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포는 눈앞에 둥둥 떠다니는 젤리 같은 뭉치를 노려봤다. 반투명하고 둥글둥글한 게... 신수라기엔 너무 한심했다. 적룡, 청호, 첨작, 백무. 그 전설적인 존재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를 덩어리였다.
"...이름은 있냐?"
둥실.
이놈은 아무 대답 없이 공중을 떠다녔다. 신수의 파편이라면 최소한 위엄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젠장. 나는 또 뭘 주워 온 걸까.
이놈을 만난 건 하루 전, 바닷속 자맥질 중이었다. 깊은 해저에서 흑공이 분출하며 요동쳤고, 보통 이런 경우엔 무시무시한 괴수가 튀어나오거나, 미친 운으로 신수의 파편이라도 건져야 제맛이었다.
그런데—
이놈이 둥실 떠올랐다.
해파리처럼 생겼지만 촉수도 없고, 반투명하게 둥글둥글한 몸체만 있었다. 그냥 떠다니며 이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엄청난 신기도, 대단한 포스도 없이. 그저 둥실둥실.
"...뭐냐 넌."
둥실.
그렇게 해서 주워 온 거다.
이윽고 러너 시장 한복판에서 목이 쉬도록 외쳤다. "신수 팝니다! 희귀종! 전설급 가능성 있음!"
허름한 코트를 입은 흑사가 다가와 한참을 보더니 말했다.
"이거... 그냥 젤리 같은데?"
"젤리 아니거든! 신수라고!"
"속성은?"
"...몰라."
"능력은?"
"...아직 안 써봤어."
"이봐, 신수면 최소한 '존재 이유'라도 있어야 해. 이건 그냥 떠다니는 쓰레기잖아."
그 말에 이포는 이놈을 노려봤다. "야, 너 뭐 할 줄 아는 거 없어?"
둥실.
역시 아무 반응도—
"뻑."
...뻑?
그 순간 시장 전체가 암전되었다. 전광판 꺼짐. 무선 통신 먹통. 칩 거래 중단. 순식간에 패닉이 터졌다.
"야! 내 신경칩이 멈췄어!" "통신 끊겼다!" "누가 EMP 터뜨렸냐?!"
이포는 멍하니 이놈을 바라봤다. "...네가 했냐?"
둥실.
이놈은 자랑스럽다는 듯 둥둥 떠올랐다. EMP 신수라고? 이거 생각보다 쓸모가...
그 순간—
"저놈이 원흉이다! 잡아!"
이포는 주변을 둘러봤다. 러너 시장 경비들이 일제히 온갖 원리의 총을 저마다 뽑아 들이대고 있었다. 젠장.
30분 넘게 쫓기며 개고생을 했다. 시장의 뒷골목을 헐레벌떡 뛰어다니면서도 이놈은 여유롭게 둥실거렸다.
"다 네 탓이야, 젠장!"
둥실.
"EMP 말고 다른 거 없어? 불꽃이라도 뿜든가!"
그 순간—
삑.
시장 한가운데 홀로그램 광고판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군용 파워셀 밀수 내역 공개—" "암시장 VIP 명단 유출—" "고위층 불륜 스캔들 전격 폭로—"
"뭐야 저거?!"
러너들이 경악했다. 러너들이 제각기 소리를 지르며 패닉에 빠졌다. 어떤 놈은 급히 칩을 빼려다 손을 베었고, 다른 놈은 네트워크 복구를 위해 몸부림쳤다.
"야! 서버 다 털렸어!" "젠장, 무기 밀매 기록까지?! 진짜 광고를 하네!?"
이포는 신수를 쳐다봤다. "너... EMP만 터뜨리는 게 아니라, 데이터까지 해킹하는 능력이 있었냐?"
둥실.
이놈은 더욱 신나게 떠올랐다. 뭔가 부르르 떠는 것도 같았다. 잘은 모르지만 신난 것이 확실했다.
전설의 신수들은 자연의 힘을 다뤘다지만, 이놈은 전자 시대의 신수인 셈이었다.
"야, 도망친다!"
둥실.
이놈은 여전히 둥둥 떠다니며 이포를 따라왔다. 젠장. 이제 나랑 붙어 먹겠다는 거냐?
이포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뭐, 재미있는 밤이 될 것 같았다.
‘어쩌면 괜찮을지도’
✅ 흑공 분출(黒空噴出, Tenebrae Eruption) : 차원의 균열이 발생하며 초자연적인 에너지가 유출되는 현상. 물질계뿐만 아니라 가상 공간에서도 발생할 수 있으며, 논리 의지 존재와 접촉하면 현화가 일어난다.
✅ 러너 시장 : 비공식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공간. 희귀한 유물, 불법 장비, 신수의 파편 등 다양한 물품이 거래되며, 러너들이 주로 이용함.
✅ 신수(神獸) : 초과학적 존재로, 보통 신화적 동물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기의 영향을 받아 구체화되며, 흑공거인과의 전쟁 때 사용된 강력한 존재들이다. 신수사는 이를 다루는 전문가들이다.
✅ 이포 : 나중에 성장하여 동방선장으로 불리며 흑해바다를 전문으로 하는 러너. 수중 차원계와 해저 탐사에 능하며, 전설적인 선장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과거를 잊지 못하는 인물. 해파리같은걸 데리고 다니는걸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