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우아하게 움직였다. 투명한 홀로그램 인터페이스 위에서 기억의 단편들이 빛나는 영상 조각으로 떠다녔다. 그녀는 전문가의 정확성으로 손짓을 하며 끊어진 기억 조각들을 다시 연결했다. 그녀가 착용한 얇은 장갑에는 미세한 센서가 있어 가장 섬세한 움직임까지 포착했다. 직접 접촉은 위험했다. 타인의 기억이 당신의 것과 섞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단순히 연결이 끊어진 게 아니라 완전히 손상되었네요." 시에나가 말했다.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눈동자에 심어진 디지털 렌즈가 활성화되어 기억의 또 다른 층위를 스캔했다. 렌즈는 기억 데이터 안의 숨겨진 패턴을 인식하고, 끊어진 신경 연결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주었다.
"얼마나 걸릴까요?" 마담 루네가 물었다. 그녀는 품위 있는 상류층 여성으로, 노마드 구역에서는 보기 드문 존재였다. 그녀의 옷은 힙스의 최신 유행을 따랐고, 그녀의 피부는 값비싼 유전자 치료의 흔적을 보여주었다.
"일주일 정도요. 그보다 빨리 하면 기억이 망가질 수 있어요. 기억 재봉은 인내를 요구하는 작업입니다."
마담 루네는 참을성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주일이라... 많은 돈을 지불할게요. 그러니 최선을 다해주세요."
시에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작업실은 힙스의 고급 기억 네트워크에 비하면 초라했지만, 노마드 구역에서는 최고급 시설이었다. 벽에는 다양한 색상의 홀로그래픽 기억 데이터가 저장된 작은 큐브들이 정렬되어 있었고, 천장에서는 희미한 빛을 내는 데이터 스트림이 투사되어 흘러내렸다. 한쪽 벽면에는 거대한 스크린이 있어 기억 조각들을 확대해서 볼 수 있었다.
마담 루네가 떠난 후, 시에나는 그녀가 남긴 기억 캡슐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작은 크리스탈 큐브 안에 갇힌 푸른빛 데이터였다. 시에나는 조심스럽게 캡슐을 인터페이스에 연결했다. 기억이 방 안으로 흘러나와 공중에 영상으로 투사되었다.
눈부신 햇살, 바다 내음, 웃음소리...
시에나는 기억 인터페이스를 조작하여 더 깊이 들어갔다. 그녀의 손짓 하나로 시간이 앞뒤로 움직였다. 마담 루네의 기억은 20년 전의 여름날로 거슬러 올라갔다. 바닷가에서의 휴가였다. 영상은 희미했고 중간중간 끊겼다. 그런데 기억 속에 낯선 인물이 보였다. 아니, 낯설지 않았다.
시에나는 숨을 멈췄다. 영상 속의 여자아이는... 그녀 자신이었다.
열두 살 정도의 소녀, 창백한 피부와 까만 머리카락. 의심할 여지 없이 어린 시절의 시에나였다. 영상 속에서 소녀는 웃고 있었고, 마담 루네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불가능해..."
시에나는 기억 영상을 중지했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마담 루네를 기억하지 못했다. 평생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루네의 기억 영상 속에 그녀가 있는 걸까?
다음 날, 시에나는 동료 테이오에게 이 이상한 발견에 대해 이야기했다.
테이오는 그녀의 작업실 근처에서 저가 기억 복제품을 파는 가게를 운영했다. 그는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기억 기술자였지만, 거리의 지식은 어느 전문가 못지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힙스의 내부 사정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다.
"힙스에서 일했다고 했지?" 테이오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경계심이 묻어 있었다.
"그랬어. 고급 네트워크에서 최고급 기억 재봉사였어. 하지만 왜 쫓겨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착각일 수도 있어." 테이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기억 큐브 하나를 손가락 사이로 튕기며 놀았다. "기억 재봉사들이 흔히 겪는 일이야. 다른 사람의 기억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게 돼. 정신의 방어 기제 같은 거지."
