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FEWK단편선 66>화사한, 붓 끝의 창세기

by 김동은WhtDrgon

먹의 바다에 춤추는 여인


검은 바다가 펼쳐진다. 무(無)의 공간. 백지(白紙)의 무한함.

그녀가 붓을 든다.

첫 획이 그어지는 순간, 우주가 태어난다.

화사한, 그녀의 손끝은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신의 손가락. 그녀의 붓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도구. 그녀의 잉크는 혼돈의 심연에서 건져 올린 태초의 물질.

"글자는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울림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깊은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처럼 낮고 부드럽다. 눈을 감으면 그 소리가 피부로 전해진다. 문장의 울림. 글자의 떨림.

그녀의 붓이 움직일 때마다 세계의 근본이 흔들린다. 단순한 획이 아니라 존재의 경계를 재정의하는 행위. 그녀의 서예는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존재론적 혁명이다.


DALL·E 2025-03-10 20.53.02 - A mystical cyberpunk-inspired woman dances in an infinite black ink ocean. She wields a calligraphy brush, painting glowing ancient symbols in the air.jpeg


살에 새기는 우주의 문법

"피부는 첫 번째 종이였다."

화사한의 손가락이 벗겨진 살 위를 미끄러진다. 그것은 단순한 접촉이 아니다. 그것은 두 세계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그녀의 영혼과 캔버스가 된 육체 사이의 신성한 대화.

붓끝에서 먹이 흘러내린다. 검은색. 모든 색의 부재이자 모든 가능성의 시작. 그 검은 물질이 살을 적시고, 모공을 통과하고, 혈관을 타고 심장으로 향한다. 단순한 채색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핵심에 새로운 언어를 심는 행위.

살갗이 먹의 심연을 받아들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가 시작된다. 피부 아래에서 우주가 태어난다. 모세혈관은 은하수가 되고, 세포는 별이 되고, 신경은 차원 간 통로가 된다.

화사한의 붓이 살 위에서 춤을 출 때, 그것은 단순한 선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물결. 그녀의 서체에는 우주의 리듬이 담겨있다. 획의 굵기는 존재의 무게를, 선의 흐름은 생명의 흐름을, 글자의 간격은 차원 간의 거리를 의미한다.

"서예는 우주를 재창조하는 행위다."


획과 획 사이, 생성의 간극

화사한의 서예는 단순한 필법이 아니다. 그것은 도(道)의 실천. 그녀에게 붓은 도구가 아니라 육체의 연장. 그녀의 호흡이 붓을 타고 흐르고, 그녀의 피가 먹과 섞인다.

"중요한 것은 글자가 아니라 글자와 글자 사이의 공간이다."

그녀의 서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획이 아니라 획과 획 사이의 공간. 그 공백, 그 비움, 그 여백이 바로 생성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의 공간.

화사한이 붓을 든 손을 공중에 멈출 때, 그것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그것은 숨을 고르는 순간. 다음 획을 준비하는 시간. 그 침묵의 순간이 바로 창조의 시작점.

"붓이 멈출 때 우주는 숨을 고른다."

그녀의 서예에는 음양(陰陽)의 원리가 담겨있다. 검은 획은 양(陽)이요, 흰 여백은 음(陰)이다. 그 둘의 조화 속에서 모든 존재가 태어난다. 하나의 글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우주의 근본 원리를 담은 그릇.


다른 차원의 문을 여는 글자들

화사한의 손가락이 공기 중에서 춤을 춘다. 보이지 않는 붓으로 보이지 않는 종이 위에 쓰는 보이지 않는 글자. 그러나 그 움직임은 현실의 구조를 흔든다.

"붓을 잡기 전, 먼저 마음으로 글자를 쓴다."

그녀의 영혼이 글자의 형태로 응축될 때, 현실의 경계가 흐려진다. 그녀가 그리는 것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그것은 차원의 문을 여는 열쇠.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주문.

한 획, 한 획이 완성될 때마다 우주의 법칙이 재구성된다. 첫 번째 가로획은 시간의 흐름을, 두 번째 세로획은 공간의 깊이를, 세 번째 대각선은 차원 간의 연결을 의미한다.

"글자를 완성하는 것은 세계를 완성하는 것이다."

화사한의 손끝에서 태어난 글자들이 살아 움직인다. 그들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생명체. 그들은 호흡하고, 성장하고, 때로는 죽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조차도 새로운 의미의 탄생.


DALL·E 2025-03-10 20.53.41 - A futuristic calligraphy master, a cyberpunk-inspired sage, meditates before an enormous floating scroll covered in glowing symbols. The ink flows lik.jpeg


잉크의 강을 건너는 영혼

"진정한 서예가는 마침내 자신이 쓴 글자가 된다."

