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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바다 Apr 13. 2021

감사로 서운함을 비우다

남편의 상황에서 생각해보기

배 차장님, 김 과장님과의 회식이 저녁 8시쯤 끝났다. 어두웠지만 비가 내렸다가 갠 날씨는 시원했다. 상쾌한 기분으로 아파트에 들어서는데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곧 집에 가서 만날 남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소가 지어졌다. 평생 함께할 동반자가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고 감사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여느 때와 같이 요란스럽게 인사를 했다.


"오빠아아앙~~~ 나왔옹~~~~"


"여보오오옹~~~~ 어서왕~~~~"


남편은 재테크 강의를 줌으로 듣고 있었다. 남편이 보이는 노트북 화면에 내 얼굴을 들이밀면서 장난을 쳤다. 남편이 강의를 듣는 동안 콧노래를 부르며 집안 정리를 했다. 집안을 정리하면서 일부러 많이 돌아다녔지만 회식 때 부른 배는 꺼지지를 않았다.


"오빠~ 나 산책하고 올까 봐~ 배가 너무 불러~"


"아 그래? 같이 갈까?"


"우왕~~ 너무 좋지~ 꺄올 신난다~"


같이 가자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남편이 바빠 보여서 묻지 않았었다. 남편이 먼저 같이 가자고 해주니까 더 기뻤다. 


아주 작게 보슬거리는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개의치 않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들어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서 장도 한가득 봐왔다. 집에 돌아와 사온 반찬들을 냉장고에 넣기 시작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온 남편은 쉬어 마땅했다.


"오빠~ 짐 정리는 내가 할게. 어서 쉬어 쉬어~"


"아니야 같이해~"


"아니야~ 쉬어 오빠~"


그렇게 내가 정리를 한참 하고 있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남편은 다시 돌아왔다.


"정리 같이해~ 여봉~"


토마토 한 박스를 개별로 지퍼팩에 담는 일을 함께 했다. 남편은 많이 지쳤을 텐데도 웃으며 다가와주었다.


정리를 마치고서 남편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강의를 들었다. 나는 임신 잘 된다는 한약을 데워서 챙겨 마셨다. 그리고는 저녁 기도를 하러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 낮에 새언니가 드디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우리 부부와 같이 임신을 준비 중이었던 새 언니네의 좋은 소식에 정말 기뻤었다. 새언니 나이가 37살이었기 때문에 빨리 아이가 생겨야 했었다. 친정 부모님도 매우 기뻐하셨다.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더 즐거웠다. 퇴근 후 남편은 내게 기분이 괜찮냐며 물어봐주었었다. 우리는 아직 임신이 안되었기 때문에 남편이 내 기분을 많이 신경을 써주었다. 그때는 진심으로 기뻤고 괜찮았었다 정말.



기도를 마치고 방에서 나와 컴퓨터만 계속 바라보고 있는 남편을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괜스레 우리가 부부 관계를 더 하지 못했던 이번 달이 신경이 쓰였다. 배란기는 어제가 마지막 날이었다.

4개월 정도 우리는 배란기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히 지내기로 했었다. 2년 동안 지고 있던 임신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싶었다. 마음이 편할 때 임신이 가장 잘 된다는 말도 있었으니까. 

임신 준비에 몰두되지 않고 자유롭게 지냈었다. 이번 달에는 친정 엄마가 지어주신 한약을 먹은 탓인지 배란기에 자꾸 관심이 갔다. 배란기였던 저번 주부터 조금 더 부부관계를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둘 다 여행이나 회사 일에 지쳐서 얘기만 하고 못했었다.


새언니의 임신 소식에 그냥 지나쳤던 배란기가 더 아쉬웠다. 괜히 남편의 바쁜 스케줄 때문에 관계를 못한 것 같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빨리 애기를 갖고 싶은 마음 때문에 예민해졌다.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자꾸 남편 탓을 하고 있었다. 기분을 좀 풀기 위해서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면서 나에게 물어봤다.


'아니, 그럼 남편이 집에서 뭘 하기를 바래 빛나야?'


'남자들이 흔히 한다는 소파에 누워서 TV 보기? 아니면 골프 치러 나가기?'


아니었다. 아니었다.


남편은 나와 미래에 함께 할 아이들을 위하여 재테크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남편의 입장에서 그의 수고를 생각하니까 감사함이 올라왔다. 남편도 퇴근하고 쉬고 싶을 텐데 종일 공부하는 게 힘들 일이었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다이어트 중이라서 저녁도 거의 굶다시피 했는데 내가 산책 가고 싶어 하니까 같이 가주었다. 배고파서 힘이 없다고 얘기하면서도 장 본 짐은 본인이 다 들었다. 퇴근 후 청소기를 밀어달라고 하니까 하던 일을 마치고 바로 밀어주었었다. 

 

남편의 상황에서 나를 위해서 해주었던 일들이 떠오르자 더 고마웠다.

역시 우리 남편 같은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감사한 마음과 함께 서운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열심인 남편을 꼭 안아줬다.


"오빠아아~ 고마워. 우리 가족 위해서 애써줘서"


어깨를 둘러 안고 얼굴을 부비적 댔다.

남편이 헤헤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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