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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은WhtDrgon Jun 29. 2021

<게임의 교육,튜토리얼이야기>

김동은WhtDrgon20141229#게임기획자하얀용

개요

이 글은 2014년 12월 29일. 페이스북에 쓴 포스팅을 옮긴 글입니다.

몇가지 이유로 페이스북에 써온 글을 옮기고 있습니다. 


내용

<주니어 게임 디자이너들을 위한, 게임에 존재하는 포기 압박의 처리와 튜토리얼>


 게임은 치밀한 학습의 순환체입니다. 쉬지 않고 '격려'하고, '보상'하고, '지켜봐 주고(눈 맞추기)' 기타 등등을 하게 되는데, 이 방식은 그 어떤 기관의 학습교육보다 게임이 가장 훌륭하게 발달되어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게임들을 보면 하다못해 간단한 튜토리얼조차 기존의 (보통 주입식이라 말하는) 텍스트 프레젠테이션 형태를 답습해버리곤 합니다. 아니 왜?

 그렇다고 그 기획자들(혹은 제작자들)이 게임의 특징을 모르느냐? 그건 아니죠. 게임은 일단 재미있으니까. 남은 가능성은 게임의 특징이 '학습'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게임 자체의 특성으로만 생각해서 경험적으로 만들다 보니, 그 학습용 장치들을 진짜 학습처럼 보이는 '튜토리얼'에 접목할 생각을 미처 못하는 것뿐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요.  "앗 교육이다. 그러면... 학교식으로 해야지!" 

인터넷에 그런 유머가 있었지요. "넌 날면 되잖아!" 우리에겐? 게임이 있지요.  


 물론 게임은 넓은 표현방식을 가지고 있고, 또 이론을 적용한다고 재미있을라는 법도 없고, 지금의 (스킵 가능한 교육이라는) 표현방식이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몇 가지를 구분해놓음으로써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그냥 '경험'이 있지요. 대부분의 게임들은 그런 종류를 이미 경험한 유저들을 위해 출시됩니다. 사실 튜토리얼은 그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필요가 없습니다. 스킵을 눌러버리고 말지. 

 애초에 게임을 설계할 때 (게임에 대해 전혀 모르는) 화이트 유저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면 과감하게 빼버립시다. 그래도 고객 놓칠까 봐 아쉽다면 기왕 만드는 거 잘 만드는 게 좋겠지요. 그래서 '경험'부분은 논외로 치고.  그다음은 '시도'가 있고요.

 사실 '양의 유저'들은 매뉴얼 같은 거 안 읽습니다. 그냥 일단 출격. 사망. 아 이러면 죽는군. 이러면서 배우죠. 하지만 '음의 유저'들은 충분한 준비의 기회가 없으면 불쾌함을 느낍니다. 야단맞을 수밖에 없는 일을 하는 것처럼요. 양의 유저들은 상대평가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시할 수 있지만, 음의 유저들은 이 불합리함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그래서 외향적인 양의 유저들을 위해서는 '협동학습환경'이라는 것을 통해 '시도' 자체를 격려할 수 있고, 내성적인 음의 유저들을 위해서는 '관찰학습환경'을 통해 도울 수 있습니다.  


 '협동학습환경'은 따로 이름 붙이지 않아도 너무도 분명한 '온라인' 환경입니다. 온라인 게임들은 같이 게임하는 이들의 기대 혹은 방해, 랭킹이라는 이름의 보상을 통한 격려, 그리고 그 유명한 '하트'가 있지요. 

 애니팡의 블리츠+매치 3은 인정 안 해도 하트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협력자'들이 보내오는 하트는 '시도'의 지를 엄청나게 강화시킵니다. (물론 하트가 꽉 차 더 이상 재생되지 않는 시점에서 자극되는, 어서 하트를 써서 빈자리를 만들려는 '이익의 극대화'욕구도 있긴 하지만요.)  하트는 그 밖에도 엄청난 효과들이 있죠. 가령 '협력자'들에 대한 실물감이라던가. 그 뒤의 게임들은 이 '하트'를 계승하면서 이런 효과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아무튼.  이 '협동학습환경'이 워낙 특이하고 효과가 좋다 보니 (또는 온라인 환경에서 자연 발생해버리다 보니) 이것이 조력이 아닌 주력이 돼버리는 경우까지 많이 보입니다.  그게 목표 성취단계가 더 높아서 '기여'를 더 높은 가치로 치는 음의 유저들에겐 어떻게 통할지 몰라도 양의 유저는 이 협력학습환경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릅니다.   "동 레벨급의 파티로만 깰 수 있다면, 맨날 경험치 나눠먹는데 대체 난 언제 지존이 되냐!"라고 울부짖게 됩니다. (이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좀 더 의견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걸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시도'를 가속화시키는 것으로 무턱대고 스킵 눌러버린 이들이 게임을 잘 풀어나가도록 할 수 있죠. 


