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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자로그

국회의원이 기자에게 말했다. "내가 왜 당신 선배요?"

기자는 왜 정치인을 "선배"라고 부르는가

by 허남설

기자는 국회의원을 "선배"라고 부른다. 아무 국회의원 이름을 하나 떠올리고 그 뒤에 선배를 붙여 "○○○ 선배"라고 부른다고 생각하면 된다. 선후배 할 때 그 선배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정의한 선배는 이렇다. '같은 분야에서 지위나 나이, 학예 따위가 자기보다 많거나 앞선 사람', '자신의 출신 학교를 먼저 입학한 사람'. 용법의 예시로는 '대학 선배'와 '동아리 선배'를 꼽았다. 그 많은 기자들이 국회의원과 대학교나 동아리로 연결돼 있다는 말인가. 그럴 리는 없다. 여기에는 몇 가지 속설이 있다.


하나, 예전에 국회의원과 기자는 모두 서울대를 졸업했기 때문에 선배란 호칭이 굳어졌다는 가설이 있다. 지금이야 인터넷 매체 소속 기자까지 포함해 국회 출입기자가 족히 수백 명은 되지만 20세기엔 달랐다. 1970년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 지낸 어느 학자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서울시청 출입기자는 대여섯 명이었다더라. 기자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가뭄에 콩 같은 귀한 존재였을 것이다. "사시, 행시, 안되면 언시(이른바 '언론고시')"란 전설 같은 말도 있었더랬다. 아마 그들이 모두 선후배 사이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겠다.


둘, 기자는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도 꿀리지 않는 곤조를 보이란 의미에서 선배란 호칭을 썼다는 가설이 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기자들은 악명 높은 하리꼬미(경찰서에서 숙식하며 사건 취재를 연마하는 수습 교육 과정) 기간에 경찰들을 "형님"이라고 부르도록 지시받는다. 요체는 "수사과장님"처럼 취재원의 직위와 존칭을 담은 공식 직함을 철저히 배제해 맞먹으라는 의미다. 다만 "야, 야" 할 수는 없고 어느 정도 높여 부르려다 보니 형님이 됐을 터다. '국회의원 선배'도 비슷한 맥락이란 설명이다.


사실 이제는 모두 다 정말 옛날이야기들이다. 요즘 기자들의 출신 대학은 너무나 다양하고, 경찰서에서 형님을 찾는 기자도 보기 어렵다. 일면식도 없는데 당직 근무 후 눈이 시뻘건 형사에게 간밤의 발생 사건 좀 얻어보겠다고 "형님"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가는 '이 새끼 뭐지'란 눈빛만 돌아오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국회의원은 여전히 선배다. 오늘도 국회 기자실 앞 복도엔 여기저기서 살갑게 "선배~"를 부르며 통화하는 기자들이 있다. 사회적 토대가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는 이 관습엔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셋, 나는 국회의원과 기자의 동류의식이 동반 상승하는 수단으로써 선배란 호칭을 유지한다는 가설을 세워본다. 몇 년 동안 관찰한 결과 이 감정은 기자들의 취재에도, 국회의원들의 자기 관리에도 상당히 유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먼저 기자들은 개개인이 헌법기관(국회의원들이 걸핏하면 쓰는 표현으로 자신들이 헌법상 규정된 존재임을 강조한다)인 국회의원들을 스스럼없이 "선배"라고 부르는 것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 욕구를 충족한다. 쉽게 말해 은연중에 "나는 이런 사람과 좀 가깝다"라고 으스대는 셈이다. 그래서 기자들은 기사를 쓸 때는 비문을 남발하는 한이 있더라도 문장을 어떻게든 줄여서 쓰려고 하면서도, 남들 앞에서 국회의원을 거명할 때는 언어의 경제성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곤 한다. "'△△△'은 말이야~"하고 이름만 말하면 될 것을 굳이 "'△△△ 선배'는 말이야~ 원래 정치를 그렇게 하던 사람이 아니거든~"이라고 한다. 우리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안주거리로 올릴 때 "'이재용 부회장'이 어쩌고"라고 하던가? 툭하면 '△△△ 선배'를 입에 올리는 기자들이 '김희애 배우'라든지, '유재석 방송인'이라고 꼬박꼬박 직함을 달아주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하다못해 언젠가는 내가 말을 할 때마다 "□□□ 의원"이라고 하자 한 선배는 "뭘 의원이라고 해. 그냥 선배라고 해"라며 핀잔(조언이었나?)을 주기도 했다. 언어습관이 이렇게 무섭다.


그럼 정치인은 선배로 불리는 게 무엇 때문에 좋으냐고? 나이도 한참 어리고 무슨 대학을 나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선배, 선배" 거리는 말버릇을 적당히 받아주면 이 기자는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웬만큼 '여의도 짬'을 먹은 정치인이라면 이 생리를 모를 리가 없다. 기자는 자신을 알고 지낸 시간과는 상관없이 굉장히 친밀하다고 '착각'할 가능성이 높으며, 아무래도 기자는 국회의원 300명 중 조금이라도 더 친하다고 느끼는 정치인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할 가능성 또한 높다. 그 국회의원은 어디를 가서든 "의원님"이라고 불리며 대접을 받지만, 기자들에게는 다소 건방진 "선배"를 용인함으로써 목소리를 키울 수 있게 된다. 어감이 좋지 않지만 나름 기자를 '포섭'하는 방법 중 하나다.


벌써 이십여 년 전, 선배라고 불리기를 거부했던 한 국회의원의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한 기자가 대뜸 "선배"라고 부르자, 이 국회의원도 대뜸 "내가 왜 당신 선배요?"라고 쏘아붙였다는 것이다. "어느 고등학교를 나오셨어요?"라고 묻기까지 했다는 전언도 있다. 그는 지금도 당시 국회에 출입했던 기자들 사이에선 재수 없고 비호감인 정치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선배"를 용인하지 않는 국회의원은 '나쁜 사람'이거나 인기 없는 취재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런 국회의원들은 점점 늘고 있다. 세상이 변했다. 아무리 곱씹어도 이상하다. 왜 그 국회의원이 당신 선배인가.


그럼에도 많은 기자들은 여전히 '국회의원 선배'를 유용한 취재 기법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누군가는 그냥 관습이거나 문화일 뿐인데 왜 정색을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글쎄, 과연 당신의 독자가 보기에도 그럴까?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 많아서"라고 자조하는 기자도 있다. "선배"는 정치인 개개인의 능력과 가치관은 물론 인품, 판단 능력 따위와는 아무 상관없이 친소 관계에만 치우친 기자들의 취재 방식을 상징하는 언어일지도 모른다. '국회의원 선배'는 유착하는지도 모르고 유착하는 권언 관계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유착이 사실 별 게 아니다.


Photo by The Climate Reality Projec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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