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바다 May 09. 2021

엄마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사람되기

엄마와의 서울여행

엄마와 서울여행을 다녀왔다. 엄마와 온전히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말에 공감을 하면서 계획하게 된 여행이었다.

부모가 아이와 시간을 보낼 때 아이 옆에 앉아서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이는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같이 보내는 시간의 질이 낮기 때문이다. 질 낮은 시간을 아이와 많이 보내는 것보다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하며 보내는 짦은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떠올랐다. 최근에 엄마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엄마를 외롭게 했던 적이 자주 있었다.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광주집에 가서도 집에서 내 할 일을 많이 했었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면서 엄마와 같은 공간에 있었고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었다. 엄마에게만 집중하면서 보냈던 시간이 많지 않았었다.


그보다 더 이전에는 집에 자주 가지 못했었다. 2011년에 직장을 가지게 되었고 고향인 광주를 처음으로 떠나 살게 되었다. 충주라는 먼 곳으로 발령이 났었다. 사실, 내가 자원했었다. 서울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보내달라고 지원했었다. 그 때는 서울에서 살고 싶었고 서울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싶었다. 광주가 촌스럽게 느껴졌었다.

충주살이는 4년간 이어졌고 광주에 가려면 4시간이 넘게 걸렸기 때문에 자주 가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번 부모님을 뵈면 다행이었다. 보통 두 달에 한 번 정도 뵀던 것 같다.

이후, 충주에서 대전으로 발령이 났고 한 달에 한 번정도 광주에 내려갔다. 그 때는 뭐가 그리 바빴던지 유학 준비를 한답시고 부모님과의 시간을 소홀히 대했었다. 한 시간 정도면 광주에 갈 수 있음에도 자주 가지 않았었다. 그리고 2018년도에 결혼을 했다.


사랑하는 남편과 매일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해서 남은 날을 세어보니 70년 정도가 남아 있었다. 남편과 남은 날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부모님과 보냈던 시간이 얼마나 됬었는지 생각해보았다. 어렸을 적 기억이 있는 6살부터 취직하기 전 24살까지 내게는 고작 18년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하느라, 대학교 때는 노느라고 저녁 10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갔었다.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이 정말 적었다. 앞으로 함께 할 날을 떠올려보니 20년정도 인 것 같았다. 그것도 한 달에 한 번정도 일테다. 어쩌면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시간은 10년 정도일 것 같았다. 엄마와 아빠랑 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들자 슬퍼졌고 아쉬웠다. 엄마에게만 집중하며 여행하고 싶어졌다. 마침 아빠가 5월 6일부터 8일까지 동창회를 하러 제주도로 2박 3일간 떠난다고 하셨다. 더욱 좋게도 우리 회사에서 가정의 달 휴가 사용을 권장했고 그렇게 엄마와의 2박 3일 서울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을 가기 전, 엄마에게만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겠다고 작정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한 아이패드를 가져갈지 놓고갈지를 고민했지만 결국, 고이고이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


엄마와 함께 할 특별한 서울여행을 꿈꾸며 계획을 꼼꼼히 세웠다. 넓은 공간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서 호텔은 스위트룸을 예약했다. KTX를 예약했고 창경궁 야간관람도 예매했다. 남편과 함께 서울을 가서 남편은 낮 시간에는 서울에서 다른 볼일을 보기로 했었다. 함께하고 싶었지만 모녀의 오붓한 여행을 위해 서로 아쉬움을 달랬다.


5월 6일 첫째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엄마, 나, 남편 우리 셋은 KTX열차 안에서 만났다. 광주에서 올라오는 열차를 우리가 익산에서 탔다. 조용한 열차안에 조금 시끌벅적하도록 우리는 반가움을 나눴다. 엄마 손을 꼭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서울로 향했다.


이제 막 60살을 넘은 우리엄마는 여전히 체력도 좋으시고 에너지가 많으셨다. 늘 소녀처럼 웃기를 잘하셨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친절했다. 꾸미기를 좋아하셔서 옷도 센스있게 잘 차려입으신다. 걷기를 잘하셔서 함께 여행을 다닐 때면 지친 모습을 보인적이 없으셨다. 씩씩하게 앞장서서 걸으면 모를까.


