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휘빈 Jun 16. 2022

새 웹툰·웹소설 나왔다하면…'이세계물·전생물' 천지

이 기사를 보강합니다 (1)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2061214374728593&type=2&sec=lifeculture&pDepth2=Ltotal


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 22.06.13 05:44



기존 판타지 문법과 달리 '현생의 자아' 지닌 채 새 세계관으로 편입



현실에선 그저 그런 고등학생이거나 직장인인 주인공. 어느날 사고를 당하거나 목숨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다른 세계로 빨려들어간다. 전생의 기억을 지닌 채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한 주인공은 그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실력자로 성장한다.

최근 웹툰과 웹소설판에 쏟아져나오는 판타지물의 흔한 설정이다. 이 같은 장르를 '이세계물' 내지는 '전생물'이라 부른다. 독자들이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시장에서 급속히 비중을 늘려가고 있지만, 대부분 유사한 설정을 차용하면서 표절 시비에 자주 휘말리는 단골 손님이 되기도 한다.



언어는 그리 완전한 도구가 아닙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 의미를 다르게 잡는 경우도 꽤나 많지요.

그래서 그 상황에서, 그 언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두 가지 단어 사용의 오류를 먼저 지적하겠습니다. 이를 지적하지 않으면 다음으로 나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오류는 다른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살게 되는 건 전생이 아니라는 겁니다.

다른 세계로 건너간다면 이는 이세계진입물로 구분되며 대비되는 현세계를 '전생'으로 칭하지 않습니다. 이는 혼용될 수 있으나 (죽고 다시 태어났는데 이세계였다) 명백히 구분되는 장르입니다. 이것이 블로그 포스트라면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이나 기사로 나온 이상 지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 오류는 '이세계물', '전생물'이 한국에서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세계물의 경우에는 반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세계물이라는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 판타지 시장에서 '이세계물'이라는 말은 굳이 쓰이지 않으며, 현재 '이세계물'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일본작품군을 가리킵니다.


'전생물'은 아예 한국에서 쓰지 않는 명칭입니다. 일본에서 쓰는 일본 장르명이며, 한국인이 발화한다면 일본 작품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한국에서 전생물에 대비되는 장르명을 찾자면, 아마 회귀물이겠지요. (환생, 회귀를 반복해도 환생물, 루프물이라고는 안 부르더군요)


한국에서 전생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前生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전생물은 구를 전轉 자를 쓰는 전생轉生입니다. 가리키는 것이 명확히 다르지요. 이와 비슷한 일을 본 적이 잇는데, 로판에서 '악녀물'이 유행한 것을 가지고 일본의 유행 장르인 '악역영애물'이 유행했다고 주장하던 일입니다. 각기 서로 상통하는 면은 있으나 가지고 있는 기반이 다르며, 방향성도 분명히 다릅니다. 이를 구분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현재 주로 "이세계전생물"로 카테고라이즈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본 질문으로 들어가겟습니다.



"기존 판타지 문법"은 무엇인가?


첫 번째 인용문에서는 "기존 판타지 문법"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는데, 이는 "현생의 자아"를 지닌 채 새 새계관으로 편입되는 것이 기존의 문법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인용을 분해한다면 다음과 같은 요건이 발생하며, 이에 포함되는 것은 "기존 판타지 문법"이 아니게 됩니다.


1. 사고를 당하거나 하여 다른 세계로 감

2. 전생의 기억을 가진 채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함


본문에 '아서 왕 궁정의 코네티컷 양키'가 나와 있듯이, 사실 옛 이야기에서 찾으면 다 나오는 요소들입니다.

하지만 기사는 '판타지'라는 장르를 가리키고 있죠. 판타지라는 장르의 성립은 일단 톨킨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톨킨도 엄청 옛날 이야기죠.


그렇기 때문에 현대, 한국 기준으로 보겠습니다.


1. 사고를 당하거나 하여 다른 세계로 감 : 대략 2년 전 일본의 '이세계전생물'에 대해 '환생트럭'이라는 말이 새로 생긴 유행어처럼 오간 것을 보고 좀 놀란 적이 있습니다. 왜냐면 00년대 초 한국의 대여점 판타지 중 차원이동물, 이세계진입물(네, 용어가 좀 다릅니다)이 유행하던 때, 독자들끼리 '환생트럭'이라는 농담을 주고받았거든요. 병이나 사고로 죽는 것도 흔했지만 제일 쉽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역시 교통사고니까요.


2. 전생의 기억을 가진 채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함 : '전생'은 위에 설명했듯이 사실 마땅한 단어가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겠습니다.


1. 회귀(과거로 돌아감)하여 미래에 대해 알고 있어 유리한 위치를 점함

2. 현대인이라 각종 지식으로 편의를 도모, 유리한 위치를 점함

3. 여러번 환생하여 높은 경지의 기술로 유리한 위치를 점함


1번은 사실, 한국이라는 지형에서 '장르소설'이라는 제한을 제거하자면 보자면 98년 드라마 <천사의 키스>에서 도 나왔었습니다. (시계악마가 주인공을 과거로 보내주며, 미래지식을 통한 이익으로 유혹하려는 장면이 나옴) 제 기억에 판타지라는 필드에서 '미래에 대해 알고 있어 유리한 위치를 점함'은 00년대 중반부터 유행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2번은 일본의 '이세계전생물'로 많이 알려진 패턴이지만 사실 00년대 초 대여점 차원이동물에서 이미 '이고깽(이계진입고딩깽판물의 준말)'의 주인공들이 시도한 일들입니다.

