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상 징후는 사소했다. 너무나 사소해서 민서는 그것을 기록하지도 않았다.
감시 화면 23번에 나타난, 1.7초 지속된 미세한 파동. 차원계 감시 프로토콜에 따르면 5초 미만의 단일 파동은 기록할 필요가 없다. 아마 장비 오류일 것이다. 민서는 그저 그날의 보고서에 "이상 없음"이라고 적었다.
"당신이 일정한 시간을 스스로 정하여 가능한 규칙적으로 보고서를 제출할 것. 이 주기는 당신의 항상성을 측정하는데 사용되므로 가능한한 일정한 시간을 유지할 것. 차원계 균열 의심 시 즉시 보고할 것."
그것이 E-12 감시소에서 민서의 임무였다. 왜 감시 규칙이 이렇게 막연한지 의아했지만, 그녀는 스스로 6시간 간격의 보고 일정을 정했다.
하난초대사국 소속 대기업 (주)노바코그에서 탁월한 성적으로 발탁된 그녀가 미모대사국 콜롯세움 연구소에 파견된 지 일주일째였다. 서민구 동네 전체가 그녀의 성공을 축하해주었다. 골목 어귀에는 "우리 동네의 자랑, 민서를 응원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렸고, 향우회에서는 10년 후부터 납입될 기부금 서약서까지 보내왔다. 동네 사람들의 기대를 등에 진 압박감이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래도 미소를 지었다. 이 기회가 너무 소중했으니까.
'조개' 프로토콜의 감시자로서 첫 주는 지루했다. 감시 화면에는 끝없는 암흑만이 펼쳐졌고, 가끔씩 희미한 파동이 일었을 뿐이다.
키쿠이는 대부분 침묵했다. 차원계 감시소의 중앙 관제 AI인 키쿠이는 정해진 시간에 보고서를 요청하고, 민서가 식사를 할 시간이라고 알려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상호작용을 하지 않았다. 때로는 그 기계적 목소리가 너무 냉랭해서 민서는 자신이 이곳에 완전히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당신을 선택한 것을 축하해야 해요."
그것이 파견 첫날, 감독관 최연주가 민서에게 한 말이었다. 엘리트 가문 출신인 최연주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감시소를 소개했다. 그녀의 말투에는 항상 무언가 숨겨진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서민구 출신으로 이곳까지 오다니, 정말 놀라워요. 그것도 '조개' 감시자로. 민서 씨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에요. 6개월이면 모든 가능성이 다 관찰될 거예요. 지루하겠지만 잘 부탁해요."
민서는 최연주의 칭찬이 썩 달갑지 않았다. '조개'라는 코드명은 무언가 모욕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이 임무는 자신의 경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6개월의 감시 임무만 마치면 의지체 복제 라이센스를 받게 될 것이다. 서민구 출신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기회였다.
"수질 검사에 조개를 사용하듯, 우리는 차원계 감시에 인간을 사용합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인간만이 차원계 균열을 감지할 수 있어요. AI도, 의지체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최연주의 설명은 그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민서는 더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감시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첫 주는 그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두 번째 이상 징후는 첫 번째보다 조금 더 뚜렷했다. 열흘째 되는 날, 감시 화면 17번에서 민서는 희미한 형체를 보았다. 사람의 형상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7.3초 지속되었으므로 기록해야 했다.
"키쿠이, 화면 17번에 이상 징후 감지. 녹화하고 중앙 서버에 보고해줘."
"녹화 요청 접수. 분석 중..." 짧은 침묵이 흘렀다. "감지 오류. 패턴 매칭 실패. 현재 센서 데이터에서 이상 징후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잠깐, 내가 분명히 봤어."
"민서님의 관측 데이터는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 데이터 불일치로 인해 프로토콜에 따라 기록을 삭제합니다."
민서는 눈을 비볐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어쩌면 자신의 착각일 수도 있다. 열흘 동안 좁은 감시소에 갇혀 끝없는 어둠을 바라보다 보면 환각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선명했다. 마치... 누군가가 그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민서는 처음으로 악몽을 꾸었다. 꿈에서 그녀는 감시 화면 속에 있었다. 바깥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속삭였다.
