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 86년 겨울, 흰 눈이 내리는 저녁이었다.
병실의 창문으로 서울의 불빛이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여러 대사관 건물들의 다채로운 조명이 눈 내리는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특히 난초국 대사관 타워의 초록빛 레이저가 밤하늘을 가르는 모습이 선명했다.
명광의 침대 주변으로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그의 자녀들, 손주들, 그리고 두 살배기 증손녀 마리아까지. 모두의 표정에는 슬픔과 경외심이 공존했다. 그들은 명광이 단순한 노인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산증인임을 알고 있었다.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투명한 주사기를 들고 다가왔다. 그 안에는 옅은 푸른빛을 띠는 액체가 담겨 있었다.
"회광 주입을 시작합니다," 간호사가 조용히 말했다. "효과는 약 두 시간 지속됩니다."
명광의 큰아들 성민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이렇게 하셔야 합니까? 아버지 상태가..."
"내 뜻이다." 명광의 목소리는 약했지만 의외로 또렷했다. "마지막으로 맑은 정신으로 이야기하고 싶구나."
간호사가 푸른 액체를 정맥에 주입하자, 명광의 눈빛이 점점 선명해졌다. 몇 년 동안 희미하게 빛나던 그의 눈동자가 순간 젊은 시절의 총명함을 되찾았다.
명광의 손자 윤우가 조심스럽게 오래된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구식 영화상 녹화기가 들어 있었다. 이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옛 기록 장치였다.
"할아버지, 구하기 정말 어려웠어요," 윤우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다행히 골동품 수집상에게서 찾았습니다."
명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윤우. 옛날 방식으로 기록하고 싶었단다."
윤우가 녹화기를 작동시켰다. 기계가 부드럽게 윙윙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명광은 곁에 앉아있는 마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작은 아이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증조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성민의 아내가 마리아를 명광의 침대 가장자리에 앉혔다.
명광은 마리아의 작은 손을 잡고, 갑자기 목소리를 바꾸어 어린아이처럼 말했다. "할아버지, 세상은 왜 이렇게 됐어요?"
그리고는 자신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우리 마리아. 할아버지가 대답해주마."
방 안의 사람들이 미소를 지었다. 슬픔 속에서도 따스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명광은 마리아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됐냐고? 그건 아주 긴 이야기란다."
그는 영화상 녹화기를 힐끗 확인한 후,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내가 태어난 것은 수평력이 시작되기 전, 지금으로부터 아흔여섯 해 전이다. 우리 집안은 동백국의 서해안, 작은 어촌 마을에 살았지. 그때는 세상이 지금과 완전히 달랐단다..."
명광의 목소리가 점점 강해졌다. 그의 기억은 선명하게 과거로 돌아갔다.
"내가 열 살 되던 해, 그러니까 수평 1년이라고 부르게 된 그 해에 세상이 변했단다."
명광의 기억은 그 운명의 날, 바닷가 마을의 아침으로 돌아갔다.
열 살 명광은 해변에서 조개를 줍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바다에 나간 아버지와 형들을 기다리며, 어머니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바다는 이상하리만치 잔잔했다. 물결 하나 일지 않는 바다는 마치 검은 거울처럼 하늘을 반사하고 있었다.
한 어부가 갑자기 소리쳤다. "저기 봐! 저게 뭐지?"
명광은 고개를 들어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먹구름처럼 보였다. 하지만 구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검은 수증기 같았다. 점점 더 짙어지며, 마치 검은 벽처럼 지평선 전체를 뒤덮었다.
"도망쳐! 모두 도망쳐!" 누군가 소리쳤다.
마을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해변에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명광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검은 수평선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치 악몽 같았다.
그때였다. 발 아래의 모래사장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점들이었다가, 점점 더 커지고 밝아졌다. 해변 전체, 심지어 바다와 접하는 모든 땅에서 하얀 빛이 솟구쳐 올랐다.
"마을 뒤편의 서낭당에서도, 우리 집 근처 오래된 느티나무에서도, 심지어 마을의 주춧돌과 같은 평범한 돌에서도 하얀 빛이 솟아올랐어. 후에 그것을 '신기'라고 불렀지. 신단에서 나오는 기운이라는 뜻이었단다."
명광은 정신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검은 수평선이 해안에 닿는 순간, 하얀 빛과 충돌하며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마치 두 파도가 부딪히는 것처럼, 검은 수증기와 하얀 빛이 맞부딪히며 붉은 가루가 바다 위로 흩뿌려졌다.
