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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ry Dec 23. 2021

경계 안이 아닌 경계 위에

연극 <보더라인>


(사진: 아트인사이트)

  

 우리는 연극을 보며 ‘경계’에 관해 어떠한 감각을 되새길까. 관객들은 외부에게 방해받지 않는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현실과는 닮았지만 현실이 아닌 이야기를 본다. 가상의 이야기를 보며 현실을 되돌아보고, 극장 안의 에너지를 극장 바깥으로 확장시키는 경험 또한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극장 안에만 머물러 그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지 못하거나 그 힘을 퍼트리지 못하는 경우 또한 수없이 일어난다. 이러한 관극의 경험은 극장 안팎의 경계를 더욱 뚜렷이 감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관객은 연극을 보는 내내 극장 안과 밖, 연극과 연극 아닌 현실, 가상과 실제의 차이에서 오는 경계성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되새기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관극 경험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연극 안의 경계를 흩트리는 작업이 어떻게 가닿을 수 있을까. 한국의 크리에이티브 Vaqi와 독일의 레지덴츠테아터는 연극 <보더라인>을 공동제작하여 연극 안에서의 경계에 대한 감각을 확장하려 시도했다. <보더라인>은 연극 아닌 것과 연극, 논픽션과 픽션, 당사자와 비당사자 등 우리가 구분 지어 생각했던 것들을 한 데 모아 경계성에 관한 색다른 경험을 이끌어낸다.     


경계선 위에 존재하다.

 연극의 제목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경계선상의’를 뜻하는 영어 단어에서 비롯되었다. 제목에서와 같이 연극 안에는 이곳이나 저곳에 속하지 못하고 경계 위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린 시절 독일의 통일을 경험하고 최근에는 뮌헨으로 이사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동독 출신 배우 플로리안,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고 있는 한국 배우, 북한에서 남한으로 건너온 인물(을 연기하는 한국 배우들)이 연극 안에 등장한다. 

 이들은 경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고, 누군가 정해놓은 경계를 넘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건너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어느 곳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하고 혼란을 겪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과 살고 있는 곳, 익숙한 곳과 적응해야 할 곳의 경계 사이에서 정체성이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이들의 경험은 분단을 겪었던 독일과 한국의 경험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속했던 나라를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 하는 난민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탈북 여성을 연기하는 한국 배우 소현은 직접 독일어를 배우고, 독일에 정착한 케냐 난민의 글을 읽어나간다. 원래 그 경계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곳에 속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국가 혹은 사회, 그 안의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경계 위'를 부유한다. 이로써 ‘나와 너’, ‘자신과 타인’으로 구분 지어 생각하는 것이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경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 위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감각을 전달한다. 이들은 과거와 현재, 이곳과 저곳, 내가 살던 곳과 내가 살아가야 하는 곳의 구분을 흩트리며 항상 어떤 카테고리 안에 누군가를 배치하게 만드는 우리 안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이끈다. 


 연극이라는 예술의 경계

  <보더라인>의 무대 위에는 특별한 설치물이 없다. 화면 속 배우들을 비추는 스크린과 연극 초반 직접 만들어놓은 텐트, 카메라 등이 놓일 뿐이다. 영상 기계를 조작하는 스태프들이 무대 위에 함께 노출이 되기도 한다. 암전 또한 거의 일어나지 않아 무대 위에 거의 유일하게 존재하는 배우 소현이 하는 행동이 끊임없이 관객들의 눈에 들어온다. 

 다른 배우들은 프로젝터가 영사하는 화면을 통해 등장한다. 영상은 미리 찍어놓은 영상일 수도, 극장 바깥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영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둘의 구분 또한 정확하지 않다. 무대 위 소현이 독일어를 공부하는 장면 또한 카메라를 바라보는 소현의 모습이 화면에 비춰지는 것으로 진행된다. <보더라인>은 내용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연극의 형식적인 면에서  영상과 연극, 온라인과 오프라인, 실시간과 녹화 등을 오고 간다. 그리하여 전통적 연극이 사용하는 연극적 형식의 경계를 확장시킨다. 

 공연을 보는 내내 연극이 이렇게나 영상을 오래 사용해도 될까? 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현실을 찍은 다큐멘터리 영상과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이야기 사이의 경계가 계속해서 되새겨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1명의 배우가 존재하는 무대 위와 3-4명의 배우가 연기하거나 말하는 화면을 동시에 보는 어색함도 작용했다. 

 공연은 말미에 탈북 남성을 연기한 배우를 실제 탈북민으로 착각한 독일 관객들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 배우를 몰랐거나 당사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믿었던 관객들은 비당사자인 배우의 연기를 통해서 그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달받았음을 인지하게 된다. 사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과 허구를 다루는 연극 사이의 경계성이 모호해지는 순간이 생겨났던 것이다. 


 관객은 배우가 그어놓은 하얀색 선을 따라 극장을 빠져나가는 과정을 통해 경계성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며 돌아가게 된다. 공연은 언어와 국가, 민족 사이의 경계에 대해 다룸과 동시에 ‘연극의 형식’의 경계를 흩트린다. 그리하여 경계 짓는 것이 익숙한 관객에게 경계 안에 속하는 것이 아닌 경계 위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경험을 전달하며 경계성에 관한 감각을 확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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