명동에 자리잡은 호텔에 짐을 풀어놓고 미슐랭가이드 2021에 선정된 명동교자로 향했다. 칼국수, 비빔국수, 콩국수, 만두를 시켜놓고 셋이서 오붓하게 나눠먹었다. 너무 맛있어서 많아 보이던 음식이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햇빛이 적당히 내리는 명동 거리를 엄마와 남편과 걸으니까 행복했다. 명동성당에 들려서 사진을 한 컷 찍고 북촌한옥마을로 갔다. 엄마와 손을 꼭 잡았다가 팔장을 꼈다가 하면서 돌아다녔다. 지하철을 타서는 노선도를 설명해드리기도 했다. 여행와서 정말 좋다는 이야기를 서로 늘어놓았다. 근황을 이야기하며 북촌한옥마을 구경을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하다는 카페를 찾아 헤매기도 했다. 결국, 나보다 관찰력이 좋은 우리엄마가 카페를 찾았다. 어렸을 때부터 옷장에 걸려있는 옷을 못보고 항상 엄마를 불렀던 추억을 이야기하며 웃었다. 한옥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카페 루프탑에서 사진을 찍었다. 삼각대를 세워놓고 핸드폰 타이머를 걸고 엄마랑 요런조런 포즈를 취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번 여행의 메인 이벤트는 모녀 흑백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사진관 예약시간이 되어 사진을 찍으러 갔다. 서로 상의 후 맞춰서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고 사진을 찍었다. 작가분의 코치에 따라 포즈를 취했다. 엄마가 워낙 포즈를 잘 취하셔서 내가 사진작가분께 지적을 더 많이 받았다. 엄마가 포즈를 연습하고 오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작가를 친근하게 대하며 재밌게 사진을 찍는 엄마를 보니 존경스러웠다. 젊고 건강하게 잘 사시는 모습이 감사하기도 했다.


잠시 다른 곳에서 일을 보고 온 남편과 합류하여 인사동에서 맛있는 한정식을 먹었다. 배를 불린 후 우리는 창경궁으로 향했다. 나도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궁궐 야간관람이었기 때문에 설레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2시간을 관람했다. 해설사분이 조선사를 전체적으로 잘 설명해 주셨다. 조명이 은은하게 들어온 궁궐은 아름다웠다. 사랑하는 엄마와 남편과 함께 빛이 살며시 깔린 궁궐을 돌아다니며 역사를 공부하니 더 없이 좋았다.

여행을 오기 전 마음을 먹었던 ‘엄마와 온전히 함께 시간 보내기’를 하면서 엄마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엄마의 젊은시절이 궁금해서 내 나이 때에 어땠는지 많이 물어봤다. 아빠와 노후를 어떻게 보내기로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엄마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엄마가 생각하는 본인의 잘한 점, 부족한 점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숙소에 들어와서도 모녀가 나누는 다양한 주제의 대화는 그칠줄을 몰랐다. 침대에 누워서 한 시간이 지나도록 수다를 떨었다. 그동안 엄마에게 집중하지 않아서 알지 못했던 ‘엄마만의 인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족했던 딸 노릇에도 불구하고 아빠와 다정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준 엄마에게 감사했고 또 죄송했다.


둘째날이 밝았고 엄마와 나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함께했다. 오전에 밖이 깜깜하고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바람이 많이 불었다. 비가 그치면 나가기로 하고 화장을 다 한채로 둘 다 한숨잤다. 11시쯤 일어나 날씨가 맑게 갠 것을 확인하고 경북궁으로 향했다. 맛있는 된장찌개를 먹고 고궁박물관과 경북궁 관람을 했다. 경북궁 관람이 끝나면 서울 숲에 갔다가 한남동을 본 뒤 백범광장을 보고 저녁을 먹은 뒤 남산타워에 가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경북궁을 보고 나오자 또 서울 숲을 가면 경치만 계속 보기 때문에 엄마가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전에 한남동을 갔을 때 3시간정도 돌아다녔었기 때문에 서울 숲을 들리면 일정이 빠듯할 것도 같았다. 서울 숲을 가지 않고 바로 한남동으로 향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한남동에는 엄마가 좋아하실만한 볼거리가 많지 않았다. 백범광장도 20분이 안되어서 시시하게 끝나버렸다. 결국 우리는 4시가 안 되어서 낮 일정을 끝냈다.


엄마가 서울에 자주 오실 일이 없기 때문에 지루하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와 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고민을 한 끝에 이촌한강공원으로 택시를 타고 달렸다. 무리한 선택인줄은 알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이 퇴근시간에 걸릴 것을 예상했음에도 무작정 갔다.

