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은WhtDrgon.140502#게임기획자하얀용
이 글은 2014년 5월 2일 페이스북 포스팅을 옮긴 글입니다.
다소 도덕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룹니다. 이 글은 표절을 장려하거나 옹호하는 글은 아닙니다.
'표절'의 옳고 그름은 이미 아실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절을 결정하셨다면...
소설에게 있어서 소재와 플루트만큼이나 게임의 방식, 규칙, 배경의 존재는 게임에 필수적 구성요소입니다. 표절을 하려고 했다면, 이 중에 무엇을 표절하려는 것인지 명확해야 합니다.
게임에 있어서 아이디어는 최초의 핵심 요소입니다. 게임의 존재 그 자체를 규정짓게 됩니다. 사실 모든 게임 사업은 '게임 콘텐츠'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죠. 아이디어 떠올리고 플루트 구상할 시간과 돈이 없는데 어쩌란 말입니까라는 소설가나 학자 본 적 있나요. 스타트업 대표가 '사업 아이템이 없는데 어쩌란 말입니까?'라고 말하며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대체 왜 게임을 만들려 했던 걸까요. 최소한 '아! 이 걸 이렇게 바꾸면 성공하겠다!' 정도라도 필요합니다. 그럼 그 '이 것'이 뭐냐는 것입니다. 대체 뭘 베낄 것인가?
표절을 작정했다면 '어떤 점'을 표절해서 어떤 것을 절감하고 이득을 보려는 것일까요? 가령 표절 대상이 이미 업계 1위라면 말입니다. (설마 꼴찌를 표절하는 사람은 없겠죠. 사실 이쪽이 베스트입니다. 부족했던 것을 보완하여 더 훌륭하게 만든다는 것.)
모티브? 배경? 매력적인 캐릭터나 적? 게임 룰? 메커니즘? 색감? 디자인? 밸런스? 과금체계? 어떤 것을 왜 어떻게 잘 베낄 것인가? 베껴오는 것 외에 나머지들이 어떻게 원전보다 더 잘 어우러지는가?
없으니까 베끼면 되지 않을까? 무언가가 절감되지 않을까?라는 것은 정말로 '멍청한 짓'입니다. 무엇보다 진행과정에서 초점이 불분명해서 완성이 힘들고, 실패할 경우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베낀 상대가 현지 유저 사정에 맞추어 '창작' 업데이트하는 동안 갑자기 베낄 곳이 없어져 버립니다. 그다음은 우왕좌왕이 시작됩니다. 뭘 베끼는지도 모르면 제작과정에서 나오는 소중한 기회인 쌈빡한 아이디어들이 타깃 게임들에 없다는 이유로 매몰됩니다.
창작자의 기본이 없으면 관리자나 사업가의 기본이라도 있어야죠. 표절은 여러 가지 목적과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A. 신들의 세계, B. 거인의 어깨, C. 성공한 게임은 장르가 된다, D. 나사를 훔쳐오기. E. 그게 중요한 게 아냐. F. 오마주 G. 패러디 정도로 나누고 있습니다.
게임산업의 아버지 놀란 부시넬은 미국의 지방 공과대학(!)의 슈퍼컴퓨터에 돌아가던 물건을 맥주집으로 가져옵니다. 성과는 안 좋았지만 이때 감을 좀 잡고, TV 회사에서 브라운관에 셀로판지 붙여가며 즐기는 게임 기능을 업어와서 다시 맥주집에 가져다 놓습니다. 그 유명한 '퐁'.
신들의 물건을 인간 세상에 가져오는 방식은 사업가와 대기업에게 유리한 방법입니다. 소수가 즐기는 서브컬처를 단순하게 만들고 편의성을 강화하고 그래픽과 사운드, 이펙트로 무장시키고 제품과 마케팅으로 대중에게 밀어야 하니까요.
정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시장 이식'을 하는 작업입니다. 사업부 쪽이 유리하죠. 이경우 표절의 원본이 등장해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습니다. '동물+매치 3+블리츠+소셜+매니 스테이지 게임 2'의 경우 '동물+매치 3+블리츠+소셜 게임 1'이 이미 일종의 '사용자 경험'이 되어있고, '동물+매치 3+블리츠+소셜 게임 1'에 안착한 보수 게이머가 새로운 게임으로 이전하는데 부담이 없고, 현지에 더 잘 맞는 그래픽이 있지요. 마케팅도 말할 바 없고요.
표절하기로 작정한 신규 개발사는 디바이스, 플랫폼, 배경에 있어서 다른 차원의 물건을 표절해야 합니다. 구글 플레이 마켓에서 가장 유명한 물건을 표절하는 것은 코미디를 위한 열정과 노력입니다. 미국에는 다 쓰는 물건인데, 한국에 없다. 이게 무역의 근본이죠. 신생 게임사 주제에 인디게임을 훔쳐오지 마세요.
우리는 신생이지만 뻔한 게임은 안 만들 거고, 우리가 좋아하는 이 '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마이너 게임!'을 베끼겠습니다!....
편의도 구리고, 게임도 구립니다. 그걸 알아봐 주는 사람이라곤 신들 밖에 없는데 그걸 훔쳐서 게임을 만들면 어쩌자는 겁니까.
거인의 위에 올라서는 효과는 자신의 경험과 감에 따라 '정말 재미있어 보이는 무언가'에 대한 구상은 끝냈는데, 방법이 없을 경우에 효과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게 있어야 하죠. 구상 자체가 없으면 뭘 어떻게 붙여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가령 이 게임은 왜 pvp가 없나? 경제요소를 더 넣으면 좋을 텐데, 지속성 있도록 메타 게임을 더 확장했어야 했다. 좀비버전! 해적 버전! 미소녀 버전! 등등.
