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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바다 Apr 27. 2021

낯선환경에서 대화가 더 잘된다

새로운 경험의 가치

남편과 인천 송도 여행을 다녀왔다. 며칠 전부터 걸린 감기 때문에 내 컨디션은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었다. 몸이 좋지 않아서 기분도 조금 다운되어 있었다. 살짝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센트럴파크로 향했다. 센트럴파크에는 해수를 가둬놓은 길을 따라 보트를 탈 수 있었다. 남편과 나란히 달모양의 문보트를 타기로 했다. 비용은 30분에 3만원이었다. 예쁜 달 모양의 보트 속에 나란히 앉아 유유자적 센트럴파크 호수 위를 돌아다녔다. 모터 보트 였기 때문에 수월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남편과 편안하게 바람을 쐬면서 물위를 떠다니니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오리배 같은 걸 타본 적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낯선환경 덕분에 마음이 들떴다. 몸도 함께 한결 나아진 기분이었다. 우리는 이전에는 나오지 않았던 주제의 이야기를 가볍게 나누었다. 보트를 타기전에는 조그마한 호숫가에서 30분정도면 넉넉한 시간이라 생각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30분이 훌쩍 넘어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 보트에서 내렸다.

보트를 타기 전과 후의 기분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3만원이라는 보트 비용을 값지게 잘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뜬 마음으로 저녁을 어디서 먹을지 이야기했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남편이 요즘 이탈리안 레스토랑 사업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파스타를 먹기로 했다. 네이버에 ‘송도 파스타 맛집’을 검색했다. 리뷰도 제법 많았분위기도 좋다기에 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매장 내부가 조금 꼬질꼬질했고 조명도 어두웠다. 사람들은 제법 많았지만 아무래도 답답한 느낌이 우리 부부의 스타일은 아니였다. 그래도 송도 맛집이라고 하니까 음식은 맛있으리라 기대를 하고 자리 앉았다. 파스타와 피자를 1개씩을 주문하려는데 딱히 끌리는 메뉴가 없었다. 그중에 독특해 보이는 ‘와사비 새우크림 파스타’와 ‘베이컨 루꼴라 피자’를 주문했다. 남편과 대화를 하는데 에너지가 조금 다운되었다. 음식 맛도 굉장히 평범했었다. 매장에 있을수록 조금씩 지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재밌는 대화가 많지 않은 채로 식사를 하고 나왔다. 비용은 3만3천원이나 나왔다. 남편과 돈이 아깝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이유 때문에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한 돈이 아까웠을지 궁금했다. 단지, 레스토랑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 같았다.


이어서 ‘송현아’, 송도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으로 향했다. 쇼핑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항상 아울렛이나 백화점 구경을 여행 일정으로 넣었다. 세 달 전쯤에 남편과 송도를 왔었다. ‘송도 트리플 시티’가 유명하다고 해서 구경을 갔었다. 기대했던 것 보다 상점들이 촌스러운 느낌이었고 구경거리도 많지 않았었다. 그 때 송도 쇼핑몰에 대해서 실망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송현아’도 특별한 기대를 하지는 않았었다. 여름 구두가 필요했었기 때문에 그것만 사고 나올 생각으로 향했다.


송도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은 생각보다 넓었고 고급스럽게 잘 꾸며져 있었다. 늦은시간에 갔던 터라 사람도 많이 없었다. 브랜드도 다양하게 많이 들어와있었다. 시원한 밤 공기를 맞으면서 아울렛 1층을 돌아다니는데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아울렛의 크기가 커서 마음이 들떴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남편과 주로 낮에만 쇼핑몰을 다녔었다. 여행을 갔을 때나 집 근처 쇼핑몰을 갔을 때에도 주로 밝을 때였었다. 이렇게 어두워진 때에 큰 쇼핑몰을 돌아다니는 건 처음이었다.

아울렛 매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남편과 가벼운 수다를 많이 떨었다. 내 구두를 사려고 구두 매장을 여러군데 돌아다녔다. 남편은 내가 실컷 고민하고 신어볼 수 있도록 옆에서 더 적극적으로 알아봐주었다. 매장별로 가격도 비교해주었고 다시 가서 신어보지 않아도 되냐고 물어봐주었다. 남편의 도움으로 마침내 최종 선택을 하였다.

매장 직원에게 남편이 결재를 하였다. 직원분이 현대 포인트 적립은 안하냐며 물어봤다. 남편이 내 핸드폰 번호를 불러 주었다.


“현대 포인트 적립은 안 하세요?”


“아, 할께요”


“핸드폰 번호 불러주세요”


“공일공 육육이사 공삼이사요”


“네에~, 조, 땡, 나 님?”


