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는 슈트의 칼라를 세웠다. 아, 이런 날씨엔 역시 칼라를 세우는 게 좋지. 빅포레스트 거리의 네온이 그녀의 얼굴을 푸르게 물들였다. 깜박이는 불빛, 새빨간 '카페' 간판, 그리고 비 온 뒤 미끄러운 아스팔트. 퍽이나 낭만적인 밤이다.
"대령대사국 의뢰는 항상 돈이 쏠쏠해." 그녀는 중얼거렸다. "난초대사국의 '거인' 프로젝트라... 뭐, 별것 있겠어? 또 무슨 강화인간이겠지."
러너 경력 3년 차, 카페에서는 그녀를 가장 유능한 러너로 꼽았다. 시에나는 작은 자부심을 느꼈다. 흔적 없는 마무리, 그거 참 좋은 별명이지. 가끔은 '유령'이라고도 불렸는데, 그건 좀 오글거리긴 했다. 지나친 미화랄까.
"정보 수집에, 이번엔 '조치'까지 해달라니. 뭐, 괜찮아. 내가 뭐 못해본 게 있나?"
평범한 창고처럼 위장되어 있었다. 얼마나 뻔한지. 난초대사국은 항상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비밀을 숨겼다. 그건 마치... 글쎄, 누구나 가장 먼저 확인할 곳에 숨기는 것과 같았다. 누가 창고를 의심하겠어?
몸을 낮추고 카메라 사각지대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이제 본능이 되어 있었다. 좌로 한 발, 우로 두 발, 그리고 카메라가 돌아가는 3초 틈에 달려가기. 마치 무언가의 안무처럼. 시에나는 이 춤을 사랑했다.
보안 시스템을 우회하는 것은? 아이가 퍼즐 맞추기처럼 쉬웠다. 아주 쉬웠다.
"그리고... 열렸다! 짜잔—" 그녀는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마지막 보안 문을 통과하자 실험실이 나타났다. 시에나는 눈을 크게 떴다.
"와... 이건 예상 밖인데."
실험실 중앙에는 거대한 계란판 같은 구조물이 있었다. 엄청나게 크고, 수백 개의 공간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각 공간에는 둥근 형태의 무언가가 담겨 있었고, 푸른빛 조명 아래, 그것들은 꿈틀거렸다. 마치 거대한 양식장 같았다. 아니면 도시 전체를 폭파시킬 폭탄 창고 거나.
시에나는 호기심에 다가가 주변 시스템에 접속했다. 화면에 흐르는 정보를 스크롤하며 읽었다.
"'거인 프로젝트'... '최신 생체병기'... '특수 용액에 담그면 급속 성장'... 흠, 역시 무기였네. 뭐, 예상대로야. 생체?"
시에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의뢰의 '조치' 부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녀는 여태 어떤 무기든 파괴해 본 적이 있었다. 미사일, 로봇, 약물, 무엇이든. 하지만 이건...
"이것들을 다 파괴해야 하는 건가? 끔찍하게 많네."
그녀는 무수히 배치된 것들을 둘러보았다. 수백 개의 작은 공간, 수백 개의 생명체—아니, 무기. 무기일 뿐이다. 생체. 움직인다.
"내가 할 수 있어." 그녀는 결심했다. "이건 그냥 무기야. 다른 무기들과 다를 게 없어. 전쟁에 쓰일 무기일 뿐이야." 그렇게 되뇌며 그녀는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녀는 소음총을 꺼냈다. 시에나는 소음총의 감촉을 좋아했다. 차갑고 단단한 그립, 완벽한 균형감. 그것은 그녀의 손에 딱 맞았다.
"어서 끝내고 선술집에 가자. 오늘 특별 맥주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첫 번째 공간을 향해 겨누었다. 방아쇠를 당겼다.
탕-
얇은 보호막이 깨지며 액체가 쏟아졌다. 생명체는 바닥에 떨어졌다. 시에나는 이것이 이렇게 쉬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당황했다. 바닥에 떨어진 생명체가 움직였다. 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팔다리를 움직였다. 마치 아기 같았다. 햄프티 덤프티를 닮은, 짧은 팔다리가 달린 동그란 생물체.
"이건..."
다시 소음총을 들어 올려 겨누었다. 살짝 손이 떨렸다.
탕-
생명체의 표면이 찢어졌다. 두꺼운 붉은 액체와 회색빛 뇌수가 사방에 튀었다. 시에나의 얼굴로 튀었다.
"윽!"
그녀는 반사적으로 물러섰다. 입 안에 비린 맛이 퍼졌다. 이건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너무 달랐다.
"이건... 아냐, 이건 그냥..."
시에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감정을 억누르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첫 번째는 항상 어렵다. 두 번째부터는 쉬워질 거야.
"이건 그냥 무기야. 무기."
두 번째 공간을 향해 쏘았다. 또 다른 붉은 액체와 회색빛 물질이 사방에 튀었다. 그녀의 검은 슈트가 얼룩졌다. 역겨웠다.
