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한 문장의 갈림길

제6장. 한 문장의 갈림길 - 구조를 미리 정해 두는 자료

by 김동은WhtDrgon

지난 회에서 한 구간의 표 안쪽까지 들어가 보았습니다. 18개 구간 중 9구간 한 장의 표를 펼쳐, 한 행 한 행이 어떻게 시간을 담는지를 확인했습니다. 이번 회에서는 표가 담지 못하는 자리, 그러나 번역에서 가장 자주 어긋나는 자리를 다룹니다. 한 문장의 구조입니다.


image.png https://x.com/nakamurakihiro/status/1230798247989366784?s=20


한 문장이 셋으로 갈리는 자리

머리가 빨간 생선을 먹는 고양이.

이 한 문장을 들으면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떠오르십니까. 잠깐만 멈추고 생각해 보십시오.


세 개의 그림이 가능합니다.

머리가 빨간 고양이가 (그냥) 생선을 먹고 있다.

빨간 머리의 생선을 (그냥) 고양이가 먹고 있다.

빨간 생선의 머리를 (그냥) 고양이가 먹고 있다.

같은 한 문장에서 빨간 것이 무엇인지가 셋으로 갈리고, 누가 무엇을 먹는지가 함께 갈립니다. 한국어 문장이라서가 아닙니다. 영어에도 똑같은 갈림길이 있습니다.


I saw the man with the telescope.

망원경으로 그 남자를 본 것인지, 망원경을 가진 남자를 본 것인지 - 영어 한 문장이 둘로 갈립니다. 어느 언어든 단어 한 개의 의미가 또렷해도 단어들 사이의 결합 방식에서 갈림길이 생깁니다.


이런 갈림길은 작품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한 문장이 둘 또는 셋의 의미로 동시에 살아 있을 때, 번역가는 셋 중 하나를 골라 한국어로 옮겨야 합니다. 그 결정이 작품 전체에 일관되어 있어야 합니다.


35종의 자료가 풀지 못하는 자리

지금까지 우리가 본 35종의 자료는 모두 단어의 무게를 담아 왔습니다. 인물 노트는 이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시대 백과는 이 시대의 단어가 어떤 함의를 갖는지, 모티프 사전은 이 단어가 작품 안에서 반복되며 어떻게 변하는지를 다룹니다.


그러나 어떤 자료를 펴 봐도 "이 한 문장이 셋 중 어느 쪽인가"의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자료가 답할 수 있는 것은 단어의 무게이지, 단어들 사이의 관계가 아닙니다.


이 자리를 비워 두면 무엇이 일어나는가. 번역가가 한 모호 문장을 만날 때마다 자기 판단으로 결정합니다. 같은 작품을 다른 번역가가 옮기면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결정이 내려집니다. 한 번역가가 두세 달의 간격으로 같은 작품의 두 부분을 옮기면, 같은 구조의 문장이 다른 결정을 받기도 합니다. 매번 다시 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번역의 일관성은 매번 다시 결정하지 않는 데서 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료를 한 종 더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정한 한 가지 답

이 자료의 약속은 단순합니다. 한 작품의 모든 문장에 대해, 우리가 한 번만 결정한다. 그 결정을 한 줄의 텍스트로 적어 둔다. 다음에 누군가 그 문장을 만나면 자료의 그 줄을 펴 본다.


결정의 표기 방식은 우리가 새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자연어 처리 분야에서 60년 가까이 표준으로 쓰여 온 형식이 있습니다. 괄호 표기법입니다. 학계에서는 Penn Treebank 표기라고 부르고, 실무에서는 De Facto Standard(사실상의 표준)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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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메제웍스 CEO. 배니월드,BTS월드, 세계관제작자. '현명한NFT투자자' 저자. 본질은 환상문학-RPG-PC-모바일-쇼엔터-시네마틱-게임-문화를 바라보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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