"그것이 바로 '오주사'였어. 흑공과 신기가 만나 서로 상쇄되며 남긴 붉은 가루였지."
검은 수평선과 하얀 빛의 충돌은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해가 질 무렵, 검은 수평선은 물러갔고, 하얀 빛도 잦아들었다. 하지만 마을은 이미 많은 것을 잃었다. 여러 집들이 무너졌고, 특히 신기가 솟아오른 장소 주변에서는 '신폭'이라 불리는 폭발이 일어나 피해가 컸다.
"그날 밤, 우리는 라디오를 통해 전 세계가 '검은 수평선'의 영향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우리처럼 하얀 빛의 보호를 받지 못했어. 전 세계가 혼돈에 빠졌지만, 동백국만은 상대적으로 살아남았단다."
어린 명광은 그날 밤, 세상이 영원히 변해버렸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것이 바로 '수평 1년',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었다.
"검은 수평선 사건 이후, 동백국은 큰 혼란에 빠졌단다. 주변국들과의 연락이 끊기고, 국내에서도 신기와 흑공의 영향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 그런 와중에 수평 4년, 내가 열네 살이던 해에 새로운 황제가 즉위했어."
명광의 가족은 지방 호족의 일원으로서, 의례적으로 광제의 즉위식에 초대받았다. 새로운 황제는 젊었고 야망에 찬 모습이었다. 그는 흑공의 재앙 이후 일어난 혼란을 수습하고, 신기(神氣)의 연구를 통해 동백국을 더 강하게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궁정은 흑공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듯 화려했다. 하지만 명광은 참석자들의 긴장된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모두가 불안정한 세계에서 새로운 질서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광제를 보았어.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 지도자였지. 하지만 그의 눈에서 나는 어떤 불안을 느꼈던 것 같아. 마치...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단다."
명광은 잠시 말을 멈추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에는 옛 기억의 그림자가 어렸다.
"그때는 몰랐지. 그가 우리 모두를 배신할 거라는 것을."
"광제 즉위 후 3년 남짓 지났을 때였지. 수평 7년 봄날, 내가 열일곱이 되었던 해. 그때 우리 마을에 '흑선'이 나타났단다."
새벽녘, 명광은 아버지의 어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다 안개가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은 때였다. 갑자기 아버지가 손짓했다.
"저것 좀 봐라!"
명광은 고개를 들어 바다를 바라보았다. 안개 사이로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섬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움직이고 있었다. 안개가 걷히면서 그 정체가 드러났다.
검은 배였다. 아니, '배'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대했다. 마치 떠다니는 성채 같았다. 그것은 여러 개의 굴뚝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해안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배의 옆면에는 알 수 없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서국의 흑선이다!" 한 어부가 소리쳤다.
흑선은 마을 앞 바다에 정박했다. 배에서는 동백국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한 사람들이 내렸다. 그들은 이상한 복장을 하고 있었고, 손에는 명광이 본 적 없는 도구들을 들고 있었다.
"서국인들이 왜 여기에 온 거야?" 명광이 물었다.
아버지는 표정이 굳어졌다. "검은 수평선 이후 세계는 변했다. 소문에 따르면 다른 나라들은 우리보다 훨씬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나라가 살아남은 이유를 알고 싶어할 거야."
서국인들은 마을의 지도자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그들은 동백국 말을 조금 할 줄 알았지만, 대부분은 통역사를 통해 소통했다. 그들은 특히 '신기' 현상에 크게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그 후로도 여러 번 찾아왔다. 점점 더 많은 흑선이 우리 해안에 도착했고, 서국인들은 우리의 신단과 신기를 연구하기 시작했지. 그때는 몰랐지만, 그것이 나중에 동백국의 운명을 바꾸게 될 거였어."
병실에서 마리아가 조용히 잠들었다. 명광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가족들은 여전히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수평 16년, 내가 스물여섯 되던 해에 우리 마을은 공식적으로 개항되었다. 서울에서 관리들이 내려와 선포식을 열었고, 여러 서국의 상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었지."