가는 길에도 차가 막혔고 한강공원에 도착해보니 바람이 많이 불고 미세먼지가 많이 껴있었다. 한강공원에 들어서면서 택시아저씨가 여길 오늘 왜 오냐며 걱정을 하셨다. 미세먼지가 다 껴서 보이지도 않고 사람들도 없다고 계속 안타까워 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무리한 선택을 한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택시기사분이 내 마음에 조바심을 더 불러 일으켰다. 다행히 엄마가 한강을 보고 싶었다며 좋아하셨고 시원한 바람을 맞아가며 산책을 했다. 백범광장에서 4시에 출발해서 4시 반쯤 한강공원에 도착했고 30분쯤 산책을 했었다. 5시가 되어서 남산타워쪽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5시 15분쯤 택시를 탔는데 역시나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6시로 예약해놓은 식당에 제대로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았다. 택시기사분께 인근 역에 내려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신용산역에서 명동역까지 지하철을 탔다. 출발하려는 지하철을 급하게 타느라고 엄마가 못 탈뻔도 하셨다. 명동역에서 식당까지 경사가 심한 길을 등산하듯 올랐고 숨이 차올랐지만 우리의 수다는 그칠 줄 몰랐다. 이런저런 해프닝을 겪으며 여행의 묘미라며 우리는 즐거워했다.

사실, 그렇게 서로 즐거워하기 전까지 내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뒤덮여 있었다.

‘왜 괜히 서울숲 일정을 빼버려서 시간이 남아서 이 고생을 할까’

‘서울숲에 다녀왔으면 시간이 대충 잘 맞았을텐데’

‘백범광장이 10분정도 보면 끝나는 코스인걸 왜 더 확인하지 못했을까’

‘괜히 미세먼지 많은데 이촌한강공원을 가기로 했나’

‘그냥 인사동이나 돌아다닐 껄 그랬나’


다행히 많이 늦에 않게 식당에 도착했고 남편과 셋이 함께 좋은 시간을 가졌다. 숙소에 들어와 엄마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오늘 우연히 찍힌 웃긴 사진을 보며 박장대소를 했다. 그렇게 저녁을 잘 마무리하고 엄마는 일찍 잠드셨다. 나는 다음날 일정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오늘처럼 고생하지 않으려고 더 꼼꼼히 알아봤다. 내일은 미세먼지 상태가 어떤지, 여의도 더 현대 서울은 오랫동안 볼 만한지, 짐은 어디에 맡기고 돌아다닐지, 다시 용산역까지 어떻게 돌아갈지 등을 고려하며 계획을 세우려니 머리가 아팠다.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둘이 함께 내일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 만족스럽게 계획을 세워놓고 잠자리에 누웠다.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했다. 나의 부족함이 느껴졌다. 오늘 여행 중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한 번에 덮쳐오는 느낌이었다.

일정을 변경하고 소화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던 것 같았다. 몸과 마음이 힘들자 엄마에게만 집중하며 여행하기라는 초심이 나도 모르게 점점 옅어져갔다.

낮에 했던 잘못된 판단들. 거기에 더하여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고 싶은데 꾸준히 못 쓴채로 지내고 있는 모습이 부족해 보였다. 무언가 성과를 내고 싶은 조급함까지 더해져서 힘들었다. 도저히 그대로 잘 수가 없어서 일어나 침대 위에 앉아서 기도를 드렸다. 마음이 조금은 안정이 되었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피곤이 덜 풀렸는지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다. 게다가 어제 했던 생각들이 해결이 되지 않은채 머릿속에 떠돌기 시작했다.

나의 부족함이 갑자기 엄마에게도 투영되기 시작했다. 엄마의 부족함이 보이기 시작했고 마음이 전과 다르게 비뚤어졌다.


엄마를 있는 그대로 공경하지 못하는 마음들이 불쑥 불쑥 올라왔다. 힘든 마음을 예배로 이겨내고 싶었다. 어제 엄마와 함께 드렸던 새벽예배가 떠올랐고 엄마에게 오늘도 예배를 드리자고 했다. 함께 예배를 드렸다.기도를 하고 말씀을 들었음에도 피곤한 탓인지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하지 못했다. 머릿속에 엄마와의 여행보다는 딴 생각이 가득 들어차 앉아 있었다.

