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코에는 유머가 있었고, 주근깨는 순수를 이야기했고, 치아는 관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해버리는 당돌한 태도를 암시했다. 나는 그녀의 두 앞니 사이의 틈을 이상적인 배열로부터의 불쾌한 일탈이 아니라, 심리적 미덕의 지표로 보았다.
알랭 드 보통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中
고등학교 시절, 내게 몇 가지 별명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별명은 'VIP'다. 나는 반장도 아니었고, 그리 대단한 사람도 아니었지만 친구들이 내게 그런 별명을 하사한 데는 조금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 당시 나는 쉽게 사랑에 빠지는 만큼, 아름다움에 취약했다. 누굴 보더라도 예쁘다 말했더니, 친구들은 눈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며 나를 'visually impaired person'의 약자인 'VIP'라 불렀다. 의미만 놓고 보면 썩 즐거운 별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듣기 거북한 별명은 아니었다. 또 마냥 틀린 말도 아니었다. 다만 반에서 맞춘 축구 유니폼에 이름 대신 VIP라는 별명이 적혀 있었고, 운동은 젬병이라 운동장 귀퉁이에 처박혀 공 한 번 차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며, 도대체 쟤가 왜 VIP냐며 학우들이 의문을 품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기는 했다. 그때는 약간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의 판단이 잘못된 것 아니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눈앞을 지나는 여학생을 보면서 예쁘지 않냐며 친구의 의견을 물었으니까. 그때마다 친구들은 이 새끼 또 이러네, 라고 말했고, 나는 친구들이 시선을 거둔 여학생의 뒷모습을 보며 예쁜데, 라고 혼잣말 했다. 한창 이성에 관심이 많을 나이였고, 학교에 남학생과 여학생은 서로 50cm 이상의 거리를 둬야 한다는 '윤리거리'라는 이름의 당최 이해할 수 없는 교칙이 있었던 터라 더 이성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예쁜데, 왜 친구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걸까. 물론 지금은 내가 예쁘다는 말에 헤펐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믿을 수 없지만, 예쁜 사람이 워낙 많았던 탓에나를 설레게 하는 새로운 사랑이 분기별로 찾아왔었다는 사실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지내던 한 여자는 사진 찍는 걸 참 좋아했다. 핸드폰을 하다가도 본인의 모습을 찍어달라 말했고, 커피를 마시다가도 본인을 찍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가 자신의 얼굴을 메신저 프로필에 업로드한 걸 본 적이 없다. 그녀 역시 내 눈에는 참 예뻤는데, 정작 본인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녀는 내가 자신을 찍어주면, 어플로 한참 동안 자신의 얼굴을 깎고 다듬다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결국 사진첩에 고이 넣어두었다. 항상 그랬다. 물론 반쯤은 빈말이긴 하지만, 나마저도 남들한테 나를 소개할 때 잘생겼다고 말한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까 모르겠다.
도대체 못생긴 것이 무엇이길래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걸까. 내가 만났던 연인 중 누군가는 눈이 작았고, 누군가는 입이 컸다. 누군가는 발목이 두꺼웠고, 누군가는 코가 낮았다. 분명 그녀들에게는 어떻게든 숨기고 싶은 단점이었겠지만, 나는 자려고 눈을 감으면 작은 눈이 떠올랐고, 낮은 코가 떠올랐다. 얼굴이 아른거려 잠을 이루지 못했으니, 누가 뭐라고 하든 내게는 예쁜 사람이었던 거다.
나는 객관적이라는 말을 참 싫어한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객관적으로……'라는 말로 서두를 떼는 얘기 중에 정말 객관적인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객관적으로 별로다. 객관적으로 너무 말랐다. 객관적으로 키가 작다. 객관적으로 객관적으로 객관적으로. 나는 그들의 말이 정말 객관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그런 말을 지껄이는 이들은 객관적으로 곁에 둘 필요가 없다는 사실뿐이다.
외모를 평가하는 그 어떤 말도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만약 못생겼다는 지적을 받았다면, 그건 못생긴 게 아니라 그저 그의 눈에 못생겨 보였을 뿐이리라. 그래서 예뻐지려는 노력, 잘생겨지려는 노력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만약 세상 모든 사람이 완벽하다 인정하는 미인이 나타난다 해도, 나는 모두의 의견에 반기를 들 것이다. 내게 있어서 '완벽'은, 모자람을 갖지 못했다는 점에서 완벽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 또한 한동안 나를 가꾸며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내 노력이, 완벽을 꿈꾸며 잘생겨지려는 노력은 아니었다. 내게 중요한 건 잘생겨 '보이는' 것이었다. 내가 공략해야 할 사람은 언제나 나를 밤잠 이루지 못하게 하는 단 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