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WK단편선 17> 페르소나 마켓

by 김동은WhtDrgon

장유미는 감정을 팔았다. 아침엔 공감, 점심엔 위로, 오후엔 맞춤형 감정 제공. 감정을 팔면서도, 그녀는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잊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정해진 스케줄 그대로 완벽한 감정을. 시스템은 99.99%의 순도를 요구했다. 완벽끼리의 초경쟁에서는 0.01%만으로도 알고리즘에서 영원히 퇴출될 수 있었다. 한 점 오점 없는 무결한 세계에서는 사소한 흔들림도 치명적이었다. 한 번의 실수가 1점대 평가를 만들 수 있었다.

"고객님의 슬픔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공감 수치 100%. 인증 완료."

실시간 감정 모니터링 시스템이 그녀의 진정성을 수치화했다. 페르소나 마켓에서 유미의 감정은 계층별로 다른 가격에 거래됐다. 궁정구 VIP들은 우아하고 정제된 감정을 원했고, 살롱즈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감정을 소비했으며, 힙스는 날것 그대로의 감성을 추구했다. 비즈니스구에서는 감정도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로만 사용되었다. 완벽한 연기였으니까. 아니, 이제는 연기라고 하기도 뭐했다. 그녀는 진작에 자신의 진짜 감정이 뭔지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장유미 님, 축하드립니다. 이번 분기 감정거래 수익률 235%. 역대 최고 실적입니다." 메시지가 화면에 반짝였다.

유미는 기쁨에 빵 터졌고 입력 카메라가 켜져있는 것도 잊은채 유미 특유의 얼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녀의 주력 페르소나가 미세한 지연을 보이더니, 예상치 못한 감정 데이터가 출력되었다. 그 웃음은 오랜만에 튀어나온 감정이었다. 마치 기름 낀 기계에서 처음으로 소리가 난 것처럼. 순간, 유미의 음성이 흔들렸고, 스크린에는 '비정상적 감정 패턴 감지'라는 메시지가 떴다. 마치 오랫동안 억눌린 감정이 균열을 일으키듯, 시스템에 미세한 떨림이 감지됐다.

"잠시만요... 제 감정이..." 유미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억제할 수 없는, 히스테릭한 웃음이었다.

시스템 알림이 요란하게 울렸다. [경고: 감정 동기화 오류 발생. 페르소나 #A1103 긴급 점검 필요]

급하게 백업 페르소나로 전환하려던 유미의 손가락이 멈췄다. 실시간 거래 화면에서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타났다. 힙스와 서민구 쪽에서 '리얼 감정'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었다. 기존의 정제된 감정을 소비하던 시장과는 완전히 다른 움직임이었다. 그녀의 '오류' 감정에 고객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진정성 지수 대폭 상승. 자연스러운 감정 결함 검출. 희소가치 발생]

유미는 모든 페르소나를 확인했다. 공감, 위로, 동조 지수 모두 100%. 완벽하지만 생명력 없는, 빈 껍데기였다.

"이게 다 가짜였구나." 유미가 쓴웃음을 지었다.

화면에 새로운 알림이 떴다. [신규 감정 패턴 감지. 희귀 감정 지수 상승 중. 예상 거래가 +573%]

"이거 웃기네." 유미가 피식 웃었다.

[감정 가치 +879% 상승 중]

유미는 차트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완벽한 가짜보다, 엉망진창인 진짜 감정이 더 비싸다니.

시스템이 미친 듯이 경고음을 울렸다. [경고: 비정상적 감정 패턴 다수 발생. 시장 교란 행위 의심. 강제 셧다운까지 10, 9, 8...]

유미는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웃었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강제 셧다운까지 5, 4, 3...]

"이상하네... 기분이 좋아." 유미가 중얼거렸다.

[2, 1...]

마지막 순간까지 유미는 웃고 있었다. 진짜로, 처음으로, 자기도 모르게. 페르소나 마켓은 극심한 변동성을 겪었다. 감정 결함이 프리미엄 가치로 인정받으면서 시장이 요동쳤다. 비즈니스구에서는 결함을 정밀하게 규격화해 안정적인 상품으로 만들려 했고, 궁정구는 더욱 희귀한 감정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접속자들은 혼란에 빠졌고, 서버 복구 요청이 빗발쳤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정상적 감정'이라는 희소성이 더 큰 가치를 인정받았다.

감정 거래 차트는 폭등했고, 시장 분석가는 이를 '감정 결함 프리미엄'이라고 명명했다. 유미는 그저 허탈하게 웃었다. 결국, 감정마저도 결함을 가질 때 더 비싸게 팔리는 시대였다.

하지만 불완전한 원소란 뜻은 자연계에서 존재를 지속할 수 없다는 뜻이다.

며칠 뒤, 대 히트를 친 유미의 감정은 챌린지화되어 다양한 버전으로 완벽히 복제되었다. 유미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예전 같지는 않았다. 이제 그녀의 미소는 유행 지난 자동 재생 목록 중 하나였고 유미는 그 미소를 짓지 않는다. 그저 하나 궁금했다.

유행이 지나면 감정도 사라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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