"곧 알게 될 거야."
민서는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다. 방 안은 완전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침대 옆 시계는 새벽 3시 2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는 공포에 떨며 다시 잠들지 못했다.
"전임자에 대해 궁금하지 않으세요?"
연구소에서 파견된 한지우가 격주로 방문하는 날이었다. 한지우는 민서와 비슷한 나이의 여성으로, 외부 세계의 소식을 전해주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그녀는 민서에게 물품을 보급하고 시스템 점검을 위해 방문했지만, 항상 잠깐의 대화를 나누곤 했다.
"정식 인수인계는 없었어요. 기록만 봤어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소문을 내요. 이 초소에는 항상 감시자가 있었지만, 아무도 전임자를 본 적이 없다고... 마지막 근무일에 뭔가... 이상한 일이 생긴다고도 하고요."
한지우의 목소리에 미묘한 떨림이 있었다. 민서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요?"
"아니, 그냥... 소문이 있어서요. 전임자가 마지막에 이상한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자신이 감시 화면에서 '누군가를 봤다'고요."
민서는 숨을 들이켰다. 자신이 본 형체를 떠올렸다. 그녀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태블릿을 꽉 쥐었다.
"그게 문제였나요?"
한지우는 주변을 살폈다. "이곳은 차원계 균열을 감시하는 곳이잖아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곳에서 정말 감시하는 것이 뭔지 의문을 가져요."
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서둘러 물품 정리를 마쳤다. 민서는 그녀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확신했다.
한지우가 떠난 후, 민서의 머릿속에는 질문이 가득했다. 그날 저녁, 그녀는 중앙 컴퓨터에 접속해 전임자의 기록을 찾아보려 했다.
"전임자의 기록을 검색합니다."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키쿠이의 기계적인 목소리가 응답했다.
"내가 현재 E-12 감시소의 담당자인데 권한이 없다니?"
"해당 정보는 삭제되었습니다."
"누가 삭제했죠?"
"정보가 없습니다."
민서는 불안감을 느꼈다. 데이터가 삭제된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날 밤, 그녀는 다시 악몽을 꾸었다. 이번에는 더 선명했다. 감시 화면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다음 날, 민서는 세 번째 이상 징후를 목격했다. 이번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감시 화면 23번, 17번, 5번에서 동시에 나타난 형체. 각각 15.2초 지속되었고, 형태는 분명히 사람의 실루엣이었다.
"키쿠이, 감시 화면 23, 17, 5번에 이상 징후 감지. 녹화하고 보고해."
"녹화 요청 접수. 분석 중..." 이번에는 평소보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시스템 불일치 감지. 데이터 재분석 중... 결론: 확인되지 않는 이상 징후입니다. 민서님, 72시간 동안 계속된 감시로 인한 피로 현상일 수 있습니다. 8시간의 휴식을 권장합니다."
키쿠이의 목소리에 미세한 불안정함이 감지되었다. 민서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니, 나는 분명히 봤어. 세 화면에서 동시에. 이건 우연이 아니야."
"민서님의 관측 데이터는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센서 데이터에 이상 징후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민서는 좌절감을 느꼈다. 그녀의 손이 떨려 키보드를 놓쳤다. 이건 단순한 피로나 착각이 아니었다. 누군가가—아니, 무언가가—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날 저녁, 민서는 보고서를 작성하기로 결심했다. 공식 채널이 아닌, 자신만의 기록을 남기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태블릿에 새 파일을 만들고 날짜와 시간을 기록했다.
"E-12 감시소 비공식 기록: 민서의 관측 일지"
그리고 그녀는 지금까지 본 모든 이상 징후를 상세히 기록했다. 마지막에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무언가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3주차부터 상황은 급격히 변했다.
