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ery Dec 23. 2021

작은 공간에 담아낸 삶이라는 대서사

연극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

(사진: 뉴스와이어)


 극장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또 그것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여러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극장이라는 공간은 긴 시간 동안 창작의 장이자 소통의 장으로 기능해왔다. 그리하여 극장 공간을 우리 일상으로 끌어오려는 시도들은 그것이 가지는 예술적, 사회적 기능을 확장시키려는 노력의 일부이다. 극장 밖 연극들은 창작자와 관객 모두에게서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각을 이끌어낸다. 이로써 우리 일상의 공간에 침투하여 관객과 가까운 곳에서 여러 목소리들이 공명할 수 있도록 이끈다.             

 극단 하땅세의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마디>(만 마디...)는 ‘라이트하우스’라는 극장 밖 공간에서 연극을 선보인다. 공연은 한 인물의 생애를 거쳐 여러 공간을 넘나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일반 주택 공간에서 펼쳐냈다. 이들은 극장보다 훨씬 작은 공간에서 관객과 만나며, 관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연극이 공연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해낸다. 


 한 사람의 일생이라는 대서사

 <만 마디...>는 동명의 중국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공연이다.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홀대받은 ‘양백순’이 마을을 떠나 겪게 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공연이 전개된다. 양백순이라는 인물은 양백순에서 ‘양모세’, 양모세에서 ‘오모세’로 이름을 바꾸며 이곳저곳을 전전한다. 연극은 양백순이 원래 살던 고향을 떠나 발붙이고 마음 붙일 곳을 찾는 일상의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몇십 년 간 벌어지는 삶을 다룬 공연은 한 인물의 일상을 다루고는 있지만 소소한 차원의 일상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가 겪는 일상의 사건들이 스스로 자신은 누구인지, 그리고 또 어디서 왔는지 그 답을 갈구하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떠올려 보았을 원초적인 물음, 그리고 외로움으로 인한 방황이 양백순의 삶에 달라붙어 있다. 

 그의 삶에는 연극적 상황과 구도, 반전과 충격적인 사건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양백순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개연성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그 환경과 배경 안에 존재하는 평범한 인간인 양백순은 일생을 방황한다. 자신을 계속해서 배신하는 외부적 상황과 내면의 고독으로 인해 떠도는 한 인간의 이야기는 원작의 배경인 격동의 시기를 초월하여 현재의 관객과 만난다. 그리하여 더욱 깊어져 가는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는 현재의 현대인들에게 충분히 유효한 것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렇듯 한 인간이 겪어 온 일상의 파편들과 그 안에서의 사건들은 그것의 소소한 전시로만 남아있지 않는다. 주인공 양백순의 삶 안에서 각인된 현대인의 방황과 외로움, 인간 근원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들은 그것이 펼쳐지는 일상을 하나의 대서사로 바꾸어 놓는다. 그가 살아온 생애를 담은 대서사는 그 장면 장면을 함께 본 관객들이 그들 스스로의 삶과 존재에 대해 질문하도록 이끈다.    


 방대함을 담아낸 작은 공간 

 대서사가 된 삶을 담아낸 연극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극장보다 협소한 공간인 라이트 하우스라는 주택에서 공연되었다. 인물 수십 명이 등장하고 수많은 장소를 옮겨 다니며 진행되는 공연은 여러 개의 공간으로 나눠져 있는 주택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또한 문과 문으로 분리되고 연결된 주방과 화장실, 거실 공간을 통해 양백순이 살아온 삶의 파편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 지었다. 

 극장이라면 흔히 구비된 장치들도 존재하지 않고, 정해진 출입구도 없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배우들이 등퇴장하고, 판자나 나무 테이블 등 최소화된 소품으로 공간이 구축된다. 또한 객석 바로 옆에서 내레이션이 이루어지고, 배우들과 시선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공연이 펼쳐진다. 연극을 보는 데는 익숙하지 않지만 우리 삶과 너무나도 가까운 일상의 공간에서 공연이 이뤄진다. 이러한 특징은 극장 밖에서 관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연극이 있음을 몸소 증명한다. 공연은 이 작은 공간에서 한 사람의 삶과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목소리가 공명하여 관객들에게 가닿을 수 있도록 한다. 


 공연은 극단 하땅세 특유의 신체 연기와 재치를 통해 수많은 인물이 스쳐 지나가는 수십 년의 복잡한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바꾸어 놓았다. 재미를 담은 동시에 양백순이라는 인물이 평생 방황하며 고뇌하는 과정에 집중하여 인간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하도록 이끈다. <만마디...>는 한 사람의 생애를 담은 대서사이자 일상의 나열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 존재에 대해 고뇌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작가의 이전글 경계 안이 아닌 경계 위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