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은WhtDrgon.141212#게임기획자하얀용
이 글은 2014년 12월 12일 페이스북에 '기획 지망생들에게 제시하는 통과의례'라는 제목으로 쓴 글입니다.
지금은 플래시가 퇴출되어버린 관계로 다른 방법을 써야 합니다. https://flashgameheaven.com/370
Towerdefense.tistory.com 에 가서 956개의 게임을 모두 해보고 게임 하나당 한 줄의 코멘트를 쓸 것. (2021년 5월 현재는 1800개쯤 된다)
타이머를 사용할 것. 게임 시간은 각 게임당 로딩 시간 포함 5분. 게임이 맘에 안 들면 그전에 종료해도 무방. 미리 종료한 시간을 적는다. 원한다면 5분을 더 사용하고 이유를 적는다. 더는 연장할 수 없다. 더 연장하고 싶다면, 표시를 하고 나중에 이거 다 끝내고 할 것.
한 시간이 12개니까 120개에 10시간. 60개에 5시간. 600개에 50시간. 300개에 25시간. 600+300+60= 956개니까 80시간 정도 되겠다. 내가 했을 때는 400여 개였는데 좀 늘어나긴 했지만.
디펜스 특히 저 사이트를 고른 이유는 디펜스 게임 자체의 구성이 단순 명확하고 동시에 엄청나게 많은 게임이 있고 플래시라 접근하기 쉽고 공짜기 때문이다. 이때 간혹 디펜스만 한다고 기획자 되는 건 아니잖냐고 묻기도 하는데 그냥 참고 해보라. 얘도 게임이다.
이걸 제시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크게 '원형' , '진심', '입장'이 있다.
아키 타입, 혹은 '이데아'는 자연스러운 형태로 이해되는데 예를 들자면 의자나 책상, 컴퓨터 같은 것들이다. 너무도 단순하지만 창작에서 그 본질을 말하거나 경계를 확인하는 것은 쉽진 않다. 충분히 중첩시켜야 평균이라는 원형을 얻을 수 있다.
슛의 원형을 학습하는 방법은 반복 밖에 없다. 슛은 훈련방법이라도 확립됐지. 당연한 것들은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만나야 알 수 있다. 억지로 부자연스러움을 찾아내야 자연스러움을 인지할 수 있다. '자연스러움'은 자연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통 인자들에게서 나오고 자연스럽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을 특별하게 인지하는 것은 이 문장만큼이나 난해한 일이다.
가령 런게임에서 다른 런 게임에 비해 캐릭터가 '잘' 뛴다는 게 대체 뭔 소리냐 말이지.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고 했는데 진정한 홍시 맛이 뭐냐고 물으면 어쩌라는 건가. (대장금) 그만큼 이 감각을 설명하기는 힘든데 쉬운 설명 이전에 '알아야'한다. 그런데 그게 어렵다. 토해봐야 삼킬 수 있는 물건이다.
'이데아'에 단골 메뉴 의자. 사용자야 의자가 '사람 앉는데 쓰는 가구'이지만, 제작자에게는 광활한 정의와 구성요소가 있다. 멋진 의자를 만든다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고 무한의 형태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의자는 (혹은 게임 기획은) 가능성이 무한하기 때문에 특정 지을 수 없고 말로 할 수 없다.'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일까? 의자가 뭔지 모두가 알고 있는데도? 그럼 거꾸로 의자는(또는 게임은) 앉으면(재미있으면) 끝이고 앉는(즐기는) 사람이 좋은 의자가(게임이) 가장 좋은 의자(게임이)라고 말해야 할까? 명색이 제작자가?
모든 다리의 유형 x 모든 앉는 부분 x등받이 x팔걸이 x기타 지지 부분 x각부 쿠션 x각부 재질 x각부 디자인 x의도와 경험 x각부 색상 x의미와 상징성 x각부 결합 유형 x 결합재의 유형과 소재 x 전체 디자인 x기타 마감재로 구분하면 끝일까? 의자의 모든 가치와 의미와 기능은 이 분류에 내포됐을까? 혹은 '재질, 외형, 외형 의도, 가공상태, 포장재(색상, 재질, 유형, 가공방식, 결합방식), 기능 부속, 결합부 유형과 자재'의 속성을 가지는 구성부(다리, 상판, 등받이, 등받이 상부, 팔걸이, 발받침, 기타부)로 구분하면 될까?
그럼 제작자는 그러면 의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봐야 할까. 그들의 시각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이 통과의례를 통해 짐작해볼 수 있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원형 감각은 같지 않은 공통점에서 나오고, 공통점은 기름종이처럼 반복되어 중첩될 때 희미하게 드러난다.
