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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은WhtDrgon Jun 06. 2021

<게임 가챠가 도박 아니냐는 질문>

김동은WhtDrgon.160705#게임기획자하얀용

개요

이 글은 2016년 7월 5일에 포스팅했던 글을 옮긴 것입니다. 이 글은 게임기획자 지망생으로서 가챠가 도박 아니냐고 진지하게 묻는 학생에게 '아니다. 진짜 도박은 확률과 관계가 없다.'라고 말해주는 진지한 관련 산업 업자의 기술적 대답입니다. 

 

겸사겸사 돌아가는, 지망생용 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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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 공개법으로 이런저런 시선이 얽힌다. 분노, 자조, 비웃음, 경멸...  그래서 병문안 가는 버스 안에서 1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키워드는 LD, 콘텐츠, 겜블, 포르노, 몰입 요소, 재산, 모사, 배팅/우연/배당, 수익 모사. 


요약

확률은 도박이 아니다. 공정함과 불공정함의 균형을 찾아주는 것처럼 보이는 장치일 뿐이다. 


본문

함량에 관한 농담 2개.  

과자에 랍스터가 0.0003% 들었다는 말에 '그 정도면 청산가리도 안 죽어!' 

사카린이 실험 결과 실명 위험이 있다는 말에 '소금을 그 분량을 먹으면 즉사야!' 


- LD. Lethal Dose. 특히 LD50. 반수 치사량이라는 뜻이다. 물질을 투여하여 (2주~30일 정도에) 반이 죽는 분량이다.  거의 모든 물질에는 치사량이 존재한다. 물도 많이 마시면 신장이 망가지고, 죽기까지 한다.  이 말은 거꾸로 안전한 양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랍스터처럼.  


- 콘텐츠. 콘텐츠에서도 욕구와 취향을 자극하는 다양한 성분들이 발견되고, 그 적정한 분량이 있다. 그걸 연하게 푸는 재주들도 있고. 존재 자체만으로 철퇴를 내린다는 것은 부조리를 떠나 무의미하고, 생각보다 많은 피해를 파생한다. 


- 겜블. '사행성 게임'이라고 묶어서 나오긴 하지만 법적으로도 이건 게임이 아니라서 게임물에 대한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둘은 한 뿌리에서 나왔지만 사실 상관이 없다. 슬롯머신, 고스톱, 포커 같은 대표적 게임들이 있지만 현실과 가상은 구분되는 것이고, 사행성은 도박만으로도 홀로 존립한다. 월드컵이나 바둑, 골프뿐 아니라 동전, 빨대, 지나가는 사람으로도 도박을 할 수 있다. 복권은 어떤가? 


- 포르노. 이런 단순 성분으로 구성된 것, 특히 욕구 자체를 자극하는 '수단'만이 목적인 물건을 포르노라고 한다. 포르노는 남녀의 연애도, 사랑도 아니다. 섹스조차 아니다. 그냥 발기라는 성적 욕구만을 자극하는 콘텐츠일 뿐이다. 성적인 것이 없어도 비슷한 메커니즘을 유지하는 콘텐츠나 발언들이 있다. 분노 표출만을 목적으로 하는, 괴롭히거나 되갚아주기라는 카타르시스만을 목적으로 하는 저작물들. 


포르노그라피에 대한 미국 대법원의 로스 판례는 다음과 같다. 평범한 사람들이 작품의 주된 주제들로부터 성에 대한 음란함을 느끼는 것, 문제의 작품이 성에 대한 동시대의 사회 규범을 명백하게 위반하는 것,  문학이나 예술, 정치, 또는 과학 등 사회적 가치를 찾아볼 수 없는 것. 키워드는 자극, 명백한 규범 위반.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마지막인데, '가치가 없는 것'. 즉 목적을 위한 수단은 허용된다고 볼 수 있고, 이 부분이 폭력, 음란, 도박을 수단의 자유, 즉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부분이라 볼 수 있다. 


 포르노물은 욕구 자체에 충실하다 보니 다양한 욕구들을 발견하고 추적하여 적나라하고도 명백하게 자극한다. 기획자로서 그 콘텐츠가 자극하는 요소들을 살펴볼 수 있다. 간단한 예로 가터벨트나 스타킹에 대한 페티시는 좀 더 연하게 희석되어 걸그룹들의 복장과 춤 동작에 적용된다. 


- 몰입. 이머시브.  게임에는 게임 자체를 성립시키는 장치. 게임 진행 중 단기 몰입을 지속하기 위한 '이머시브 사이클'이 존재하고, 승부를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지식, 전략, 전술의 의사결정을 위해 자원과 규칙이 있다. 당구가 청소년에게 불법인 시절을 지난 사람들이 자주 말하는 '칠판과 천장이 당구 다이로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이걸 중독이라 부를 수 있지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아니다. 적어도 성취욕구의 근원이 자신에게 있다. 체스나 바둑은 지적 유희의 정점에 올라있고, 프로게이머를 오래전에 양산했다. 


