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국 제제지방, 현재. 수평연호 37년.
안개 자욱한 새벽, 콜롯세움 연구소의 외벽에 바닷물이 부딪히며 작은 파도를 일으켰다. 거대한 자이로스코프 형태의 구조물은 동백국 연안에 정박한 지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이 강철의 요새는 멀리서 보면 원형의 회전 장치처럼 보였고, 그 내부에는 복잡한 연구실과 생활공간이 얽혀 있었다.
세이트는 61층 자료보관실 입구에 도착해 출입증을 스캔했다. 검은 수평선 사건 이후 37년, 세계는 다시 한번 변하고 있었다.
"어서 와요, 세이트 박사."
보관실 관리자 해리스는 평소처럼 까칠한 표정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세이트는 초급 연구원이었지만, 네 달 전 우연히 발견한 자료 덕분에 '박사'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찾아낸 자료는 이곳 콜롯세움의 역사에 관한 것이었다.
"희망엔진 작동 로그 원본을 보고 싶어요."
해리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건... 접근 제한 구역입니다."
"해리스씨, 안나 박사의 허가를 받았어요." 세이트는 디지털 서명이 담긴 태블릿을 내밀었다.
해리스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세이트를 깊숙한 자료보관실로 안내했다. 무거운 금속 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밀려나왔다. 세이트가 방 안으로 들어서자, 오래된 서버들이 희미한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여기에는 검은 수평선 사건 당시의 기록이 보관되어 있었다.
세이트는 주 단말기에 앉아 로그인했다. 화면이 켜지며 오래된 데이터 목록이 나타났다.
#희망엔진_작동로그_2017_10_17
#IDD_최종실험_영상기록
#검은수평선_발생원인분석
#콜롯세움_탈출경로
#생존자_명단_기밀
"보안 등급 위반."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세이트는 화들짝 놀랐다. 안나 박사가 문간에 서 있었다.
"박사님, 허가를 받았어요." 세이트가 말했다.
"내 허가는 최근 로그에 대한 것이었어." 안나는 천천히 다가왔다. "2017년 기록은... 그건 다른 문제야."
"왜 이 자료들을 숨기려 하시는 거죠?"
안나는 자료보관실의 보안 카메라를 잠시 응시했다. 그리고는 단말기 옆에 앉아 깊은 숨을 내쉬었다.
"봐도 좋아. 하지만... 준비되어 있어야 해.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알게 될 테니까."
세이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영상을 재생했다.
미모국. 2017년 10월 17일.
고차원전송설치부(IDD) 연구소의 중앙 실험실. 실험실 중앙에는 자이로스코프처럼 세 개의 링이 서로 다른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구조물이 있었고, 그 중심에는 빙산처럼 보이는 검은 물질이 천천히 녹고 있었다.
"디렉터님, 지금 실험을 계속하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젊은 연구원이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콜롯세움에서도 명성이 높았던 진 박사였다. "흑공얼음의 온도가 너무 빠르게 상승하고 있어요. 제어할 수 없게 됩니다."
카메라가 회전하며 고차원전송설치부(IDD) 실험실 책임자 반을 비췄다. 그는 차분한 표정으로 초기 희망엔진 프로토타입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계획을 너무 멀리 진행시켰어." 반은 담담하게 말했다. "어비스의 차원벽을 뚫기 위해선 이 실험이 필요해. 우리는 '포도알'의 경계를 넘어야 해."
"하지만 차원 밀도 측정값이 임계점을 넘어섰습니다!" 진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외쳤다. "희망엔진이 같은 위상의 다른 차원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끌어들이고 있어요. 질량 손실률이 제어 범위를 초과했습니다!"
반은 고개를 저었다. "희망엔진은 정확히 설계된 자이로스코프 구조 덕분에 질량 붕괴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어. 우리가 원하는 만큼만 에너지를 추출할 수 있다고."
"그게 이론상으로는 맞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진이 반박했다. "흑공은 이미 우리 차원에 물질화된 상태여서 일반적으로는 차원 간 간섭이 일어나지 않아요. 하지만 이렇게 과도하게 에너지를 추출하면 차원벽이 얇아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면 차원벽이 무너질 겁니다!" 진이 말을 잘랐다. "우리가 발견한 고차원계는 우리 물질계와 너무 다릅니다. 그런 밀도 차이는 안정적인 에너지 전송을 불가능하게 만들어요!"
영상이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이번에는 다른 카메라 각도였다. 자이로스코프의 중심에 있던 흑공얼음이 이제 절반 이상 녹아 검은 안개처럼 변해있었다. 자이로스코프의 링들은 점점 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추출률이 200%를 넘었습니다!" 한 기술자가 외쳤다. "차원 간 질량 손실률이 임계점을 넘었어요!"
"완벽해," 반이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의 질량 손실이라면 차원벽을 통과하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
"하지만 자이로스코프 제어 시스템이 불안정해지고 있어요!" 진이 경고했다. "더 이상은 질량 붕괴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없습니다!"
