 굴곡진 경사길이라, 시야가 일직선으로 확보되지 못한다는 사실도 명운이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천천히 내려오는 여자애와 멈춰 서 있는 자신과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명운이는 왠지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팔에 들러붙은 거머리가 스멀스멀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명운이는 얼른 골목으로 숨어들었지만, 팔에 들러붙은 거머리는 아직 떼어내지 못한 기분이었다.


다음날 학교에 간 명운이는 1교시가 끝나자마자 민철이네 교실로 달려갔다. 머리에 반창고라도 붙인 녀석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지만, 아쉽게도 민철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명운이는 진작부터 확인하고 싶었던 걸, 혹시라도 의심 받는 걸 피하기 위해 1교시가 끝날 때까지 참았던 것인데.. 민철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허탈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명운이는 민철이네 반 친구들에게 민철이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돌아온 대답은 민철이가 아직 등교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명운이는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크게 다친 거 아냐?’

다친 민철이의 모습에 통쾌해 할 생각으로 민철이네 반까지 왔던 명운이는 오히려 무거운 마음으로 자기 반으로 돌아가야 했다.

수업 내내 민철이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던 명운이가 민철이를 본 건 3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이었다. 녀석은 엄마랑 함께 왔는데, 머리를 온통 붕대로 감은 채 엄마의 손을 잡고 교무실로 들어갔다. 명운이는 생각보다 커진 일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헤아려 보았다.


다음날까지 명운이가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 시간을 이용해 민철이네 반과 교무실 동정을 살펴서 수집한 정보들을 종합한 결과, 민철이의 머리가 깨져서 병원에 다닌다는 내용이었다. 외상은 그리 심각한 수준이 아니지만 머리를 다쳤기에, 뇌에 손상을 입지는 않았는지 검사를 받기 위해 당분간 계속 병원을 다녀야 한다고 했다. 명운이는 수집한 정보 결과에 적이 안심하면서도 혹시 모를 심각한 상황이 도래할까봐 완전히 마음을 놓지는 못했다. 마음 한 구석의 그 불안감은 민철이의 뇌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당분간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명운이는 그 불안감이 혹시라도 죄책감으로 변질되는 일이 없도록 자신을 경계했는데.. 그것은 민철이의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자신은 옳은 일을 했고, 민철이네 가족은 응당 그 대가를 받은 것뿐이라는 굳건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모든 것은 그렇게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일주일이 지난 뒤에 나온 민철이의 뇌 검사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고, 민철이의 머리를 통째로 감고 있던 붕대도 어느덧 반창고로 바뀌어 있었다. 매일 같이 민철이 손을 잡고 학교에 오던 민철이 엄마의 모습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명운이는 적이 안심하면서, 그동안 쓸데없는 걱정으로 마음을 졸인 걸 아까워했다. 상황이 대체로 안정적으로 정리되자, 명운이는 오히려 응징이 너무 가벼웠던 건 아니었나 후회하기도 했다. 3교시가 끝난 복도에서 또 다시 민철이 엄마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 명운이의 심리는 비교적 평온했었다.

예전과 다른 민철이 엄마의 얼굴을 보고 명운이는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나 자신을 보고 바뀌는 낯빛을 애써 들키지 않으려는 표정의 미묘한 변화를 눈치 챈 명운이는 조만간 자신에게 닥칠 위기를 직감할 수 있었다. 당황하는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태연하게 인사를 하고 지나쳤지만, 명운이는 불안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지?.. 설마..’

명운이는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애의 모습을 떠올렸다. 거사를 치르던 날, 경사진 큰길에서 멀찍이 보였던 여자애 하나..

‘하지만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먼 거리였는데?.. 게다가 그 여자애는 내가 민철이네 집 골목에서 뛰어나오는 모습은 보지도 못했을 텐데?..’

명운이는 마지막 수업시간 내내 언제 닥칠지 모를 위기에 대비한 알리바이와 변명거리를 생각했다.

‘무조건 부인하는 거야.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어. 괜히 넘겨짚는 유도심문에 낚이면 안 돼.’

명운이가 머릿속으로 알리바이를 꾸미고 닥쳐올 심문에 대비한 답변을 준비하는 동안 수업은 어느덧 종료 시간이 다 돼 가고 있었다. 그런데 종료 시간을 5분을 남겨두고 갑자기 예상치 못한 담임 선생님의 돌발지시가 내려졌다.

- 자, 여러분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칠 테니까 그렇게 알고, 모두 눈을 감으세요.

명운이는 일단 눈을 감았다. 이어서 선생님의 다음 말씀이 이어졌다.

- 선생님이 여러분한테 확인해볼 게 있어요. 아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2반의 문민철이란 친구가 얼마 전에 머리에 돌을 맞았어요. 누가 돌을 던졌다는데, 혹시 아는 사람 있으면 손 들어 봐요. 눈 뜨지 말고! 아는 사람은 손만 들어요. 선생님만 알고, 나중에 아무도 모르게 부를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는 사람 있으면 손 들어 봐요.

‘이것 때문에 민철이 엄마가 왔던 거구나.’

