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은WhtDrgon May 10. 2024

FEWK:KEITI -Q4-

FEWK 사이버펑크 세계관 오프닝북 텍스트


4-1  화사한의 특별한 의뢰


늦은 밤, 레드 몽키즈 클럽에서 한가로이 술을 마시던 수덕에게 개인 메시지가 도착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화사한의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수덕 씨, 오랜만이에요. 특별한 의뢰가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화사한 님, 이렇게 직접 연락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화사한은 잠시 말을 골랐다. 그녀의 눈빛에는 묘한 열기가 서려 있었다.

"제 후원자 분께서 수덕 씨의 팀에 큰 관심을 보이셨어요. 아주 중요한 화물을 인공계로 운반해야 하거든요."

"후원자라니요? 그분이 직접 저희 팀을 지명하신 건가요?"

수덕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화사한은 대답 대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세한 건 만나서 말씀드리죠. 하지만 이번 의뢰, 결코 쉽지 않을 거예요. 대신 그만큼의 보상이 따를 겁니다."

화사한이 홀로그램으로 금액을 띄우자 수덕은 저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 돈이면 팀원 전부가 편히 은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정도 금액이라니... 도대체 누구신지 궁금하네요, 그 후원자 분이."

"글쎄요, 저도 그분에 대해선 잘 몰라요. 다만 그분을 '신성영'라고 부르더군요."

신성영.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었다. 수덕은 이 모든 상황이 석연치 않았지만, 화사한을 의심할 순 없었다. 그녀는 업계에서 신뢰와 명예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화사한은 홀로그램 속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자태로 입을 열었다.

"후원자 신성영님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존재예요. 하지만 그분의 의뢰는 저에게 중요한 일이에요. 수덕 씨라면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임하겠습니다. 다만 팀원들과 상의는 해봐야 할 것 같네요."

"물론이죠. 팀원들과 충분히 논의하시고 결정해주세요. 하지만 시간이 많지는 않아요. 72시간 안에 답변 부탁드립니다."

화사한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홀로그램에서 사라졌다. 수덕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은 온갖 상상으로 붐볐다.

'인공계로의 운송 작전... 왜 그런걸 전투 러너팀인 우리에게… 화사한님이 그걸 모르시지도 않을텐데…'

그러나 보상금을 생각하면 간단히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수덕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신성영의 정체, 운반할 화물의 내용, 그리고 인공계에서의 위험까지. 뭔가 큰 일에 휘말리게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예전에 없던 도전 의식도 불타올랐다. 그동안 팀을 이끌며 쌓아온 실력과 경험을 증명할 절호의 기회였다.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한번 해보는 수밖에.'

굳은 결심과 함께 수덕은 팀원들에게 급히 메시지를 보냈다. 모두가 레드 몽키즈 클럽으로 모일 시간이었다. 평범한 의뢰가 아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화사한의 제안은 모험으로의 초대장이나 다름없었다. 미지의 세계로, 위험과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지. 수덕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4-2 화물 운송 작전 


밤하늘 아래, 거대한 트럭 행렬이 도로를 가로질렀다. 수덕과 케이티가 선두에서 길을 인도하고, 나머지 팀원들이 뒤를 따랐다. 트럭 컨테이너 안에는 의문의 화물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저 정도 물량이면... 도대체 뭘 옮기려는 걸까요?" 

케이티가 옆자리의 수덕에게 물었다. 어둠을 뚫고 달리는 트럭 행렬이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글쎄... 중요한 건 화물의 정체가 아니야. 우리는 그저 안전하게 인계하는 게 목적이니까."

수덕이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그 역시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밤의 적막 속에서 엔진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 황량한 풍경뿐이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도로, 저 멀리 보이는 산림의 윤곽, 그리고 별빛에 비친 거친 암벽의 질감까지. 마치 문명과는 동떨어진 세계에 온 것 같았다.

트럭이 캐치먼트 도시 외곽의 검문소에 도착했을 때였다. 무장한 군인들이 트럭을 세우고 컨테이너를 살피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흘렀지만, 수덕은 태연하게 서류를 건넸다. 화사한에게 받은 통행증이었다.

"특별 통행 허가라... 통과!"

군인들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지만, 어쨌든 트럭을 보냈다. 수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핸들을 돌렸다.

"역시 화사한이란 인물은 대단하군요. 그 영향력이라니..."

케이티가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그녀에겐 화사한이나 신성영 같은 존재들이 마치 다른 차원의 인물처럼 느껴졌다.

“캐치먼트는 미모대사국의 군사기지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주)신성의 시설이야. 그러니 신성의 특별 통행증이 먹히는거지.” 