"내 모습이 확실해." 시에나는 고집했다.
"그리고 루네는 우리가 예전에 만난 적이 있다고 했어. 그녀의 말투에는 무언가 숨겨진 게 있었어."
관심없다는듯 적당히 흘리려던 테이오는 시에나의 단호함에 뭔가 결심한듯 주변을 살펴본 후 목소리를 낮췄다. "뉴로모더들, 기억 모더들은 위험해. 특히 에녹이라는 편집자는 더더욱. 그자는 기억을 가지고 장난치는 걸 즐기는 사람이야."
"에녹?" 그 이름을 들으니 시에나의 머릿속에 희미한 이미지가 스쳤다. 차가운 눈을 가진 노인의 얼굴.
"정식 직함은 베러시밀러튜더라고 해. 힙스의 모더들이 즐기고 만드는 모든 기억은 그의 손을 거쳐. 그것들을 모두 모아 인과율 문제가 나지 않도록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고, 재구성하고, 때로는 완전히 새로 만들기도 해. 그런 힘을 가진 사람을 찾아가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야."
테이오의 눈에 경계심이 어렸다. 그는 주변을 둘러본 후 목소리를 낮췄다. "그냥 넘어가. 너무 깊이 파고들지 마. 네가 힙스에서 쫓겨난 것도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무슨 이유인지 기억나지 않아. 그게 문제야."
"어쩌면 기억하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시에나는 테이오의 조언을 무시하고 마담 루네의 기억을 계속 탐색했다. 그녀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밤을 새우며 기억 영상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더 많은 단서를 발견했다. 그녀와 루네가 함께 있는 순간들. 웃음, 대화, 심지어 다툼까지. 모든 영상에서 그들은 매우 친밀해 보였다. 하지만 시에나에게는 이런 기억이 전혀 없었다.
하나의 기억 영상은 특히 그녀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것은 그녀와 마담 루네가 힙스의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장면이었다. 루네는 말했다: "넌 내게 소중한 사람이야, 비올라."
비올라? 누가 비올라지?
시에나는 비올라라는 단서를 찾으며 며칠 동안 마담 루네의 기억 조각들을 분류하고 연결했다. 그 과정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장면이 있었다. 힙스의 고급 네트워크 건물 89층, 북동쪽 코너의 사무실. 그곳에는 창가에 서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에녹," 시에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리고 그 이름을 속삭였다. 그 순간 강한 두통이 그녀를 덮쳤다.
루네의 기억 속에서, 에녹은 한 여성과 대화하고 있었다. 그 여성은 시에나와 닮았지만, 그녀가 아니었다. "비올라, 너는 특별해. 네 능력은 우리 프로젝트에 매우 중요해."
시에나는 그 장면을 반복해서 재생했다. 비올라라는 이름이 그녀에게 강하게 울렸다. 마치 누군가가 그녀의 진짜 이름을 부른 것처럼.
"비올라..."
시에나는 그 이름을 속삭였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통스러워했다. 눈앞에 또 다른 기억의 파편이 번쩍였다.
창고같은 방에 사람들이 검은 가운을 입고 있다. 그중 한 사람이 주사기를 들고 다가온다. "비올라, 이건 네 안전을 위한 거야."
혼란스러워진 시에나는 자신의 과거를 더 깊이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힙스에서 일했던 기억이 있었다. 고급 네트워크에서 최고의 기억 재봉사로 일했던 시절. 그러나 어째서인지 쫓겨나게 되었고, 이후 그녀의 존재는 기록에서 삭제되었다. 시스템 상에는 그녀가 일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의 기억에는 커다란 공백이 있었다.