명광의 가족은 이 변화를 통해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 그의 아버지는 서국 상인들과의 거래를 통해 사업을 확장했고, 명광 역시 서국어를 배워 통역 역할을 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 중 하나가 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좋아 보였다. 서국의 기술은 놀라웠고, 그들이 가져온 상품은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었지. 자동도구, 자동차, 전화기...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물건들이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명광은 개항의 어두운 면도 보기 시작했다. 서국인들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했고, 특히 신단과 신기에 대한 연구라는 명목으로 마을의 성스러운 장소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마을 뒤편의 오래된 서낭당이 서국 연구팀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목격했어. 그들은 서낭당 아래에서 신단의 흔적을 찾고 있다고 했지. 그들이 땅을 파헤치자, 작은 신폭이 일어나 두 명의 서국인이 다쳤어."
명광은 점점 더 서국인들의 행동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들은 동백국을 도우러 온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온 것 같았다.
"개항은 우리에게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우리의 정체성을 조금씩 잃게 만들었어. 서국의 옷을 입고, 서국의 음식을 먹고, 서국의 방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지. 그리고 그때는 몰랐지만, 우리 땅에서 서국이 뭔가를 찾고 있었어... 그것이 바로 '진성단'이었단다."
명광은 잠시 눈을 감고 과거의 기억에 잠겼다. 방 안은 조용했고, 오직 영화상 녹화기의 부드러운 윙윙 소리만이 들렸다.
"수평 27년, 내가 서른일곱 살 되던 해에 우리 마을에 영화상 극장이 들어섰다. 바로 지금 이 녹화기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기술이지. 서국의 기술로 만들어진 영화상 카드는 움직이는 그림을 보여주는 놀라운 물건이었단다."
명광은 영화상 극장 앞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서 있었다. 그는 이제 마을에서 잘 알려진 상인이자, 서국 거래의 중개인이었다. 극장 앞에는 다양한 서국 영화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사람들은 호기심에 차서 줄을 서 있었다.
"처음 본 영화는 서국의 도시를 보여주는 것이었어. 거대한 건물들, 빠른 자동차들, 밝은 불빛... 그때 사람들은 모두 감탄했지. 하지만 나는 그 영상 속에서 뭔가 불편함을 느꼈어. 그들의 도시에는 신단이 없었거든.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우리와는 너무 달랐어."
그는 잠시 병실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밤하늘에는 여전히 대사관들의 조명이 빛나고 있었다.
"내 아들 성민이 열세 살 때였어." 명광이 성민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 아이가 서국식 옷을 입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깊은 불안을 느꼈지. 우리의 다음 세대가 자신의 뿌리를 잊어버리는 것이 두려웠단다."
성민은 고개를 숙였다. 그 오래된 기억이 그에게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듯했다.
"그 시절, 서국의 영향력은 이미 전국으로 퍼져있었어. 서울에는 여러 대사관이 세워졌고, 각 지방에도 서국의 세력이 미치고 있었지. 특히 두 나라, 난초국과 대령국은 우리 땅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단다."
명광은 미리 메모해둔 타블릿을 바라보며 기억을 계속 더듬어갔다.
"수평 31년, 내가 마흔한 살 되던 해의 일이었다. 사업차 내륙 지방을 여행하던 중, 나는 우연히 작은 마을의 오래된 신단을 발견했지."
명광이 그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을 사람들은 조용한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그들은 오래된 돌무더기 앞에 모여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지역의 신단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돌무더기에서는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호기심에 의식에 참여했지. 마을 무당이 신단 앞에서 춤을 추고 제사를 지내는 동안, 나는 갑자기 강한 에너지를 느꼈어. 마치... 신단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어."
의식이 끝난 후, 명광은 마을 장로에게 신단에 대해 물었다. 장로는 이 신단이 수백 년 전부터 이곳에 있었으며, 검은 수평선 사건 이후 빛을 내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광제 정부는 신단 숭배를 미신으로 취급하여 억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어. 신단은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니라, 우리 역사와 정체성의 일부라는 것을. 하지만 동시에 우리 정부, 그리고 서국인들은 신단을 그저 연구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었지."
그날 밤, 명광은 신단이 있는 장소에서 혼자 명상했다. 그는 희미한 빛 속에서 무언가를 보았다고 확신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시현이었을까, 단순한 환상이었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 순간부터 명광은 신단과 깊은 연결을 느끼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우리 지역의 신단들에 대해 더 깊이 조사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서국인들, 특히 난초국과 대령국이 특정 신단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그들은 소위 '진성단'이라 불리는 것을 찾고 있었어."
명광은 쉬어가려는 듯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회광의 효과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고, 그의 눈빛은 또렷했다.