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이로스코프의 회전이 갑자기 불규칙해지더니, 중심부의 흑공얼음이 폭발했다.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실험실 전체로 퍼졌다. 카메라는 잠시 검은 화면으로 변했다가, 다시 화면이 열렸을 때는 완전히 다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실험실 내부에 있던 연구원들 중 몇몇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한 여성 연구원의 피부가 물결치듯 움직이더니 검게 변했고, 또 다른 연구원은 비명을 지르며 팔이 기형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화(玄化) 발생! 접촉자 변이 진행 중! 모든 인원 대피하십시오!"
세이트는 숨을 죽인 채 영상을 지켜보았다. 이것이 바로 검은 수평선 사건의 시작이었다.
미모국. 2017년 10월 18일. 새벽.
IDD 연구소의 지하 격납고는 혼란 그 자체였다. 영상의 타임스탬프는 사건 발생 후 약 3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격납고 안에는 거대한 자이로스코프 구조물만 남아 있었다. 그것은 실험실 프로토타입보다 훨씬 더 크고 복잡했다. 이층 건물 크기의 이 희망엔진은 완성된 형태였으며, 후에 콜롯세움이라 불리게 될 구조물의 원형이었다. 구조물의 중심에는 작은 제어실이 보였고, 연구원들과 기술자들이 그곳으로 급히 들어가고 있었다.
"원형 희망엔진 가동 준비 완료!" 한 기술자가 소리쳤다. "자이로스코프 구조의 이동 장치가 정상 작동 중입니다!
"환영합니다. 여러분. 이 버전은 아인스 박사의 초기 설계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차원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했습니다." 최초 가동은 좀 더 차분한 첫 가동을 기대하고 자기소개가 시작됐지만 지금의 긴급상황과 맞물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안내가 계속됐다.
반이 제어실 입구에 서서 통제하고 있었다. "최우선 인원만 탑승! 핵심 연구원과 기술팀 먼저!"
카메라는 진이 불안한 표정으로 격납고의 천장을 올려다보는 모습을 잡았다. 천장 너머로 검은 안개가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서둘러, 진." 반이 말했다. "희망엔진의 가동 준비는 됐어?"
"90% 완료됐어." 진이 대답했다. "하지만 이래선 안 돼, 반. 더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어."
"우리가 모든 사람을 구할 순 없어." 반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최우선 인원만 태워야 해. 그래야 연구를 계속할 수 있어."
"무슨 소리야? 더 이상의 연구는 없어! 우리가 일으킨 재앙이야!"
반은 진의 어깨를 꽉 잡았다. "아니, 이건 기회야. 우리는 드디어 '포도알'의 경계를 볼 수 있게 됐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어."
"당신은 미쳤어!" 진이 소리쳤다. "차원 채굴이 일으킨 결과를 보지 못했나? 우리가 고차원계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뽑아내서 차원벽이 무너진 거야! 이 엔진을 다시 가동하면..."
"이 버전은 다르다," 반이 말했다. "희망엔진은 이제 단순한 차원 에너지 추출기가 아니야. 이것은 차원 이동 장치야. 우리는 이 장치로 포도알의 경계를 넘어갈 수 있어."
제어실의 문이 완전히 닫히고, 희망엔진의 자이로스코프 링들이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격납고 천장이 열리며, 콜롯세움 전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미모국 상공. 2017년 10월 18일. 새벽 5시.
콜롯세움이 도시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 영상에 담겨 있었다.
거대한 자이로스코프 구조물이 공중에 떠 있었고, 그 주위로 푸른 에너지 장이 형성되고 있었다.
바다는 계속해서 빠져나갔다. 해안선이 수 킬로미터나 드러났다. 그리고 갑자기, 지평선 너머에서 무언가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검은 파도였다. 아니, 파도라기보다는 하늘까지 닿는 거대한 검은 벽이었다. 흑공이 해일의 형태로 모든 것을 덮치기 시작했다.
"저건... 검은 수평선..." 카메라를 든 사람이 충격에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거대한 검은 벽은 시속 수백 킬로미터로 도시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였다. 검은 벽이 닿는 곳마다 건물, 도로, 심지어 사람들까지도 검은 물질로 변해갔다.
"차원 충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연구원이 소리쳤다. "고차원계와 물질계의 충돌로 인한 쓰나미예요!"
카메라는 도시의 혼란을 잡았다. 사람들이 무작정 도망치고 있었지만, 검은 벽은 너무 빨랐다. 한 남자가 검은 벽에 닿자 그의 몸이 검게 변하기 시작했고, 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무언가로 변해갔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카메라가 회전하면서 먼 지평선을 비췄다. 동쪽으로 아주 멀리, 한 줄기의 밝은 빛이 보였다. 그것은 검은 수평선 사이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희망엔진 가동 시작합니다." 한 기술자가 말했다. "차원 위상변이를 준비하세요."
자이로스코프의 세 개의 링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고, 콜롯세움 전체가 푸른빛으로 감싸였다.
"목적지 좌표는 어디로 설정할까요?"
반은 모니터에 표시된 흰색 지대를 가리켰다. "저기. 저 하얀점 부분은 동백국이란 곳이야. 지금 저곳은 검은 수평선의 영향을 받지 않은 유일한 장소야."