"에녹을 만나야 해." 시에나는 테이오에게 말했다. 그녀의 눈에는 결연한 의지가 빛났다. "루네의 기억 속에서 그와 비올라라는 여자가 대화하는 장면을 봤어. 그 여자는 나랑 닮았어. 그리고 내 기억 속에도 에노크가 있어. 그는 내가 누구인지, 왜 힙스에서 쫓겨났는지 알고 있을 거야."
테이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미쳤어? 베러시밀러튜더를 직접 만나겠다고? 그는 위험한 사람이야. 그가 원하면 네 모든 기억을 지울 수 있어."
"내가 지금 가진 기억이 진짜인지도 의심스러워. 에녹만이 답을 가지고 있어."
"그 답이 네가 원하는 게 아닐 수도 있어. 힙스 뉴로모더들에서는 기억 조작이 일상이야. 부자들은 자신의 불편한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기억을 사기도 해.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휴가, 만난 적 없는 연인과의 데이트, 심지어는 가짜 학위 취득 기억까지."
"나는 진실을 알아야 해."
테이오는 갑자기 소매를 걷어올렸다. 그의 팔에는 흉터가 있었다. "이건 내가 네트워크에서 받은 거야. 그들은 내 기억을 조정했고, 실패했을 때 그냥 내던졌어. 수많은 사람들이 에녹의 조정 대상이었어. 그중 다수는 돌아오지 못했고."
"그럼 난 더더욱 가야 해. 나도 그의 조정 대상이었을지 모르잖아."
시에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날 밤, 그녀는 힙스로 향했다. 고급 기억 네트워크는 거대한 은빛 건물 안에 있었다. 외벽은 끊임없이 색을 바꾸는 반투명 유리로 되어 있었다. 한때 그곳은 그녀의 일터였다. 아니, 정말 그랬던가?
경비원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분명 알아봤지만 모른 척했다. 그들의 눈에는 인식과 두려움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시에나는 자신의 옛 출입 카드를 사용해 몰래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에녹의 사무실이 있는 곳을 알고 있었다. 89층, 북동쪽 코너.
엘리베이터는 그녀의 카드를 인식했지만, 경고 메시지를 표시했다. "알 수 없는 접근 시도. 계속하시겠습니까?"
시에나는 '예'를 눌렀다.
에녹은 창가에 서 있었다. 그는 시에나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그의 사무실 벽은 모두 투명한 스크린이었고, 수많은 기억 데이터 스트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쪽에는 커다랗게 방문자인 시에나의 기록이 펼쳐져 있었다.
"돌아왔군."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기계적이었다. 그는 70대쯤 되어 보였지만, 실제 나이는 아무도 몰랐다. "다시 기억을 되찾기 시작했나?"
"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세요."
에녹은 웃었다. 그의 웃음은 따뜻함이 없었다. "네 과거? 네 기억이 얼마나 네 것인지 확신해?"
"제 것이 아니라면 누구의 것이죠?"
"그게 바로 네가 여기서 쫓겨난 이유야. 넌 경계를 넘었어. 기억 사이의 경계, 정체성 사이의 경계."
에녹은 시에나에게 작은 크리스탈 큐브를 건넸다. 그것은 마담 루네의 것과 비슷했지만, 더 깊은 빨간빛을 띠고 있었다.
"이걸 보면 알게 될 거야. 하지만 경고하지. 한번 본 것은 잊을 수 없어."
시에나는 조심스럽게 크리스탈을 자신의 인터페이스에 연결했다. 기억이 방 안으로 쏟아져 나왔다. 영상들이 그녀를 둘러싸며 공중에 떠올랐다.
그녀는 힙스의 최고 기억 재봉사였다. 그러나 그녀가 일한 곳은 단순한 기억 재봉 네트워크가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기억을 재봉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고, 기존의 기억을 지우고, 심지어 한 사람의 기억을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는 일까지 했다.
그녀의 이름은 시에나가 아니었다. 비올라였다.