트럭은 이내 도심으로 진입했다. 유리창 너머로 번쩍이는 네온사인, 복잡하게 얽힌 고가도로, 그 사이를 오가는 수많은 차량의 행렬이 보였다.  마천루의 창문마다 불빛이 켜지고, 광고 홀로그램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자본구... 기업가들, 상류층들의 세상이죠. 우리같은 서민구 사람들에게는 청소일자리를 주는 곳이고요. 누가 만든 판인지, 왜 만든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죠, 우리는."

케이티가 수덕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도심을 벗어나자 다시 황량한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트럭들은 외곽의 공단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 멀리 공장 굴뚝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었고, 망가진 간판이 어둠 속에서 삐걱거렸다.

옆자리에 앉은 지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신성영... 그 사람 말이에요. 도대체 우리한테 왜 이런 의뢰를 맡긴 걸까요?"

"그러게 말이야. 인공계로의 화물 운송이라니... 어딘가 석연치 않은데."

크리스도 뒷자리에서 끼어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그 사람... 어떤 조직이나 세력의 보스 같은 건 아닐까? 아니면 정부 고위 관료라거나."

"아니면... 기업 실세? 어쩌면 그 미스터리한 신성 이사회의 일원일지도 모르잖아. 이름도 신성영인데."

팀원들 사이로 온갖 추측이 쏟아졌다. 하지만 아무도 제로의 정체를 확신할 순 없었다. 의문의 인물을 둘러싼 베일은 좀처럼 벗겨질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은 의뢰를 완수하는 게 우선이야. 나머지는 천천히 알아가 보자고."

수덕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트럭은 끝없이 밤길을 달려갔다. 어둠 속에서 신비롭게 빛나는 화물들을 실은 채, 그들은 미지의 공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4-3 바이트 가공

트럭 행렬이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허름한 공장 건물들이 늘어선 그곳은 야간의 불빛마저 은은한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제이콥스 식품'이라고 쓰인 녹슨 간판이 어둠 속에서 비틀거렸다.

"여긴 위장용 식품 공장이라더니... 뭔가 수상한데요."

케이티가 불안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겉모습에 속지 마. 중요한 건 안에 있는 거야."

수덕이 말하며 트럭에서 내렸다. 일행을 마중 나온 건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었다.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공장 안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내부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고 기괴했다. 끝없이 뻗은 컨베이어 벨트, 각종 기계음이 뒤섞인 광장한 공간. 천장에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고, 벽에는 고가의 예술품들이 걸려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위장된 겉모습과는 정반대의 광경이었다.

"세상에... 이게 다 뭐예요?"

케이티는 숨을 헐떡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때, 무언가를 날라다니는 무인 운반 장치가 그들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바로 화물 컨테이너였다. 그 모습을 본 크리스가 신음 소리를 냈다.

"저게 우리가 호위해온 화물이군..."

착지한 컨테이너가 철컥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에서 쏟아져 나온 건 각종 보석과 골동품, 그리고 수상쩍은 용기에 담긴 이름 모를 물질들까지. 온갖 부의 조각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 뒤섞여 있었다.

"도대체 이런 걸 왜 인공계로 보내는 거지? 엄청난 돈이 들텐데..."

지현이 의아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데이터화... 바이트 가공이라고 하더라고요. 실물을 인공계로 전환할 수 있도록 데이터로 변환 하는거에요.."

케이티가 설명을 덧붙였다. 과거 새우거리에서 보았던 광고 문구가 떠올랐다.

[당신의 자산을, 안전한 곳으로! 살롱즈 데이터 뱅크를 이용하세요.]

그때였다. 녹색 레이저가 화물을 훑기 시작했다. 보석과 골동품이 점점 기괴한 형상의 픽셀로 변해갔다. 그것들은 데이터의 급류가 되어 허공으로 빨려 들어갔다. 현실의 물질이 인공계의 데이터 폭포가 되는 순간이었다.

"신기하긴 한데... 뭔가 오싹한 느낌이에요. 이게 가능하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케이티는 두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기술의 발전에는 언제나 양면성이 있었다. 편리함의 이면에는 통제와 감시, 그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바이트 가공이 한창인 동안, 수덕과 크리스는 귓속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물량... 아무리 봐도 상류층들 껀데. 결국 그 놈들 주머니 불리는 데 이용되는 거잖아."

"그래. 이런 기술은 우리 같은 놈들한텐 꿈도 못 꿔. 자본구 새끼들은 저기 살롱즈에 앉아서 인공계 호사나 할 거고."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크리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돈 있는 놈들은 현실에서도, 가상에서도 좋은 것만 취하지. 우린 그냥 부스러기나 주워 먹으면서 살아야지 뭐."

강산이 변해도, 시대가 바뀌어도 자본구와 노마드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첨단 기술은 오직 그 격차를 더욱 벌리는 데만 이용될 뿐이었다.