"수평 34년, 내가 마흔네 살 되던 해에 가장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이 바로 '진신단출'이었지."
난초국과 대령국은 오랫동안 동백국 내에서 영향력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두 나라 모두 신기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진성단'이라 불리는 특별한 신단을 찾기 위해 동백국 전역을 조사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우리는 중부 지방에서 큰 폭발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처음에는 단순한 사고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곧 그것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두 나라의 연구팀은 결국 '굿뉴스' 지역에서 진성단을 발견했다. 하지만 누가 그것을 통제할 것인지를 두고 충돌이 일어났고, 결국 무력 분쟁으로 번졌다. 교전 중에 진성단이 파괴되면서 '진신단출' 현상이 발생한 것이었다.
"우리 마을에서도 그 영향을 느꼈어. 갑자기 모든 신단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기 시작했고, 연쇄적인 신폭이 일어났지. 우리 집 근처의 오래된 당산나무에서도 하얀 빛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어. 그 폭발로 우리 집의 절반이 파괴되었지."
전국적으로 수천 개의 신단에서 동시에 신단출이 일어나면서, 동백국은 큰 혼란에 빠졌다.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이 발생했고, 많은 지역이 파괴되었다.
"그날 밤, 나는 가족을 데리고 산속으로 피난을 갔어. 그곳에서 우리는 밤하늘을 물들이는 수많은 폭발을 목격했지. 마치 하늘에 수천 개의 하얀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어.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끔찍했어."
다음 날, 광제 정부는 이 사건이 서국의 불법적인 신단 연구로 인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동백국 전역에서 분노가 폭발했고, 서국인들을 향한 적대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나는 그날 결심했어. 더 이상 서국과 거래하지 않기로. 우리 가족이 축적한 부는 이미 충분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어. 나는 우리 땅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진신단출의 참화는 동백국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것은 동쟁(東爭)이라 불리게 될 저항 운동의 시작이었다.
"진신단출 사건 직후, 동백국 전역에서 서국인들을 추방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자발적인 시위로 시작되었지만, 곧 조직적인 저항 운동으로 발전했지. 그것이 바로 '동쟁'의 시작이었단다."
명광은 45세의 나이에 결정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동쟁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고 알렸다.
"아내는 격렬히 반대했지. 우리는 이미 상당한 부를 축적했고,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나는 진신단출로 인해 모든 것이 변했다고 설명했지.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에 관한 것이었으니까."
명광은 가문의 부를 저항군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밀리에 자금과 물자를 제공했지만, 점차 그의 역할은 더 커졌다. 그는 저항군 내에서 전략가이자 조직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나는 중부 지방으로 이동해서 거기서 저항군에 합류했어. 아내와 아이들은 친척들과 함께 안전한 지역으로 보냈지. 그때 성민이는 열다섯 살이었어. 눈물을 참으며 나를 바라보던 아들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단다."
명광은 성민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눈에는 깊은 사랑과 미안함이 어려 있었다.
"아버님..." 성민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명광은 동쟁에 참여한 첫 해를 분명히 기억했다. 저항군은 초기에 체계적인 조직이 아니었다. 그저 분노한 시민들, 신단을 지키려는 신사(神士)들, 그리고 광제 정부의 무능에 실망한 군인들의 느슨한 연합체였다.
"우리는 처음에 게릴라전을 펼쳤어. 서국 연구 시설을 습격하고, 무기 수송을 방해하는 등의 활동을 했지. 나는 주로 정보와 물자 조달을 담당했어. 상인으로서의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됐지."
저항군의 규모는 빠르게 커졌다. 특히 진신단출로 인해 피해를 입은 지역의 사람들이 많이 합류했다. 광제 정부는 처음에는 저항군을 진압하려 했지만, 점차 서국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며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갔다.
"1년이 지나자, 저항군은 이미 상당한 세력으로 성장했어. 우리는 '동쟁'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뭉쳤지. 동방의 전쟁, 그리고 동백국을 위한 쟁취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은 이름이었지."
명광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저항군에 투자했다. 한때 그의 가문이 소유했던 어선들은 이제 물자를 수송하는 데 사용되었고, 그의 사업 연결망은 정보를 수집하는 네트워크가 되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더 중요한 것을 얻었어. 목적을 위해 싸우는 동지들, 그리고 우리 땅을 지킨다는 자부심이었지."
