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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바다 Apr 24. 2021

남편의 수고를 더 고맙게 느끼는 방법

자세히 물어보기

어제부터 시작된 생리통이 오늘까지 이어졌다. 지난 달에 나팔관 조영술을 해서 그런지 생리양이 정말 많았다.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회사에 처리할 일이 있어서 휴가를 못내고 출근을 했다. 기운이 쭉쭉 빠졌다. 일 때문에도, 생리 때문에도 진짜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퇴근할 때가 되니까 저녁으로 미역국이 먹고 싶었다. ‘행복의 기원(서은국)’에서 교수님이 계속 강조했듯이 인간은 100% 동물이 맞나보다. 생존 욕구가 발동되었다. 피가 빠져나가자 미역이 땡겼던 것이다. 밥하기는 힘들고 반찬가게에서 미역국을 사면 부실하고 어찌할까 생각중이었다.

퇴근을 1시간 남기고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몸 좀 어때? 괜찮아?”

“아~ 아니, 오빠 힘들어. 힘이 쭉죽 빠져”

“에효. 양 많이 나와?”

“응~ 이번에 양이 엄청 많이 나오네. 저번에 나팔관 조영술 해서 그런가?”

“아~ 그런가보다. 잠깐만. 아니, 상관 없을 것 같은데. 아닌가?ㅎㅎ”

“ㅋㅋㅋ 그러게. 상관 없을 것 같은데 유독 양이 많이 나오네.
배란이 두배로 되야되는데 생리양이 두 배로 나오네ㅎㅎ”

“에효. 우리 여보 아파서 어떻게해. 여보 내가 저녁에 미역국 끓여줄게”

“오오~~~~~ ㅠㅠ 너무 좋지 오빠!! 그렇지 않아도 미역국 엄청 먹고 싶었어. 반찬가게에서 미역국 사갈까 생각중이었어”

“잘됬다. 오빠가 맛있게 끓여줄게. 여보, 힘들면 일찍 퇴근해”

“으응. 이제 마무리 하고 가려고. 안 그래도 힘들어서 못하겠어. 집에 빨리 가려고”

“그래그래. 얼른 집에가.
잠깐만, 나도 갈까? 나도 일 바쁜거 없는데. 나도 가야겠다.
여보, 나 미역국 끓일 재료 장봐서 들어갈게”

“응 오빠~ 가자가. 나는 차에 기름 넣고 들어갈게”

그렇게 퇴근하고 기름을 넣고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갔다. 반가운 차가 앞에서 주차를 마치고 있었다. 남편의 손에는 소고기와 횟감이 잔뜩 들려 있었다. 팔에 짐이 가득하면서도 남편은 나를 보자마자 손을 뻗었다.
가방을 주라는 얘기였다. 남편은 빈틈이 없는 손을 거쳐 내 가방을 어깨에 걸쳤다.

“오~~~ 오빠~ 뭐야 이게~?”

“여보, 소고기 미역국 끓여줄게. 그리고 생리하면 왠지 단백질 보충하면 좋을 것 같아서 회도 좀 샀어”

“오오~~~~ 너무 좋다ㅠㅠ 연어랑 회ㅠㅠ 너무 맛있겠다~~~~~고마워 오빠. 역시 우리오빠 최고”

“최고지~~?! 얼른 가자 맛있게 끓여줄게”

엘레베이터를 타는데 남편의 핸드폰이 울렸다. 부동산 강의를 같이 듣는 제이크님이었다. 제이크님이 부동산 물건을 추천해주는 듯한 통화였다. 통화는 길어졌다. 집에 도착해서 나는 소파로 직행했다.

“아~ 살겠다”

힘이 없고 배에 통증도 계속 있었지만 소파에 눕고나니 살 것 같았다. 남편이 끓여줄 미역국 먹을 생각에 행복해졌다.