비올라는 마담 루네의 딸이었다.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가문의 외동딸. 그러나 비올라는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특별한 능력—타인의 기억을 완벽히 재구성하는 능력—을 사용해 네트워크에서 일했다.
그리고 어느 날,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비올라는 실수로 자신의 기억과 의뢰인의 기억을 섞었다. 그 결과,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혼란스러워했고, 정신적 붕괴를 겪었다.
마담 루네는 딸을 구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비올라의 손상된 기억 대신,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심어주는 것. 그렇게 '시에나'가 태어났다. 가난한 노마드 구역 출신의 재봉사. 그곳이라면 네트워크의 감시에서 벗어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영상 속에서 비올라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주변에는 여러 명의 기술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녀의 머리에 장치를 부착했다. 마담 루네가 울면서 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시에나는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그녀의 온몸이 떨렸다.
"나는... 비올라인가요?"
에녹은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은 아니야. 넌 시에나야. 비올라는 사라졌어."
"거짓말이에요! 나는 기억해요. 내가 비올라였다는 걸!"
"그건 방금 내가 심어준 기억이야. 넌 비올라가 아니야. 시에나도 아니야."
"그럼 나는 누구죠?" 시에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에녹의 얼굴에 슬픔이 스쳤다. "넌 조정이었어. 우리는 누군가의 손상된 기억이 세계의 인과율에 영향을 줄 때 땜빵.. 아니 새로운 정체성을 주입하는 조정을 했지. 비올라는 그 조정의 대상이었고, 시에나는 그녀에게 주입된 정체성이었어."
"그럼 지금의 나는...?"
"넌 편집오류야. 잘 망가진 덕분에 인과율 오류 가능성은 없어서 방치된 것 뿐이지. 시에나라는 정체성은 완전히 자리잡지 못했고, 비올라의 기억이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어. 네가 이곳으로 돌아온 것도 그 때문이지. 하지만 괜찮아. 그렇게 살아도 큰 문제는 없을거야."
시에나—아니, 그녀가 누구든—는 절망에 빠졌다. "마담 루네는요? 그녀는 정말 비올라의 어머니인가요?"
"아니. 그녀도 또 다른 조정 대상이야. 그녀의 기억도 조작됐어. 그녀는 네가 자신의 딸이라고 믿도록 만들어졌지. 실제 루네는 오래전에 사망했어. 지금의 '루네'는 이식된 기억을 가진 복제야."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시에나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이 진실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왜 이런 조정을 한 거죠?"
"기억은 돈이야. 기억은 권력이야. 완벽한 기억을 만들 수 있다면, 완벽한 인간을 만들 수 있지. 완벽한 정치인, 완벽한 예술가, 완벽한 과학자... 모두 설계된 기억으로 만들 수 있어. 하지만 돈이면 다될까? 아니지. 핍진성, 정합성. 인과율. 그 중요한 것을 내가 조정하고 있다는 것이지. 안그랬으면 세상은 혼란에 빠졌을꺼야."
시에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럼 이곳에 오는 모든 의뢰인들도...?"
"대부분은 단순한 고객이야. 하지만 일부는 우리의 조정 대상이지. 그들은 모르지만, 그들의 기억은 우리가 만든 거야. 그들의 정체성도."
시에나는 노마드 구역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작업실은 이제 낯설게 느껴졌다. 벽에 걸린 기억 큐브들, 그것들은 진짜였을까? 아니면 그녀의 환상? 혹은 누군가 심어준 가짜 기억?
테이오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아냈어?" 그가 물었다.
시에나는 웃었다. 쓰라린 웃음이었다. "알아냈어... 나는 누구도 아니야. 내 기억은 모두 거짓이야. 나는 비올라라는 여자의 몸에 심어진 가짜 인격이야. 그리고 비올라도 조정 대상이었어."
테이오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중요한 건 지금이야. 네가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지금 네가 누구인지가 중요해."
"하지만 지금의 나도 거짓이라면?"
