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1마일'(라스트 마일)은 물류, 통신, 운송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운송 허브에서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마지막 구간을 의미한다. 최종 고객에게 제품이나 서비스를 전달하는 마지막 단계. 가장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중요한 지점이다.
내가 인상 깊게 본 어떤 TED 편에서 당뇨병 대응을 다루며 이 개념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했다. 약이 없어서 개발하고, 돈이 없어서 원조했는데, 돈도 시간도 약도 다 충분한데 환자가 약을 먹지 않아서 죽는다면? 강연자는 바로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 수많은 당뇨병 환자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라스트 1마일은 '모티베이션', 의지의 문제였다.
인터넷 시대가 가져온 것들. 무료로 개방된 지식, 고급 정보에 대한 접근성, 친절하고 다양한 형태의 영상 콘텐츠. AI 시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개인 맞춤형 범용 자연어 통합 지식 체계.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도구가 주어졌다.
물류의 진화로 비유해보자. 주행이 완전 자율주행으로 대체되면 상하차 작업의 비중이 올라간다. 상하차마저 자동화된다면? 그때는 '체결' 혹은 '수송의 건' 그 자체가 핵심이 된다. 더 나아가면 소유 욕구와 지불 결정의 발생 자체가 전체 프로세스의 99%를 차지하게 된다.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가. 의지의 문제만 남는다.
이게 새롭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산업혁명 이전에 '장인들로 이루어진' 팩토리가 있었고, 자동기계는 그 장인의 자리에 놓여졌을 뿐이다. 장인보다 더 싸게 비교되지 않으면 기계구입의 결제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이런 중요의 문제는 분업화로 해결해왔고, 공장은 공장의 흐름이 있고, 서울 본사는 서울 본사의 일이 있는 것이다.
국가급 화폐체계가 탈중앙화, 웹3.0으로 마이크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코노미와 화폐발행 체계의 테크닉을 필요로 하게 했듯, 기업급의 분업화와 철학자급의 사유가 개인의 자기개발을 위해 실용적, 즉흥적으로 사용되어야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기회가 희귀했던 시절에는 '하고자 하는 의지'가 그냥 기본 소양이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가 흔해빠진 대사이던 시절. 오히려 '의지가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가장 어려울 것이다. 세대차이로 치부하다간 거꾸로 도태된다.
기회가 제한적이었기에 선별적으로 제공되어야 했고, 의지가 없는 사람을 배제하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은 다르다. 기회는 거의 무한에 가깝게 열려 있고, 영감, 아이디어, 화두, 그리고 무엇보다 욕구와 의지의 중요도가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교육은 무엇을 기반으로 설계되어야 할까? 새로운 이론을 찾아 헤맬 필요는 없다. 답은 이미 고전 속에 있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을 현대적 맥락으로 데려올 때다. 교육의 흐름으로 재배치해 보면 의지에서 시작하여 지각, 집중, 인지, 이해, 감각, 기억, 행동변화를 거쳐 습관형성으로 이어진다.
'의지'를 교육하는 것이 모든 것일 것이다. 의지가 있고 방향성을 지각하고 집중해서 몇 개의 핵심 키워드를 얻어낸다면 이제 통합 지식체계가 이것을 풀어줄 것이고, 스승이란 존재는 이제 화두처럼 키워드+키워드를 풀어보라며 던져줄 것이다.
예전에 AI 시대를 설명하기 위해 이런 문답을 제시한 적이 있다.
"사람은 그럼 뭘 하나요?"
"합니다."
"네?"
"사람은 한다고요. 뭘 하는 게 아니라. 합니다."
모든 것을 대답해줄 수 있는 통합 지식 체계가 존재한다면, 질문 그 자체를 발생시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해진다. 과거처럼 배울 의지가 없다면 방치하고, 일할 의지가 없다면 놔둘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이 문제는 개인의 수요와 공급 차원을 넘어선다. 극우 이념이나 음모론의 확산처럼, 이제는 사회 전체가 책임지고 대응해야 할 영역이 되었다. 잘못된 방향으로 향한 의지 역시 통합 지식 체계를 만나면 극도로 빠르고 체계적으로 발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으로 열린 지식 가능성 앞에서, 교육자나 부모 세대는 공황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마음을 다잡고 의젓한 태도로 다음 세대의 의지가 올바른 방향을 향하도록 안내해야 한다. 그 의지를 지속적으로 독려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콘텐츠는 선별되지도 않고, 공통되지도 않으며, 통제될 수도 없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이 모든 것을 잡아줄 수 있는 것은 함께하는 사람들뿐이다. '아이는 온 마을이 키운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새롭게 회자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역사는 이미 증명했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힘은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조차 치유할 수 있다.
다만 커뮤니티의 형태는 변화했다. 물리적 이웃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던 로컬의 시대에서, 디지털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시대로. 숏폼처럼 콘텐츠와 주제가 휘발적으로 소모되는 디지털 세계에 맞춰지려면, 관심사를 중심으로 즉각적으로 모이고, 느슨하게 연결되지만 필요할 때 함께할 수 있는 탈중앙적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하나의 화두, 하나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모이는 마이크로 디지털 스터디 같은 것들.
K-Pop은 이미 이것을 하고 있다. 케이팝은 노래가 아니라 '공통점'이다. 그 안에 키워드화된 메시지, 기믹을 습관처럼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곧바로 사람들이 조직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통합 지식 체계 속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연결될 수 있도록, 흥미를 유발하는 키워드들의 조합이 필요하다. 이 키워드들 사이의 관계도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전개하며, 커뮤니티를 조성해야 한다.
나는 이를 세계관 라이브러리라 부른다. 하나의 지식 체계를 만들고, 거기서 절차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시기에 맞추어 업데이트하고 구체화시킨다.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사이클이 되어 독자에게 전달되고, 독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관을 확장시킨다. 그렇게 세계관 기반 커뮤니티가 만들어진다.
이 방식은 비단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 경계는 이미 사라졌다. 출판과 영상은 같은 드라이브에 함께 있다.
새로운 솔루션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고전이 경전이 되어 방향을 제시하듯, 답은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을 각자의 마음에 닿도록, 기술적으로 열어가는 과정이 필요할 뿐이다.
김동은WhtDrgon@MEJEworks 25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