"네 맞아요~"


‘풋, 푸흐흐흐흡’

옆에 있던 나는 마스크 뒤로 웃음보가 터졌다. 직원분께 웃음소리가 들릴까봐 멀리 떨어져서 꾹꾹 참았다. 친절하고 열정적이었던 매장 직원 분은 또박또박 내 이름을 얘기 해주었다. 포인트 적립 할 때 이름의 가운데 부분이 별표로 나오는 부분까지 명확하게 읽어주신게 웃겼었다.

결재를 마치고 직원분께 인사를 하고 뒤돌아 나왔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나를 보며 남편이 왜그러냐고 물어봤다.


“나가서 얘기해줄게 오빠, 흐흐흐흐흐”


“아 그래? 뭐지 ㅎㅎㅎㅎ”


매장 밖을 나와 조금 걸어간 뒤 나는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남편에게 직원분이 ‘조 땡 나’라고 내 이름을 또박또박 읽은게 웃겼다고 얘기해주었다. 남편도 함께 웃음이 터졌고 여행 내내 나를 조땡나님이라고 부르며 즐거워했다.


우리는 센트럴파크에서 달보트를 타며 나눴던 와인 얘기를 떠올려 식품매장으로 향했다. 와인을 마시며 호텔 안에서 그 유명한 송도 야경을 보기로 한 것이었다.

와인 전문 매장이 있었고 우리는 옷을 사고 받은 만원짜리 상품권을 쓸 생각이었다. 마침 하프 와인이라는 기존 와인의 절반사이즈로 출신된게 있었다. 7천원 짜리 하프와인을 다.

매장 밖을 나오자 아울렛이 워낙 넓어서 주차장을 찾기 힘들 것 같았다. 남편은 아울렛 밖에 놓여진 전기 스쿠터를 보더니 타고 가자고 했다. 평소 전기스쿠터를 각자 타고 다녔던 우리는 둘이서 스쿠터 한 대 타기를 시도했다. 내가 앞에 바짝 붙어서 타고 남편이 뒤에서 스쿠터를 운전했다.

시원한 밤 공기를 뚫으며 내 비명소리가 아울렛에 울려 퍼졌다.


“아악, 꺄~아, 꺅~ 꺄꺄꺄~”


평소 에너지가 많은 편인 우리부부는 익사이팅한 활동을 즐기는 편이었기 때문에 안성맞춤인 행동이었다. 그렇게 전기스쿠터를 타고 무사히 차가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행복한 기분은 절정에 달했다.


숙소에 도착했다. 와인, 새우깡과 비스킷을 침대 옆 테이블에 차려 놓고 먹었다. 김범수가 나온 ‘유명가수전’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음악 감상을 하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유명가수전’이 끝나고 남편이 좋아하는 문세윤의 ‘방자고’ 유튜브 영상을 봤다. 갑자기 남편이 일어서서 방자고 챌린지 안무를 따라 추기 시작했다. 남편이 알려준대로 나도 함께 췄고 녹화까지 했다. 반병도 안되는 와인을 나눠 마시고 취한 건 아니었는데 둘 다 기분이 좋았다. 집에서 와인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은 많았었다. 호텔 테이블에 앉아 TV 프로그램을 즐기면서 와인을 마시는 일은 또 새로웠다.


둘의 대화가 풍성하지 못하고 돈이 아까웠던 레스토랑에서의 시간과 그 외의 즐거웠던 시간들을 비교해 보았다.

차이점은 익숙함과 낯설음이었다. 평소 자주 먹었던 파스타가 단지 맛있다 이유로 갔던 장소 너무 익숙했었다. 오히려 자주 안 먹는 음식을 먹었으면 행복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도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경험에 지불하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아깝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대화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었다.


30분 동안 탔던 달보트도 3만원이면 비싼 값이었다. 하지만 남편과 처음으로 타 본 보트였고 그 때 느껴졌던 시원한 공기와 재밌었던 보트운전은 3만원 이상의 값어치를 했었다. 이전에는 나눠보지 않았던 주제의 대화를 했던 것도 서로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어둑한 저녁에 수다를 떨고 웃으며 돌아다녔던 아울렛도 좋았었다. 그 때 샀던 신발과 옷들은 지불한 비용 이상의 행복함을 벌써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 책에서 행복은 좋은 사람과 대화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자주 먹는 삶이라고 했었다.

거기에 더하여 ‘낯선 환경’이 대화를 잘하도록 도와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최근에 직장 동료들과 보냈던 시간에서도 ‘낯선 환경’의 역할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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