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이북 리더기를 근사하게 사용하기
정유정 작가님의 '7년의 밤' 소설을 읽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이북 리더기로 쇼츠 중독을 해소한 사람이 있다는 글을 보고 관심이 갔다.
해소의 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이북 리더기 화면을 핸드폰처럼 넘겨서 쇼츠대신 책을 보면 된다고 한다.
마침 우리 집에도 방치된 이북 리더기가 있었다.
핸드폰 대신 리더기를 쓱 밀면서 보면 대체가 된다는데 가능할까? 반신반의했지만 뭐든 해보기로 한다.
오랜만에 이북리더기를 켜서 전에 다운로드하였던 책의 목록들을 살펴봤다.
'7년의 밤'을 그렇게 처음 만나게 되었다.
900페이지가 넘는 아주 긴 책이라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하루동안 250페이지 넘게 봤다.
책이 재미있자 신이 나서 남편에게 줄거리를 설명했다.
그런데 남편은 굉장히 힘들어했다.
책 내용 중에는 유괴, 납치, 강간, 폭행 등 아주 자극적인 장면들이 묘사되기 때문이었다.
자꾸 생각나서 힘들다는 그의 심정을 이해하곤, 이제 책설명은 이제 브런치에만 하기로 한다.
‘7년의 밤'이 책을 읽고 자극적인 상황이 재미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 심리의 변화에 집중했다.
내가 그 상황에 처했을 때와 아니었을 때 인간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가, 무엇이 우선순위가 되는가 이 부분이 계속 달라지는 게 흥미로웠다.
내가 사건의 밖에 있을 때는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생명이 우선이고, 도리가 우선이고 규칙이 우선이지만 사건의 중심에 내가 있을 때는 달랐다.
내 피해를 줄이는 선택이 제일 우선이 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뉴스에서 나오는 사건 사고에서 모두가 손뼉 치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드물게 나오는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까?라고도 생각해 봤다.
완벽하고 완전한 선택을 내리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정유정작가님의 책은 처음 읽었다.
나도 남편과 같은 이유로 한동안 어둡고, 두렵고 무서운 사회 이슈를 다룬 책을 멀리했다. 긍정적인 것만 보고 싶고 유토피아를 꿈꾸듯이 해피엔딩으로만 끝나는 것들을 좋아했었다. 긴 시간 동안 로맨스 웹툰, 웹소설을 보며 커플이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런 사랑의 순기능만 봐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여러 장르의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게 한층 다채롭다는 것을 느낀다.
전에는 단순히 이 사람이 나빴다/ 괜찮다 등등 단순한 판단을 했다면 요즘은 그 선택 이면의 배경의 대해서 생각한다.
그래서 요새 책 읽는 시간이 아주 즐겁다.
꽤 근사한 변화다. 무엇보다 심심하지 않다.
이렇게 책의 재미를 다시 느낀 것은 중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다.
디지털 디톡스를 실행하며 내가 바랬던 것은 자극을 통제할 수 있는 절제력이었다.
내가 주도를 할 수 있는 승기를 잡고 싶었다.
한 달 동안 도파민을 멀리하며 절제력을 기르면서
함께 따라온 변화가 매우 고무적인 성과를 냈다.
독서의 즐거움을 다시 찾아줬다.
자극적인 매체를 절제하면서 나에게 시간이 생겼다.
이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게 써볼지 생각하는 것이 즐겁다.
그 변화를 계속 써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