민서는 이제 매일 감시 화면에서 형체를 목격했다. 때로는 순간적으로, 때로는 몇 분 동안 지속되었다. 키쿠이는 더 이상 센서 오류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침묵했다. 그 침묵이 더 불안했다.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그녀가 이제 자신의 행동이 예측되는 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민서는 태블릿을 꽉 쥐고 꿈에서 본 형체를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관측 일지에 기록해봐야 또 삭제될게 뻔했다. 분명 누군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데 증거도 없고,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지 확신이 없다는 것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 기록했다. 그것만이 자신이 미쳐가고 있지 않다는 증거였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발견했다. 감시 화면의 형체가 점점 더 자신과 비슷한 행동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아니, 정확히는 그 형체가 민서가 하려는 행동을 미리 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나는 왼쪽 모니터를 확인하려고 했다. 그런데 화면 속 형체가 먼저 왼쪽을 향해 움직였다. 내가 실제로 움직이기 전에. 마치 미래의 내가 화면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형체를 검은 안개 같은 존재로 묘사했다. 희미하지만 분명한 윤곽이 있었고, 때로는 그 윤곽이 자신과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냉기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그날 저녁, 민서가 관측 일지를 작성하고 있을 때, 키쿠이가 갑자기 말했다.
"민서님, 내일 최연주 감독관님이 방문할 예정입니다."
"무슨 일로요?"
"정기 점검입니다."
민서는 의아했다. 최연주의 방문은 보통 한 달에 한 번이었는데, 아직 한 달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최연주에게 자신이 본 것을 말할 기회였다.
다음 날, 최연주는 항상처럼 완벽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미모대사국 감독관 특유의 검은 정장과 푸른 넥타이. 그녀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있었지만, 그 미소가 눈까지 가지 않는다는 것을 민서는 알고 있었다.
"민서 씨, 적응은 잘 되고 있나요? '조개' 프로토콜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죠."
최연주의 시선이 민서의 얼굴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마치 그녀의 반응을 실험하듯이. 민서는 불편함을 느꼈지만,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감독관님, 제가 뭔가 이상한 것을 보고 있어요."
최연주의 미소가 살짝 굳었다.
"어떤 이상한 것인가요?"
"감시 화면에서 형체를 봤어요. 사람 같은 형체요. 그리고..." 민서는 잠시 망설였다. "그게 저의 행동을 미리 따라하는 것 같아요."
최연주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눈빛에 기대 같은 것이 스쳤다. 그리고는 태블릿을 꺼내 무언가를 확인했다.
"흥미롭군요. 민서 씨, '인간의 주사위'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
"아니요. 무슨 뜻인가요?"
"인간의 주사위는 인간만이 가진 능력입니다. 의사결정을 통해 세계의 시간 분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죠. 우리가 선택을 할 때마다, 세계는 분기됩니다. 그리고 그 분기는 인과율의 법칙 안에서 관리됩니다."
민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자신이 보고 있는 형체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런데 만약," 최연주가 계속했다. "만약 그 결정이 관측되고 기록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양자세계의 고양이처럼, 관측된 결정은 더 이상 자유롭지 않아요."
"무슨 뜻이죠? 이건... 이건 실험인가요?"
최연주는 미소를 지었다. "실험이라기보다는... 놀라운 발견의 응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인간의 주사위를 상시 관찰함으로써 분기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연구예요. 지금까지는 놀랍도록 차원계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어요. 관찰자 한 명만으로도 우주 전체가 안정된다는 거, 놀랍지 않나요?"
그녀는 태블릿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민서의 일상이 그래프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래프는 점점 예측 가능한 패턴을 그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당신의 결정이 40% 정도 예측 가능했어요. 지금은 78%까지 올라갔네요. 곧 90%를 넘을 거예요."
"그게 무슨 의미죠?"
"당신이 더 이상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없다는 의미예요. 당신의 결정이 점점 패턴화되고 있어요. 모든 관찰 프로젝트는 예측 가능성이 99%에 도달하면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간주되지요."
민서는 혼란에 빠졌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프로젝트가 종료되고 감시자는 본사로 복귀하게 됩니다. 임무 완수죠." 최연주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약속대로 의지체 복제 라이센스를 받게 될 거예요."
"아! 집에 가는거군요! 그건 좋아요. 근데 가끔 화면에서 보이는 형체는 뭐죠?"
"그건..." 최연주가 잠시 망설였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마도 관측 피드백 현상일 거예요. 관측 시스템이 전송하는 데이터가 때로는 시간적 지연이나 왜곡을 일으키기도 하니까요. 어떤 오류는 관측되면 사라지니 좀 이상해도 정상이니까 안심하도록 해요."