"모든 사람의 기억은 어느 정도 거짓이야. 우리는 모두 자신의 기억을 끊임없이 편집하고 재구성해. 그게 인간이야." 테이오가 쓰게 웃었다. "이 구역의 사람들 중 절반은 가짜 기억을 산 사람들이야. 진짜 휴가를 갈 돈이 없으니, 휴가 기억을 사는 거지. 진짜보다 훨씬 싸거든. 근데 그거 알아? 그 휴가지도 엉성한 복제품인거? 지금도 네트망에 빅힐즈 최고의 호텔 캘드론즈 야경 사진 자랑 천지지만 그 곳 망한지 10년도 넘었다는거 알아? "
시에나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노마드 구역의 거리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럼 누가 진짜 나지? 비올라? 시에나? 아니면..."
"네가 지금 누구라고 느끼는지가 중요해."
그날 밤, 시에나는 마지막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자신의 작업실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기억 큐브를 꺼냈다. 작은 크리스탈 안에 담긴 희미한 빛. 그녀의 삶, 그녀의 정체성.
시에나는 큐브를 인터페이스에 연결했다. 기억들이 방 안을 떠돌았다. 영상들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고급 네트워크에서의 시절, 비올라로서의 삶, 마담 루네와의 추억, 시에나로서의 경험들... 모두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움직여 기억들을 재배열했다. 벽의 영상들이 그녀의 지시에 따라 분류되고, 결합되고, 때로는 삭제되었다. 그녀는 기억들 사이를 걸어다녔다. 그것들은 마치 거울 같았다. 각각의 거울에는 다른 버전의 그녀가 비쳐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녀는 거울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선택했다.
그녀는 모든 기억 영상을 모아 새로운 데이터 스트림을 만들었다. 비올라도, 시에나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그녀는 그 데이터로 자신을 다시 프로그래밍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춤을 추듯 움직이며 기억의 조각들을 재봉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눈을 떴다. 그녀의 작업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벽에는 다양한 색상의 기억 큐브가 정렬되어 있었고, 천장에서는 희미한 빛을 내는 데이터 스트림이 투사되어 흘러내렸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마담 루네가 들어왔다. 그녀의 표정은 불안해 보였다. "기억 재봉사님, 제 기억을 복구해주실 수 있나요? 최근에 제 과거에 대한 의문이 생겼어요. 미스... "
그녀는 미소 지었다. "물론이죠. 마담 루네."
마담 루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 죄송해요. 절 아시나요? 전에 온 적이 있었나요? 왠지 낯익은 느낌이 드네요."
"아니요, 처음 뵙겠습니다."
그녀는 장갑을 끼고 마담 루네의 기억 큐브를 받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우아하게 움직이며 홀로그램 인터페이스 위에 기억 영상들을 펼쳤다.
거울을 보니, 그곳에는 낯선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비올라도 아니고, 시에나도 아닌 얼굴. 그녀는 그 얼굴에 미소 지었다.
"기억을 재봉하는 건 위험할 수 있어요," 그녀는 말했다. "타인의 기억이 당신의 것과 섞일 수 있거든요."
마담 루네는 불안해 보였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새로운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때로는 그것이 최선일 수도 있어요. 불완전한 과거보다 완벽한 허구가 더 나을 때도 있으니까요."
그녀의 눈동자에 디지털 렌즈가 반짝였다. 그 안에는 무수한 기억의 조각들이 담겨 있었다. 비올라의 것, 시에나의 것, 그리고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누군가의 것. 그녀는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제 이름은 아이리스입니다," 그녀는 말했다. "기억의 여신. 그리고 당신은 무지개의 여신을 하세요. 기억의 여신의 어머니."
그녀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춤을 추며, 마담 루네의 기억 영상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뒤틀린 진실과 아름다운 거짓 사이의 경계에서, 그녀는 새로운 현실을 짜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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