남편은 제이크님과 열심히 통화를 하면서 저녁을 준비했다. 어깨로 핸드폰을 받치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귀를 댄 채로 냄비에 소고기를 볶고 미역을 불렸다. 집에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지도 않은 채로 계속 요리와 통화를 했다.
소파에 누워서 열심히 제이크님과 통화를 하면서 요리를 하는 남편을 보는데 미친 섹시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미역국을 끓여서일까. 미역국은 지난 달에도 끓여 줬었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남편이 더 섹시해보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바쁜 와중에도’ 나를 위해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라서 더 멋있었던 것이었다.
회사 일과 부동산 투자만 하더라도 바쁜 남편인데 나를 늘 먼저 생각해주고 걱정해주었다. ‘바쁜 와중에도’ 내가 배고플까봐 요리를 미루지 않았다. 통화가 끝난 뒤에 요리를 해도 되는데 남편은 바쁘게 손을 움직이며 미역국을 끓였다.

만약, 제이크님과 통화하면서 미역국을 끓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남편의 시간과 에너지가 회사 일과 부동산에 쓰이고 있다는 사실과 미역국을 끓여주는 헌신이 겹쳐보이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당연히 고마웠겠지만 오늘만큼 더 가득히 고맙고 미치도록 멋있어 보이는건 덜 했을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서운해하거나 고마움이 당연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 부부의 연애 때 일이다.
남편은 어디를 갈 때면 늘 나를 집으로 데리러 왔었다.  남편의 집을 지나서 가는 여행 코스더라도 꼭  뱅 돌아서 우리 집에서 나를 태워 함께 출발했다.
당시 내가 사는 집에서 남편의 집까지는 50분이 걸렸었다. 그 때는 몰랐었다. 얼마 안 걸린다는 남편의 말을 그대로 믿었었다. 찾아볼 생각도 안 했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자꾸 데리러 오니까 크게 멀지 않은줄로 생각했었다.
처음으로 시부모님을 뵈는 날이었다. 남편의 집 근처 식당에서 뵙기로 했기 때문에 내가 남편이 있는 쪽으로 가도 됬었다. 하지만 남편은 또 나를 데리러 왔다. 시부모님 뵐 생각에 많이 긴장하고 있는 나를 위해 꽃도 사왔었다.
그 날, 남편은 나를 데리러 오는 길 50분, 식당으로 함께 가는 길 70분, 식사를 마치고 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는 길 70분, 다시 남편 집으로 가는 길 50분동안 운전을 했었다.

결혼을 하고 함께 시댁에 가는데 엄청 멀어서 깜짝 놀랐었다. 당시에도 늘 집에 데리러 와주는 남편에게 고마웠고 고맙다는 표현을 자주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집에서 시댁을 왔다갔다 해보니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 일을 남편은 하루에 두번씩 했던 것이었다.

“오빠아~~~!!!! 어떻게 그랬어!! 이렇게 먼데 어떻게 나를 매번 데리러 오고 데려다 줬어?!!!
아 진짜 ~!! 오빠 뭐야아~~!!! 안 멀다면서~~! 너무 고마워~~ㅠㅠ”

“당연히 해야지. 우리 여보 운전하면 힘든데 당연히 해야지. 그리고 같이 가서 좋았어”

그 때 내가 남편 집에서 우리 집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남편에게 물어봤더라면 남편의 고생만큼 고마움을 더 느꼈을 것이었다.

남편이 핸드폰을 어깨에 걸치고 통화를 하며, 회사 옷을 그대로 입은채로 미역국을 끓이는 모습을 보지 않더라도 어떻게 하면 더 고마움을 느낄 수 있을까.

자세히 물어보면 좋을 것 같다. 혹은 남편이 어디에 에너지를 쓰고 있을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오빠~ 미역국 재료 사러 가는데 바쁘지는 않았어?” 혹은 “미역은 어디서 샀어? 마트는 멀지 않았어?”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나를 위해 해주는 남편의 수고에 더 고마움과 사랑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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