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글을 멤버십으로 전환한 뒤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무작정 무료 회원의 조회수를 긁어모으던 ‘플랫폼식 작문’에서 벗어나, 나를 사랑해 주는 이들을 위해 쓰는 진짜 작가가 되었음을. 이제 내 세계는 여기까지다. 그 바깥의 숫자 따위는 더 이상 계량하지 않는다.
창작이 밀가루 먼지처럼 쏟아지는 시대다. New 태그는 제작이 아니라 인지에 달려 있다. 작품이 필요조건이라면, 독자는 비로소 그 세계를 완성하는 충분조건이다.
오직 소비로 사랑을 증명하는 이들이 우선이다. 우물물이 마침내 지상에 닿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대중의 호기심을 위한 작업을 재개할 것이다.
객관적 시선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작가를 품평하는 이들의 잣대에 스스로를 맞추지 마라. 좋아해주는 사람의 눈치를 보라. 목마른 사슴들을 위해 우물 안의 벽을 쌓아라.
소비로 증명하지 않은 채, 관심도 없이 억지로 비틀어 열려는 시선에 걸려드는 순간 창작의 결은 갈라지고 만다. 냉정한 비판은 인지와 애정을 공유하는 ‘우리’ 안에서, 서로 인정한 자리에서 이뤄져야 한다.
인지되지 않은 창작은 작동하지 않는 기계와 다를 바 없다. 알아보기는커녕 관심도 없는 눈들에게 서둘러 무가치하게 취급받을 필요는 없다. 그것은 싹을 위해 씨를 흩뿌릴 때이거나, 성장이 정체되어 하락에 닿았을 때나 꺼내 들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전에는 먼지와 다름없고, 먼지를 들고 품평받을 필요는 없다.
누군가 매 단계를 허락해 주던 시대는 끝났다. 현상의 원인을 통제하지 못하는 자들은 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원인을 아는 체할 뿐이다. 이제는 자신만의 우물을 파라. 그 우물을 거점 삼아, 세상으로 유목을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