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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바다 May 01. 2021

관계가 편하다는 것

마음에서 나오는 말하기


팀원인 최과장님과 조과장님과 6일간 출장을 같이 다녔다. 최과장님과 함께 근무를 한 지는 4개월째다. 조과장님은 대학교 선후배 사이였지만 직장에서 알게 되었다. 1년 4개월 동안 함께 근무중이다. 최과장님과는 여직원들끼리 점심 때 파스타를 먹으러 다니면서 조금 친해졌었다. 퇴근 후 어떻게 지내는지와 취미가 무엇인지 정도 알 수 있었다. 그에 비하여 조과장님은 나름 긴 시간을 함께 근무했지만 그 분에 대하여 아는게 거의 없었다.

출장가서 둘째날까지 우리는 어색했었다. 다른 직원들과 섞여 있었기 때문에 오롯이 대화를 나눌 시간이 많지 않았었다. 셋째날과 넷째날은 우리 세사람만 출장을 다니는 일정으로 바뀌었다.

출장 셋째날, 오전까지 우리는 직장인의 예의가 잘 갖추어진 모습으로 업무와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출장지에서 업무가 생각보다 빨리 끝났었다. 점심을 먹은 뒤 여유가 생겼었다. 두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좋은 곳 특히, 처음 가는 낯선 곳으로 놀러가고 싶었다. 낯선 곳에서 대화가 잘 된다고 믿었고 이번에도 통했었다. 인스타그램을 검색해서 좋은 경치 속에 자리한 카페로 찾았다. 카페로 가기 전, 내 안에 셋만 있으면 어색해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어색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두 사람은 나보다 입사도 빠르고 나이도 많았지만 직급은 내가 높은 상황이었다. 두 사람이 아직 회사 승진시험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후배면 편하게 대해줄 것이었고 선배면 잘 따를 터인데 우리의 관계는 복잡했었다.


탁 트인 경치를 바라보며, 우리는 서로에게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풍경은 평화로웠고 카페는 예뻤다. 햇빛 아래 선선히 부는 바람이 그 자체로 좋았다. 우리는 야외 테라스에 앉았다. 먼저, 재테크 얘기가 시작되었다.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어색한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 때 최과장님이 얘기했다.


“어른이 된 뒤로 대화주제가 많이 달라졌어요. 슬프게도 매번 돈 얘기가 빠지질 않아요. 대부분 재테크 얘기에요”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대학교 때 친구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는지 떠올려봤다. 남자와 여자얘기, 이런저런 고민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얘기들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일관성 없는 잡다한 이야기들이었다.


최과장님은 회사 사람들과는 친해지기 힘들다는 이야기, 신입사원 때 만났던 사람들과 지금까지도 가장 친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와 조과장님도 그 말에 정말 공감했다.

그렇게 점차 각자의 생각 속에 있던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사무실 밖에서의 여유가 우리 대화의 품을 넓혀 주었다.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었다.  특히, 입사 후 1~2년간 받았던 월급을 마음껏 쓰고 다녔던 이야기를 할 때는 정말 재밌었다. 사무실에서 조용하기만 한 조과장님에게 백화점에 피팅되어 있는 옷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달라고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 날, 두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신입사원 때 만났던 사람들과 가장 친할 수 있는 이유는 나에 대한 상대방의 기대가 낮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잘보이고 잘하려는 부담을 내려놓고 편하게 다가가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월급을 정신없이 썼던 시절의 이야기가 가장 즐거웠던 건 부족했던 모습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 되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모습 말고 모질했던 모습을 툭 터넣고 얘기하니까 서로에 대한 긴장이 풀렸었다.


카페에서 초록초록한 잔디밭을 보고 햇살을 쬐면서 마음이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좋은 시간을 가지고 회사를 돌아왔다.