"검은 수평선 사건으로 인해 세계 전체가 붕괴되고 있습니다," 다른 연구원이 보고했다. "포도알 구조로 나뉘고 있어요!"
"포도알?" 한 기술자가 물었다.
"전 지구적 시간 분기 침해현상이야," 반이 설명했다. "그것도 예상했던 거지. 차원 침해가 났으니 시간분기가 포도알처럼 분리된거야. 우리 시간연구에 따르면, 이건 포도씨-포도알-포도송이-포도줄기-포도나무의 순환연결구조야. 우리는 이 포도알의 경계를 뚫어야 해."
"희망엔진은 시간-공간 위상변이가 가능해. '제로초 이동'을 준비해. 우리는 1초도 시간낭비 없이 동백국에 닿을 거야."
"위상변이 개시!" 기술자가 소리쳤다.
콜롯세움을 둘러싼 푸른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확장되더니, 구조물 전체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영상이 다시 끊겼다가 이어졌다. 이번에는 콜롯세움 내부 회의실이었다.
"제로초 이동 성공했습니다. 현재 위치는 동백국 연안 해역, 항구 근처입니다. 선박의 상태들이... . 시간은... 믿기 어렵지만, 1900년대로 추정됩니다."
"시간선이 완전히 붕괴됐군." 진이 중얼거렸다. "이건 단순한 차원 붕괴가 아니야. 우리는 인과율 자체를 깨버린 거야."
"아니," 반이 반박했다. "이건 우리가 계산했던 대로야. 검은 수평선 사건은 시간과 공간의 전 지구적 분기를 일으켰어. 우리는 그 틈새를 통해 이동한 거지."
동백국 연안. 수평연호 37년. 현재.
영상이 끝나고 화면이 까맣게 변했다. 세이트는 충격에 빠져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 알겠어?" 안나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우리가 왜 이 자료들을 숨기려 했는지."
세이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콜롯세움은 원래 희망엔진이었고, 검은 수평선 사건을 피해 동백국으로 왔다는 거군요. 그리고 미모대사국의 도움으로..."
"그래." 안나는 말을 이었다. "희망엔진과 그 탑승자들은 동백국 해안에 도착한 후, 그 위에 연구소를 세웠어. 콜롯세움을 덮어 지었으니 '콜롯세움 연구소'라는 이름이 붙었지. 미모대사국의 도움으로 자치권을 확립했고, 우리는 여기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어."
"하지만 진 박사는 어디로 갔나요? 그는 자료를 숨기고 사라졌다고 했죠?"
안나는 피곤한 표정으로 디스플레이를 끄지 않은 채 대답했다. "진 박사가 남긴 거야. 진은 동백국에 도착하기 직전, 모든 기록을 숨기고 콜롯세움을 떠났지. 그는 진실이 언젠가는 드러나야 한다고 믿었어."
안나는 주변을 살핀 후, 또 다른 파일을 열었다. 그것은 '희망엔진_설계도_최종버전'이라는 이름의 문서였다.
"희망엔진은 단순한 위상변이 장치가 아니야." 안나가 설명했다. "반 디렉터는 검은 수평선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것을 준비했어. 희망엔진은 차원 이동 장치야. 포도알 경계를 넘을 수 있도록 설계됐지."
"아인스 박사의 초기 설계를 말하는 건가요?" 세이트가 물었다.
"맞아," 안나가 대답했다. "아인스 박사는 희망과 절망, 차원계와 차원계를 연결하여 두 세계의 모든 존재의 희망과 절망의 차이를 이용하여 동력을 얻는 초자연적 기계를 설계했어. 그것이 바로 희망엔진의 원형이야. 희망엔진은 질량 손실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방식으로 작동해. 같은 위상의 차원 간 에너지 교환 과정에서 질량 손실이 일어나는데, 이것을 정밀하게 제어하기 위해 자이로스코프 구조를 채택한 거야."
"그럼 지금은... 희망엔진이 완성됐나요?"
안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최근 몇 달 동안 최종 테스트가 진행 중이야. 원래 희망엔진은 모든 종류의 차원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현대의 와치엔진은 흑공정제용액만을 사용해. 흑공은 이 차원에 물질화된 상태라서 차원 간 간섭 없이 안전하게 에너지를 추출할 수 있어. 하지만 반은 원래의 희망엔진을 복원하려고 해. 그리고..." 그녀는 말을 멈추고 시계를 확인했다. "오늘 밤, 마지막 테스트가 있을 예정이야."정이야."
세이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건 위험할 거예요! 만약 또 다른 검은 수평선 사건이 일어난다면? 차원 채굴 현상이 다시 일어날 수 있어요!"
서버 룸의 문이 갑자기 열렸다. 콜롯세움의 보안 담당관 카터가 몇몇 경비원들과 함께 서 있었다.
"안나 박사, 세이트 박사." 카터는 차갑게 말했다. "통제 구역 무단 출입이군요."
"카터, 난 관리 책임자의 허가를 받았어." 안나가 항의했다.
"관리 책임자의 허가는 취소됐습니다." 카터가 말했다. "지금 두 분을 체포하겠습니다."
