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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자로그

대선 보도가 편파적이라고 느끼는 당신께

제약을 받는 기자, 욕망을 좇는 기자

by 허남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왔다.


내년 대통령 선거가 100일 남짓 앞으로 다가온 요즘은 정치부 기자가 아닌 기자는 참 일할 맛이 나지 않는 때다. 평소엔 기사 한토막도 읽지 않던 사람들도 슬슬 뉴스를 들춰보는 이 시기엔 정치 분야 뉴스가 아니라면 정말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 사회의 모든 활력이 오직 정치에 집중되다 보니 다른 분야에서 무슨 일을 벌여도 주목받기가 쉽지 않다. 자연히 정치부 기자가 아닌 다음에야 기자들은 대부분 기사거리가 없는 기근에 시달린다. 어느 매체든 기자들을 정치부에 대거 투입하다 보니 그만큼 정치 기사는 생산량도 많다.


정치 기사는 기본적으로 대결 구도를 담는다. 여 대 야, 더불어민주당 대 국민의힘, 이재명 대 윤석열. 총과 칼 대신 말과 글로 편을 갈라 싸우는 게 정치다. 정치의 계절, 대선 같은 큰 선거가 다가오면 많은 시민들이 이 편 가르기 싸움에 촉을 세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지지하는 정당이 점점 뚜렷해지기 마련이다. 선거 기사의 독자는 이렇게 정치에 예민해진 사람들이다. 선거 때만 되면 정치 기사의 편파성이 더욱 크게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에 어떤 기사 한편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적잖게 논란이 되는 걸 봤다. 한 후보가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자고 한 것과 다른 후보가 종합부동산세를 아예 폐지하자고 한 것을 대치시키면서, 뒤의 후보가 사실상 부동산 공약 대결에서 승리했다는 평가를 실은 기사였다. 논란이 될만했다. 정치부 기자를 3년 넘게 하면서 총선, 지선, 대선 다 취재해 본 나도 이 정도로 노골적으로 편을 들어주는 기사는 솔직히 처음 봤다. 지인이 물었다. "이런 기사는 데스크가 써주는 거지? 어떻게 이렇게 대놓고 편파적일 수 있지?"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은 수준의 기사이긴 했다.


1번을 지지하든 2번을 지지하든, 정치 기사를 읽으면서 어느 한쪽에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본 경험이 아마 누구에게나 있을 거다. 나의 지인처럼 일선 기자들의 기사를 마구 뜯어고치는 데스크, 편향적인 논조를 설정하고 하달하는 논설실장이나 언론사주, 그리고 그들과 매일 밤 술을 퍼마시는 거대 정당의 정치인들, 이런 배경을 상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차라리 그런 것들 때문이라면 편파성을 바로잡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척결해야 할 대상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랜 관행으로 굳어져 바꾸기 쉽지 않은 취재 시스템, 법이나 물리력으로 제어할 수 없는 기자 개인의 욕망…. 실제로는 이런 것들이 불공정 보도를 조장한다.


일단 '출입처' 제도를 보자. 이게 진짜 고질적인 문제다. 기자들은 모두 출입처를 기반으로 취재 활동을 한다. 정치부에서는 정당으로 출입처가 갈린다. 민주당을 출입하는 기자가 따로 있고, 국민의힘을 출입하는 기자가 따로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함께 출입하는 기자를 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민주당 출입 기자는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보좌진, 사무처 직원을 상대로 취재하면 되지, 국민의힘 쪽으로는 신경 쓸 일이 거의 없다. 자연히 정치부 기자는 취재하는 과정에서 특정 정당의 사람들과 집중적으로 만나게 된다. 아무리 한평생 1번을 찍던 기자도 2번 정당을 출입하면 그들의 말과 글에 온종일 자신을 노출시켜야 한다.


