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ird World, Water Is Still a Deadly Drink. 1997년 1월 9일자 뉴욕타임스에 니콜라스 크리스토프(Nicholas Kristof)가 쓴 기사의 제목이다. '제3세계에서 물은 여전히 치명적이다'란 뜻이다.
오늘도 케이블TV 시청자의 지갑을 노리는 세이브 더 칠드런이나 굿네이버스의 광고에서 봤을 것만 같은 문구다. 10살도 안돼 보이는 삐쩍 마른 소년, 아프리카 오지에 있는 토굴 같은 집, 음용수를 구하기 위해 몇 km 길을 맨발로 걸어 두 양동이 가득 물을 길어오거나 집 근처에서 대소변이나 음식물 쓰레기와 아무렇게 뒤섞였을 것 같은 물을 마시는 장면 따위를 떠오르게 한다. 이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과자 사고 싶은 욕구를 한 번만 참고 1000원을 기부하면 기아에 시달리는 또래 친구 몇 명이 며칠 동안 배불리 먹는다는 이야기 한번 듣지 못하고 자란 사람도 있을까. 그러니 이런 이야기를 기사로 쓴다는 건 정말 한가한 일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만약 서울에서 깨끗한 물을 못 마셔서 죽은 사람이 있다면 혹시 모를 일이지만. 이쯤에서 기자들에게 유명한 격언을 떠올려보자. "개가 사람을 무는 게 아니라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가 된다."
기사 내용은 예상했던 대로다. 인도 뭄바이에서 가까운 한 도시 빈민가에서 아이들이 배변과 뒤섞여 세균이 침투한 물을 마시고 설사병을 앓다가 죽는다는 내용이다. 크리스토프는 그렇게 죽은 아이 가족의 증언과 지역 관찰을 토대로 이 기사를 썼다. 이 기사 인터넷판에는 이런 환경에서 시달리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월드 비전 등 조직의 주소를 덧붙였다. 크리스토프는 이 기사를 쓰기 전에도 여러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을 다니며 열악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취재했던 것 같다.
크리스토프는 "제 기사의 논점은 사람들에게 상기시키는 것이었다"라고 말한다. "세계의 아이들이 뉴욕이 아닌 니제르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예방 가능한 원인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요."
크리스토프는 이어서 말한다. "언론은 주로 당일에 벌어진 일을 다루려고 해요. 기자회견장에 진을 치고 특종을 좇죠. 일상적인 일을 다루지는 않아요. 매일 겪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놓치곤 하고, 일상에서 겪는 생활조건을 개선하는 이야기도 지나쳐버리죠. 매일 벌어지는 일들은 결코 뉴스거리가 아니거든요." 크리스토프도 한국 기자 사회의 유명한 격언을 들었나 보다. 다시 인용하지만, "개가 사람을 무는 게 아니라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가 된다".
다만, 크리스토프의 말대로 "이 기사는 금세 잊혔지만 시애틀에 사는 중요한 독자 두 명이 주목했다". 그 두 사람 때문에 크리스토프의 '개가 사람을 무는 이야기'는 세상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운 빌 게이츠와, 그와 함께 빌&멀린다 재단을 운영하는 아내 멀린다 게이츠다. 넷플릿스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Inside Bill's Brain>(인사이드 빌 게이츠)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게이츠 부부는 크리스토프의 기사가 묘사한 '제3세계'에서의 보건 활동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멀린다가 말한다. "사람들이 여전히 설사로 죽고 있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그것도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요. 정말, 장난하나 싶었죠(are you kidding me?).” 빌이 말한다. "부모가 설사로 죽는 아이들을 묻는 일이 1년에 300만번 일어나는 동안, 내가 시간을 보내는 세상에서는 설사로 죽은 아이를 묻는 부모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죠."
결과적으로 크리스토프의 기사는 빌에게서 아주 중요한 의문을 끌어냈다. 빌은 묻는다. "세상이 엄청난 자원을 이런 죽음을 피하기 위해 쓰고 있기는 한 걸까?"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빌은 그 스스로가 바로 그 '엄청난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재력가이자 명망가이고, 빌은 그에 걸맞은 행동을 실천에 옮겼다. 게이츠 부부는 엄청난 양의 독서와 전문가 회의, 실험, 국제공모전을 거쳐 마침내 배변을 모아 가열해 연료와 음용수를 만드는 '옴니 프로세서'를 발명했다. 옴니 프로세서는 현재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 나오는 배설물 3분의 1을 처리해 사람들에게 깨끗한 식수를 제공한다고 한다. 크리스토프는 카메라 앞에서 너스레를 떤다. "이게 제가 쓴 가장 중요한 기사가 됐죠".
혁명적이라고 부를만한 성취로 이어진 결과를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개가 사람을 무는 일'에도 언론의 관심이 필요하다. '사람이 개를 무는 일'에 비해선 턱없이 부족한 대중의 반응을 얻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집요하게 보도해야 한다.열번, 스무번, 어쩌면 백번을 쓰다 보면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개를 무는 건 누구에게나 읽을만한 뉴스거리이겠지만, 개가 사람을 무는 건 누군가에게 끔찍한 현실이다. 무엇이 더 보도할 가치가 있을까.