세이트는 본능적으로 기록 포트에 손을 뻗었다. 안나가 미리 준비해둔 작은 시공간 기록 장치가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경비원들이 안나와 세이트를 붙잡았다. 그들은 서버 룸에서 끌려나와 콜롯세움의 복도를 따라 걸었다.
콜롯세움의 깊은 곳, 그들은 '희망엔진실'이라고 표시된 거대한 문 앞에 도착했다.
카터는 주변을 살핀 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카터가 아닙니다. 진의 동료예요. 오늘 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당신들이 진실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들은 조심스럽게 희망엔진실로 들어갔다. 엔진실 내부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웅장했다. 방 중앙에는 이층 건물 크기의 거대한 구조물이 있었다. 세 개의 굵은 링과 세 개의 얇은 링이 서로 다른 축을 중심으로 구조물을 둘러싸고 회전하고 있었다. 그 중심의 구체 안에는 연구실과 관리실이 보였고, 푸른빛이 맥동하고 있었다.
"저게 희망엔진이군요." 세이트가 경외의 목소리로 말했다. "이층 건물 크기의 초자연적 기계..."
"맞아," 마이크가 말했다. "아인스 박사의 원형 모델이야. 이것은 단순한 와치엔진이 아니라, 차원계와 차원계를 연결하여 두 세계의 모든 존재의 희망과 절망의 차이를 이용하여 동력을 얻는 정교한 장치야."
엔진 주변에는 여러 제어 콘솔이 있었고, 그 중 하나에는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과 수염은 완전히 하얗게 변해 있었지만, 그의 등은 여전히 곧게 펴져 있었다.
"반 디렉터..." 안나가 속삭였다.
노인은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의 눈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이제부터 콜롯세움은 새로운 임무를 갖게 될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우리는 드디어 포도알의 경계를 넘을 것이다. 오늘 밤, 희망엔진이 작동할 거야."
"불가능해요." 세이트가 말했다. "시간여행자들도 검은 수평선 이전으로는 갈 수 없다고 했잖아요."
"맞아." 반이 인정했다. "이 '포도알' 내에서는 그 사건 이전으로 갈 수 없어. 하지만 다른 '포도알'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다른 법칙을 가진 세계라면?"
세이트는 엔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희망엔진의 자이로스코프 링 중 일부는 다른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은 희미하게 빛나는 하얀색 물질이었다.
"신단..." 세이트가 깨달았다. "당신은 동백국의 신단을 가져다 희망엔진에 통합시켰군요."
"맞아. 검은 수평선 사건 당시, 동백국 전역에서 신단출이 일어났고, 그것이 흑공을 막아냈어. 우리는 그 원리를 연구해서 희망엔진에 적용했지."
"하지만 신단과 흑공을 결합하면 불안정해질 거예요," 세이트가 말했다. "그 둘은 서로 다른 물질 밀도를 가진 차원에서 왔잖아요."
"맞아," 반이 미소를 지었다. "그 불안정성이 바로 내가 찾던 열쇠야. 물질계보다 1만 배 높은 밀도를 가진 고차원계와 접촉하면, 우리는 차원벽의 틈새를 만들 수 있어. 그리고 희망과 절망의 차이를 이용한 무한 동력으로, 우리는 그 틈새를 통과할 수 있어."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안나가 물었다. "첫 번째 실험에서 실패했잖아요."
"그것은 실패가 아니었어," 반의 목소리에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지. 이번에는 모든 준비가 됐어. 우리는 차원 채굴 현상을 통제할 수 있어. 신단이 그 열쇠야."
"신단이요?" 세이트가 물었다. "동백국 토종의 미지 에너지가 어떻게 도움이 될까요?"
반은 미소를 지었다. "신단은 동백국에서만 발견되는 특별한 에너지야. 흑공의 극성과 정반대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차원 간 에너지 흐름을 안정화시킬 수 있어. 흑공과 신단의 균형이 차원 이동의 핵심이야."
세이트와 안나는 반을 뒤로하고 엔진실을 나왔다. 가짜 카터는 약속대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평선 위원회는 알고 있나요?" 세이트가 물었다.
가짜 카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위원회는 이미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동백국 특수부대가 콜롯세움으로 오고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우리가 뭘 해야 하죠?"
"직접 나가야 해요." 안나가 결심한 듯 말했다. "세이트, 너는 데이터를 가지고 콜롯세움을 떠나야 해. 난 반 디렉터를 지연시킬게."
세이트는 주머니에서 영화상 카드를 꺼냈다. "이걸 수평선 위원회에 전달해야 할까요?"
"그래야 할 겁니다."
카터의 정체가 드러난 후, 그는 세이트와 안나를 콜롯세움의 하부 구역으로 안내했다. 긴급 탈출 경로가 있는 곳이 아니라, 콜롯세움의 엔진실로 연결되는 비밀 통로였다.
"제 진짜 이름은 마이크입니다." 가짜 카터가 말했다. "진 박사의 지시로 3년 전부터 콜롯세움에 잠입해 있었어요. 제 임무는 반 디렉터의 계획을 감시하고, 필요하다면 저지하는 것이었죠."
마이크는 천장 패널을 열고 작은 금속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정교한 장치들이 들어 있었다.