그 결과는 상상하는 대로일 것이다. 한 정당을 오래 출입하다 보면 이런 말을 듣는 일이 종종 생긴다. "어이, 김 기자. 이제 빨간(파란)물 많이 들었네?" "김 기자 이제 완전히 우리 편 된 거 같은데?" 물론 농담이지만 예사롭지는 않다. 편을 갈라 말과 글로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쪽 편의 말과 글만 주야장천 접하는 환경에 기자를 몰아넣는 게 바로 출입처 제도다.


'마크맨' 제도는 그런 환경을 심화시킨다. 마크맨은 특정 정치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하는 기자를 말한다. 대개 언론사마다 어느 정당의 대선후보나 대표, 원내대표 같은 인사들을 집중적으로 취재하는 마크맨 기자들이 별도로 정해져 있다. 이재명 마크맨 혹은 윤석열 마크맨, 이런 식으로.


마크맨은 자신이 맡은 대선후보가 집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집에 들어가기까지 일정을 온종일 따라다니며 그의 말과 글을 따라잡는다. 정말 '라떼는' 같은 이야기인데, 예전 정치부 기자들은 꼭두새벽 거물급 정치인의 집 앞으로 출근해 아침식사부터 함께 했다고 한다. 당대표를 총재라고 부르던 시절의 이야기다. 여하튼 그런 식으로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이 맡은 대선후보와는 자연스럽게 안면을 트게 되겠고 말도 섞고, 선거 와중이라 바쁘지만 가끔은 술잔을 기울이는 일도 생긴다. 물론 이재명 마크맨은 이재명과 그럴 것이고, 윤석열 마크맨은 윤석열과 그럴 것이다. 그 반대로 그럴 일은 없다. 그 결과 역시 상상하는 대로일 것이다.


여기에 기자 개인의 욕망까지 가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언론계에서는 '1호 기자'라고 부르는 기자가 있다. 바로 청와대 출입기자다. 1호 기자라니, 얼마나 영예로운 별칭인가. 하지만 사실 요즘 대부분 젊은 기자들은 그 용어가 굉장히 우습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그렇다. 대통령을 1호라고 지칭하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기자에도 1호가 있다니. 물론 그렇지 않은 기자들도 아직 많다는 게 문제다. 청와대 출입기자가 되는 걸 목표로 삼고 기자 생활을 시작하는 친구들도 많이 봤다.


1호 기자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출입하는 정당에서, 특히 내가 '마크'하는 정치인 중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된다. 아무래도 언론사 입장에서는 대통령과 친분이 있거나 안면이라도 튼 기자를 청와대에 출입시키길 원하게 된다. 대선후보 캠프를 출입하다 보면 그 캠프에서 일하는 정치인들과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이, 김 기자. 우리 같이 청와대 가야지?" 이 역시 농담이지만 예사롭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청와대 출입을 기자로서의 삶에 목표로 둔 기자라면, 내가 마크하는 대선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데 도움 될 기사를 쓰겠다는 유혹에 얼마든지 이끌릴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다른 대선후보를 마크하는 기자들끼리는 한 언론사에 몸담고 있어도 여야만큼이나 적대적인 관계가 되기도 한다. 그 결과도 상상하는 대로일 것이다.


앞서 밝혔듯 나도 특정 정당을 3년 넘게 출입했다. 당연히 어느 대선후보의 마크맨이기도 했는데, 지금도 누군가에게 당시 경험을 이야기할 때면 '스톡홀름 신드롬'이란 표현을 쓰곤 한다. 납치범에게 납치 피해자가 감정적 동조를 느끼는 현상 말이다. 출입처, 마크맨, 그리고 1호 기자라는 목표. 지금도 분명 어느 기자는 이 세 개의 덫에 걸린지도 모르고 기사를 쓰고 있을 것이다. 이건 영화 <내부자들>처럼 타파해야 할 '거악의 카르텔'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냥 오랜 관행과 개인의 욕망이 적절히 뒤섞인 평범한 일상이다. 그래서 바꾸기가 더 어렵다. 안타깝지만, 거르는 건 결국 독자의 몫이다.


Photo by Pascal Bernard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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