혹은 무거운 엉덩이. 원래 기획은 아이디어나 기획서의 싸움이 아니다. 기획서가 통과되면 이제부터 시작인 거다. 저 분량은 사실 내가 400개만으로도 '진짜' 신체적으로 속이 울렁거리고 토 나올 만큼 자기학대적인 작업인데, 그래도 진행한 이유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겐 시간이 부족하다. 그 시간을 사용한다는 진심과 함께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기획자가 정말 되려는구나라는 진심을 느끼게 해 주고 누구라도 돕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학습자에게는 '몰입'이 아니라 '관찰'이 필요한데, 좋은 콘텐츠들은 순식간에 사람을 몰입시켜버리기 때문에 저항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전부'라는 단호한 물량과 5분의 시간제한이 '영어 배운답시고 미 드라마에 빠지는' 현상을 막아준다. (비슷한 의미에서 효율을 들이밀면 게임이 놀이에서 일로 바뀌게 된다.) 게다가 남이 아니라 본인도 알게 되는 것이 꽤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입장'이다.
상대의 입장을 체험하기. 학생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1등만 체험해보는데 그게 별 도움이 안 된다. (1등들은 다해 보기라는 제목으로 따로 포스팅해보겠다) 저 960개 게임은 모두 누군가의 수고의 산물이다. 저걸 다해봐야 하는 이유는 좋은 게임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똥 같은 게임이 많은지 내 아이디어가 어디쯤 일지,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구현되면 나쁜 건지, 왜 복잡하게 만들면 안 되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저게 30개쯤 넘어가면 화가 나기 시작하고 못 만든 게임에 가차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 내 게임을 평가하는 심사자들의 마음과 유저들의 마음을 그들 입장에서 이해하게 된다. 신참의 제작물은 1위 게임보다는 최하위의 게임을 닮았다. 모든 게임은 누군가의 수고, 때로는 인생을 보여주고, 사람들은 1분 내에 재미없음을 눈치챈다. 재미없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 지옥 간다.
이러고 나서 1등 영역에 있는 킹덤 러시, 커즈드 젬을 해보면 눈 앞에서 게임이 산산이 분해되어 각 요소들이 보석처럼 빛을 발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훌륭한 게임을 알아보는 안목이 생긴 것이다. 성인식의 전과 후는 달라야한다.
이 일 생각보다 어렵다. 놀이도 일로 하려들면 느낌이 다르다. 아울러 이걸 정리, 문서화시키고 싶다거나, 5분으로는 콘텐츠를 즐길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5분, 그리고 추가 5분을 사용하고도 더 쓰고 싶었다고 표시한 게임들 중에서, 지금도 다시 하고 싶은 기억이 나는 게임을 추리면 된다. (처음엔 그렇게 표시했다가 나중에 더 괜찮은 중복요소들을 만나서 지금은 아니게 된 것도 있고.)
어차피 이 통과의례는 할 사람들은 이미 해봤다. 정말이다. 오오! 하긴 해도 아무도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설사 시작했다면 중간에 5분 룰을 날려버리고 30개를 넘기기 전에 포기한다. 그게 아니라면, 앞 30개에서 뭔가 더 많이 정리하려들다가 진기를 소진해버린다. 해보면 알지만, 첨엔 신기한데 100개쯤 지나면 전혀 신기하지 않다. 날 믿어라. 중요한 건 다시 나온다. 저절로 알게 될 거다. 그러니까 너무 잘 적으려 하지 말 것.
저 일은 80시간은 고사하고 160시간 내에도 끝나지 않는다. 일은 많다. 의미도 없고. 내가 게임당 1줄씩 적으라고 한 이유는 학생에게 일거리를 만들어주고, 관찰한 요소를 정리하게 유도하기 위한 것이고 혹시나 나중에 자신의 기억을 인덱싱 하기 위한 용도이지, 남에게는 어떤 쓸모도 없다. 어차피 1게임당 1줄이라고 해도 그 1천 줄은 아무도 읽지 않는다. 내가 장담한다.
그러다가 놓치는 게임들도 있겠지만, 걱정 마시라. 게임은 차창 밖의 풍경처럼 넘치도록 충분히 있으니까. 게다가 게임은 모두 주사위 아래 가족이라, 어떤 특별한 보석이 게임 하나에만 들어있어서 묻히기가 쉽지 않다. 시간과 물량은 잘난 것들을 실수로 죽이긴 해도 못난 것들을 실수로 살려주진 않는다. 그 과정에서 좋은 것은 반드시 계승,복제,오마주,표절되고 왕도가 된다. 이렇게 살아나 빛나는 구슬만 대충 모아도 서말이다. 괜히 구슬 고르고 있지 말고 실이나 꿰자.
김동은WhtDrgon. 141212
#게임기획자하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