3번은... 사실 어디서 시초를 찾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실제 웹소설 시장에서는 이것이 여러번의 회귀를 통해 얻은 기술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정도 1과 경합하기도 하는 것이죠.


이상의 예시에서, '기존 판타지 문법'이 아니라는 요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최소한 00년대부터는 활발하게 쓰였다는 것이죠.

네, 한국에서 '사고 등으로 다른 세계로 감', '현대인 메리트' 등은 이미 00년대부터 있었던 코드입니다.

즉 '20년은 묵은 클리셰' 라는 뜻입니다.


20년이나 사용된 요소들을 "기존"이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기존"에 해당하는 작품은 무엇입니까? 설마 제 예상과 달리 톨킨입니까?


현대-외국-판타지 장르 기준으로 보더라도, 일단 로저 젤라즈니와 대화를 해 봐야 할 필요성이 있겠군요.


그렇지만 톨킨도 하이판타지와 로우판타지의 개념을 나눈 것을 생각할 때, 그때도 이계진입물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뭐, 사실 "나니아 연대기"도 이계진입물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최근 나오는 이세계물들의 포맷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점이다. 현실을 살던 주인공에게 게임 캐릭터 같은 성향이 부여되거나(나 혼자만 레벨업),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판타지 소설 속 드래곤이 됐다는 설정(여고생 드래곤) 등이다. 대부분 판타지 소설의 진부한 세계관이나, 롤플레잉 게임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이처럼 유사한 장르 속 떨어지는 독창성은 끊임 없는 표절 시비가 나오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국내 작품간 표절도 자주 발생하지만, 그나마 참신한 설정을 베끼기 위해 일본 작품을 표절하다 네티즌에 의해 발각되는 경우도 흔하게 일어난다.


장르는 규칙 하에서 성립합니다.

물론 그 규칙을 언제나 지킬 필요까지는 없지만, 몇 개는 어기면 몇 개는 지키는 식이죠.

바꿀 수 없는 규칙도 있습니다. 이세계물, 차원이동물은 '이세계에 진입해야/차원이동에 성공해야' 성립하겠죠.


지금 제시된 예시는 "도입부"를 두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현 웹소설 사업구조상 도입부는 어느정도 유사한 것이 사실입니다. 게임시스템창 역시 지나칠 정도로 보급되었죠.


그러나 "포맷", 즉 구조가 동일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면 이와 같은 단순한 것만을 보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진부한 세계관"이라고 경멸적으로 말할 거라면 그 세계관이 어째서 진부한지 한 마디라도 적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발언은 로맨스 작가로서, 로맨스를 폄하하는 발언에서도 흔히 본 것입니다.

또한 현재 웹소설에 가해지는 비난과 일맥상통하죠.


"유사한 장르 속 떨어지는 독창성"은 "끊임없는 표절 시비가 나오는 이유"가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직업의식, 직업윤리 없음과 연동하는 천민자본주의의 폐혜에 가깝습니다.

이는 작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 출판사, 독자 모든 사람을 포함합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지면을 할애해야 하니 차지하겠습니다.


장르가 어떤 규칙을 가지고, 어떤 유사성을 가진다는 것이 장르의 창작성을 저해하진 않습니다.

교습자로서 저는 학생들에게 자주 말합니다. "예술이 자유롭다는 것은 정치적 박해가 없어야 한다는 걸 말하는거고, 예술 자체는 제한 안에서 만들어진다. 당신은 글이 아닌 것으로 소설을 쓸 수 있나? 서술과 대사 없이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는가? 제한 안에서 무엇을 극대화하여 보여주는가가 예술이다" 라고요. 


제한 자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술에는 언제나 규격이 있었고 그 규격 안에서도 기발함을 뽐내기 때문에 감탄하는 것입니다.

로맨스, 할리퀸, 드라마는 언제나 다 똑같다는 비난을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모든 할리퀸, 로맨스, 드라마는 는 표절입니까? 비슷한 플롯안에서도 오리지널리티, 독창성은 존재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독창성'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장르의 규칙은 독자와 작가가 만들어낸 그 장르의 역사입니다.

진부한 세계관도, 시스템창도 그러한 '약속'이며, 이것을 별 고찰 없이 '장르 속 떨어지는 독창성'으로 언급하는 것이 극히 무례하다는 것은 언제쯤 알려질까요.



첨언. "여고생 드래곤"은 웹툰입니다. 같은 '판타지' 장르라고 하더라도 만화와 소설은 매우 다른 경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드라마 로맨스와 로맨스 소설, 로맨스 판타지 역시 같은 장르가 아니듯이요. (혼란이 오셨나요? 모른다면 그럴 수 있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