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4 김동은
세계관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유니버스를 ‘스토리를 품은 곳’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스타워즈> 같은 거대한 서사. 혹은 당신이 최근 몰입했던 어떤 드라마나 영화, 만화. 문득 이런 상상을 해본 적 없으신가요? 주인공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스쳐 지나간 엑스트라, 그 정비공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저 거대한 조직의 구성원들은 다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
우리는 가끔 이야기의 중심에서 비껴난, 사소해 보이는 인생들과 주변 풍경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세계관은 바로 그 ‘가지 않은 길’, ‘열지 않은 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스토리가 비추지 않은 곳, 하지만 그 자체로 이미 멋진 이야기가 숨 쉬고 있는 세계에 대한 자료인 셈이죠. 보통 스토리에서 시공간은 ‘사건’을 위해 존재하지만, 세계관은 거꾸로입니다. 무수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시공간’ 그 자체에 대한 내용이니까요.
눈에 보이진 않지만, 모든 유니버스에는 스토리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단단한 법칙과 환경이 존재합니다. 독자는 허무맹랑해 보이는 가상의 이야기 속에서도 이 보이지 않는 일관성을 느끼며 작품에 깊이 빠져들고, 또 다른 이야기를 상상할 힘을 얻게 됩니다.
이야기는 작가가 쓰지만, 세계관은 설계자가 필요합니다.
이야기는 스스로를 뼈대로 삼아 필요한 만큼의 설정(setting)을 영리하게 사용합니다. 하지만 세계관 설계는 그 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아직 사용되지 않은’ 불분명한 목적과 경계 없는 범위를 다루죠. 이야기에서 스쳐 가는 백동화 한 닢의 가치와 제조, 유통 과정을 파고드는 몇 배의 디테일. 이런 ‘본말전도’야말로 세계관을 점진적으로 구체화하고 복합적으로 확장시키는 힘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낭비고 사치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불필요해 보이는 것들이 세계관의 필수 요소입니다. 만약 ‘필요한 만큼의 설정’만 요구된다면, 그건 ‘자료조사’나 ‘배경 설정’ 작업에 가깝겠죠.
새로운 직업, 유니버스 디자이너
최근 게임을 비롯한 수많은 콘텐츠가 IP(지적재산권)로서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세계관 설계’라는 업무는 필연적으로 중요해졌습니다. 그리고 이 작업을 지휘할 ‘유니버스 디자이너’는 전문 직업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물론 아직은 과도기입니다. 우리는 이 작업을 ‘설정놀음(Conworlding)’이라 부르거나, 좀 더 고상하게 ‘세계 만들기(World-building)’라고 부를지도 모릅니다. 무엇이라 부르든,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전달 가능한 산출물’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유니버스 디자이너의 역할이 지금보다 더 가치 있게 자리 잡을 테니까요.
언젠가는 수많은 사례를 통해 이 작업을 명확한 기술(Culture Technology)로 이야기할 날이 올 겁니다. 먼저 이 길을 걸어본 사람으로서, 저의 시행착오를 공유하며 그 길에 디딤돌 하나를 놓고 싶습니다.
#세계관 설계란?
작가가 아닌 설계와 편집
TRPG 마스터와 TRPG 세팅의 차이
핍진성, 불신의 정지, 그리고 몰입
#왜 세계관이 필요한가?
IP 확장과 트랜스미디어
투자를 이끌어내는 힘
직업으로서의 세계관 설계자
#세계관의 뼈대
시간, 공간, 철학, 자연법칙
장르: 대체역사, SF, 판타지, 이능력 배틀물…
작은 세계들: 학교, 회사, 도시, 가정
#설계자의 도구들
키워드 추출: 정의, 재정의, 상호연결
클리셰, 메타포, 트롭의 활용
기존 작품을 분해하는 이유
#작가와 설계자의 협업
작가의 상상력을 방해하지 않는 법
스토리, 배경설정, 세계관의 경계
범용성과 참신함 사이에서 길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