넷째날이 되었다. 오늘도 우리 셋은 출발 할 때부터 어느 카페에서 잠깐 쉬다가 올지 이야기 했다. 어제 카페를 가기 전에 어색할까봐 걱정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편한 관계가 된 것 같았다. 점심 때 최과장님이 짬뽕을 먹고 싶다고 해서 짬뽕 맛집을 찾아 다녔다. 식당을 못찾아서 길을 헤매면서도 우리는 즐거웠다. 누군가의 부족한 모습이 사무실에서처럼 어색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처럼 우리는 자연스러웠다.

딱히 볼 것 없는 곳을 걸으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혼 반지 이야기부터 동네 핫플에 대한 얘기까지. 머릿속에서 무슨 말을 할지 거르고 거르던 필터가 드디어 꺼지는 순간이었다.


출장을 마친 3일 뒤 사무실에서 조과장님이 나에게 처음으로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동안 늘 내가 먼저 말을 걸었었고 조과장님은 단답형으로 대답했었다. 예의상 나에게 무언가를 되물어봐주기는 했었다. 과장님과 눈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었고 가까워진 기분이 들어서 정말 기뻤다.


직장에서 대화할 때 나도 모르게 머리에 필터가 몇 개 켜진다. 마치 LG퓨리케어 공기청정기처럼 2단, 3단으로 필터가 장착되어 있다.

상대방의 사생활을 물어보면 무례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필터, 상대방이 대답하기 곤란할 것 같은 내용들을 제외하는 필터, 공통된 관심사가 아닌 것 같은 주제를 제외시키는 필터, 내가 잘 모르는 내용을 섣불리 꺼내지 않아야 하는 필터, 회사에서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주제를 선별하는 필터.

필터의 전원이 켜지고 나면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워진다. 어떤 말을 해야할지 고민하면서 어색해진다. 그럴수록 대화 청정기의 모드는 강풍으로 바뀌어 대화할 거리를 더 열심히 찾는다. 머리로 나누는 대화는 점점 형식적인 얘기들로만 범벅이 된다. 별로 남는게 없는 회사 얘기와 직장 동료들 얘기가 주를 이루게 된다.


나의 진심을 담은 말은 필터를 거치면서 진심이 옅어지거나 알맹이가 빠진 채 뱉어진다. 회사 동료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아쉬움이 많이 생긴다. 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좋아보이는 말들을 자꾸 하게 된다. 좋은 선배, 일을 잘하는 후배가 되고 싶은 마음이 내게 많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꼰대 같지 않는 선배가 되려다 보니 진심을 담은 말이 잔소리일까봐 거르게 된다. 그럼 후배들에게 너무 가벼운 얘기만 하게 되고 대화는 깊어지지 못하고 짧게 막을 내렸다.

똑똑한 후배가 되고 싶은 마음에 잘 아는 이야기가 아닌 이상 대화 주제를 섣불리 던지지 않았다. 그렇게 대화의 폭이 좁아지게 되고 진심을 나누는 말은 더 줄어들었다.


어떻게 하면 진심을 담은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먼저, 상대에게 편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습관을 줄이면 좋을 것 같다. 마음이 편하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있도록 해보자.

김윤나 작가의 ‘말그릇’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관계란 ‘편하게 생각하라’고 해서 편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말을 줄이고 상대방의 말에 관심을 보일 때 자연스럽게 편해지는 것이다.”

“내가 다가서는데 상대가 물러선다고 속상해하지 말자. 가장 최적의 위치를 지켜야 서로가 제대로 만날 수 있다. 그것을 존중해야 손을 놓지 않고 멀리 갈 수 있다.”


두번째로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대신에 ‘진심을 어떻게 잘 전할까’를 잠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나의 마음 소리에 집중해보자.


두 가지 사항을 잘 실천해서 위로와 힘이 되는 진심을 잘 전하고 싶다.  



말은 한 사람의 인격이자 됨됨이라고 한다. 말을 들으면 그 말이 탄생한 곳, 말이 살아온 역사, 말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말은 한 사람이 가꾸어 온 내면의 깊이를 드러내기 때문에 말그릇을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내면이 성장해야 한다. (김윤나의 ‘말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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