"이게 뭐죠?" 세이트가 물었다.
"희망엔진 제어 시스템을 무력화할 제동장치입니다," 마이크가 설명했다. "진 박사는 단순히 반 디렉터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계획을 막을 준비도 해 두었죠." 들어갔다. 엔진실 내부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웅장했다. 뭔가 부품과 기계로 가득 차 있을 것 같던 방은 텅빈 무도회 같았고, 한 가운데 그것이 있었다.
방 중앙에는 건물만한 거대한 구조물이 있었다. 세 개의 굵은 링과 세 개의 얇은 링이 서로 다른 축을 중심으로 구조물을 둘러싸고 회전하고 있었다. 중앙 구체 내부에는 여러 연구실과 관리실이 보였고, 구체 중심에서는 푸른빛이 맥동하고 있었다.
"저게 희망엔진이군요." 세이트가 경외의 목소리로 말했다. 세이트는 이 방을 엔진실이 아니라 엔진 보관실이라고 불렀어야했다는 생각을 했다.
엔진 주변에는 여러 제어 콘솔이 있었고, 그 중 하나에는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과 수염은 완전히 하얗게 변해 있었지만, 그의 등은 여전히 곧게 펴져 있었다.
"반 디렉터..." 안나가 속삭였다.
노인은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의 눈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이제부터 콜롯세움은 새로운 임무를 갖게 될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우리는 드디어 포도알의 경계를 넘을 것이다. 오늘 밤, 희망엔진이 작동할 거야."
"불가능해요." 세이트가 말했다. "시간여행자들도 검은 수평선 이전으로는 갈 수 없다고 했잖아요."
"맞아." 반이 인정했다. "이 '포도알' 내에서는 그 사건 이전으로 갈 수 없어. 하지만 다른 '포도알'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다른 법칙을 가진 세계라면?"
세이트는 엔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희망엔진의 자이로스코프 링 중 일부는 다른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은 희미하게 빛나는 하얀색 물질이었다.
"신단..." 세이트가 깨달았다. "당신은 동백국의 신단을 가져다 희망엔진에 통합시켰군요."
"맞아. 검은 수평선 사건 당시, 동백국 전역에서 신단출이 일어났고, 그것이 흑공을 막아냈어. 우리는 그 원리를 연구해서 희망엔진에 적용했지."
"왜 지금까지 기다렸던 거죠?" 안나가 물었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어요. 그리고..." 마이크는 잠시 망설였다. "희망엔진의 기술은 인류에게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파괴하고 싶지는 않았죠. 단지 반 디렉터가 통제 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을 막고 싶었을 뿐입니다."
마이크는 장치를 두 사람에게 건넸다. "이걸 희망엔진의 주 제어장치에 설치해야 합니다. 그러면 엔진이 완전히 가동되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하지만 엔진실은 이미 반과 그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 거예요," 세이트가 말했다.
마이크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계획이 필요한 겁니다."
세이트, 안나, 마이크는 콜롯세움의 유지보수 통로를 통해 이동했다. 이 좁은 통로는 주요 시스템의 배선과 파이프를 점검하기 위한 통로였지만, 지금은 그들의 비밀 통로가 되었다.
"희망엔진실은 세 층 아래에 있습니다," 마이크가 설명했다. "하지만 직접 들어가는 건 불가능해요. 경비가 너무 삼엄하니까요."
"그럼 어떻게 하죠?" 세이트가 물었다.
"우회로가 있습니다," 마이크가 콜롯세움의 도면을 펼쳤다. "엔진실 바로 위에 냉각 시스템이 있어요. 그 시스템의 덕트를 통해 엔진실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안나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통로로 들어가면 방사능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어."
"그래서 이게 필요합니다," 마이크가 세 벌의 특수 보호복을 꺼냈다. "진 박사가 준비해 두었어요."
그들은 보호복을 입고 유지보수 통로를 계속 이동했다. 갑자기, 앞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오고 있어요," 세이트가 속삭였다.
세 사람은 급히 벽 쪽으로 몸을 숨겼다. 두 명의 경비원이 통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디렉터가 모든 직원들을 엔진실에 소집했대.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질 모양이야."
"희망엔진을 가동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
"글쎄... 그런 것 같아. 자정에 모든 준비가 끝난대."
경비원들의 목소리가 멀어지자, 마이크가 시계를 확인했다. "자정까지 두 시간밖에 없어요. 서둘러야 합니다."
그들은 더욱 빠르게 이동했다. 마침내 냉각 시스템의 주 덕트 앞에 도착했다.
"여기로 들어가면 엔진실로 직접 연결됩니다," 마이크가 말했다. "하지만 이 지점부터는 경보 시스템이 작동할 거예요. 들어가는 순간, 우리의 존재가 드러납니다."
"시간이 얼마 없어," 안나가 결단력 있게 말했다. "지금 행동해야 해."
마이크는 덕트 패널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세이트와 안나가 그 뒤를 따랐다.
덕트 안은 좁고 뜨거웠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아래에서는 희망엔진의 맥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거의 다 왔어요," 마이크가 속삭였다.
그때,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각됐어!" 안나가 소리쳤다.