구상은 있는데 기획이 없으면 유사 게임들을 모으고, 기능과 키워드를 분해한 후 입맛에 맞게 재조립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조립은 '개발 역량'에 맞추어 최적화되어야 합니다. 이 정도의 구상력이 없으면 이미 망한 겁니다. 표절은 표절대로 하고, 득도 못 보고. 어느 것이 더 '잘 맞나' 정도의 분별력도 없으면 말이죠.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도 자신의 키만큼 안목만큼 더 보이는 법입니다. 그게 없으면 어깨에 붙어있기도 힘들죠.
표절과 장르의 경계는 애매합니다. FPS의 효시가 울펜스타인과 둠이지만, 이미 FPS게임들은 표절의 영역을 넘어섰죠.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듄 2의 표절이라고 불리지 않고, LOL이 도타의 표절이라고... 음 이건 좀 애매하지만 아무튼.
TCG 게임이 인기다! 확밀아가 인기다. 그럼 (기존 경험에 의해 학습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사용자 경험이 충분히 깔렸다면 기존 작품과 다른 차별성을 찾아야 합니다. 확밀아의 배경을 학교, 스포츠, 상륙작전, 농장 경영, 정글탐험으로 한다거나, 미소녀, 전쟁, 밀리터리, 야구, 축구로 스포츠화 한다거나. '아. 난 이런 게임을 좋아하니까 유사경험을 더 즐기고 싶다. 기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XX를 배경으로'라는 욕구에 어떻게 접근할까라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가령 체스가 트렌드면 동물 체스라도 생각해봐야죠.
너도나도 베끼면 뜨는 상황도 있습니다. 떡고물 주워 먹기. 이 경우에는 엄청나게 빠른 개발이 필수입니다. 이미 유사한 방식을 개발해 봐서 소스가 있다거나 하는 등의 개발 역량을 점검하세요. 개발이 생각보다 힘듭니다. 표절한다고 버그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일본 회사 사장이 미국 견학 중에 십자 나사를 훔쳐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제품 자체가 필요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가령 MMORPG에서 경매장만으로 게임을 만들겠다!. 인벤토리 정리하는 것만으로, 스킬을 육성하거나, 상점을 경영하는 것만으로, 상거래 만으로, 게임에 들어있는 미니게임만으로 게임을 만들겠다고 작정했다면 그 콘텐츠 외에 나머지 모든 편의가 필요합니다. 게임 제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몰입', '반복', '결제' 이 3가지입니다. 표절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사를 훔쳐오기로 작정했다면 그 나사를 어떻게 팔아먹을지 어떻게 사용자가 쓰게 할지를 고민해야죠. 만일 훔쳐온 게 나사가 아니라 엔진이라면 정말 심각하게 다시 고민해보세요. 엔진을 어떻게 표절할 겁니까? 훔쳐온 건 엔진인데, 엔진만 조금 바꿔서 다른 디자인으로 낼 거면 표절을 왜 한건 가요.
광고 게임이나 마케팅용 게임, 게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서 적당히 업어오는 경우가 있을 수 있죠. 그럴 때는 최대한 보편적인 것을 고름과 동시에 '중요한 것'과 이어 줄 최소한 단 하나의 요소가 필요합니다. 상당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대표 무기, 대표 몬스터, 대표 아이콘 등으로 직결되는 상징성을 잡아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상징성에 정말로 잘 어울리는 것을 표절해야죠. 그냥 가을의 전설 홍보용 게임으로 피싱 낚시 적당히 넣지 말고요.
오마주를 할 때는 좀 더 노골적으로 원본을 알 수 있게 해줘야 하고요. 패러디를 하려면 대상 고객이 해당 콘텐츠를 지금도 좋아하면서도 충분히 질려있어야 합니다.
패러디는 낯선 게임을 '고객의 사용자 경험'과 연결하여 게임을 친숙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가령 100명의 공주를 육성하는 신부 학원 게임에서 교사들이 모두 동화 속 '여왕님' 계열이시던가요. 패러디를 할 때 원형 그대로 데려오면 안 됩니다. 색 배열만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백설공주 = 노랑 10, 파랑 4, 빨강 2, 하양 1) 간혹 신들의 물건을 오마주와 패러디하려는데 그래 봐야 전혀 감흥이 없습니다. 모든 '액션'은 효과가, 아니 효과는 없을 수 있어도 '기대효과'는 있어야 합니다. 해당 패러디를 넣어서 어떤 '기대효과'가 있는지, 그 기대효과를 기대할 정도로 정말 괜찮은 패러디인 건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는 게 사업이라지만, 힘든 고난과 역경을 버티게 해주는 것은 개발에 대한 의지입니다. 모든 창작자들은 창작 그 자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표절이 99%라도 1%가 있어야 합니다. '내 방식이 세상에 먹힌다'라는 희망도 없이, 전략도 없이 표절을 결정하고 타협해버리면 돈도 시간도 없이 무엇에 기대어 개발이 가능해지는 걸까요? 눈먼 돈을 벌지도 모른다? 하루에 만개의 앱이 나오는 세상입니다.
표절한다고 기획이 없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베낀다고 기획자나 기획서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명예와 실리 2 가지면에서 함께 망하는 겁니다. 제대로 된 기획이 없으면 뭘 어떻게 베껴야 하는지도 모르게 됩니다. 이건 표절이 아니라 그냥 개발 수준이 낮은 겁니다. 최소한 내가 뭘 어떻게 왜 베끼려는 것인지 정도는 생각하도록 합시다. 절약한 노고를 새로움을 창조하는데 썼다면 사람들은 그 역할을 나름 인정해줄 것입니다.
20140502
김동은 WhtDrgon. #게임기획자하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