‘이대로 지내도 괜찮나’

‘조금 더 발전하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는데’

‘돈을 많이 벌려면 먼저 아껴써야 하는데 가계부 정리가 소홀해져있었네’

‘아직도 세상에 대해 모르는게 너무 많아. 특히, 경제분야. 정치는 관심없고 경제를 더 알고 싶은데 어떻게 하지. 신문을 미루지 않고 봐야지’

‘책을 내려면 글을 꾸준히 써야하는데 어느새 일주일 동안 글을 한 편도 못썼네’

‘바빠서 그랬지. 어버이날 선물 준비한다고 그림을 계속 그리느라고 시간이 없었지. 여행 끝나면 열심히 쓰자’

‘잘 할 수 있을까? 책을 낸다고 나만의 기술이 생기는게 있을까? 먹고 살 다른 기술을 익혀야 되는건 아닌가?’

‘너무 문학과 예술에만 치중하는건 아닐까?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까? 돈 벌 수 있는 기술을 배워야 하는건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니 지적 충족 욕구가 아주 솟구쳤던 것 같다. 왜 그랬는지 몰랐는데 글을 적으면서 보니 둘째날 미숙했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해 나아지고자 하는 욕구가 엄마에게도 향했다. 엄마도 더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와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가 그제, 어제와 다를게 없는데 오늘은 그토록 재밌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배워야 한다는 나에 대한 마음이 나를 팍팍하게 만들었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졌던 것 같다. 그랬다. 여유가 없어진 마음에 엄마를 둘 곳이 작아져 버렸었다. 여유가 없어진 내 마음처럼 엄마를 오히려 끼워 맞추려고 했다.


이틀전과 다르게 따뜻함이 가득하지 못한 딸의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 느꼈을텐데 엄마는 더 나를 배려해주셨다. 아무런 티도 내지 않으셨고 받아주셨고 즐거운 시간을 이어나갔다. 여의도 더 현대 서울에서 시간을 보내며, 엄마는 우리 부부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주시려고 애를 썼다. 여행이 즐거웠다며 고마워 해주셨다. 그렇게 엄마의 사랑을 다시 느끼면서 팍팍해졌던 마음은 조금씩 편안해졌다. 집으로 내려가는 KTX안에서 엄마와 나란히 앉았다. 헤어질 생각을 하니 엄마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오늘 오전의 시간이 죄송하게 느껴졌다. 이제서야 말이다. 결국 헤어짐의 아쉬움을 엄마에게 잔뜩 표현한 채 열차에서 내렸다. 내리고 나니 죄송한 마음은 파도처럼 더 크게 다가왔다. 마지막까지 더 잘해드렸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었다. 엄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지 못했던 마지막 날이 후회스러웠다.


엄마를 판단하는 교만한 생각이 갑자기 들 때 쉽게 떨쳐버리지 못했던건 내 품이 넓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까다로운 기준에 휩싸여 있었고 엄마를 담아줄 품이 부족했었다.  





오늘 교회에서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정 사역 전문가이신 이의수 목사님께서 설교를 해주셨다.

평생 살면서 내 옆에 위로해주는 한 사람이 있으면 힘차게 산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부모님들을 비난하지 말라고 하셨다. 부모님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한 말씀하신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니네가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가슴이 아팠다. 예쁘고 멋진 딸로 키우려고 엄마가 고생하셨던 세월들이 떠올랐다.


목사님께서 부모님이 대학교 학비 내주실 때 감사하다고 인사했던 사람있냐고 물으셨다.

없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못했었다. 부모님께 받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감사하게 여길지 몰랐었다.


목사님께서 사람은 있는 그대로 수용 받을 때 마음 속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다고도 하셨다.

엄마가 이런 저런 힘들었던 마음을 내게 털어 놓았던건 여행 중 첫 째날, 둘 째날이었다. 마지막 날은 진솔한 얘기를 나누지 못했었다. 내가 그대로 수용해드리지 못했었다.


이제 내가 엄마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힘든 일, 슬픈 일, 기쁜 일 모두 딸에게 털어 놓을 수 있도록 엄마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도록 노력하면 좋겠다.


“사람들은 안전한 사람에게만 속마음을 열어 보인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아는 척하며 평가하지 않을 사람, 어떤 이야기를 꺼내도 성급히 결론짓지 않을 사람에게만 이야기를 나누어 준다.”(말그릇, 김윤나)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은 5분 앞도 알 수 없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