"서둘러!" 마이크가 앞장서서 속도를 높였다.
그들은 마침내 냉각 시스템의 중앙부에 도달했다. 아래쪽으로 격자가 있었고, 그 너머로 희망엔진실이 보였다. 수십 명의 연구원과 기술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는 거대한 자이로스코프 구조물이 서서히 회전하고 있었다.
"내려갈 시간이 없어," 마이크가 말했다. "여기서 제동장치를 설치해야 합니다."
그는 가방에서 장치를 꺼내 냉각 파이프에 부착하기 시작했다. 그때, 덕트의 끝에서 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야!" 경비원의 목소리였다.
"서둘러요!" 세이트가 마이크에게 외쳤다.
마이크는 장치를 연결하고 활성화 버튼을 눌렀다. 장치의 불빛이 녹색으로 변했다.
"작동했어요!" 마이크가 기뻐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갑자기, 덕트의 바닥이 열리더니 세이트, 안나, 마이크가 아래로 떨어졌다. 그들은 희망엔진실의 바닥에 쿵 하고 착지했다.
주변의 연구원들이 놀라 뒤로 물러섰다. 경비원들이 재빨리 총을 꺼내 세 사람을 겨냥했다.
"멈춰!" 친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반 디렉터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예전보다 훨씬 더 늙어 보였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안나," 그가 말했다. "네가 배신할 줄은 몰랐어."
"배신이라고요?" 안나가 반박했다. "당신이 하려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으면서도 막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배신이에요!"
반은 세이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너... 자료보관실에서 본 새 얼굴이군. 진의 스파이였나?"
"그녀는 단지 진실을 알고 싶었을 뿐이에요," 안나가 세이트를 대신해 말했다.
"진실?" 반이 쓴웃음을 지었다. "너희는 진실을 모른다.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발견했는지 알지 못해."
그는 손짓을 했고, 경비원들이 세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저들을 구금실로 데려가라," 반이 명령했다. "자정이 지나면 어떻게 할지 결정하겠다."
"그럴 시간이 없을 텐데요," 세이트가 차분하게 말했다.
반이 돌아보았다. "무슨 뜻이지?"
"우리가 냉각 시스템에 설치한 장치요," 세이트가 설명했다. "그것은 단순한 제동장치가 아니에요. 그것은 희망엔진의 제어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장치죠. 지금쯤 이미 작동을 시작했을 거예요."
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즉시 제어 콘솔로 달려갔다. 화면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불가능해..." 그가 중얼거렸다.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자이로스코프의 링들이 갑자기 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한 연구원이 외쳤다.
"희망엔진이 자체적으로 가동 중입니다!" 다른 연구원이 보고했다. "제어할 수 없어요!"
반은 필사적으로 콘솔의 버튼들을 눌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엔진은 이미 통제 불능 상태였다.
"모두 대피하라!" 반이 명령했다. "서둘러!"
연구원들과 경비원들이 출구를 향해 달려갔다. 혼란 속에서, 마이크는 세이트와 안나의 손을 잡았다.
"우리도 나가야 해요!" 그가 외쳤다.
"안 돼!" 세이트가 거부했다. "이게 우리가 원했던 거야?"
"저지하려다가 더 큰 재앙을 불러온 것 같아요," 안나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장치가 희망엔진을 제어 불능 상태로 만들었어요.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요!"
그때, 반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놀랍게도, 그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너희가 한 일을 알겠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운명을 막을 수는 없어."
"무슨 뜻이에요?" 세이트가 물었다.
"희망엔진은 내 의도대로 작동하고 있어," 반이 설명했다. "너희의 장치가 제어 시스템을 교란시켰지만, 그것이 오히려 엔진의 출력을 증폭시켰어. 지금 엔진은 최대 출력으로 가동 중이야."
자이로스코프의 링들이 이제 너무 빨리 회전해서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 주위로 붉은 에너지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안나가 소리쳤다.
"내가 한 게 아니야," 반이 대답했다. "너희가 한 거야. 하지만 상관없어. 결과는 같아. 우리는 이제 포도알의 경계를 넘어갈 거야."
희망엔진의 진동이 콜롯세움 전체를 흔들기 시작했다. 천장에서 먼지와 파편이 떨어졌다.
"엔진이 차원 경계에 도달했습니다!" 한 연구원이 외쳤다. "에너지 레벨이 임계점을 넘어섰어요!"
"희망과 절망의 차이에 기반한 위상 이동이 시작됩니다," 다른 연구원이 보고했다. "차원계 간 에너지 밀도 차이가 1만 배를 넘었습니다! 질량 손실률이 제어 범위를 벗어나고 있어요!"
"차원 경계 임계점에 접근 중입니다," 기술자가 소리쳤다. "슈바르츠실드 반지름과 유사한 현상 발생! 시간 팽창 계수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완벽해," 반의 눈이 빛났다. "이제 곧 이 세계를 떠날 거야."
"아니, 그럴 수 없어요!" 세이트가 반박했다. "당신은 이 세계의 인과율에 묶여 있어요. 당신이 이 세계를 떠나면, 그것은 우리 세계의 인과율을 찢는 것과 같아요!"