-몰입. 시뮬레이션. 모사. 모티브. 게임 자체의 형식에서 워게임을 빼놓을 수 없다. 전략을 논하는 장수들이 지도에 돌을 가져다 놓고 옮기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삼국지에서는 아예 모사들끼리 바둑돌만으로 전쟁을 끝내버린다. 게임은 동그란 흑백의 돌이나 좀 더 디테일이 들어간 나이트와 퀸. 파란 네모. 더 훌륭한 모델들로 현실성을 올리고 모사를 통해 현실감을 자극하고 몰입시킨다. 하지만 어트렉션의 수명은 생각보다 짧아서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더 근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몰입. 이머시브. 승부의 세계는 공정함과 동시에 냉정하다. 성장은 게임에서도 힘들다. '프로'라는 말이 붙으면 딱 현실만큼 힘들다. 이 사이클이 모두에게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매 판 새롭게 시작되는 게임들에도 유저 자신의 숙련도와 기보, 사례 분석, 훈련이 있지만 그게 안되면 어떻게 하나?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이라 게임사로서는 난감하다. 유저를 만족시킬 수밖에 없는 숙명이 있다. 그 '성장'을 고정해서 보여주는 반복형 성장 몰입. 애딕티브가 있다. 


- 몰입. 애딕티브. 반복을 통해 나아지고 성장한다. 바둑은 기보를 통해, 당구는 풀이를 통해 경험과 사례를 쌓아나가는 면이 있지만, 이 경우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과 동일시된 캐릭터가 성장한다.  클래시 로열을 예로 들자면, 플레이를 반복하여, 카드 자원을 얻고, 업그레이드를 하면 카드가 더 강해진다. 열심히 많이 근면 성실하게 일명 막일을 지불하면 고통을 감내하기만 하면 더 강해진다. 


물론 이 근면성실에 요구되는 '노력'은 배수로 증가하기 때문에 곧 한계에 부딪친다. 어떤 유저는 이머시브로 진입할 것이고, 다른 유저는 텐션이 유지되는 체류시간 동안 애딕티브 노동을 줄이기 위해 결제를 하든, 이머시브 자원 확보를 위해 결제를 하든, 결제 유혹에서 승리하든 적어도 그 '가능성'을 소진하는 동안 게임을 진행한다.


RPG는 롤 플레잉 게임. 역할을 배분하여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동하는 게임이다. 마왕을 물리치기 위해, 반지를 화산에 빠트리기 위해.  국내 유저는 RPG 장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대체 성장을 통한 욕구를 채우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한국이 RPG를 사랑한다는 것은 성장욕구에 가장 크게 반응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서양도 팜 장르를 견인하는 것은 예쁘게 꾸미려는 것이 아니라  투자, 수확, 보상이라는 성장욕구가 핵심이다. 


- 몰입. 카타르시스. 정적인 음의 애딕티브와 동적인 양의 이머시브는 둘 다 지불을 요구하고, 최선의 결과를 기대한다. 이것도 때로는 불공평하다. 이때 모두의 기회를 평등하게 만들고, 지불을 극복하는 결정적 수단이 등장한다. 지불한 노력이 영향을 미칠지라도 분명 계산대로 되지 않는 불확정성을 확률과 운이 지배한다. 누군가에겐 어처구니없지만 이것으로 게임은 더 저마다에게 평등해진다. 그리고 '참'이 나온다. 세상의 진실. 즉 '참'은 결과로써 확인된다. 모든 노력의 보상인 참이 배출되는 극적인 카타르시스의 순간. 이 순간을 위해 응축된 감정과 기억이 배출되고 반상 위의 전쟁이 결정 난다. 이머시브가 쌓은 자산과 애딕티브가 쌓은 자산의 비대칭적 모순을 이 '우연'이 해결해주는 것이다.


-(다시) 포르노. 자극을 목적으로 하는 콘텐츠.  좋은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우리 기획 지망생들은 이런 생각을 해보자. 만일 게임이 이 몰입 요소 중에 하나 혹은 둘로만 이루어져 있으면 어떨까? 그럼 어떻게 만들면 게임이 포르노가 돼버리는 걸까? 즐겨했던 게임들을 생각해보며 어떤 장치가 있는지 떠올려보자. 뭐가 더 좋고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머시브 <애딕티브 <카타르시스 순으로 게임 기획 장치들이 사람의 감성을 다루는 섬세함 차이가 있다.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경험이나 트렌드를 따를지라도 은연중에 이런 흐름을 따르게 된다. 표절조차도 외적 메커니즘뿐 아니라 내부의 흐름을 이해해야 제대로 할 수 있다.  


-(다시) 겜블. 즉 사행성 게임은 법적으로도 게임과 관련이 없다고 했는데, 도박은 게임물로 분류되지 않고, 게임법의 적용도 받지 않는다. 그냥 분류 불가가 된다. 이건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박은 '모사'와 '환금'이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사행성 게임이 되기 위해선 2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그중에서 가장 확실한 구분이 재산상의 이익과 손실이다. 이는 '환금성'을 동반한다. (게임 아이템이 권리를 보증받아야 하는 물적 재산이냐 아니냐는 이런 문제도 복잡하게 걸려있는 것이다.) 그다음은 '모사'이다.