"수평 39년, 내가 마흔아홉 살 되던 해는 동쟁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였어. 서국, 특히 난초국과 대령국은 대규모 군대를 동백국에 파견해 저항군을 진압하려 했지."
명광은 이제 저항군의 주요 전략가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그는 서국의 무기와 기술에 대항하기 위한 새로운 전술을 개발하는 데 참여했다.
"우리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신기였어. 서국인들은 신기를 연구하려 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지. 특히 신단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질 때, 우리는 종종 신기의 도움을 받았단다."
저항군은 특수한 '신기 유도' 기술을 개발했다. 특정한 의식을 통해 소규모 신단출을 일으키고, 그 에너지를 서국군에 대항하는 데 사용했다. 이러한 전술은 초기에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곧 서국도 이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았다.
"어느 날, 우리는 중부 지방의 요충지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였어. 우리 측에는 약 천 명의 저항군이 있었고, 서국 측에는 그 두 배 이상의 병력이 있었지. 그들은 최신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고, 심지어 '흑공 폭탄'이라는 새로운 무기도 사용했어."
그 전투는 저항군에게 큰 패배였다. 명광은 겨우 탈출했지만, 많은 동료들을 잃었다. 그는 부상을 입은 채로 산속에 숨어 몇 주를 보냈다.
"그때 처음으로 의심이 들기 시작했어. 우리가 정말 이길 수 있을까? 서국의 힘은 너무 강했고, 우리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명광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회복 후 다시 저항군에 합류했고, 더 은밀한 작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충돌보다는 정보전, 심리전에 집중했다.
"우리는 서국 내부의 갈등을 이용하기 시작했어. 난초국과 대령국은 표면적으로는 연합했지만, 실제로는 서로 경쟁하고 있었거든. 우리는 그들 사이의 불화를 부추기는 정보를 퍼뜨렸지."
이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서국 연합군 내부에서 갈등이 심화되면서, 저항군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동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동백국 사람들은 광제가 무언가 큰 결단을 내릴 것을 기대했어. 저항군조차도 마음속으로는 황제가 나서서 이 전쟁을 끝내길 바랐지. 하지만 우리는 그가 어떤 결단을 내릴지 상상도 못했단다."
"수평 45년, 내가 쉰다섯 살이 되던 해에 우리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그 끔찍한 일이 일어났단다."
동쟁이 십 년 넘게 계속되면서, 동백국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도시들은 파괴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저항군은 여전히 싸우고 있었지만, 점점 더 지쳐가고 있었다.
명광은 그날, 저항군 본부에서 긴급 회의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한 전령이 뛰어들어왔다.
"광제가 사라졌습니다! 궁정 전체가 비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어떻게 황제가 그냥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내 더 많은 보고가 들어왔다. 서울의 사대문 안, 궁정구의 모든 사람들이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이다.
"우리는 즉시 사람들을 파견해 확인했어.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어. 궁정은 텅 비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에는 수많은 시체가 남겨져 있었단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그 시체들이 바로 사라진 사람들의 것이라는 점이었다. 마치 그들의 영혼만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이후 조사에서 광제가 서국의 차원 이동 기술을 이용해 자신과 궁정 사람들의 '의식'만을 다른 차원으로 옮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은 '광제사직계'라는 곳으로 도망친 거야. 자신들의 육체는 버리고, 의식만 가져간 거지. 그것도 동백국의 금으로 만든 '광전'이라는 특수한 화폐를 대량으로 소비하면서."
이 소식은 동백국 전역을 절망에 빠뜨렸다. 황제, 그들이 충성을 바치고 의지했던 지도자가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친 것이다. 게다가 시체에서 나는 악취가 서울 전체를 뒤덮었다.
"그날 밤, 나는 평생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어. 그것은 분노의 눈물이었지. 우리가 그토록 싸워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누구를 위한 싸움이었을까?"
광제의 망명 이후, 서국군은 더욱 강력하게 공세를 펼쳤다. 저항군은 지도자를 잃은 채 혼란에 빠졌고, 많은 이들이 희망을 잃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싸웠어. 이제는 황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와 이 땅을 위해서.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동쟁의 의미였단다."
"광제의 망명 후 3년 동안, 서국들은 서로 동백국의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싸웠어. 그들 사이의 전쟁은 우리와의 전쟁보다 더 치열했지. 수평 48년, 내가 쉰여덟 살 되던 해에 그들은 마침내 합의에 도달했단다."