반은 세이트를 무시하고 제어 콘솔로 돌아갔다. 화면에는 복잡한 데이터가 빠르게 스크롤되고 있었다.
"신단과 흑공의 결합이 안정적입니다," 그가 보고했다. "이 조합이 차원 채굴 현상을 통제하면서 차원 이동을 가능하게 합니다. 차원 이동 준비 완료!"
"우리가 뭔가 해야 해요!" 마이크가 안나와 세이트에게 말했다.
세이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엔진 중앙에 있는 신단 크리스탈에 고정되었다.
"신단!" 그녀가 외쳤다. "신단을 제거하면 엔진이 멈출 거예요!"
세이트는 망설임 없이 희망엔진을 향해 돌진했다. 반이 "안 돼!"라고 외치며 그녀를 막으려 했지만, 안나가 재빠르게 그의 팔을 잡아 가로막았다.
"그녀를 내버려 둬, 반!" 안나가 소리쳤다.
세이트는 이층 건물 크기의 희망엔진에 접근했다. 가장 바깥쪽의 거대한 링이 붉은빛을 내며 느리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첫 번째 링의 회전 속도를 계산했다. 그리고 정확한 순간에 뛰어올라 링과 링 사이의 공간을 통과했다. 열기가 그녀의 얼굴을 할퀴었지만, 그녀는 무사히 첫 번째 장벽을 넘었다.
"세이트! 돌아와!" 마이크의 절박한 외침이 들렸다.
두 번째 링은 첫 번째보다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세이트는 한 순간의 틈을 노려 몸을 날렸다. 그녀의 어깨가 링에 스쳐 옷이 탔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했다.
세 번째 굵은 링을 통과하자 그녀 앞에는 더 얇지만 훨씬 빠르게 회전하는 세 개의 내부 링이 있었다. 붉은 에너지가 이 링들 사이에서 전기처럼 튀고 있었다.
"불가능해..."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세이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내부 링들의 회전 패턴을 관찰했다. 세 개의 링이 각기 다른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지만, 짧은 순간 세 링이 모두 정렬되는 순간이 있었다. 세이트는 그 찰나의 순간을 노렸다.
"지금이야!" 그녀는 자신에게 외치며 몸을 날렸다.
전기처럼 튀는 에너지가 그녀의 피부를 따갑게 했지만, 세이트는 고통을 무릅쓰고 세 개의 내부 링을 연달아 통과했다. 마침내 그녀는 중앙의 구체 앞에 도착했다. 구체의 표면에는 작은 출입구가 있었고, 그 안으로 연구실과 관리실이 보였다.
세이트는 마지막 힘을 내어 출입구를 통과했다. 구체 내부는 놀라울 정도로 고요했다. 반 디렉터와 몇몇 연구원들이 제어 콘솔 앞에 서 있었고, 그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구체의 중심부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하얀색 신단 크리스탈이 부유하고 있었다. 세이트는 그것을 향해 다가갔다. 그녀의 손가락이 크리스탈에 닿으려는 순간, 눈부신 빛이 폭발하듯 퍼져나갔다.
세이트는 몸이 공중에 떠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 주변의 모든 것이 점점 느려지더니, 마침내 완전히 정지했다. 자이로스코프의 링들, 붉은 에너지의 소용돌이, 심지어 중앙 구체 안의 반과 연구원들까지 모두 시간 속에 얼어붙었다.
세이트의 의식만이 이 제로초의 순간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는 강력한 힘에 의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시간의 틈새를 뚫고 그녀는 다시 실험실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제로초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동백국. 수평연호 38년. 몇 달 후.
세이트는 희망엔진실의 강화유리 관측실에서 원형 희망엔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거의 멈춰 있었고, 미세하게 회전하는 링들 사이로 시간이 얼어붙은 듯한 모습이 보였다. 이층 건물 크기의 구조물을 둘러싼 시뻘건 링들과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의 모습이 시간 속에 얼어붙어 있었다. 엔진 주변으로는 사각형 안전철망이 쳐져 있었고, "접근 금지 - 시간 수평선 영향 위험"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측정 결과는 어때요?" 진이 관측실로 들어오며 물었다.
"여전히 같습니다," 세이트가 데이터 패드를 보여주며 대답했다. "시간 팽창 비율은 약 1억 대 1입니다. 희망엔진 내부에서는 3분의 차원 이동이 완료되려면 우리 시간으로 약 570년이 걸릴 거예요. 엔진 중앙 구체 내부만 이 시간 팽창의 영향을 받고, 바깥쪽 구조는 정상 시간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신단과 흑공의 상호작용이 시간 팽창을 중앙부에 국한시키고 있어요."
"그 비율이 어떻게 계산된 거지?" 진이 물었다.
"차원 물리학의 기본 원리예요," 세이트가 설명했다. "차원 간 에너지 밀도 차이가 정확히 1만 배일 때, 시간 팽창 계수는 그 제곱에 비례하게 됩니다. 즉, 10,000²에 가까운 1억 배의 시간 팽창이 발생하는 거죠. 희망엔진이 차원벽에 접근할 때,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과 유사한 '차원 경계 임계점'에 도달하면서 이런 시간 팽창이 일어났어요."