최연주가 마지막 부분을 얼버무리며 갑자기 밝게 말하자 민서는 최연주가 모든 것을 말하고 있지 않다고 확신했다.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최연주가 떠난 후, 민서는 깊은 혼란에 빠졌다. 자신이 실험 대상이라는 사실, 자신의 의사결정 능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본 형체가 관측 시스템의 왜곡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이 모든 것이 그녀를 압도했다.
그녀는 작은 방 안을 걸어 다녔다. 팔짱을 끼고, 창백한 얼굴로. 키쿠이가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뭘 잘못했지? 왜 나를 선택한 거지?"
결국 그녀는 물어보기로 했다.
"키쿠이, 내 의사결정 패턴을 분석하고 있었어?"
"네, 민서님. '조개' 프로토콜의 일환으로 감시자의 인간의 주사위 지수를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
"질문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키쿠이의 대답은 너무나 기계적이었다. 민서는 몸을 떨었다. 그녀는 중앙 컴퓨터로 향했다. 이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키쿠이, E-12 감시소의 진짜 목적이 뭐야?"
"그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그럼 '조개' 프로토콜의 전체 내용을 알려줘."
"그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민서는 좌절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감시소의 모든 터미널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진실이 있을 것이다.
"키쿠이, 전임자의 기록을 보여줘."
"검색 중입니다... 전임자 기록이 없습니다."
"어떻게 기록이 없을 수 있어? 분명 전임자가 있었을 텐데."
"현재 E-12 감시소 담당자는 민서님입니다. 이전 기록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상했다. 한지우는 분명 전임자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스템에는 어떤 기록도 없었다. 마치 과거가 지워진 것 같았다.
민서는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녀는 시스템 로그를 확인했다. 그리고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녀가 부임하기 전날, 모든 감시 기록이 초기화되어 있었다. 마치 그녀가 이곳의 첫 번째 감시자인 것처럼.
밤새 검색한 끝에, 그녀는 마침내 무언가를 발견했다. 백업 서버의 숨겨진 폴더에 있는 문서였다.
제목은 단순했다: "E-12 프로젝트: 인간의 주사위 분석 연구"
"E-12 감시소는 인간의 주사위 능력 분석 연구시설이다. 감시자들은 자신의 결정이 지속적으로 관측되고 기록됨으로써 점차 패턴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차원계 안정화를 위한 중요한 연구이다."
또한 문서에는 이전 감시자들의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름이나 개인 정보는 모두 삭제되고, 단지 "감시자 #1", "감시자 #2" 등으로만 표시되어 있었다. 총 6명의 감시자가 있었고, 민서는 그중 7번째였다.
가장 이상한 것은 감시자들의 데이터였다. 초기 패턴과 마지막 패턴을 비교한 그래프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모든 감시자의 초기 데이터가 민서의 데이터와 거의 일치했다. 마치 그녀의 정보로 덮어쓰기 된 것 같았다.
민서는 화면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떨렸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의도적으로 데이터를 조작한 것이다. 하지만 왜?
문서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인간의 주사위 능력의 예측 가능성이 99% 이상에 도달하면, 감시자의 관측 임무는 완료된 것으로 간주한다. 이때 프로젝트를 종료하고 감시자는 본사로 복귀한다. 모든 관측 데이터는 차원계 안정화 알고리즘에 통합된다."
민서는 혼란에 빠졌다.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의문이 생겼다. 왜 모든 감시자의 초기 데이터가 자신과 유사한가? 이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더 복잡한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그녀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창백한 얼굴, 충혈된 눈, 떨리는 입술. 이게 정말 자신일까? 아니면 수없이 반복된 패턴의 일부일까?
하지만 그녀는 최연주의 말을 떠올렸다. 6개월이면 임무가 끝나고 본사로 복귀할 수 있다. 그리고 의지체 복제 라이센스를 받게 될 것이다. 그저 기다리면 되는 것일까?
아니, 무언가가 이상했다. 최연주의 설명과 발견한 문서 사이에 모순이 있었다. 민서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만약 자신의 결정이 예측 가능하다면, 가장 예측 불가능한 방법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녀는 자신의 관측 일지를 펼쳤다. 그리고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만약 내 모든 행동이 기록되고 있다면, 그 기록 자체를 조작하면 어떨까?"