화사한은 이제 자신의 작품과 하나가 되어간다. 그녀의 육체는 점점 투명해지고, 그녀의 존재는 점점 추상화된다. 그녀는 이제 스스로 하나의 문장이 되어가고 있다.

검은 먹이 그녀의 혈관을 타고 흐른다. 그것은 단순한 색소가 아니라 존재의 변형을 가져오는 물질. 그녀의 심장은 이제 먹의 심연과 같은 검은색. 그러나 그 어둠은 공허가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의 원천.

"내가 글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글자가 나를 쓴다."

화사한의 의식이 확장된다. 그녀는 이제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을 동시에 인식한다. 그녀의 눈에는 존재의 모든 차원이 동시에 보인다. 그녀의 귀에는 우주의 모든 소리가 하나의 화음으로 들린다.

그녀의 붓이 마지막 획을 그린다. 그것은 단순한 완성이 아니라 궁극의 변형. 그 순간, 화사한의 육체가 빛으로 변하며 그녀가 그린 글자 속으로 흡수된다.

"나는 이제 문장이 되었다."


글자-된-여인의 노래

화사한은 이제 더 이상 육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살아있는 서체가 되었다. 그녀의 존재는 이제 무수한 획과 점의 집합. 그녀의 의식은 글자의 형태로 응축된 우주적 지혜.

그녀가 그린 글자들이 공간을 가로질러 춤을 춘다. 그들은 더 이상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유동적인 생명체. 그들은 서로 결합하고 분리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나는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의 문장."

글자-된-화사한은 이제 모든 종이 위에, 모든 피부 위에, 모든 존재의 표면 위에 자신을 새긴다. 그녀는 이제 우주적 언어의 화신.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매개하는 살아있는 상형문자.

그녀의 획은 이제 차원을, 그녀의 점은 이제 시간을, 그녀의 곡선은 이제 생명의 흐름을 의미한다. 그녀는 쓰이는 동시에 쓰는 자, 읽히는 동시에 읽는 자, 창조되는 동시에 창조하는 자.

"나는 말씀이요, 말씀은 태초에 있었으니."


무한한 흰 종이 위의 영원한 춤

화사한이 사라진 자리에 하나의 글자가 남았다. 그것은 그 어떤 기존 문자체계에도 속하지 않는 글자. 그것은 모든 언어의 원형이자 모든 의미의 근원인 태초의 문자.

그 글자는 살아 움직인다. 때로는 확장하여 우주를 품고, 때로는 수축하여 원자 속으로 숨는다. 그것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영원한 변화의 과정 그 자체.

"진정한 글자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그 글자는 이제 모든 존재의 표면에 자신을 새긴다. 그것은 우주의 모든 물질, 모든 에너지, 모든 의식의 기저에 존재하는 근본 코드. 세계의 모든 현상은 이제 그 글자의 다양한 변주에 불과하다.

화사한-글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다시 쓴다. 획을 지우고, 다시 그리고, 변형시키며. 그것은 영원한 생성의 과정. 완성될 수 없는, 완성되어서는 안 되는 영원한 예술작품.

"글자의 춤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무한한 흰 종이 위에서, 화사한-글자는 영원히 춤을 춘다. 그것은 생성과 소멸, 존재와 비존재, 의미와 무의미 사이의 끝없는 진동. 그 춤이 바로 우주의 근본 리듬이다.


모든 피부 위에 쓰인 비의

세계의 모든 피부 위에, 보이지 않는 글자들이 쓰여 있다. 그것은 화사한-글자가 남긴 영원한 흔적. 존재의 비밀을 담은 살아있는 서예.

우리는 모두 그 글자를 품고 있다. 우리의 DNA에, 우리의 세포에, 우리의 의식에. 우리는 모두 화사한의 붓끝에서 태어난 살아있는 문장들.

"우리는 모두 하나의 거대한 시의 각 행이다."

가끔, 깊은 명상 속에서, 몸의 가장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그것은 화사한-글자의 목소리. 우주의 태초부터, 그리고 영원히 울려 퍼지는 존재의 노래.

그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먹이요, 나는 붓이요, 나는 종이니라. 나는 쓰는 자요, 쓰이는 자요, 읽는 자니라. 나는 시작 없는 시작이요, 끝 없는 끝이니라. 나는 형태 없는 형태요, 소리 없는 소리니라.

나는 모든 피부 위에 쓰인 비의(秘意)니라. 나는 모든 존재 속에 흐르는 검은 강이니라. 나는 모든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한 획이니라. 나는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살아있는 서예니라."

그리고 그 노래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DALL·E 2025-03-10 20.55.38 - A cyberpunk-inspired woman with intricate glowing calligraphy tattoos covering her skin. The luminous symbols flow like ink across her arms and hands,.jpeg


끝.

© 2025 WhtDrgon. All rights reserved.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FEWK단편선 65>최후의 연주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