"정녕 우린 영원히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수덕이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그의 음성에는 지친 무력감이 배어 있었다.

케이티는 무거운 침묵 속에 서 있었다. 새우거리에서 살롱즈 브로드웨이까지, 세상은 너무나 달랐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닮아 있었다. 결국 모든 것을 지배하는 건 돈과 권력, 그 불평등이었다. 자신 같은 하층민이 그 벽을 넘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바이트 폭포는 멈출 줄 모르고 흘러갔다. 현실의 모든 것이 데이터로 전환되어, 금권층의 호사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케이티의 눈동자에 씁쓸함이 어렸다.


4-4 살롱즈 브로드웨이


위장 공장에서의 기이한 광경을 뒤로하고, 일행은 거대한 차원문을 통과했다. 

눈부신 빛에 휩싸인 채 휘몰아치는 에너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간 감각이 마비되는 듯했지만, 이내 경이로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화려하고 몽환적인 빛의 도시, 살롱즈 브로드웨이가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게 인공계라고요?"

케이티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인공계 자체는 새우거리의 생활로 익숙했지만, 무언가 아니 모든 것이 너무나 달랐다. 현실같은, 현실과는 차원이 다른 건축물들, 공중을 가로지르는 요트들, 하늘을 메운 홀로그램 광고판까지. 그 모든 것이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맞아. 여긴 부자들의 놀이터지. 현실에선 못 하는 온갖 사치를 누리는 곳이야."

수덕은 씁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게 이곳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런 곳에선 현실에서 누리지 못할 온갖 사치를 만끽하지.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엔 병든 욕망이 도사리고 있어'  

"와아...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아요. 근데 뭔가... 어딘가 어긋난 느낌도 들어요."

케이티는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눈부신 화려함 속에도 공허함이 느껴졌다. 실체 없는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이들의 병든 욕망 같은 것이.

일행은 화사한의 안내를 받아 한 저택으로 향했다. 호화로운 인테리어와 진기한 예술품들로 치장된 그곳은 말 그대로 부의 상징이었다. 거실 한가운데 우뚝 선 대형 홀로그램 오브제는 실시간으로 형태를 바꾸며 공간을 압도했다.

“화사한님의 저택은 정말 훌륭하군요. 제가 본 어떤 저택보다 화려합니다.”

"후원자 신성영님의 저택이에요. 저는 관리를 도와드리고 있을 뿐이죠."

화사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분...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이에요? 저 많은 걸 여기까지 옮긴 이유가 뭘까요?"

케이티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많지 않아요. 다만 이 모든 게 신성영님의 계획이라는 것 정도?"

화사한은 베일에 싸인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잠시 편히 쉬면서 기다려주세요. 자리가 준비되는대로 신성영님이 여러분을 직접 뵙고자 하세요. 저는 조금 있다가 다시 찾아뵐께요.” 

화사한이 예의 그 미소와 함께 방을 나가자 남은 사람들 사이로 의문과 불안이 교차했다. 신성영의 정체, 그가 계획하고 있는 일의 실체는 여전히 수수께끼에 싸여 있었다.

"어쨌든 여긴 엄청나네. 기술의 진보라는 게 이런 걸 말하는구만."

수덕이 호화로운 테이블에 준비된 다과를 집으며 중얼거렸다.

"과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가상인지... 경계가 모호해지는 느낌이에요."

케이티의 시선이 움직이는 예술 조형물을 좇았다. 그 안에서 꿈과 현실이 뒤섞여 넘실거렸다.

저택 한편에선 저택의 사람들이 화물 상자를 날랐다.

"인공계로 끌고오는 과정에서 날아간 자산가치도 엄청날텐데 이정도 화려함이라니… "

크리스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천장에 걸린 수정 샹들리에가 화려한 빛을 발산했다. 그 눈부심 속에서 일행은 잠시 현실감을 잃은 듯했다. 이곳은 분명 인공계였지만, 어째서인지 꿈속을 헤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케이티의 물음에 씁쓸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우리에겐 백년이 지나도 그림의 떡이지. 얼마나 돈을 벌어도 이 벽을 넘기란 쉽잖을 거야."

수덕의 대답에는 자조가 묻어났다. 이 화려한 인공계 속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서민구의 하층민일 뿐이었다.

살롱즈 브로드웨이에서의 시간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상류층의 꿈이 현실이 되는 곳, 그러나 그 꿈조차 돈으로 살 수 있는 계층만이 허락된 특권. 금빛으로 반짝이는 마천루를 올려다보며, 케이티는 먹먹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런 세상에서, 과연 자신은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 언젠가 진짜 자신만의 현실을 살아갈 수 있을까.



화, 금 연재
이전 03화 FEWK:KEITI -Q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