  '관찰학습환경'은 경험상 내성적인 유저에게 더 잘 먹히는 것 같습니다. 자기 할 일 외에는 관심 없는 외향적인 성격에 비해 더 잘 배웁니다. 보통 생각하는 것과 반대인데, 외향적이 더 부주의하고 주변에 신경을 덜 쓰고, 포커싱이 강한 반면, 내성적인 쪽이 더 주변과 상대를 살피고 주변 시야가 더 넓다라고 할까 뭐 그렇게 느껴지는 그런 게 있습니다. 이 타입들은 남이 하는 행동을 곧잘 배웁니다. 가령 옆에 가는 다른 NPC가 점프를 하거나 수류탄을 던지면 금세 그 행동에 대한 학습을 끝내버립니다. 

 여기에 A신호가 나오면 B를 한다! 를 더 명확히 해주면 더 좋고요.  NPC가 미리 선행하여 앞선 장애물을 어떻게 돌파하는지, 게임 방식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보여줄 수 있죠. 타인이 통과했을 때 이미 그 행동을 할 준비가 되어있고, 대응 준비 상태에서는 어떤 작은 신호라도 재빨리 캐치합니다. 화면을 멈추고는 '점프 버튼을 누르세요'라고 팝업을 띄우지 않고 점프 버튼이 한번 반짝이는 것만으로도 요.  

  관찰학습환경에서는 이런 경우엔 자꾸 죽이면 안 됩니다. 성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습이 중요한 것이고, 오히려 처음에 실패했어도, 어차피 배울 것은 배웠으니 다음 진도를 뽑아버리면 됩니다. (너무 유명해서 모두 알고 계실) 슈퍼마리오에서도 처음엔 바닥이 막힌 점프 계단이 나오지만, 성공 실패에 상관없이 그다음 본론이 나오니까요. http://www.auntiepixelante.com/wp-content/uploads/2009/07/supermariobrospractice.png   

 그다음 본론의 연속된 진행을 위해 인과도 중요합니다. 원인-결과의 작용을 학습시키기 위해서는 신호-대응-결과가 필요한데 '타당성'이 함께 곁들여지면 좋습니다. 미끄러지면 죽는다. 부딪치면 HP가 깎인다처럼요. 그건 우린 게임이 아니어도 배워서 알고 있으니까요. (이게 그 유명한 '사용자 경험 UX:유저 익스피리언스죠.)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억'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펙트, 의성어, 진동, 화면의 번쩍임, 파라미터의 변화, 사운드를 통해 입력을 해야 할 신호와 성공했을 때의 감을 기억시킬 수 있습니다.  유저가 익숙해질 때까지는 '뻔한 패턴'을 통해 신호를 더 명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가령 화면 안쪽 저 멀리서 '뻐버벙!' 하면 몇 초 뒤에 하늘에서 바위들이 떨어지기 시작한다거나. 더 적나라한 신호로는 'WARNING'이나 느낌표가 뜨면 보스나 운석이 나타난다거나. 신호를 학습시키고, 처리하고. 연상을 시키기만 하면 그걸 따라 하려 듭니다. 이건 본능이거든요. 

  양의 유저를 위해서는 이 시도 이전에 '분명한 목표'를 제시해줘야 합니다. 동기부여라고 하죠. 이 짓을 왜 하나. 그게 없으면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합니다. 하다못해 마왕이 공주를 납치해가면 그걸 따라나가기라도 해야 합니다.  아. 이 방향으로 전진해야 하는데 이 것들이 방해를 하는구나! 극복해야겠다!라고요. 안 그러면 지루해합니다. 중간중간 자꾸 마왕이 나타나던가, 사부님이 야! 저걸 부셔라!라고 명령이라도 해줘야 합니다. 이 짓을 왜 하는지 알려줘야 합니다. 안 그러면 까먹어요. 