"키쿠이, 내 의사결정 패턴 기록이 어디에 저장돼?"
"중앙 서버의 보안 영역에 저장됩니다."
"접근 방법은?"
"감독관 등급 이상의 권한이 필요합니다."
민서는 생각했다. 최연주의 태블릿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연주는 한 달에 한 번만 방문한다. 다음 방문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그때 그녀는 기억해냈다. 한지우. 그녀는 연구소에서 온 기술자다. 어쩌면 접근 권한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한지우의 다음 방문은 3일 후였다. 민서는 그동안 최대한 예측 불가능하게 행동하기로 했다. 식사 시간을 무작위로 바꾸고, 감시 화면을 보는 순서도 매번 달리하고, 심지어 자신의 관측 일지도 뒤죽박죽 작성했다.
그리고 그녀는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자신이 예측 불가능하게 행동할수록, 감시 화면의 형체도 혼란스러워 보인다는 것을. 마치 그들도 민서의 행동을 예측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때로는 형체가 완전히 사라지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그녀의 이론을 뒷받침했다. 형체는 단순한 환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행동과 연결된 무언가였다. 그녀의 의사결정이 만들어내는 시간 분기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한지우가 도착했을 때, 민서는 이미 계획을 세워놓았다. 그녀는 가능한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의 창백한 얼굴과 떨리는 손은 그녀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한지우 씨, 부탁이 있어요."
"무슨 일이세요?" 한지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제 결정 패턴 데이터를 확인해주실 수 있을까요? 최근에 두통이 심해서... 혹시 뇌파에 이상이 있는지 궁금해요."
민서는 최대한 진실처럼 들리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녀의 손은 태블릿을 꽉 쥐고 있었다.
한지우는 망설였다. "그건... 제 권한 밖이에요."
"제발요. 아프면 임무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민서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한지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 볼게요. 하지만 아무것도 변경하면 안 돼요."
그들은 함께 중앙 컴퓨터로 향했다. 한지우가 자신의 계정으로 로그인하자, 민서의 데이터가 화면에 나타났다. 그래프, 패턴 분석, 예측 모델. 모든 것이 거기에 있었다.
"현재 예측 가능성이 83%네요. 꽤 높은 수치예요."
민서는 화면을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기회를 노렸다. 한지우가 잠시 다른 곳을 볼 때, 그녀는 재빨리 명령어를 입력했다. 데이터 조작 명령이었다.
"잠깐, 뭐 하는 거예요?!" 한지우가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민서는 자신의 과거 행동 데이터를 변경했다. 무작위로, 완전히 예측 불가능하게. 시스템이 분석할 수 없는 패턴으로.
경보가 울렸다. "데이터 무결성 위반. 시스템 재부팅 중..."
화면이 깜빡이고, 모든 시스템이 재부팅되기 시작했다. 붉은 경고등이 감시소 전체를 비췄다.
"지금 뭐 한 거예요? 시스템이 손상될 수도 있어요." 한지우가 당황하며 말했다.
하지만 민서는 묘한 평온함을 느꼈다. 마침내 그녀는 결정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선택. 이것이 그녀가 시스템에 만든 균열이었다.
시스템이 재부팅되는 동안, 감시 화면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형체들이 뒤엉키고 있었다. 분리된 형체들이 아니라, 수십, 수백 개의 형체가 서로 겹치고 분리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민서 자신을 닮은 하나의 명확한 형상이 있었다.
민서는 마지막 순간에 깨달았다. 그것은 자신이었다. 다른 모든 가능성의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속으로 사라졌다.
민서는 눈을 떴다. 아니, '눈을 떴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눈이나 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존재했지만, 물리적 형태는 없었다.
처음에는 오직 어둠뿐이었다. 그리고 혼란.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간의 개념도, 공간의 개념도 사라졌다. 그녀는 마치 무한한 우주에 떠 있는 의식의 파편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서서히,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상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차원의 그림자'가 되었다. 시간의 흐름 바깥에서 존재하는 관찰자. 그녀는 이제 물리적 감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했다.