-모사. 먼저 전통적인 도박들을 흉내 냈느냐라는 영역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고스톱, 포커, 슬롯머신 등등 카지노나 국가적으로 도박으로 사업이 인정된 것들. 경마, 경륜, 소싸움 같은 것들이다. 


이 부분에서 <쟁점 1> 모사는 유사도, 실제를 예고하는 낮은 단계도 아니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주장. 사람을 총으로 쏘고 때리면 실제로 그렇게 되도록 하거나, 적어도 관계된 폭력성을 증가시킬 거라는 근거는 뚜렷하지 않지만 상식인 믿음이 충돌한다. 


 앞서 '전통적인'을 붙였는데 그럼 포커의 트럼프 말고 다른 도형이라거나, 고스톱을 12개월 4계절 4 여신들의 싸움으로 바꾸면 아닌 거냐? 아니다. 배팅과 배당 그리고 우연이 있다. 


-배팅, 우연, 배당.  돈을 걸고 우연에 따라 건만큼 배당받는다는 형식이 도박을 모사한 것이다. 안심하라. 환금되지 않으면 도박이 아니다. 지금은 이 모양새를 보자. 전통적인  앞서 설명한 게임의 흐름을 일면 축약해놓은 모양새로도 보일 수 있겠지만 아니다. 이건 어떤 욕구를 위한 포르노일 뿐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걸 연하게 풀어놓은 모양새. 앞서 이야기한 LD50이 LD10쯤으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겠다. 


 바로 이 부분이 <쟁점 2> 확률 공개법에 대한 입장이 저마다 교차하는 부분이다. 게임 기획은 몰입을 위해 콘텐츠의 가치부여를 의도하고 있고 실제로 가치를 부여하는 유저들에게는 둘을 분간하기가 힘들 수도 있다. 


- 수익 모사. 실제로 '집행검'으로 대표되는 게임 자산의 RMT 즉 실거래가 이루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이건 정규 흐름이 아닌 폐쇄적인 사적 거래이고 회사가 얻는 이득도 없어서 패스할 수도 있겠다. 부분 유료화에서 특히 좀 더 민감할 수 있다. 보석 100개로 뽑기=대여 왕검 0.01%= 직접구매 시 보석 5천 개 = 현금 9만 원. 뭐 이런 환산. 여전히 환금이 없기 때문에 역 환산은 불가능하지만, 겉모양으로 판단하는 것이 특이한 일은 아니니까. 


 게임은 일면 유사하게 보일 뿐 메커니즘을 달리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확률가차로 도박급의 수익을 얻고 싶어 하는 '도박과 유사한 방식으로 수익을 얻고자 하는, 말을 만들어 붙이자면 '도박 유사 수익 획득'의 사업적 시도가 있을 수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잘못된 규제가 게임 산업을 이 꼴로 만들었다'면 이런 면을 규제하지 못한 과오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지금의 규제들은 주장하는 목적을 이룬 효과가 거의 없었다고 본다. 규제는 촉진을 위한 수단이다. 그 존재로서 산업의 결정권자가 가치비교를 통해 바른 발전 쪽이 기대이익이 더 높도록 하여 산업을 촉진시킬 수 있어야 한다. )


모든 논리를 떠나 가챠/뽑기가 그런 수익을 낸 건 사실이니까. <쟁점 3> 바로 이 지점이 업체에 요구된, 보통 일본의 사례를 드는  '업체의 자율규제'에 대한 부분이며, 확률 공개법에 존재하는 여러 시각 중 '자업자득'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정리

시간이 다 됐다. 나중에 추가하더라도 일단 정리를 하자면... 게임 기획자로서 이 글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런 면들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확률 공개법이 가지는 의미. 법률의 기저에 깔려있는 사고. 확률 시스템의 문제. 유사성. 법적인 책임과 도의적 책임의 정도. 포르노성 게임 기획과 운영. 수익모델. 게임의 본래 흐름과 유사성. 게임과 겜블의 차이. 그리고 게임기획자로서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 하나? 가령 LD0을 만들 수 있을까? 만들어야 할까? 


그리고 이런 점을 생각해보자. 유저들의 불만. 할 게임이 없다는 불만의 정체. 요즘 게임의 문제점의 근원이 정확하게 어떤 부분일까? 그것이 훌륭한 게임 이라이 무엇인지 역설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만일 현실이 그것을 방해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규제가 있어야 우리는 '도박'을 통해 수익을 실현하려는 사업자의 '도박 유사 수익 획득시도'를 규제하여 더 훌륭한 게임으로 승부할 수 있게 만들고, 더 멋진 게임 본연의 가치를 추구하는 기획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을까? 같은 것들. 더 멋진 게임들을 기획해줬으면 좋겠다


p.s 다 돈 벌려고 하는 짓에 변명하느라 말이 기다란 비난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일리 있는 말이다. 현재의 게임 산업을 변명하려고 쓴 글은 아니다. 어떤 부분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도박에 대한 국제적 기준은 좀 더 엄격해지고 있다. <관련기사 링크>


20160705 김동은WhtDrgon. 

#게임기획자하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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