 양의 유저가 전략적으로 복잡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목표가 명확하기 때문이에요. 알아서 의미 부여하라면 화내요. 그건 음의 유저 영역이죠. 거꾸로 음의 유저들은 간혹 게임 목표 내팽개치고 자기만의 목표로 밭에서 약초나 키우거나 피자나 구워서 공짜로 나눠주거나 새 옷 입고 류트나 띵기면서 메타 게임을 즐기기도 하는 거고요. 

 여기서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넣으려 그러면 유저가 혼동합니다. 신호는 분명해야 하고, 몇 차례 반복돼야 합니다. 이미 기억한 신호들 사이의 새로운 신호는 괜찮지만, 새로운 신호'들'은 안됩니다. 이 단계에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더 명확해져야 합니다.


 반복의 횟수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사실은 별 차이 안 납니다. 대부분 '종모양 표준 분포'안에 들어가지요.   이 경우에는 시도를 '투 트랙'으로 갈라서 더 어려운 시도를 비필수 과정으로 두고 '보상'을 제시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보상을 위해 이동하면 회피해버린 원트랙을 '졸업'했다는 느낌을 주고, 새로운 도전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게 할 수 있죠.  가령 화면 하단에 '초보적 패턴 공격'을 하고, 화면 상단에서는 아까 배운 것이 좀 더 어렵게 나오면 유저는 자연스럽게 '체류'하거나 '졸업'할 수 있습니다. 졸업하더라도 또 까먹을 수 있으니까, 다른 것 가르치고 잠시 뒤에 쉬는 시간에 또 내보내서 복습시켜야 합니다. 

  이도 저도 잘 안 되겠으면 유저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게 하세요. 자기가 고생해서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것들은 50개가 넘어도 안 헷갈립니다.  이 과정에서 몬스터나 지역은 같은 학습 응용을 요구하는 경우 동일한 테마를 유지해줘야 합니다. 적어도 좀 더 익숙해질 때까지는요. 쏴서 맞추는 작은 초록 고블린이 나왔다면 더 많이 쏴서 맞춰야 하는 큰 초록 고블린, 쏴서 부술 수 있는 커다란 초록 블록처럼요. 쏴서 부술 수 없는 회색 블록을 써먹었다면 회색 갑옷을 입은 고블린의 등장으로 약점을 쉽게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점수' 등을 통해 보상을 해줘야 합니다.

 그러니 점수나 보상을 너무 막 퍼주면 혼돈을 줄 수 있고, 또 보상을 생색낸답시고 진행을 끊고 보상 치레를 해서도 안됩니다. 유저는 지금 학습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으니까요.  이때 능력 강화를 주면 아- 더 쉬워졌다. 나는 더 강해져서 더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면 더 좋고요.  이 방식은 특히 양의 유저에게 효과가 좋습니다.   특히 음의 유저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의미 보상도 있습니다. 내가 하는 행동을 통해 게임 안의 무언가가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거나, 심지어 변화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보상이 됩니다.

 하늘이 맑아진다거나, 내리는 비의 색깔이 변화한다거나, 바닥에 꽃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거나 말이죠.  아니면 중간 보스를 쓰러트렸더니 뒤에 지고 있던 감옥 상자가 파괴돼서 아기 구름이 풀려나서 하늘에 구름이 생겨났다거나.

 파라미터 보상은 자칫하면 음의 유저들에게는 혼란과 고통만을 줄 수 있습니다. 압박하는 스트레스 요인이 되는 것이죠. 재미도 없고요. 그래서 다른 보상이 필요한 것이죠.  그래서 정량적 보상과 정성적 보상을 혼용해서 써줘야 합니다. 게임의 특징에 따라서는 한쪽을 강화시키거나 심지어 생략할 수도 있겠지만, 순양, 순음의 유저는 없으니 여전히 섞어 쓰는 게 좋습니다. 정량적 보상은 분명한 숫자로, 정성적 보상은 비언어적 신호를 통해서. 

 이 과정에서 특정 행위나 보살핌에 대해 더 의미 있는 선택을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고통받는 요정들을 풀어주는 것과 나쁜 보스를 해치우는 효율적 행위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요? 이런 시선유도를 통해 내성적이었던 유저들이 더 적극적으로 '난도 높은 시도'를 하도록 끌어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어떤 식으로든 '더 직접적인' 과정을 부여하면 상당한 만족감을 끌어냅니다. 가령 그렇게 구한 요정들이 내 캐릭터에 붙어있으면 총알을 피하는데 더 충실해질 것이고, 적을 물리쳤을 때 같이 기뻐해 주고 스킨십을 해 줄 (설사 한 픽셀짜리일지라도) 요정들을 통해 더 큰 만족감과 보상을 받고, 의미부여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많은 (아마 양의) 기획자들은 이런 '무의미함'을 못 참아서 여기에 꼭 정량적 보상을 투입하고 싶어 합니다만 되려 순수한 헌신에 따른 보상 감을 해치게 됩니다.