명광은 잠시 숨을 고르며 병실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다채로운 대사관 불빛들이 그의 이야기에 묘한 배경이 되었다.
"10개의 서국들이 모여 '와치벨 협약'이라는 협정을 체결했어. 그들은 동백국을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각자 통치하기로 했지. 이것이 바로 '대사만국 시대'의 시작이었단다."
그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지만, 회광의 효과로 여전히 또렷했다.
"다음 해, 수평 49년부터 동백국은 공식적으로 FEWK로 불리기 시작했어. 'Far Eastern White Kingdom', 동방의 하얀 나라라는 뜻이었지. 그들은 우리의 이름마저 바꿔버렸어."
난초국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지역을, 대령국은 남부 지방을, 다른 국가들은 나머지 지역을 나누어 차지했다. 각 나라는 자신들의 대사관을 통해 해당 지역을 통치했다.
"이제 우리는 '대사만국'에 살게 된 거야.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여러 외국의 지배를 받는 분열된 땅. 그것은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우리에겐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어."
명광은 저항군이 해산된 후 한동안 방황했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잃은 상태였다. 가족은 흩어졌고, 재산은 모두 동쟁에 투자되었으며, 그가 알던 세상은 사라졌다.
"나는 몇 년 동안 여러 지역을 떠돌아다녔어. 때로는 일용직 노동자로, 때로는 행상으로 살았지. 그 과정에서 변화하는 FEWK를 목격했단다."
대사만국 시대의 초기는 혼란스러웠지만, 사람들은 점차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갔다. 각 대사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관할 지역을 개발했고, 새로운 기술과 문화가 유입되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완전히 패배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깨달았지. 동백국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그 정신은 살아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방식으로 신단을 모시고, 우리의 언어를 사용하고, 우리의 전통을 지키고 있었으니까."
명광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기 시작했다.
"수평 54년, 내가 예순셋 되던 해에 나는 마침내 정착하기로 결심했어. 긴 방랑 끝에 돌아온 곳은 다름 아닌 내 고향 근처였지."
명광의 고향 마을은 이제 완전히 변해 있었다. 옛 어촌은 난초국이 관할하는 현대적인 항구 도시가 되어 있었다. 높은 빌딩들이 들어서 있었고, 새로운 기술들이 일상에 스며들어 있었다.
"도시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지만, 바다는 여전히 그대로였어. 나는 바닷가 근처의 작은 집을 구해 정착했지.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단다."
명광은 어업으로 돌아갔다. 이제 그는 신식 어선을 살 돈이 없었기에, 작은 목선으로 혼자서 고기를 잡았다. 생활은 어려웠지만, 그는 자유로웠고 평화로웠다.
"그 무렵, 내가 오랫동안 찾던 가족들의 소식을 듣게 되었어. 아내는 몇 년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아들 성민은 살아있었고, 난초국 관할 지역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단다."
명광은 아들을 찾아갔다. 처음 만남은 어색했다. 성민은 이제 서른넷의 성인 남자였고, 아내와 두 아이가 있었다. 그는 대사관 소속 회사에서 통역사로 일하고 있었다.
"성민은 처음에는 나를 원망했어. 가족을 버리고 동쟁에 참여한 것, 그리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된 것에 대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도 이해하기 시작했지. 나는 그와 그의 가족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기 시작했어."
병실에서 성민은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오래된 상처가 아물어가는 기억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명광은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 갔다. 70대가 된 그는 이제 마을에서 존경받는 어르신이 되었다. 젊은이들이 그를 찾아와 옛 이야기를 들었고, 그는 기꺼이 그들에게 동백국의 역사와 전통을 들려주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웠어. 세상은 계속 변한다는 것, 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의 정신, 우리의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희망은 어떤 시대에도 살아남는다는 것을."
대사만국 시대가 지속되면서, FEWK는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했다. 신기와 흑공 연구는 계속되었고, '러너'라 불리는 새로운 직업군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차원 간을 여행하며 정보와 물자를 운송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러너들을 이해하지 못했어. 그들은 마치 '광제의 배신'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점차 깨달았지. 그들은 도망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계를 연결하고 있다는 것을."
"수평 74년, 내가 여든넷 되던 해에 나는 더 이상 혼자 살 수 없게 되었어. 나이가 들면서 몸이 많이 약해졌거든. 그래서 아들 성민의 가족과 함께 살기 시작했지."