명운이는 목격자가 나타난 게 아니라, 목격자를 찾는다는 사실에 적이 안도하며 속웃음을 지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 선생님이 눈 뜨라고 할 때까지 절대로 눈 뜨지 말아요. 실눈도 뜨지 말아요. 눈 뜨다가 걸리면, 그 사람이 돌 던진 사람으로 의심받을 줄 알아요. 자, 손 든 사람은 잠깐만 기다리고 다른 사람은 계속 눈 감고 있어요.

- !

명운이는 실눈을 눈을 뜨고 조심스럽게 사방을 둘러보았다. 손을 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명운이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을 때, 담임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명운이는 자신이 선생님의 미끼에 낚였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선생님은 수업과 종례를 마치고, 청소 당번 아이들마저 집으로 보내시고는 책상에 앉아서 아이들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명운이는 아이들이 다 나갈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교실에 선생님과 둘만 남게 되자, 명운이는 고개를 숙인 채로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 명운아,

명운이는 선생님의 부름에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때는 이미 선생님의 책상 앞이었다.

- 선생님이 왜 불렀는지 알아?

명운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 명운이가 그랬니?

- 뭘요?..

명운이는 일부러 고개를 들고 선생님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 너 민철이랑 친하니?

- ?.. 네..

- 근데, 왜 요즘엔 민철이네 놀러 안 가?

명운이는 계속해서 우물쭈물 대답하다간 수세에 몰릴 것 같다는 생각에, 오히려 당당하게 나가기로 마음먹고

- 민철이네 큰누나가 제가 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 왜?

- 모르겠어요.

- 그래서 요즘 안 간 거야?

- 네.

- 요즘엔 왜 야구 연습 안 해?

- !.. 그냥요. 이젠 박철순보다 김재박이 더 좋아서요.

- 그럼 왜 타자 연습은 안 하는데?..

- ..야구 방망이가 없어서요. 공 던져 줄 사람도 없고요.

- ..민철이가 머리 다친 날, 민철이네 집 골목길에서 명운이가 뛰어나오는 걸 본 사람이 있어.

- !.. 누군데요?

- 누가 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명운이가 선생님한테 솔직하게 말하는 게 더 중요해.

- …….

- 명운이 정말 네가 안 했니?

명운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 네.

- 그럼 선생님이 눈 감으라고 했을 때, 왜 눈 뜬 거야?

- 그냥.. 그냥 궁금해서요.

- 정말이야?

- 네.

- 명운이 너, 본 사람이 있는데 자꾸 거짓말 할래!

갑자기 취조하듯 언성을 높인 선생님의 표정에 민철이는 겁을 먹기보다 짜증이 났다. 명운이는 자신이 취조를 당할 만큼 나쁜 짓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민철이 엄마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기준으론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하느님의 기준에서 보면 오히려 더 큰 죄를 지은 사람은 민철이 엄마란 믿음이 있었다.

- 제가 안 했다니까요!

짜증이 섞인 민철이의 언성도 올라갔다.

- 어디 선생님한테 큰소리야!

선생님의 윽박에 명운이는 하마터면 자신의 죄를 인정할 뻔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억울해서, 그동안 쌓였던 감정을 터뜨리고 싶었다. 왜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납득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명운이는 그 억울함을 지능적으로 이용했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울먹이며 말했다.

- 제가 안 했다니까요..

선생님의 당황한 표정을 포착한 명운이는 감정을 급격히 끌어올려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 엄마!~


선생님과의 면담이 있은 후 모든 것이 정리됐다. 민철이에게 돌을 던진 사람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어느새 민철이 머리에 붙어 있던 반창고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화창한 오후였다. 명운이는 발걸음도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가고 있었다.

- 네가 던졌지?

어디서 나타났는지, 처음 보는 여자애 하나가 다짜고짜 명운이에게 물었다. 명운이는 여자애를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가방이 눈에 띄었다. 민철이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 가방이었다. 그러고 보니 근처에 피아노 학원으로 가는 골목이 있었다. 아마도 여자애는 그 골목길에서 나온 듯 했다. 명운이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태연한 척 말했다.

- 뭘?..

- 민철이 말이야. 나 네가 민철이네 집 골목길에서 뛰어 내려가는 거 봤어.

- !.. 왜 내가 던졌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던지는 거 봤어?

- …….

- 내가 가르쳐줄까? 누가 던졌는지..

- ?

- 민철이 엄마야.

- !?..

명운이는 이름도 모르는 여자애를 뒤로하고 내리막길을 유유히 걸어 내려갔다. 얼마쯤 내려갔을 때, 명운이는 여자애가 보란 듯이 남은 거리를 뛰어 내려갔는데, 내리막길이 끝나는 지점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을 때, 여자애는 아직도 명운이를 응시하며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명운이는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그동안 수없이 지나쳤던 이 지점이 윗동네와 아랫동네를 나누는 기준이 되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문득 뭔가가 허벅지를 찌르는 느낌을 받은 명운이는 주머니에서 뾰족한 돌멩이 하나를 꺼냈다. 명운이는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다 여자애를 향해 힘껏 던졌는데, 생각보다 멀리 날아간 돌멩이는, 날아오는 돌멩이에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춘, 여자애의 구두 바로 앞에 떨어져 구르다가 멈추었다. 여자애가 돌멩이에서 시선을 거두어 아랫동네를 보았을 때, 명운이는 이미 골목 안으로 사라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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