세 번째, 네 번째...
시에나는 리듬을 찾았다. 세 번째는 얼굴을 찡그리며. 네 번째는 시선을 돌리며. 다섯 번째는 숨을 들이마시며.
바닥은 점점 끈적해졌다. 부츠 밑에서 '철벅' 소리가 났다. 처음엔 소름 끼치던 소리. 이제는 그저 소리일 뿐.
여섯 번째 공간에서 떨어진 생명체들. 그녀를 피해 도망치려 했다. 작은 팔다리로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일곱 번째를 향해 총을 겨눴다. 멈췄다. 바닥의 생명체 하나가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겁에 질린 눈.
시에나는 총을 내렸다. 손이 떨렸다.
무기일 뿐이야. 그저 무기.
손이 점점 더 떨렸다. 땀이 배어 나왔다. 왜 이번엔 이렇게 힘든 걸까?
그때 마음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알이야. 거인의 알."
그 단어를 여러 번 되뇌었다. 알은 아직 생명이 아니다. 잠재적 생명일 뿐. 닭장에서 계란을 가져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사람들은 매일 계란을 깨뜨린다. 그저... 알일 뿐.
열 번째 공간까지 파괴한 후, 시에나는 잠시 멈췄다. 바닥의 광경이 혼란스러웠다. 여기저기 깨어진 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일부는 여전히 움직였다. 고통스러워 보였다.
"이건..." 그녀는 그림자에게 말하듯 물었다. "이것들이 정말 살아있는 건가?"
"그래, 실험체." 시에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 무기로 만들어진 실험체."
그러나 의문이 들었다. 확신이 필요했다.
"물질계의 생명체는 죽을 때 21g이 감소한다던데..."
그녀는 바이트 계산기를 꺼내 살아있는 알을 스캔했다.
화면에 숫자가 나타났다. "23742190000B"
"이게 뭐야? 그냥 데이터 크기잖아.”
"바보 같은 짓이야..." 시에나는 중얼거렸다. "21g을 어떻게 확인하지? 이런 큰 알에서 그 차이를 어떻게 알아?"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이 질문 자체가 무의미했다. 시간 낭비였다.
"그래도 이건 알이야. 폭탄이 아기 모양이라고 해서 아기가 되진 않아."
그녀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열한 번째 공간부터 파괴해 나갔다. 이번에는 더 빨리, 더 기계적으로.
스무 번째를 파괴했을 때, 무언가 달라졌다.
"노른자가 흘러나온다. 걸쭉한 점성을 가지고 있다."
바닥은 끈적한 액체로 가득했다. 부츠가 미끄러운 소리를 냈다. 온통 계란 노른자와 흰자로 가득했다.
공간을 겨누고, 발사하고, 바닥에 떨어진 실험체를 다시 사격하는 일련의 과정. 반복적인 기계적 움직임. 정서적 반응은 제거되었다.
시에나의 슈트는 유체로 뒤덮였다. 얼굴에도 계란물 범벅이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이물질을 제거하지 않았다. 작전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 공간에 도달했다. 시에나의 감정은 거의 소멸해 있었다. 196번째, 197번째, 198번째... 남은 건 하나.
알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 마지막 알은 달랐다. 작은 손을 뻗어 그녀의 부츠를 잡았다.
시에나는 멈췄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손가락이 그녀의 부츠를 붙잡고 있었다. 따뜻했다. 알은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 균열이 생겼다.
시에나는… 눌렀다. 생각을. 기어이.
전쟁은 감정이 아니라 질서로 구동된다. 전쟁은 논리로 수행된다. 국가는 효율로 유지된다. 사적인 동정은 공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요소이다. 정서적 유연성은 작전 수행의 약점이다. 질서가 혼란에 우선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거인' 프로젝트의 산물들은 실험체에 불과하다. 목적을 위해 제작된 도구이며, 도구는 사용되거나 폐기될 수 있다. 군사적 환경에서 이들은 무기로 기능한다. 무기가 적용되기 전에 제거하는 것은 작전의 논리적 연장선이다. 작전은 개인의 윤리적 판단과 무관하다. 국가적 기관, 조직적 구조, 시스템적 판단이 우선시 된다. 개인은 이를 수행할 뿐이다. 형태적 특성이 인간을 연상시킨다는 사실은 무의미하다. 적대적 요소가 동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실험체는 실험체로 분류되어야 한다. 그 존재적 가치를 측정할 21g의 차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으며, 존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작전적 관점에서 중요도는 낮다. 중요한 것은 오직 작전의 완수이다....
시에나는 마지막 실험체를 관찰했다. 여전히 그녀의 부츠에 접촉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소음총의 총구를 내렸다.
탕-
시에나는 손에 묻은 유체 물질을 제거하고, 무기를 재장전했다.
시에나는 임무를 완료하고 철수했다. 난초국의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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