명광의 손자 윤우는 이제 스물여섯의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윤우는 종종 내게 동백국과 동쟁에 대해 물었어. 요즘 젊은이들에게 그것은 그저 역사책에나 나오는 이야기였지만, 윤우는 달랐어. 그는 진정으로 알고 싶어 했지."
명광은 손자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전수했다. 특히 신단과 신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동백국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쳤다.
"어느 날, 윤우가 나에게 중요한 소식을 전했어. 그가 러너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다는 거였지. 처음에는 놀랐지만, 곧 이해했어. 이 새로운 세대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다리를 놓고 있었으니까."
병실에서 윤우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명광은 손자의 결정을 지지했다. 그는 윤우에게 자신이 간직해온 마지막 보물을 건네주었다. 그것은 작은 신단 조각이었다. 검은 수평선 사건 당시 그의 고향 해변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돌이 아니야. 우리의 역사와 정신이 담긴 것이지. 네가 어디로 가든, 이것이 너를 인도할 거야."
시간이 더 흐르면서, 명광은 더 많은 변화를 목격했다. FEWK는 점점 더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었다. 대사만국 체제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 영향력은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아흔 살이 되었을 때, 손자 윤우의 결혼식에 참석했어. 그날 나는 깨달았지. 우리의 투쟁, 우리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패배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세상을 위한 씨앗을 뿌렸던 거야."
윤우의 아내는 대령국 혈통을 가진 여성이었다. 과거의 적국이 이제는 가족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명광은 그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받아들였다.
"세상은 항상 변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변하지 않아. 우리는 여전히 동백국의 후손들이고, 그 정신은 계속 이어질 거야."
실내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이 명광의 얼굴을 비추었다. 창밖으로는 새로운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방 안의 가족들은 침묵 속에서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영화상 녹화기는 여전히 작동 중이었다.
"그래서... 그것이 내가 살아온 이야기란다. 동백국의 마지막 밤부터 대사만국의 시작까지. 내 삶은 변화의 시대와 함께했지."
명광은 자고 있는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두 살배기 증손녀는 지금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마리아, 나는 네게 선물을 주려고 해. 내가 가진 마지막 재산이지."
명광은 약한 목소리로 윤우에게 말했다. "서랍에서 서류를 가져오렴."
윤우는 침대 옆 서랍에서 노란 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오래된 부동산 증서가 들어 있었다.
"이것은 내가 동쟁 전에 샀던 교외의 작은 땅과 건물이야.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이것만은 내 이름으로 남아 있었지. 난초국 법률에 따라 이제 이 재산은 마리아의 것이다."
가족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명광이 그런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왜 마리아에게요?" 윤우의 아내가 물었다.
명광은 미소를 지었다. "그 아이가 특별한 운명을 가졌다고 느껴. 언젠가 그곳에서 중요한 일이 일어날 거야."
회광의 효과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명광의 눈빛이 점점 흐려졌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힘이 있었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계속했다. "내가 너희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는 한때 궁정구 사람들이었다. 광제와 함께했지. 하지만 왕은 우리를 버렸고, 우리도 왕을 버려야 했어. 이제 새로운 시대는 민중의 것이다. 너희, 그리고 너희의 아이들이 만들어가야 할 시대란다."
명광의 목소리는 점점 약해졌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강했다.
"동백국은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너희 안에 살아있다. 절대 잊지 마라. 우리는 흑공에서 살아남았고, 신기의 힘을 알게 되었으며, 큰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여기 있다."
창밖으로 서울의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대사만국의 건물들 사이로 해가 떠오르며, 새로운 날을 알리고 있었다.
"새로운 수평선을 향해 나아가거라. 과거에 묶여 있지 말고, 미래를 만들어 가거라."
명광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의 입가에는 평화로운 미소가 맴돌고 있었다.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떠났음을 알았다. 동백국의 마지막 밤을 목격했던 사람, 한 시대의 증인이 마침내 영원한 안식을 찾은 것이다.
잠에서 깬 마리아는 할아버지의 침대 옆으로 다가가 그의 차가운 손을 만졌다. 아직 이해할 수 없는 눈을 가진 마리아. 파운더즈의 마지막 생존자, 러너 크리스의 엄마. 레드 몽키즈 클럽의 주인 그 마리아.
창밖으로 동백국의 마지막 밤이 끝나고, 새로운 시대의 첫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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