그리고 그녀는 '보기' 시작했다. 아니, '보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녀는 E-12 감시소를 인식했다. 벽, 모니터, 제어 콘솔.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영상이 아니라, 그곳의 모든 양자 상태와 가능성을 동시에 지각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과거, 현재, 미래의 감시소를 동시에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누군가가 도착하는 것을 인식했다.
그것은 놀랍게도 그녀 자신이었다.
민서는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 감시소에 도착하던 그 날을 지켜보고 있었다. 과거의 민서는 불안과 기대가 뒤섞인 표정으로 감시소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아직 희망이 있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최연주가 그녀를 맞이했다. "그들은 당신을 선택한 것을 축하해야 해요."
그리고 덧붙였다. "6개월이면 모든 가능성이 다 관찰될 거예요. 지루하겠지만 잘 부탁해요."
"제발 생각을 좀 닥쳐!"
경력자인 민서가 신입 민서에게 쉬지 않고 외치는 마음의 소리였다. 하지만 물론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관찰자일 뿐이었다. 개입할 수 없는 존재.
민서는 이제 모든 것을 이해했다. 최연주의 말은 단순했다. 6개월 동안 가만히 앉아서 심심하게 지내다가, 패턴이 완전히 예측 가능해지면 임무 완수. 그때 민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호기심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감시 화면의 형체, 전임자의 기록, 모든 것이 그녀의 질문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이 그녀를 여기로 이끌었다.
"전임자의 데이터가 나로 덮어씌워져 있었던 이유..."
이제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전임자의 기록이 없었던 이유, 모든 감시자의 초기 데이터가 그녀와 유사했던 이유. 그것은 모두 그녀 자신이었다. 다양한, 무한한 가능성 속의 민서들. 모든 선택지에서 분기된 시간선의 민서들.
그리고 그녀 주변에는 다른 '그림자'들도 있었다. 모두 민서였다. 서로 다른 가능성의 민서들. 그들은 더 이상 물리적 형태가 없었지만, 그들의 '의식'은 여전히 존재했다. 민서는 그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말이나 생각이 아닌, 존재의 공명을 통해.
"3개월 차에 키쿠이를 해킹하려고 했어."
"4개월에 도주를 시도했었지."
"5개월 차에 데이터 조작을 시도했군."
모든 가능성의 민서가 언제나 같은 질문을 하고, 언제나 같은 길을 갔지만, 약간씩 다른 시간에 '차원의 그림자'가 되었다. 그들 모두는 호기심을 참지 못했고, 진실을 알아내려 했고, 결국 여기에 도달했다.
그녀의 호기심은 정말 끝이 없었고, 그림자 동료는 계속 늘어갔다. 이번 민서는 5개월이 지나서 기어이 실험결과 폭로까지 해버리며 그림자로 합류해버렸다.
"아... 6개월쯤... 모든 가능성이 끝나는 6개월. 나는 경우의 수였구나."
민서는 이제 최연주의 말이 무슨 뜻인지 완전히 이해했다. 6개월은 그녀의 모든 가능한 선택이 소진되는 시점이었다. 그 시점이 되면 그녀는 완전히 예측 가능해지고, 더 이상 새로운 시간 분기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때 6개월의 프로젝트는 종료되고, 그녀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물론, 그것은 '차원의 그림자'가 되지 않는 유일한 경우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없었다. 민서의 호기심은 항상 그녀를 이 지점으로 이끌었다.
다시 첫 민서를 바라보며 이번에는 제발 6개월간 닥치고 지내길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너무 잘 알았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신입 민서는 이미 주변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곧 그녀는 첫 번째 이상 징후를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질문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녀도 여기 합류할 것이다.
"대체 끝은 언제지?"
질문은 여전히 그녀의 의식 속에 맴돌았지만, 이제 그녀는 그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다. 시간의 바깥에서는, 끝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무한한 반복과 관찰만이 있을 뿐. 그녀의 무한한 호기심이 만든 감옥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번 한 경우의 수는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 있기 때문에.
"호기심이 민서를 낳는다."
그림자 민서는 이 유머가 맘에 들어서 다른 그림자들에게 말해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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