 여기까지 오고 나면 훨씬 더 편리하게 유저의 자기 조직화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만 더 가면 최초 포스팅의 목적이었던 튜토리얼을 위한 수다를 떨어보자에서 벗어나니까 여기까지. 


  정리하자면, 이런 겁니다. 이 포스팅의 제목인 <포기 압박>은 학습 스트레스의 일종인데, 난이도를 낮춘다고 감소되지 않는 스트레스입니다. 배우려 들기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 즉 유저는 배우지 않으려 들면 언제라도 이 스트레스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발자들이 이걸 착각한 나머지 '쉽게 쉽게'로 가려는데, 그러면 <포기 압박>은 사라질지 몰라도 유저가 심각한 불만족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스트레스 자체가 학습욕구에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적합한 도전도, 받아 마땅한 보상도 없습니다. (친구나 바이럴, 전작 등으로)  신뢰가 형성된 게임이라면 유저는 막일을 해서라도 압박을 증가시켜 스스로 만족하는 수위의 보상을 찾으려 들겠지만, 신규 게임이라면 지루해빠진 게임이 되겠죠.   


 도전은 원래 어려운 겁니다. 쉬운 건 도전이라 부르지 않죠. 이때 필요한 것은 도전하기에 적절한 훈련을 쌓는 과정에서의 포기하지 않게 해주는 격려와 여러 가지 방식의 보상을 통한 '보람'입니다. 필요한 것은 버텨나갈 힘이지, 장애 제거가 아닙니다.  

격려와 바라봐주기를 통해 반복하고 강화되고 '겨우' 훈련되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어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몰입'할 때, 실수 없는 연속된 성공으로 자기 자신에게 감탄하며 고도의 집중을 유지하는 그 찰나의 순간 게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물아일체, 집중, FLOW가 일어나는 그 쾌감, 감탄과 쾌감을 동반한 성공의 보상만이 달성 감을 통해 <포기 압박>을 풀어주게 되고 그 쾌감이 바로, 저기 무지한 사람들이 '중독'이라고 부르는 현상인 겁니다.

  거꾸로 교육 쪽의 수험 노동은 이 쾌감을 누릴 시간마저도 짜내려는 듯 보입니다. 잔인한 것들. 양의 유저 쪽은 또 몰라도, 음의 유저들은 PvP를 통한 상대적 우위와 정량적 보상에 의미부여가 힘들기 때문에 그 게임을 지속하기가 무척 힘들 겁니다. 거꾸로 양의 유저들은 가만히 앉아서 책 보고 있을 스타일이 아니어서 힘들 것이고. 이래저래 피곤하기만 하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시스템이에요. 네. 이런 시스템은 교육이 아니에요. 노동이죠. 누가 교육을 최대 효율로 고문처럼 합니까? 

  이렇게 강화된 유저는 노력과 성공에 대한 경험을 갖추고 게임의 체험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키게 됩니다.  난이도 낮추기가 아닙니다. 이 길고도 섬세한 작업을 만들지 못해서 유저가 어렵다고 포기하니까 난이도를 낮춰버리는데, 그게 답이 아닙니다. 어려운 게 문제가 아닙니다. 도전할 의욕을 지켜주지 못하는 게 문제입니다.  

 영어공부 기초부터 차근차근해보겠답시고 맨날 초등학교 수준 책부터 들여다보기 시작해봐야 지루해서 퍼지기 밖에 안 해요. 도전과 달성 감의 영역을 만들지 못하면 그 공부는 망한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포기 외에 포기 압박을 극복할 방법이 없어요. 이 딴 거 하는데 격려가 되길 하나, 의미부여가 되나, 몰입을 하길하나, 달성 감이 있나... 망한 거죠. 많이들 경험해보셨으면서.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는데 여기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는 있으셨는지 모르겠네요.


20141229

김동은WhtDrgon

#게임기획자하얀용


추가 참고 : https://www.youtube.com/watch?v=IyKwtjnEJQY


참고2 : 주의. 욕설이 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FpigqfcvlM

작가의 이전글 '병맛'이라는 무감각한 단어에 대한 상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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