"차원 에너지 측정은?" 진이 물었다.
"흥미롭게도, 엔진은 여전히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어요," 세이트가 설명했다. "희망과 절망, 차원계와 차원계의 차이를 이용한 무한 동력이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인스 박사의 원리가 작동하는 증거예요."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네가 정말 용감했어. 자이로스코프 링들 사이로 뛰어들다니."
세이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용감했다기보다는 무모했죠. 하지만 그덕분에 살아남았어요. 제가 중앙 구체의 신단 크리스탈에 닿은 순간, 시간 팽창이 일어났고... 저는 그 영향권 밖으로 튕겨 나왔죠."
"그리고 반과 나머지 사람들은 그 안에 갇혔어," 진이 덧붙였다.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과 비슷한 현상이야. 그들에게는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거의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거지."
두 사람은 멈춰버린 자이로스코프를 지켜보았다. 중앙 구체 내부에서, 반 디렉터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는 제어 콘솔 앞에 서 있었고, 그의 표정은 경이와 공포가 뒤섞인 것처럼 보였다.
"반은 지금 무엇을 경험하고 있을까요?" 세이트가 물었다.
"우리가 측정한 바로는, 희망엔진 내부에서 반과 그의 팀은 지금 차원 이동 과정 중에 있을 거야," 진이 설명했다. "그들은 아마 끝없는 터널을 통과하는 듯한 경험을 하고 있거나, 혹은 다른 우주의 장관을 목격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들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세이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정말로 다른 포도알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누가 알겠어? 그들만이 알 뿐이지. 우리야 후손들이나 알게 되겠지만."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말을 이엇다.
"만일 실패하고 세계가 찢어진다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600년도 안되는거야."
세이트는 마치 유리창 너머로 수족관을 들여다보듯 희망엔진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 반 디렉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는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고 있을까? 아니면 그에게는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세이트는 손을 유리에 대고 속삭였다. "당신은 끝내 경계를 넘었어요, 반."
전철망 너머로 희망엔진은 콜롯세움 연구소의 중앙에 고요히 떠 있었다. 미세하게 회전하는 링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보였고, 그 중심의 구체 안에 갇힌 사람들은 영원의 한 순간에 갇힌 채 시간의 흐름과 동떨어져 있었다. 큰 제스처로 연구원들을 독려하는 반의 실루엣이 보였다.
안전철망 너머로 유리벽 안의 희망엔진은 콜롯세움 연구소의 중앙에 고요히 떠 있었다. 미세하게 회전하는 링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보였고, 그 중심의 구체 안에 갇힌 사람들은 영원의 한 순간에 갇힌 채 시간의 흐름과 동떨어져 있었다.
동백국. 수평연호 38년. 1년 후.
콜롯세움은 이제 국제적인 연구기관이 되었다.
세이트는 콜롯세움의 수석 연구원으로서 자신의 사무실 창문을 통해 방문객들이 안전 철망 너머로 희망엔진을 바라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사무실에서는 동백국의 아름다운 해안선과 함께 원형 극장처럼 생긴 콜롯세움의 전체 윤곽을 볼 수 있었다.
"최신 연구보고서 준비됐어요?" 진이 사무실에 들어오며 물었다.
세이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데이터 패드를 건넸다. "네, 와치엔진 6호의 최종 테스트 결과입니다. 희망엔진 기술을 완전히 안정화시키는 데 성공했어요."
지난 일 년간, 세이트와 진의 연구팀은 희망엔진의 원리를 소형화한 와치엔진 개발에 성공했다. 이 새로운 엔진은 흑공정제용액만을 사용하여 차원 채굴 현상 없이 안전하게 에너지를 추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본체에서 온 최신 데이터예요," 세이트가 또 다른 패드를 건네며 말했다. "희망엔진의 시간 팽창 비율이 9천만 대 1로 변화했어요. 엔진이 점차 안정화되고 있는 것 같아요."
진은 데이터를 살펴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570년이 아니라..."
"...513년이 걸릴 거예요," 세이트가 말을 마쳤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3분이지만요."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방 안에 흐르는 긴장감은 거의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요?" 세이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진은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반 디렉터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천재였어. 어쩌면... 그는 정말로 포도알의 경계를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몰라."
세이트는 책상 위에 놓인 오래된 사진 한 장을 집어들었다. 그것은 콜롯세움이 처음 동백국에 도착했을 때의 모습이었다. "513년... 그때는 우리 모두 사라지고 없을 테니까요. 그들이 도착했을 때 누가 그들을 맞이할까요?"
"미래의 누군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을 거야," 진이 말했다. "우리가 남긴 기록들이 보존될 테니까."
세이트는 창가로 걸어가 멀리 바다 위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햇빛이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면서,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 마치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처럼 보였다.
"새로운 수평선을 향해," 세이트가 중얼거렸다.
"그래," 진이 그녀의 곁에 서서 동의했다. "우리는 결코 알 수 없겠지만, 그들은 지금 새로운 수평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거야. 그리고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콜롯세움의 중심에서, 희망엔진은 여전히 미세하게 회전하며 시간의 틈새 속에서 자신만의 여정을 계속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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